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문명탐구 - 한자로 들여다보는 고조선 문화
최상용 지음 / 덕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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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한자로 들여다보는 고조선 문화, 전혀 생소한 세상


지은이 최상용이 쓴 이 책<고조선 문명탐구>은 한자를 바탕으로 고조선 역사 속의 언어와 그 개념을 풀어내면서, 중국과 조선의 경계와 고조선의 강역을 짐작게 하는 2004.8.13.자 한겨레신문(유신재 기자)에 보도된 저우언라이(저우언라이) 총리와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과 만남의 자리에서 한 발언, “중국과 조선 두 나라, 두 민족의 역사적 관계는 발굴된 문물에 의해 증명된다. 두 나라, 두 나라,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될 때까지 3, 4천 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 연대에 대한 두 나라의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 역사학자나 많은 사람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라고, 즉, 중국의 동북공정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짜 맞추기를 한 것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조선 민족은 랴오허, 쑹화강 유역, 투먼강, 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는 표현은, 발해 땅과 하얼빈(고조선의 아사달?)까지도 고조선 강역이었음을 인정한 듯 보인다. 


이 책의 구성은 5부이며, 1부는 고조선의 문화유산, 2부 한민족의 언어와 사상, 3부 신석기와 청동기 및 철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4부 고조선의 의식문화, 5부 다양한 무덤 양식과 제례 문화까지를 담아냈다. 


이 책의 특징이랄까,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에 놀랄 뿐이다. 주류역사학계와는 궤를 달리하는 이덕일의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역사의 아침, 2007), 이득일 외 3 <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 단군, 환단고기 그리고 민족의 주체 사관>(도서출판 말, 2022)에서 우리의 고조선 역사에 관한 통념이 왜곡됐음을 지적한다. 식민사관, 조선사편수회가 한반도 안으로 우리 강역을 설정한 이유는 광활한 제국의 역사가 독립운동의 기운을 돋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생각된다. 물론 기자의 도래설, 위만의 조선 등, 단군의 전설이며 신화라는 쪽으로 몰고 가는데, 이의 진실 여부는 국가의 시초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중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실과 전설이 섞여버리면 오리무중이 되기에, 의도적이었느냐,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 속의 기록과 대종교의 자료 등도 인용하고 있는데, “동이족”이 한자를 창제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진 창힐은 동이족이었고, 공자 또한 곡부사람으로 동이족이라고, 조선의 소중화 사상에 젖은 사대주의자들이 제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에 기대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도 나온다. 중국 창힐문화연구원의 쑨펑 회장은 동이족이 한자를 만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며, 중국의 식자층은 이런 점을 알고 있다고. 마치 일본이 쇼토쿠 태자 이전의 역사를 전설과 신화로 치부하는 것과 같은 맥락처럼 느껴진다. 


중국의 대문호 린위탕(임어당)이 1960년 당시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과 만난 자리에서 안 장관은 “당신네 중국인들이 한자를 만들어 머리 아파죽겠소. 왜 그렇게 복잡한 문자를 만들어 우리 한국인들까지 힘들게 했냐고” 이때 한국 사회는 한문혼용이냐 한글전용이냐를 논쟁이 일 때였다. 린위탕은 당신네 동이족이 만들어 놓고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우리 역사학계는 철저하게 한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러시아 극동 사학자 유리 미하일로 부틴은 <고조선 연구>에서 중국이나 일본도 없는 역사를 만들어 내는데, 동이족의 후예인 한국 역사학자들은 자기네 역사를 부정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고,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론으로 하고, 이덕일 등이 이전부터 주장해 온 역사관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식민사관과 주체 사관의 대립이 그러하다. 


친일파로 알려진 이병도는 말년에 “단군은 신화 아닌 우리 국조(國祖), 역대왕조의 단군제사, 일제강점기 때 끊겼다. (조선일보 1986.10.9.자)는 글을 썼다. “대체 천이란 여러 의미로 해석(중략) 천(天)을 군장(君長)으로 해석할 때 개천절은 즉, 군장을 개설한다는 의미로 개국, 건국이 된다. 개천은 최고의 시조인 단군(檀君)즉위와 개국을 의미하는 개천이라고 보아야겠다”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히 실현할 만하므로, 하늘이 그를 인간세계에 내려보내 다스리게 하니(중략), 삼국사기에서 단군기재를 제외한 것은 김부식의 사대적 태도보다는 삼국사기의 명분상 삼국 이외에는 부여(夫餘) 등도 모두 제외, 신라 중심의 삼국사로 하였고, 신라보다 상대(윗대)역사는 피하려 한데다, 단군을 부인하려는 생각보다는 신라사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중요한 대목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 참조했다는 고기(古記), 즉 환단고기의 기록이 김부식의 기록 속에도 보였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단군, 환단고기는 실체였음을 짐작게 한다. 


