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아브람 알퍼트 지음, 조민호 옮김 / 안타레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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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삶


지은이 아브람 알퍼트는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에서 “충분한 삶”이란 무엇인지를 말한다. 그는 어렸을 때 위대함을 열망했다. 위대함은 ‘부’였고, 부자가 될 방법을 찾고 싶었단다. 청년이 돼서는 ‘부’보다는 ‘명성’을 한때 소설가를 꿈꾸기도, 하지만 이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대학원으로 잘못된 생각이라(지금 느끼지만)…. 세계를 누비는 저명한 교수가, 지금은 그렇게 됐지만, 지금은 특별히 만족스럽거나 행복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꿈과 미래의 경로는 누구에게는 한때의 것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되기도, 하지만 공통되게 내 손에 쥔 떡보다 남의 손에 쥔 떡이 더 커 보이고 맛이 있어 보인다. 지은이는 “우리의 욕망을 유도하는 것들이 잘못됐다”라고 지적한다. 즉, 뭔가를 잘하려는 욕심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재능과 역량이 늘 모자란다고 여기게 만든 끊임없이 경쟁하고 최고를 지향하도록 만드는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충분한 삶”이란 화두,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모든 삶은 생명의 다양성을, 충분해야 함은 제각각의 삶이 위해 없이 서로 배려하고 돌보는 그런 세계를 말한다. 지은이는 자신이 나름 위대해 졌지만, 만족스럽지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대목이 이 책의 핵심이다. 위대해졌지만,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위대함과 충분함은 같은 의미가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말이다. 위대함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충분함을 지향하는 삶을 찾아야 함께하는 세상, 생물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무엇이 충분한 삶인지를 찾기 위한 지은이의 이야기는 5장으로 이뤄졌는데, 1장에서는 위대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를 찾는다. 충분함의 철학적 기원과 위대함을 넘어서려는 오랜 역사,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 모두를 위한 충분한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2장 우리 자신을 위하여 에서는 보장되지 않는 만족, 능력주의 위대함이란 이데올로기 마주하기, 3장에서는 우리 관계를 위하여 충분한 관계의 정치를, 4장에서는 우리 세계를 위하여, 5장 우리 지구를 위하여, 나를 개인에서 출발하여 우리를 둘러싼 경제와 정치, 그리고 환경을 넘어 세계를, 지구를 위하여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능력주의, 위대함 이데올로기


지은이의 견해, 위대함이 충분함이라는 착각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지적하는 능력주의가 본연의 사명과 정의의 차원에서 실패하는 이유와도 같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치유하는 개념이 아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이용한다고. 모두에게 자신의 재능을 보여줄 공정한 기회가 있다면 그 재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받는 것도 당연히 공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나, 공정한 불평등이 과연 정당한지, 불평등한 부와 권력 체계를 유지하려는 사회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지은이는 마이클 샌델이 진보적 공동체주의자이지만, 위대한 부와 명망 있는 지위를 가진 사람들과 공동선과의 관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그가 오늘날의 잘못된 성공 윤리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능력주의와 위대함과는 또 다른 인식이 깔려있다. 표층에서는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심층으로 들어갈수록 또 다른 의미로서의 위대함과 충분함의 결이 달라짐을 엿볼 수 있다.


위대함과 충분함


위대함을 추구하는 세계관은 우리에게 스트레스, 불안, 불평등, 생태적 훼손 등의 질병을 안겨주었다. 인류가 자연보다 위대하다고, 너보다는 내가 더 위대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우월주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왜? 많은 사람이 위대한 소수에 기대고 그들의 건투를 비는 것이 모두의 충분함을 성취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위대함이 충분함이라고 여기는 사고의 결과가 기후위기, 인간세, 양극화, 물질경제와 사회적 지위 등, 눈앞에 펼치진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위대함과 충분함이 한데 섞여 있는 생각의 결과이며 그 현상이다. 지은이는 위대함과 충분함은 구분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위대함이 충분함이라는 착각을 질타한다. 아마도 공맹의 사상과 노장사상과의 대립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모두에게 충분한 삶이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과유불급, 중용의 도와도 같은 맥락으로 읽히기도 한다.


지은이는 장자와 혜자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친구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논한다. 장자는 혜자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혜자의 논리를 깨는 내용인데, 기실 이들은 친구였다. 장자는 친구인 혜자의 오만한 태도를 질타한 것은,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로서 혜자가 깊은 통찰뿐 아니라 스스로 의심하는 겸손의 기쁨을 경험하기를 바랐다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신자유주의 질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같은 계급 내에서도 각자도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물질경제가 위대함으로 ‘부’로 ‘명성’으로, 정작 이런 경지나 위치에 올라선 이들은 만족할까, 행복할까. 우리에게 묻는 말이다.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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