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스쿨 여행 베트남어 - 급할 때 바로 찾아 말한다! 핵심 표현 정리집 PDF + 필수 여행 자료 PDF 시원스쿨 여행 외국어
이수진.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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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여행 “베트남어”


작은 포켓북이지만, 여행에서 필요한 웬만한 내용은 다 들어있다. 우선 이 책에 발음이 우리 말로 적혀있더라도 성조를 맞춰 연습하지 않으면. 중국어, 대만어, 베트남어, 태국어, , 미얀마어도 성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캄보디아어에는 없다지만, 아무튼 베트남어 성조는 중국어보다 2개가 더 많아 6개라 한다. 


이 책은 표현이 한글 순으로 실려있고, 가장 필요한 낱말, “빨리 찾아”코너가, 여기에는 이것, 좌석, 안전벨트 등의 낱말이 그다음으로, 장면 또는 상황별 표현법이 올라와 있다. 




“기내에서”라는 주제를 보자.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가져다주세요.”라고 손가락으로 대상을 짚어 보이면서 “쩌 또이 씬 까이 나이 아”라고 하면, 장소와 상황, 몸짓으로 이미 절반 이상은 통한 셈이다. 바로 밑에 장소, 상황별로 얼른 찾아볼 수 있도록 단어와 책의 쪽수가 적혀있다. 작은 포겟북이 신통방통하게도 갖출 건 다 갖춘 듯하다. 


책에 적힌 쪽수를 펼쳐본다. 거리 50p, 여기에 또 “빨리 찾아” 코너가 있다. 여기에 길, 거리 (드엉) 찾다(띰), 주소(디어 찌), 지도(반도) 순으로 실려있다. 두 쪽을 넘기면 “거리에서” 가 나온다. “이 길이 만나요?” 디 드엉 나이 꺼 둠 콤 아, 마치 뭔가 나열한 듯한 뭉쳐지거나 조합된다는 느낌은 없다. 아무리 여행 때, 긴급대비용으로 써먹을 요량이라도 베트남어의 형성원리와 성격 정도는 알아둬야 할 듯하다. 지금 사용하는 라틴문자를 사용한 쯔꾸옥응으가 정식 정서법이라 한다. 한자문화권이었으니, 한자를 많이 사용했겠지만(쯔놈이라는 문자체계를 사용했는데, 중국의 본래 한자보다 획수가 많아지는 등, 한자를 아는 사람이 쓸 수 있었다), 라틴문자, 영어 알파벳 같은 걸 사용하니, 의미를 알 수 없다. 




아무튼, 꽤 시원하게 통하는 베트남어다. 필요한 키워드를 찾아 해당 쪽수를 펼쳐보면, 응급대응 수준을 넘어서 간단하면서 꼭 집어 물어볼 수 있을 듯하다. 거기에 핵심표현 정리집과 필수 여행 자료를 이용할 수 있으니, 베트남어 공부를 이것으로 시작, 흥미를 갖게 될 때까지, 여행 갔다고 전제하면서 거리에서, 인터넷, 카페, 식당, 음료, 택시, 아무튼 필요한 장면과 상황별 대응의 이미지 훈련을 해보는 것까지는 무리 없이 가는데, 아직은 단어를 기억하는 게 어렵다. 방콕 베트남 호찌민으로 여행을 떠나 보련다. 나 혼자 묻는 연습을. 포켓북, 조금 하면 금방 될 듯한 느낌의 책이라서 부담이 없이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겠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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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어원 영단어 : 기본편 - 그림으로 하나하나 알기 쉽게
시미즈 겐지 지음 / 더북에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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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학습법

지은이 히로시 스즈키는 어원학습법을 설명한다. 접두사나 접미사를 붙여서 단어를 늘린다. 실제 언어가 생겨난 이래로 사람들은 소통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말들이 오래 세월을 걸쳐 만들어진다. 끌어내다. 끌다와 내다가 합쳐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보다는 이미 있는 단어를 묶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이 이해하기 쉽기에...