천부경(天符經)


구한말 사상가인 전병훈은 천부경 주해에서 동방의 현인 선진 최치원이 말하였다. 단군의 <천부경> 팔십일 자는 신지의 전문인데 옛 비석에서 발견됐다. 천부경이란 모든 사람의 숭앙 대상이 된 하늘(천)로부터 내려받은 예언(부)적 정보를 담은 경전(경)이란 의미가 담겨있다고. 


삼원론(三原論)


세상의 모든 물질은 양자, 중성자, 전자라는 세 가지 기본 원소를 근원으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이론이다. 고조선의 삼태극이, 고조선과 고구려에서는 대륙의 음양론보다는 음중양이라는 삼원론을 활용했다. 문화의 저변엔 3이라는 기본수가 바탕이 됐다는 것인데, 삼족오, 세발솥, 삼태극, 천부인 3개, 삼위 태백, 환웅의 3천 친위대, 삼신오제의 삼신인 풍백, 우사, 운사, 삼신할매 등과 같은 기본맥락이 깔려있다고.


실제 단군(檀君)의 단의 의미와 군의 의미를 풀어서 설명하는 대목 등을 비롯하여 문화적으로 백의민족이 왜 백의민족이냐, 흰옷을 입은 이유가 무엇이었냐, 소도와 서낭당, 당집과 단오제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유산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어 아주 흥미롭다. 우선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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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본능 - 호르몬이 어떻게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가
페터르 보스 지음, 최진영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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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호르몬이 어떻게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가


지은이 페테르 보스는 생물 심리학자다. 우리가 자신과 주변 세계를 잘 이해하려면 모든 사람이 과학적인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인간관계의 생물학적 다룬 대중 과학서인 이 책<연결 본능>을 썼다. 그는 오늘날 인간관계가 많은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의존성을 약점으로 여기고, 돌봄은 경제적인 문제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데, 지난 수십 년 동안 강조된 개인주의 공동체의 희생, 종교적 신념체계의 붕괴, 그리고 세속화를 통한 발전이 인류의 성취로 인식했다. 나르시시즘의 증가, 외로움의 증가, 노령화에 따른 외로움 등은 항우울제 사용 같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연결됨과 돌봄의 중요성에 관한 재인식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신실재론의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우리의 본능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연결되고, 다른 공동체와 연대하면 살아간다. 안팎으로 돌봄은 필수였다.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다. 아이에서 노인, 그리고 병을 앓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 행위가 너무나 당연하였기에 망각한 것이다.


지은이는 우리의 호르몬 시스템은 수백 만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서 이런 연결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매우 소중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진화한 인간관계 중에서도 오래된 사회적 유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다. 대부분의 포유류 새끼는 호르몬의 작용으로 적절한 돌봄을 받는다. 인간은 어떨까? 어머니의 사랑에서 호르몬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책은 오랜 역사를 가진 관계의 생물학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구성했는지까지 10장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낸다. 먼저 1장에서는 사회과학 연구가 인간관계에 관한 이해를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를, 2장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이 전통적으로 어떻게 돌봄의 원형으로 여겨져 왔는지, 이런 인식은 정당한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3장과 4장에서는 우리의 뇌와 호르몬이 어떻게 관계 형성에 관여하며 영향을 미치는지를, 5장과 6장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데 필요한 생물학적 작용들이 어떻게 성인 사이의 관계, 연인, 직장 내 관계, 그리고 낯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7장에서는 스트레스가 우리의 관계와 생물학적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8장 인생 초기의 혼란스러운 관계와 오랫동안의 스트레스가 우리의 생물학적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9장에서는 인간이 각자 독특하다는 점, 생물학적 돌봄과 공감의 큰 차이에 미치는 영향, 유전학과 호르몬의 균형, 환경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탐구한다. 그리고 10장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구성했는지 등에 관한 것을 다룬다.


