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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를 향해 쏴라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부조리를 향해 쏴라
최인 작가의 2021년 장편소설 <도피와 회귀>(글여울, 2021), 제목부터가 사색적이다. 작가의 말도 어렵다. 읽다 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되겠지만, 물론 끝내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과 철학, 이념과 진리, 소설과 철학이 만나서 이념이 되고, 철학과 이념이 만나서 진리를 만들고, 또다시 이념과 진리를 만나 사랑을, 진리와 사랑이 만나 소설이 되니, 소설은 곧 철학이자, 이념이며 진리이자 사랑이라는 말인가, 도입부부터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할 의도가 있었다면 꽤 성공적인 머리글로 시작했다. 꽤 기억에 삼는 소설이었는데, 이번에 그의 작품<부조리를 향해 쏴라> 역시, “부조리”에 관한 철학적 접근으로 시작된다.
부조리, 철학에서는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뜻한다. 원래는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적 의미만을 표시하는 말이었으나, 합리주의 철학의 한계 속에서 등장한 실존주의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용어가 되었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의미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작가는 부조리란 무엇인가?, 부조리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부조리라는 감정을 느낄 때는 어떤 순간이었나? 를 부조리의 핵심 항목으로 네 가지를 든다. 첫째, 세상이 불합리하고 의미가 없다는 것, 둘째는, 삶의 의미와 생의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과 세상이 본질에서 무의미하고 혼란스러운 상태 사이의 갈등이라고, 셋째, 어떤 위치의 인간이든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세상은 그 의미를 제공하지 않아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넷째, 인간은 무언가를 열심히 창조하면서 의미를 추구하지만, 사회와 체제, 역사와 세계는 그 의미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그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불안에 빠진다.
“진지한 철학의 문제는 오로지 자살뿐”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진지한 철학의 문제는 오로지 자살뿐”이라고 말했으니까, 공허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마주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첫 번째 충동이 자살이다. 부조리란 세상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카뮈의 말대로 삶은 무의미하고 공허하다. 그가 말한 이방인이란 단순히 외부인이 아니라 낯선 말하는 게 아니라 ‘부조리한 인간’이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는 사람,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인간이 아무런 이유 없이 우연히 이 세상에 내던져진 고아 같은 존재라면, 그건 존재의 목적도 원인도 없는 부조리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런 자신의 무목적성과 인생의 몰개연성을 깨닫는다면, 인생을 더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자살이 유일한 인간의 선택지로 남을 수밖에.
주인공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 큰 이상도 포부도,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도 없다. 그런 주인공에게 부조리한 역사(?) 카뮈가 이해하는 방식으로는 곤란하지만, 아무튼 부조리는 불합리하고 의미 없고, 삶의 의미와 생의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도 무의하고 혼란스러운 상태, 개인적이든 사회적으로든 노력해도 의미 없는 괴물 같은 존재, 이를 피하려 하면 할수록 잡아먹히고 만다. 부조리에 대항한 자에게 가해지는 절망과 파멸,
죽음이 눈앞에 닥치자 비로소 안식처인 동굴을 찾는다. 안식처로 여겼던 동굴은 부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동굴은 주인공 그 자신이고 자아이고, 내면이고, 정체성이다. 전작 <도피와 회귀>에서 보여줬던 포맷이다. 결국, 누구도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있다면 그것은 자살뿐, 희망의 모습을 하는 부조리는 허상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희망이다 당위일 뿐인 부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소설의 대미를 앞에 12장부터 역순으로 1장까지, 부조리를 거슬러올라가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하이에나, 도시를 배회하는 하이에나를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도시 뒷골목치고 이런 놈들이 배회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사북탄광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카지노, 60개 중반쯤 돼 보이는 사람이 카지노를 기웃거린다. 부조리한 사회와 좌충우돌하면서, 자본주의자의 삶을 열심히 산 결과, 지금 괴물 같은 자본주의와 부조리한 사회에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털렸을 뿐이다. “털리고 빼앗긴 건 나 하나만은 아니다.”“당연히 나와 그들은 달라. 다르고말고” 그가 안식처로 삼는 동굴을 향해 가던 중,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스쳐 가면서, 뭔가가 머리를... 폐광으로, 동굴로 돌아가야지, 그리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한 발을 절뚝이는 하이에나가 그의 곁을 지킨다. 눈을 뜬다.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동굴을 향해, 지금, 이 순간에 죽어야 할 것은 부조리다. 괴물 같은 부조리는 죽어야 마땅하다. 실탄이 장전된 권총은 동굴을 향해 겨눈 채 아니 내 가슴을 향해 겨눈 채,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고, 하이에나는 내 곁에 여전히...
파랑새를 잡다, 자유와 책임, 선택
파랑새는 중상을 입은 할아버지를 동굴로 안내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도 파랑새를 찾았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말한 그 파랑새가 동굴 안으로 들어와, 머리 위로 날아와 앉았다. 파랑새를 잡았다. '이제서야 비로소 과물 같은 부조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구나."
주인공은 꿈속에서 지난날들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가 그를 잉태한 순간까지, 사업을 말아먹고, 경찰을 그만두고, 더 거슬러 올라간다. 보통의 소설이 회상으로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이 소설은
12장에서 출발에서 1장 결말로, 그 안의 이야기들은 시계의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결국, 부조리다. 카뮈의 <시지프신화>처럼, 이방인은 부조리한 인간이다. 제대로 자본주의에 뿌리내림도 빌붙지도 못하고, 겉돈다. 제삼자처럼, 결국에는 주인공 자신이 이방인이며, 부조리임을... 실존철학, “나는 존재하도록 던져졌다”라는 사르트르, 그의 소설<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처럼 원인 모를 구토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부조리를 향해, 혐오의 시대,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으로서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데,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때, 그 삶을 ‘자유’와 ‘선택’으로 엮을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