영어의 기원은 게르만족에 속했던 앵글로 색슨족이 쓰던 말(게르만어의 분파)로 5세기 무렵 영국으로 건너와 생활하면서, 라틴어, 그리스어 등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왔다.아무튼 영어는 6개 나라에서 모국어로50여 개 나라에서 공용어로 사용된다. 우리 학교 영어교육은 일본의 영향 탓도 있어, 문법위주다. 발음이야 어찌됐던, 독해를 위한 문법이 우선이고, 단어외우기는 필수다. 마치 시험공부용 화학공식을 외우듯, 어떤 원리로 이런 단어와 표현이 생겨났는지는 묻지 않는다. 막고 품어라 식이었다. 어차피 이런 기초 위에서 고급영어를 익히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하나 둘, 기초를 쌓아야 한다. 소통의 도구인 언어가 아니라, 수학이나 화학공식과도 같았던 영어, 어학이 아니었다. 


영어 단어의 구성원리 이해하기부터, 영어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를 중심으로 어휘를 늘려왔는데, 주요 구성 요소는 세가지다. 접두사, 어근, 접미사다. ‘안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란 의미인데 이를 ‘소개’ 혹은 ‘도입’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한자권 문화여서 우리말 가운데 한자에서 비롯된 낱말이 꽤 많다. 길게 풀어쓰기 보다는 의미함축적인 표현이 많다. 아무튼 introduetion이란 말을 풀어보자. 접두사(intro)+어근(due)+접미사(tion)이다. 이렇게 보자면 영어는 단순한 알파벳 나열이 아닌 의미 있는 덩어리의 조합인 것이다.

이 책은 영어의 구성원리에 그림을 더해 입체적인 시각효과를 장기기억 속에 남도록 배려한 것이다. 단순히 단어를 외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단어를 풀어서 배치한다. intro(안으로)+duce(이끌다), 즉 도입 혹은 소개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책은 접두사 adapt의 ad(~에, ~쪽으로, ~향하다)를 비롯하여 41개를, 접미사 10개, 그리고 어근 126개, 177개를 싣고 있는데, 이를 응용하면, 많은 수의 단어가, 새롭게 눈 앞에 그려질 듯하다. 방법은 외우는 게 아니라, 뚫어지게 쳐다보는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즉, 눈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나이대라도 우선 그림과 연결지어 장기기억의 영역으로 옮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의미없는 암기는 단기 기억이고, 이를 장기 기억의 영역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복이 필요한데, 이 반복을 이해를 기반으로 하면 좀 더 시간을 절약하지 않을까싶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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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최진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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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과 세계, 또 건너감이란


지은이 최진석 선생은 <반야심경>과 세계, 달과 달을 비추는 수면처럼, 이곳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갑자기 당연하지 않다고 하면, 당황스럽고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다. 저곳이 어느덧 이곳이 되면, 또 다른 새로움과 황당함은 저곳이 되듯,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자는 늘 깨어있는 자요. 생각을 그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양과학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거시세계, 뉴턴의 고전역학이 이곳이라면 닐스 보어 등이 정립하였던 양자역학은 저곳이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 이 세계는 오감으로 전혀 알아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저 결과가 그렇다니, 그럴 뿐, 


왜 하필 반야심경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인지할 때, 참된 건너감으로써 삶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다는 지은이의 갈파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즉, 반야심경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게 돕는 반야의 지혜를 담은 핵심 경전이다. 


이 책은 5장 체재이며, 1장에서는 인간의 소명을 깨닫고 세상의 진실을 마주보기다.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늘과 땅 사이에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는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 노자의 자중자애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까, 당신의 고삐는 무엇인지, 왜 행복하지 않은가, 본무자성(색즉시색, 공즉시색이라) 무엇인가를 그것이게 하는 성질은 없다. 관계 맺는 형태와 인연에 따라 잠시 그것으로 있을 뿐이다. 불경에서는 본무자성(本無自性)이라는 존재형식을 “공”이라는 글자로 개념화한다, 이렇게 근본개념을 살피면서 2장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 반야의 지혜를 딛고 저쪽으로 건너간다고, 아는 것을 디딤돌 삼아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그럼 어떻게 하면 나를 키우는 지혜를 기를 것인가, 3장에서는 더 채우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相)을 짓지 않는다. 4장에서는 뒤집힌 생각을 바로잡아, 가장 탁월한 길을 선택한다. 5장.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고통의 바다를 건너갈 뿐이다. 