관계의 생물학


여기서는 낭만주의, 정신분석, 행동주의는 우리의 행동과 관계에 대한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의 대척점에서 진화심리학이 생겨났다. 월슨의 <사회생물학: 새로운 통합>에서 인간은 만들어질 수 있으며, 나쁜 행동은 부패한 사회에서 비롯됐고, 생물학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우리의 사회적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는 인간에게 무제한의 권력 남용과 공격성에 면책특권을 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시 어머니의 신화는 남성중심세계가 만들어 낸 것일까? 이른바 남녀의 사회적 역할론


여성을 자연스러운 어머니로 보는 관점에 대해서 지은이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살펴보는데, 여성들은 정말로 돌봄을 남들보다 우월하게 실행하며 자연스럽게 자손을 키우는 존재일까? 성별 차이와 모성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생각해본다. 볼비의 애착 이론에서 아무나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세라 블래퍼 허디는 아이를 키우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가 공동 육아일 거라는 점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과도 통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의 평균 40퍼센트 이상이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전통연구 보고도 있다.


생물학은 관계에서부터 시작해 누군가의 모성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모든 여성이 자녀를 갖거나 양육을 선호하지 않고, 원시 어머니라는 게 신화일 수 있는데도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이다. 여전히 젠더역할에 관한 구분이 존재한다. 남녀에 따른 사회적 역할이 그것이다. 고정된 관념이기도 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진정한 평등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할 때만 이루어진다. 확실한 것은 인간의 두뇌는 자녀를 돌보고 파트너에게 공감할 능력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인간의 본능은 살아남기위한 연결, 연대, 돌봄, 상호의존성이다. 이런 본질 접근을 막고 있는 사회문화적 제도의 한계는 무너뜨리는데는 생물심리학적 접근으로 발견하고 증명해낸 것들만으로도 부족한 모양이다.


공감과 연민, 그리고 연결과 연대


작가 수전 손택의 에세이<타인의 고통>는 언론에서 피해자들의 모습과 반응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신중하게 다뤘다. 동정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이 고통의 원인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무관한 반응, 실용적 무관심일 수 있다. 정부에서 연대를 보장하고 시민들의 공감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인데, 우리의 공감적 성향에 한계가 있으니, 연대는 제도화되어야 하며, 공감과 어느 정도 분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공감에 관한 칭찬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공감의 중요성이 논쟁거리다. 우리 내의 관계에서는 중요성은 관계의 질을 위해서 상호 공감은 꼭 필요하다.


이 책은 수많은 논쟁거리를 들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과 우생학, 이 때문에 한센병 환자와 지적장애, 유대인 등이 거세를 당하기도 하는 등, 고통을 겪기도 했다. 연결 본능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을 많은 사례를 들어 증명해 보인다. 호르몬, 남녀가 어떻게 서로에게 끌리는지를 말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호르몬의 역할로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고 연대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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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엘렌 스퇴켄 달 지음, 이문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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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적과 동침에서 살아남는 법, 꽤 긴박한 표현이다. 지은이 엘렌 스퇴켄 달은 성병을 연구하는 전문의다. 그는 말한다. 성병은 도덕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병에 걸렸다는 사실로 우리가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아니다. 성병은 섹스하니까 생기는 것이니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의학계의 “성병은 의학계의 공포소설로 불릴 만하다.”라고 말한다. 수치심을 많이 느끼는 질병을 진료할 때는 아주 적은 것으로 엄청난 것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성병 환자들은 가끔 고립감을 느끼고 고통을 혼자서 삭인다. 많은 사람이 감염과정을 부끄러워하고 병을 옮길까 두려워한다. 위에서처럼 도덕성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사회통념이 가만두질 않는다. 난잡, 함부로 놀린다는 따위의 네거티브 여기서도 남녀의 인식 태도가 확연히 구분되는데, 수치심을 왜 여자가 더 많이 느껴야 하는지?, 이는 뭐 별론으로 한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내용과는 또 다른 영역이니, 


