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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는가?
조원진 외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1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대 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는가?
있었다는 당연한 답변인데 생소하다. 그런데 쿠데타, 그건 요즘에 쓰는 말이 아닌가, 옛날 역사는 정변인데, 이 두 낱말의 함의는 같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것인가, 또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것인가? 꽤 혼란스럽기도 하고 흥미스러운 주제다.
우리 귀에 익숙한 정변(政變)은 선왕이 죽거나 선양하는 등의 절차 외에 비정상적(당대에는 정상이었을지도, 현대 사회의 인식으로는 관련 법규정에 따르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인 방법으로 최고 권력 교체를 말하기도 한다. 한편 쿠데타는 프랑스어 어로 “정부에 일격을 가한다”는 뜻으로, 군대와 경찰 등을 동원한 정치적 선동과 무력)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빼앗는 것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낱말이다. 유사하지만 다른 것으로, 보통 내부적으로 정권이 불안한 상태에서 발생하고, 지배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 동양 사회에서는 맹자 등의 유학자들이 천명(天命)으로 “역성(易姓)혁명”이 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고조선 시대(기원전 200년)에서 신라하대까지, 고려 건국 이전까지(980년 이전)로 보면 약 1200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정변이 얼마나 일어났고, 그 정변의 배경과 성격은 어떤 것이었는지, 고구려 28명의 왕, 이들의 평균 재위 기간은 25년, 백제 31명의 왕, 신라 상대 28명의 왕, 하대 23명 등 51명, 발해는 15명의 왕이 있었다. 신라하대인 통일신라와 발해를 묶어서 ‘남북국시대’라고도 한다. 이 책은 8명의 연구자가 각각의 시대를 맡아 집필했는데, 고조선 위만의 정변과정과 조선건국(조원진)에서 발해 역사의 변혁(임상선)까지, 고구려사에 보이는 정변과 역사적 의미(김진한), 고구려 차대왕(次大王)의 정변과 초기 왕위계승원칙(이종록), <일본서기>에 보이는 백제의 정변에 관한 고찰(홍성화), 백제 초기의 왕위계승과 정변(박재용), 신라 상대의 왕위계승과 정변(김희만), 신라하대의 쿠데타와 대외교섭(최희준) 등의 논문이 실렸다.
학술연구서라서 읽는 데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겠지만, 각주 등 참고문헌 등이 함께 올라와 있어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좋은 정보가 될 듯하다. 왜 우리 고대사에서 “쿠데타”라는 항목에 초점을 맞춘 이유를 그것이 즉 쿠데타가 역사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명한 것이다. 쿠데타를 정변으로 해석하는 게 맞는 것인지, 위에서 적은 좁은 의미의 쿠데타와 넓은 의미의 쿠데타를 어떻게 구분 짓는지 등의 고민이 각 저자의 논문 행간에 실려있다. 고대 삼국의 왕위계승과 정변, 정변으로 왕권이 교체된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삼국 관계 속에서 정변을 통한 왕위교체가 삼국 사이의 권력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 즉, 한 나라 안에서의 영향에 더해 대외 관계에 미치는 영향까지를 언급했더라면 좋았을 듯한데 후자의 분석이 없음이 다소 아쉽다.
특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위계승 원칙은 같은 세대 즉 형제승계와 세대 간 승계(예컨대 장자계승, 혈연원칙도 있을 것이고 영웅관에 따른 계승도 있을 것이다).
고구려사에 보이는 정변과 역사적 의미
꽤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동명성왕 이른바 주몽, 해모수, 유화부인, 금와왕 등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 부족 국가연합의 성격의 고구려 초기에 어느 부에서 집권하는지, 무력이 강한 쪽인가, 아니면 절충한 것인지, 신라의 왕선출은 어떻게, 백제는 계속해서 벗겨도 벗겨도 색깔이 같은 양파처럼.
형사취수제도와 왕위계승의 상관관계는 있는 것인가?, 세대 승계인가, 형제승계, 어느 쪽이 원칙이었을까 하는 따위의 의문이 계속 일어난다.
일본서기에 보이는 백제의 왕위계승
일본서기에 보이는 백제의 정변 현황은 4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한정된다. 눈에 띄는 대목은 6세기 초 동성왕 시해 사건의 배후에 무령왕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7세기 초 의자왕 대에는 초기 전제왕권 확립을 위한 친위쿠데타 성격의 정변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후자 의자왕의 경우는 어머니의 대리청정을 벗어나기 위한 정변이었음을 익히 알려졌지만, 6세기 초 무령왕, 그의 어릴 때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의 지역 전설에는 무령왕이 도일하던 때 임신한 부인이 어느 지역에서 출산했다는 전설로 지금도 축전을 여는 곳도 있으나, 아무튼 무령왕의 도일은 망명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백제의 담로(식민지라고 해석하는 게 타당한지는 별론으로 하고)경영자로 간 것인지, 후일 동성왕이 죽자, 일본에서 건너와 왕위를 계승하는데, 국내에서 무령왕에게 권력을 넘기기 위해서 정변을 일으킨 것인지, 선양한 것인지조차, 아무튼 꽤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는 백제의 담로제도성격과 실질(실제 국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군사력이 있었는지, 경제력은 어느 정도였는지)과 왕자들 사이에서 왕위계승을 위한 암투나 경쟁 등의 갈등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고구려 무사 집단이 일본 동북지역에 나타나고 이들의 성씨가 고려(高麗)라 쓰고 읽기는 고(코)마로 읽는다. 이 집안의 장자 외의 자식은 창씨하여 이노우에(井上)로 쓴다는 설도 있고,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 약광(若光)을 일본 조정에서 고려약광이라고 했다는 설, 이후 방계는 이노우에, 고이즈미, 간다, 나카야마 아라이 등의 다른 성씨로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책 제목은 "쿠데타"인데, 내용은 정변이라는 돼 있다. 굳이 쿠데타라고 부르는 데는 여전히 익숙지 않다. 또한, 한국 현대사에서 보이는 쿠데타와도 왠지 모르게 겹쳐, 부정적인 이미지로, 아마도 고정된 관념 때문에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고대사의 정변, 쿠데타의 성격은 역성혁명이론에 터 잡은 것도 보이고(주몽, 동명성왕), 이는 부족연합의 수장 자리를 놓고 송양과 경쟁하다 이겼는데, 이를 천명으로 이른바 신의 아들이기에 당연하다는 논리로, 정변을 정당화했다. 한편 또 다른 예는 잔학무도하다는 이유로 왕을 갈아치우는 예, 왕위계승을 두고 태자 혹은 세자와의 경쟁, 조선 시대의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처럼. 이 책이 나온 시기(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주는 미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