반야심경의 심오함을 지은이는 물리학을 빌어 설명한다. 그렇다고 물리학이 경전의 세계를 다 설명해주지도 않을뿐더러 같지도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일뿐이다. 


결론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즉, 건너가세, 건너가세, 저기로 건너가세. 저기로 다 함께 건너가세. 깨달음이여. 만세라는 뜻이다. 반야의 지혜란 지혜도 얻을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요. 얻을 것이 없기에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정된 생각 뒤집기, 보이는 길은 무엇일까?


인간은 이론이나 진리를 통해서 세계를 보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통해서 진리와 이론을 건축하는 존재다. 발상의 전환이며, 패러다임의 변화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어떤 특정한 관점, 창(이론과 진리)으로 이 세계를 보거(상을 만들거나)나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고정된 틀과 관념을 떨쳐내 버리라는 말이다. 또 보자. 법정 스님의 상징처럼 여기는 “무소유”란 또 무엇인가, 내려놓는 이유는 내려놓아야 더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빼는 이유는 힘을 더 세게, 더 정확히 구사하기 위함이다. 


반야 세계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이 없다, ‘바람직한 것’, ‘해야 하는 것’, ‘좋은 것’ 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두려움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뭔가를 잃는다는 것이야말로 두려움이다. 바람직한 것을 위해, 해야 할 것을 위해, 좋은 것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두려움 속에서 헤어나기 위함이다. 두려움으로 왜곡과 갈등이 생겨나니, 바람직한 것이 맘에 부담이 되고, 해야 하는 도리가 무겁게 어깨를 짓누를 때, 이런 가치 판단 자체가 무용, 쓸데없는 것이라.


한 번에 깨침을 얻을 수 없듯, 하루 이틀 그리고 또 하루 이틀 셀 수 없을 만큼의 되새김질이 필요하다. 부처가 승려 대중에게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을 아니보고 부처님의 손끝을 보고 있노라. 이게 바로, 부처라는 존엄의 대상이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그가 행하는 것이 진리인 양. 뜻도 모르고 경전만 부지런히 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최진석 선생의 반야심경은 경전이 아닌 그 안에 담긴 뜻을 헤아리고 또 헤아려 마음의 무기로 삼으라는 말이다. 부처의 손끝이 아닌 달을 보라는 말이다. 즉,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건너가라는 말이다. 장애물이 벽이든, 물이든, 그 형체는 본디 없는 것이니...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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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의 역사
최경식 지음 / 갈라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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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의 목적, 암살에 숨겨진 진실들을 찾아서 


공식 역사기록만큼 승자독식인 게 없다. 명확하다. 한 산에 호랑이 두 마리가 살 수 없듯, 누군가는 쫓겨나야 하고, 쫓겨나는 데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크게 보면 “대의명분”이라는 그럴듯한 논리를 들고나온다. 명분이라는 포장 안에 숨겨진 진실한 이유는 어떤 당해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후에, 뒷이야기가 나온다. 사실이든 조작된 풍문이든 간에.


암살, 누군가를 남몰래 죽인다는 뜻이다. 이 책<암살의 역사>에는 한국과 세계사 편으로 나뉘어 각각 10건의 암살 사건을 다룬다. 전자는 고려 시대에서 대한제국을 거쳐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10건의 암살을 다루고, 후자는 새로운 미국을 열었던 링컨에서 이집트의 사다트까지의 암살을 다룬다. 세계 1차대전의 도화선이 페르디난트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의 자초지종과 볼셰비키 혁명, 소비에트 연방 건설의 걸림돌 트로츠키는 누가 죽였을까, 발키리 작전으로 알려진 히틀러 암살 미수, 인도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투쟁을 이끌었던 간디, 케네디, 마틴루터 킹,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 뒤로 보이는 사회상황들이 무척 흥미롭다. 