성병에 관한 인식개선이 이 책의 메시지다. 구성은 11장이며, 1장 ‘대홍수의 해’에서는 임질에 관한 약간의 지식이, 2장 헤르페스, 3장 생식기의 사마귀, 4장, 매독, 5장, 질편모충염, 6장 클라미디아의 땅 노르웨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7장 사면발니, 8장 HPV 관련 자궁경부암, 9장 미코플라스마, 10장 옴, 11장 HIV와 AIDS 순으로 이른바 “약간의 지식”을 배워보자는 것이다. 성병은 곧 수치심이라는 왜곡은 인제 그만, 감기나 설사와 뭐가 다른지?,


임질과 성적 흥분, 임질과 매독이 혼동되던 고대 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의사였던 갈레노스는 2,000년 전에 임질이나 매독 등에 관한 정확한 증상이나 기록은 없지만, 남자의 음경에서 액체가 뚝뚝 떨어져 스며드는 병이 곧 임질이라 했고, 그의 동료인 카파도키아의 아레테우스는 임질을 통증 없이 정액이 계속 분출한다고 묘사했다. 그는 여성들도 같은 병을 앓을 수 있지만 <그들의 정액은 성기 부위의 자극과 쾌락, 남성과 관계하고 싶은 부도덕한 욕망 때문에 분비된다>고. 이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남아있단다. 성적 흥분과 임질의 구별도 못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로부터 한참이 흘러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외과 의사 존 헌터는 임질과 매독을 같은 질병이라 확신했다. 자신의 몸에 실험했던 헌터, 임질걸린 사람의 성기에서 고름을 빼낸 칼(세모날이라는 의료용 칼)로 자신의 성기에 찔렀다. 약간의 고름으로 매독에 걸린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훗날 헌터가 심혈관 질환으로 죽자, 많은 이는 매독이 혈관과 심장에 자리 잡아 순환계를 막을 수 있으므로 실제 그가 매독에 걸렸음을 증명했다고 믿었다. 


헤르페스와 수치심


헤르페스 단순 포진 바이러스 감염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흔하다. 이 질병은 거의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런데 헤르페스 수치심은 다른 성병과 비교하면 더 크다. 물집보다 더 큰 게 수치심인데 이상한 점은 새로운 감정이라는 것인데, 과학기술 발달로 1960년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구별할 수 있게 되면서 2형 생식기에 생기는 헤르페스가 탄생(본디 있었던 것이지만), 이는 성적 자유를 억압하려는 보수 세력에 의해 헤르페스 수치심이 완전히 과장됐다. 


HPV(인유두종 바이러스) 자궁경부암


성적으로 활발한 사람은 일생에 한 번은 HPV에 걸린다. 이는 피부 세포를 변화시키지만, 대부분은 저절로 교정된다.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데, 수년에 걸쳐(평균 15년 이상) 자궁 경부의 감염된 세포는 일반 세포에서 암세포로 변한다. 매년 300명 이상의 노르웨이 여성이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70~90명이 이 병으로 죽는다. HPV 예방 백신과 헨리에타 랙스의 암세포는 다른 사람의 암세포와 달리 몸 밖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많은 것을 발견하도록 도와준 셈이다. 인체 세포에 46개의 염색체가 있음을, 암 치료제와 소아마비 치료제의 개발도, 헬라 세포의 유전물질에서 HPV -18 바이러스 DNA가 발견됐고, 암과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백신으로 이어지게 됐다. 


