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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 아리랑 - 캠코 2세의 삶을 통해 다문화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 문제작
김건형 지음 / 대경북스 / 2025년 2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메콩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지은이 김건형은 자신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비즈니스 현장이었던 아시아, 중동 등지에 목격했던 현실과 한국 사회의 필요성 때문에 결혼을 이주 배경으로 한 여성들, 왜곡된 유교 질서는 아름다운 전통이 아닌 배타와 멸시, 차별의 음습한 성정을 드러내면서 가난한 나라에서 팔려 온 것들이라는 프레임이랄까 서사구조라 할까 탬플릿이랄까, 아무튼 그저 많은 식구 중 입 하나 줄이고, 잘사는 나라 한국으로 가서, 그녀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다면(이런 조건 아래 국제결혼은 성사됐다. 지참금 조로 남성은 브로커를 통해 신부의 가족에게 돈을 주었으니)이란 생각 하나로 온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기에 한국어가 어눌할 수밖에 없었던 80~90년의 이주민 여성들,
우리는 이들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 부른다. 실상은 다문화가정이 아니라 그랬으면 하는 바람의 탬플릿이다. “다문화”가 아니라 “이문화(異文化), 다문화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호인정에 터 잡은 배려와 똘레랑스의 문화라 봐야 하지만, 이문화는 그저 다른(異) 문화다. 거기에 더해지는 경제력을 척도 삼아 못사는 가난한 나라라는 도식, 그런 나라에 제대로 된 문화가 있겠냐는 배척, 멸시, 혐오 등이 바탕에 깔린 것을 애써 덮어보려는 표현이 ‘다문화’라는 것이다. 그저 한국 사회에 정착하러 온 새내기(새로 온 손님)라고 표현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국제결혼 이주 배경을 가진 가정의 삶의 모티브로 한 소설, 캄보디안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캠코) 사회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주인공 닉과 멍,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함께 놀이 동무가 돼주었던 김철민, 이들은 몇 년 동안 어울려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동무들이었다. 해병대 장교였던 철민의 아버지 근무지가 바뀌면서 이들도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고,
캠코 ‘녹’과 ‘멍’은 한때 한국 사회의 시골에서 가난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시절의 청소년들처럼 권투를 배우고, 학교에서 써클에 가입도 하고, 이른바 불량청소년이 되는 길을 걸었다. 캠코라서 필연적으로 걸어야 했던 길이었을까?, 아무튼 소설의 흐름은 지역의 조직폭력조직의 일원이 되어, 시간이 흘러 두목급이, 술과 여자, 마약의 천당 삼위일체 사업에 손을 대고. 한편 철민은 검사가 되고, 마약반을 지원, 수사하는데. 어릴 적 친구들이 범죄조직의 지도부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다시 시간이 흘러 자식 대에 이르러 악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인연은 다시 이어지는데.
짧은 분량(140여 쪽)이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문장이나 소재 구성 등은 문학평론가들의 몫이니, 다만, 경찰청장이라든가 하는 등과 수사원이라는 말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수사관이고 주임검사지, 수사원이라고는 부르지 않을 터, 이런 대목들에서 낯섦이랄까 위화감을 느꼈다. 왜 이 작품을 썼는지에 관한 문제의식도 충분히 인식했지만, 여전히, 이주민에 관한 태도, 뭐랄까, 버트런드 러셀의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21세기북스, 2025)에 실린 내용 중, ‘억압과 착취에 맞선 약자들의 숨겨진 힘’이란 대목과 겹쳐진다.
억압과 착취에 맞선 약자들의 숨겨진 힘
이주민, 적어도 국제결혼 이주 배경 여성들, 이들을 한국 사회 구조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우월한 덕성을 부여하는 시기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다. 이는 억압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만 시작되며, 그들이 가진 권력이 더는 안전하지 않을 때만 일어난다. 피해자를 이상화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유용하다. 땅을 빼앗긴 아메리카 선주민을 고귀한 야만인으로, 잔혹한 산업주의로 농민을 끌어다 공장노동자로 만들어놓고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기라고,
또 당대의 여성들에게(평등 보통선거를 원할 때) 여성들을 더러운 정치에서 배제하는 것은 남성들의 훌륭한 자기희생이란 개소리를 하는 것처럼. 덕성은 가장 큰 선이고, 복종이 덕을 만든다면 권력을 거부하는 것은 친절한 행위라고 했다. 억압받는 계급이 우월한 덕성이 권력을 갖는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억압자들은 자신들의 무기가 거꾸로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민청’ 논의를 할 때 이 대목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울러 이주민,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태도의 다름 이른바 더블트랙(이중잣대적용)이다. 여성에게는 정주해서 한국 사람이 되라고 권하지만, 남성에게는 한국 산업사회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워 주는 대체인력으로써, 고용 허가된 기간이 끝나면 귀국해야 한다는 비정주 원칙이 여전히 관철된다는 점이다. 글쎄다. 단일민족과 한민족의 이데올로기가 통용되는 시대는 종언을 고하지 않았던가, 코스모폴리탄이 되야한다고 "세계시민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참으로 묘한 대비다.
이 소설의 배경에는 이런 것들이. 메콩 아리랑 동남아시아에서 울려 퍼지는 ‘아리랑’이란 제목의 의미심장함, 대한독립을 위해 풍찬노숙을 하면서 남의 땅에서 불렀던 한과 희망의 노래 ‘아리랑’이 묘하게 겹쳐온다. 이주민 2세대가 겪는(물론 여기에는 새터민, 탈북민도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사회의 배타성과 폭력성에 희생자로 피해자로) 한이 담겨있는 듯, 또 어차피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또한, 메콩에서 울려 퍼지는 ‘아리랑’은 꽤 상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