한국사 편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고려 왕건의 장자 나주 오씨 소생으로 2대 왕에 오른 혜종이 고려 통일의 후과를 뒤집어쓴다. 권력 쟁투에 부자가 어디 따로 있던가, 왕건이 죽기 전에 병상에서 고명대신들에게 혜종을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건만 동생들에게 죽임을, 형을 죽인 동생은 또 그 동생에게 죽임을 당하고…. 조선조 단종을 잘 보필하라고 지정한 고명대신들을 쳐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수양, 그는 형인 문종도 암살한 것인가? 비교적 일반에는 익숙지 않은 문종암살설, 17세기로 접어들면서 TV 역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광해와 이를 몰아낸 인조 이야기, 그의 장자 소현세자의 의문사, 무수리 출신의 생모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던 영조는 그의 이복형 경종을 암살했는가, 정조, 고종의 암살설, 현대사의 첫 대목, 광복의 언저리에서 포병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스러진 김구, 박정희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 장준하는 누가 죽였는가?, 결국에는 박정희도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죽고, 고려와 조선의 초창기와 말기에 일어났던 왕들은 왜 암살당했을까? 


암살이란 누군가를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커다란 역사 물줄기를 바꿔놓을 만한 계기를 만드는 그 순간에 일어난다. 암살을 당한 이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그 죽음 전후를 살펴본다. 지은이는 공식 역사기록 속에서 끊어진 사건의 앞과 뒤의 공백을 상상과 추리에 그치지 않고, 당대 주변의 권력의 향방과 흐름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톺아보면서, 아슬아슬한 소설의 영역 언저리까지, 역사에는 만일이라는 가정법은 통하지 않지만, 이 또한 늘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20명의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세상이 그들 각각을 어떻게 평가하든, 왜 그들은 죽어야만 했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풀어내는데 이 책의 묘미가 있지 않을까,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약간 각도를 달리하면 새로운 모습으로 비치는 이들 사건, 그래서 역사(정사, 야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일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능력 있고 문학적 재질도 뛰어났던 지도자 조조가 소설 속에서는 천하의 간신 조조였으니 말이다. 


대중을 위한 역사서를 많이 썼던 이덕일의 <조선왕독살사건 1~2권>(1권은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2권은 효종에서 고종까지, 2019, 다산초당)에서도 나오는 조선왕들을 둘러싼 암살이야기다.


정치와 권력의 향방의 물꼬를 바꾸는 암살


고려 혜종과 공민왕, 조선의 문종, 소현세자, 경종, 정조의 죽음은 당대의 정치 권력의 질서를 바꾸려 행동으로서 암살이지 싶다. 고종 역시도 정치 권력의 범주이기는 하지만, 국권 침탈의 결정적 계기를 잡으려는 이들의 행동이었고, 이의 반작용으로 3.1 만세운동과 대한민국의 수립이라는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 냈다. 박정희 암살로 시작된 반전, 레드퍼지(빨갱이 때려잡기)만큼 정적을 제거하기 좋은 구실도 없다. 한국전쟁 당시 자행한 국방군의 거창 양민학살 역시도 빨갱이 때려잡기였다. 1947년에 일어났던 제주 4.3도, 이의 진압에 동원된 여수 14연대의 불복종도 역시 이데올로기라는 프레임(틀)을 씌워놓고 주홍글씨를 세기면 끝이듯. 정점의 타격을 한 암살과 그 역사. 만약 이들이 암살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시계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역사에서는 금물인 "만약에~했더라면"이라는 상상의 유혹이 강한 게 역사라는 영역이기도 하기에. 


암살의 역사는 그저 역사적으로 당대에 중요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바뀌는 질서와 거기에서 이익을 얻고자 하는 목적이 숨겨져 있다. 이 책에 실린 암살의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가 잡히는 게 아마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군데군데 번득이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어 돋보이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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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아브람 알퍼트 지음, 조민호 옮김 / 안타레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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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삶