'천형' 매독에 코가 없어지는데, 플라밍의 페니실린이 없었더라면, 


매독 이야기는 일본의 TV 드라마 “진”에서 근대일본 메이지기의 료마가 활동하던 때를 배경으로 타임슬립이 이루어진다. 현대와 19세 말로, 여기서 현대에서 옮겨간 의사가 패니실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매독’의 공포가 재현되는데. 프랑스 병, 1494년 샤를 8세가 벌인 이탈리아 나폴리점령과정에서 일어난 질병이 매독이었다. 성적 접촉으로 샤를 8세는 물론 순식간에 수천 명이 죽었다. 치료에 수은을 사용했다. 수은이 타액과 땀 생성을 증가시켜 체액 병리학의 접근 방식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성병의 기원까지는 아니지만, 성적 접촉을 통해 옮기는 병, 그리고 시대마다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에 꼭 끼는 게 성병이었다. 15세기의 매독, 그리고 한동안 동성애의 천형이라고 불렀던 HIV는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AIDS, 에이즈)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바이러스이다. 이 또한 정복돼가는 것이니, 아무튼 은밀한 침실의 세계에서 열린 세계에서도 다른 질병과 다르게 늘 수치스럽게 여겨야 했던 질병 성병이 제대로 된 시민권을 얻고, 공개적으로 우리가 살다 보면 당연히 걸리거나 전파되는 병인데, 왜 수치로 여겨야 하는가, 이런 의미에서는 이 책은 매우 훌륭하다. 병리학적으로는 특별한 내용을 더해주지는 않지만, 환자가 왜 수치스러워해야 하느냐며 환자에게 당당하게 나서라고 말하는 대목은 이 책의 의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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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윈 - 찰나의 영광을 넘어 오래 지속되는 승리로
캐스 비숍 지음, 정성재 옮김 / 클랩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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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승리라는 문화와 언어에 둘러싸여, ‘승자’, 만들어진 환상에 젖어


이 책<롱윈>의 지은이 캐스 비숍은 올림픽 조정 은메달리스트이며, 영국의 외교관을 거쳐 기업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모두 최고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1등 이외에는 기억하지 않는 사회가 바람직한가?, 우리가 떠올리는 승자는 모두 영웅적이며 때로는 초인적인데 이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본능적인 인식은 승리가 곧 성공이고, 성공이 곧 승리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승리라고, 하지만, 나 자신을 극복하는 건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망가진 인간을 만드는 승리 지상주의에서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가? 1등 만이 존재 이유가 있다면 나머지는 존재 이유는 없다는 말인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로 학교가 지덕체의 건강한 상식 있는 사회인을 기르는 곳이 아닌 1등과 그 밖이라는 패배감을 먼저 배우는 곳이 학교가 돼버린 현실에 대한 지은이의 날카로운 지적이 돋보인다. 


자, 그렇다면 승리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스포츠 선수의 삶에서 승리와 패배는 무엇을 뜻할까?, 기업의 성공은 먼 훗날 어떤 모습일까?,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이 미래 그 학생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정치인이 선거에서 당선되어 권력을 쥐었을 때, 어떻게 해야 이 결과가 우리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성공이 일시적이라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뒤따를까?


이런 의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승리를 재정의해야 할 때”라는 그의 생각에 따라 3부로 이뤄졌다. 1부에서는 왜 우리는 승리에 집착하는지를 언어, 과학, 역사적 관점에서 톺아본다. 2부는 교육, 스포츠, 비즈니스, 정치에서 승리에 관한 열망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를 들여다본다. 자신의 사례를 비롯하여 성공담 속에 감춰진 어두운 면을 탐구한다. 이 책의 본편인 ‘롱 윈’성공을 새롭게 정의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를 실현에 옮길 때 부닥치는 현실의 벽과 여기서 생기는 문제를 극복할 전략도 함께 담았다. 


왜 승리에 집착하는가?


승리란 무엇인가, 우리 일상생활 속에 스며든 승리의 언어, 어렸을 때부터 루저(실패자, 낙오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을 주변으로부터 셀 수 없을 만큼 듣고 살아온 사람들, 승자가 되고 싶은가 패자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답은 당연히 승자다. 패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문제는 이 질문이 잘못됐음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데 있다. 이 사회는 왜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가, 이런 이분법이 맞는가?, 타당하면서도 합리적인가?, 


원시시대 돌도끼 들고 인간보다 더 날쌔고 힘센 동물을 사냥해야만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무리를 지어 함께 도모하는 게 생존 가능성이 훨씬 컸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무리와의 경쟁 또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활동(갈등을 넘어 전쟁까지 포함하는)이었다. 그랬던 사회가 점차로 남은 생산물이 생기고, 계급분화가 되면서, 지배와 피지배로 나뉘고,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사냥과 경쟁은 점차로 경기나 스포츠 등으로 그 모습을 달리하였지만, 여전히 밑바탕에 깔린 사고는 생과 사의 선택이다. 승리는 곧 살아남음이요, 패배는 죽음이다. 


무의식 속에 자리한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사고는 당연히 학교에서는 친구들을 제치고 1등을 해야 한다고 배우게 되면서 더 굳건해진다. 기업인이든 정치인이든 ‘승리’를 남용한다. 어떤 의미의 승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말하는 승리에는 더불어 우리라는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승리의 어원, Win의 왜곡, 언제까지 이겨야 할까?


