<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후안 룰포 외 지음, 김현균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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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제목이 이래? 우연히 옆을 지나던 한방지기가 책표지를 보더니 한마디 툭 던진다. 단편 제목이지만 눈길을 끄는 데 백점만점을 받겠다. 스페인 라틴아메리카 편의 표제 단편이 된 후안 룰포의 이 표제작 날 죽이지...... 부터 읽기 시작했다. 경음을 확실히 살린 스페인어 표기때문인지 등장인물과 작가이름이 낯설게 보이고 이 문화권의 정서를 심도있게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지라 처음 시작한 단편이 더디게 읽혀졌다. 그런데, 마지막 결론부를 보고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다시 책장을 앞으로 넘기며 전체의 뉘앙스를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지만 호흡이 적당하게 배치되어 있고 이야기의 시간적 얼개도 효과적으로 짜여져서 과거의 잘못으로 평생을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한 불쌍한 노인의 독백이 드라마틱하게 다가오고 결국 비참한 결말을 당하고야 마는 한 인생의 덧없음이 무시무시한 어떤 힘과 더불어 황량한 겨울바람처럼 느껴졌다. 자, 첫  작품은 성공이고. 

이제 책을 처음부터 보기로 하고 첫 단편을 읽는다. 안녕 꼬르데라. 여기서 안녕은 헬로나 하와유가 아니다. 아듀다, 페어웰이다. 꼬르데라가 누구냐? 소몬떼 목장의 암소 이름이다. 최근에 국내 다큐영화 워낭소리를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다. 두 아이의 친구였던 암소는 목장주에게 값아야 할 밀린 돈을 청산하기 위해 시장에 팔린다. 아버지 안똔은 아이들에게 엄마요 할머니같은 존재였던 꼬르데라를 팔러 시장에 나가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 일부러 팔리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소작지를 회수하겠다는 협박에 낙찰자에게 소를 넘기게 된다. 암소는 빈곤에 쪼달리는 사람들의 희망과 다름없다. 꼬르데라가 떠났듯이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된 삐닌도 로사를 남겨두고 전쟁터로 떠난다. 졸부들은 암소를 도살장으로 끌고 갔고 귀족들은 자신들의 내란에 죄없는 이들을 전쟁터로 몰아간다. 스페인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레오뽈도 알라스의 이 이야기는 평탄한 서술속에 심금을 울리는 강한 무기가 들어있다.  

아나 마리아 마뚜떼의 태만의 죄는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사촌의 집에서 자란 한 청년이 어느날 자신의 딱딱하게 굳은 손등과 옛 친구의 보드라운 하얀 손을 비교하고 그동안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태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결론은 복수였다. 자신의 꿈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곧 죽음과 마찬가지라는 작가의 메세지가 강렬하다. 섬뜩한 결말의 절정은 오라시오 까르가의 목잘린 암탉이다. 다섯번째로 정상인 아이를 얻은 한 부부는 위로 네명의 아이가 하녀가 부엌에서 암탉을 잡는 것을 유심히 본 후에 그대로 자신들의 동생에 저지르는 참혹한 행동을 묘사한다. 가히 충격적인 이야기에 말문이 막히고 이런 분위기는 포우의 공포 단편들의 광기를 능가한 듯 보인다.  

알레오 까르뻰따에르의 씨앗으로 돌아가는 여행은 마치 핏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단순히 주인공의 나이가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은 서술의 시간구성이 거꾸로 배치되어 있다. 주인공이 살던 곳은 그의 죽음과 함께 페허가 되어있다. 여기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의 임종의 순간과 과거로 더 젊은 시절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역배치된 서술이 전혀 어색하거나 서툰 느낌이 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후안 호세 아레올라의 전철수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거대한 날개가 달린 상늙은이는 환상여행으로 인도되는 새로운 장르였지만, 개인적으로  묘사와 서술방식에 있어 보다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난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드러누운 밤이 압권이었다는 생각이다. 호기심만으로는 다양한 작가들을 한번에 섬렵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스페인어권 다양한 단편소설을 맛보는 시간은 달콤하고 매력적인 시간이었다. 각 단편의 앞에 작가와 작품해설이 나오는데 작품해설은 압축된 언어로 적확하게 작품의 에센스를 짚어내어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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