지은이 아브람 알퍼트는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에서 “충분한 삶”이란 무엇인지를 말한다. 그는 어렸을 때 위대함을 열망했다. 위대함은 ‘부’였고, 부자가 될 방법을 찾고 싶었단다. 청년이 돼서는 ‘부’보다는 ‘명성’을 한때 소설가를 꿈꾸기도, 하지만 이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대학원으로 잘못된 생각이라(지금 느끼지만)…. 세계를 누비는 저명한 교수가, 지금은 그렇게 됐지만, 지금은 특별히 만족스럽거나 행복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꿈과 미래의 경로는 누구에게는 한때의 것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되기도, 하지만 공통되게 내 손에 쥔 떡보다 남의 손에 쥔 떡이 더 커 보이고 맛이 있어 보인다. 지은이는 “우리의 욕망을 유도하는 것들이 잘못됐다”라고 지적한다. 즉, 뭔가를 잘하려는 욕심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재능과 역량이 늘 모자란다고 여기게 만든 끊임없이 경쟁하고 최고를 지향하도록 만드는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충분한 삶”이란 화두,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모든 삶은 생명의 다양성을, 충분해야 함은 제각각의 삶이 위해 없이 서로 배려하고 돌보는 그런 세계를 말한다. 지은이는 자신이 나름 위대해 졌지만, 만족스럽지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대목이 이 책의 핵심이다. 위대해졌지만,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위대함과 충분함은 같은 의미가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말이다. 위대함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충분함을 지향하는 삶을 찾아야 함께하는 세상, 생물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무엇이 충분한 삶인지를 찾기 위한 지은이의 이야기는 5장으로 이뤄졌는데, 1장에서는 위대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를 찾는다. 충분함의 철학적 기원과 위대함을 넘어서려는 오랜 역사,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 모두를 위한 충분한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2장 우리 자신을 위하여 에서는 보장되지 않는 만족, 능력주의 위대함이란 이데올로기 마주하기, 3장에서는 우리 관계를 위하여 충분한 관계의 정치를, 4장에서는 우리 세계를 위하여, 5장 우리 지구를 위하여, 나를 개인에서 출발하여 우리를 둘러싼 경제와 정치, 그리고 환경을 넘어 세계를, 지구를 위하여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능력주의, 위대함 이데올로기


지은이의 견해, 위대함이 충분함이라는 착각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지적하는 능력주의가 본연의 사명과 정의의 차원에서 실패하는 이유와도 같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치유하는 개념이 아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이용한다고. 모두에게 자신의 재능을 보여줄 공정한 기회가 있다면 그 재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받는 것도 당연히 공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나, 공정한 불평등이 과연 정당한지, 불평등한 부와 권력 체계를 유지하려는 사회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지은이는 마이클 샌델이 진보적 공동체주의자이지만, 위대한 부와 명망 있는 지위를 가진 사람들과 공동선과의 관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그가 오늘날의 잘못된 성공 윤리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능력주의와 위대함과는 또 다른 인식이 깔려있다. 표층에서는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심층으로 들어갈수록 또 다른 의미로서의 위대함과 충분함의 결이 달라짐을 엿볼 수 있다.


위대함과 충분함


위대함을 추구하는 세계관은 우리에게 스트레스, 불안, 불평등, 생태적 훼손 등의 질병을 안겨주었다. 인류가 자연보다 위대하다고, 너보다는 내가 더 위대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우월주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왜? 많은 사람이 위대한 소수에 기대고 그들의 건투를 비는 것이 모두의 충분함을 성취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위대함이 충분함이라고 여기는 사고의 결과가 기후위기, 인간세, 양극화, 물질경제와 사회적 지위 등, 눈앞에 펼치진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위대함과 충분함이 한데 섞여 있는 생각의 결과이며 그 현상이다. 지은이는 위대함과 충분함은 구분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위대함이 충분함이라는 착각을 질타한다. 아마도 공맹의 사상과 노장사상과의 대립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모두에게 충분한 삶이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과유불급, 중용의 도와도 같은 맥락으로 읽히기도 한다.


지은이는 장자와 혜자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친구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논한다. 장자는 혜자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혜자의 논리를 깨는 내용인데, 기실 이들은 친구였다. 장자는 친구인 혜자의 오만한 태도를 질타한 것은,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로서 혜자가 깊은 통찰뿐 아니라 스스로 의심하는 겸손의 기쁨을 경험하기를 바랐다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신자유주의 질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같은 계급 내에서도 각자도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물질경제가 위대함으로 ‘부’로 ‘명성’으로, 정작 이런 경지나 위치에 올라선 이들은 만족할까, 행복할까. 우리에게 묻는 말이다.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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