승리 Win은 중세 게르만어 일하다, 노동한다. 애쓰다의 의미인 게빈(gewinn)과 기쁨, 즐거움, 환희, 행복이라는 의미인 부니아(wunnia)에서 비롯됐다. 윈이란 지속적인 활동과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지, 특정 순간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후, 승리는 전쟁과 전투, 역사와 세계를 보는 태도의 변화로 점차 확장됐다. 수 세기 동안은 군사적 맥락에서 사용됐다. 경쟁자 또한 함께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바뀐 것이니.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겨야 할까?,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평생 경쟁하는 삶을 살라고 강요하는 사회, 숨 쉬듯 경쟁하는 사회 권력투쟁에서 밀리는 아이디어, 실익보다는 제 세력을 확장을 위해 손해도 감수하겠다는 것인데, 손익계산을 하는 기업인 또한 이런 맥락에서는 정치적이다. 하지만, 틀린 계산법도 아니니, 다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이들은 어떻게 될까, 승리욕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 또한 놓칠 수 없다. “이 반에서 누가 제일 공부를 잘합니다?”라는 질문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면 이미 우리는 이 고정된 관념의 지배를 받고 있다. 승자가 되기를 부추기는 학교, 정작 아이들은 승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꼬집는 심리학자 매드린 러바인 말처럼, 


롱 윈 사고(3C): 명확성(clarity), 꾸준한 배움(constant learning), 연결(connection), 성공의 재정의


명확성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숫자와 눈앞의 결과에서 벗어나 원하는 성공의 모습과 기준을 세우라, 우리 삶에 존재 이유를 폭넓게 이해하라, 나는 주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지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꾸준한 배움,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고 지금의 결과가 어떻든 당신의 성장을 성공으로 정의할 때 비로소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다.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세 번째 연결, 주변 사람과 능동적으로 관계 맺는 것을 뜻하는데, 당신의 삶을 누구와 함께할지에 초점을 맞춰라, 이 책의 13장에서 사례를 소개한다. 결국에는 성공을 다시 정의하고, 배우고, 연결하라는 것이다. 한 번 실수로 모든 것이 결정돼버린 사회에서 꾸준히 배우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성장을 성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제대로 된 승리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고법은 쇼트 윈 사고법이다. 이의 반대가 롱 윈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는 것이 롱 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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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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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위버멘쉬(Overman)-극복하는 사람


니체 철학의 ‘위버멘쉬’는 초인(超人), 슈퍼맨, 오버맨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전자, 초인이나 슈퍼맨이란 의미와는 뉘앙스가 다르다. 후자는 니체만의 독자성으로 보자. “초월하다” “극복하다” 기존의 환경과 삶의 의지에 적대적이고 나약함을 긍정하도록 하는 도덕과 기독교적 윤리 계율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추구, 그 한계를 극복한 사람이다. 기존 질서의 몰락을 재창조로 인식, 창조적 파괴로, 이를 위버멘쉬로 이해한다. 


이 책은 어나니머스(익명인)이란 필명의 옮긴이가 니체의 1878년 책<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바탕으로 정리했고 여기에 “위버멘쉬”라 제목을 붙였다. 옮긴이는 실명을 밝힘으로써 책 내용에 관한 선입견 혹은 예단을 피하지는 생각이었다고 적고 있다. 


구성은 113꼭지다. 예전에 간첩 신고는 113으로라는 표어가 기억난다. 아무튼 3부 113꼭지는 1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자기 극복과 성장에 관한 43가지의 삶의 태도- 여기에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라”를 비롯하여 중요한 것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과 마주하라. 흔들려야 나아간다 등의 글이 실려있다. 


2부 ‘당신이 만나는 모든 얼굴이 당신을 만든다’ - 인간관계와 감정 조절에 관한 31가지 방법-에서는 감정의 지배자가 되라 한다. 감사는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분노에도 유통기한이 필요하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는 것보다, 다시는 쓰러지지 않게 하기, 막연한 죄책감 내려놓기 등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3부 ‘그대의 시선이 삶의 크기를 정한다’ -세상을 보는 39가지 시선-에서는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용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 선이란 자유로울 때 가장 빛난다. 우리가 만든 성자와 천재들, 왜 인간은 스스로 몰아붙이는가, 복종은 때때로 가장 쉬운 선택이다. 등, 니체의 아포리즘이 넘쳐난다. 한편으로 실린 글들의 제목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아마도 니체를 다룬 많은 책에서 나온 표현들이었나 싶기도 하여 헷갈리지만, 아주 보편적, 합리적이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내 인생은 왜 이래, 왜 다들 나한테만 그래, 이렇게 힘들 때는 “니체의 113 인생 수업”을 펼쳐보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우선 눈에 확 들어오는 몇 개의 글을 보자. 


질문하는 자만이 자유로워진다


자기 극복과 성장에 관한 삶의 태도다. 인생의 큰 변화가 찾아오는 순간, 그동안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진짜 자유가 느껴지는 순간,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답답하고 어디서부터 벗어나야 할지 몰라 제자리만 맴도는 기분, 극복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질적변화의 순간이기도 하다. 무엇이 나를 붙들고 옭아매는지, 바로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규칙들이다. 가치관, 전통, 가족과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감, 한때 소중하다고 여겼던 그 무엇이, 족쇄로 작용한 것이다. 질문을 하지 않고, 그 안에 갇혀 살았더라면 몰랐을 것을 딱 거기까지가 활동 영역이고 삶의 범주다. 이를 넘어서려는 때 탈퇴환골이랄까, 세상의 질서가 답답해진다. 그 답답함이 동력이 되어, 질문을 이어가게 된다. 의심과 혼란,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가를, 이는 정신세계나 개인적인 삶 이외의 곳에서도 보인다. 도요타생산방식이다. 진짜 원인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결국 현상과는 다른 곳에 원인이 있음을 밝혀진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질문이 열어주는 문(65쪽), 보는 것이 다가 아니고, 결론보다 더 중요한 과정도 있다. 아무튼 이 책은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한다는 누구의 말이 들어맞는 대목도 꽤 있으니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더는 자신을 탓하지 마라


우리가 필요 이상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임” 때문이다. 애초 행위에 선, 악이라는 구분이 있었을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과거 경험과 환경의 결과일 수 있는데, 마치 모든 걸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을 스스로 무겁게 만든다. “진정 필요한 것은 자신을 용서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일이다. 죄책감을 내려놓을 때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 


생각 없이 따르지 말라는 말 또한 아주 의미심장하다. 군중심리에 놀아나지 말라는 것일 수도 있다.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널리 쓰이겠지만, ”생각 없이 따르지 말라“ 니체는 여기서 도덕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라 했다. 도덕의 상대성과 절대성은 우선 제쳐두고, 도덕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가변성이 있다고 생각한 니체, 이 점에서는 콜버그의 도덕 발달이론의 6단계(보편윤리적 원리의 단계)의 설명 비슷한 구석이 있다. 현행 법질서에 반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니체와는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말이다. 니체는 도덕은 강요가 아니라 선택이며, 그것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면 수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가능성 가로막는다면 우리는 그 너머로 넘어설 준비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할 힘을 기르라는 말인데, 결론에서는 같은 말이다. 


결정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진 길은 없다’(92쪽), 우리는 가끔 순간의 이익에 혹한다. 음식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손이 가고, 쉬워 보이는 길이 있으면 깊은 고민 없이 택하기도 한다. 이런 선택들만으로 쌓인 삶은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 되기 쉽다(그래서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요즘 화두지만).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거기에 얽매여 있다고 하소연하지만, 이건 순간의 감정일뿐, 진정한 강자는 내 의지를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 가는 사람이다. 모두가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건 착각이다. 욕을 얻어먹을 수 있고, 비난도 받을 수 있다. 이 또한 순간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가볍지 않나, 이런 부담은 내려놓고 내 안의 기준을 세울 때 비로소 ‘자기만의 길’이 시작된다. 


이 책에는 113개의 조언이 실려있다. 늘 내 곁에서 내 생각 결정을 도와줄 자그마한 마법의 수첩처럼 말이다. 일독을 권한다. 한 두 쪽에 실린 내용은 불과 2~3분이면, 읽을 수 있다. 아침 일을 나가기 전에 잠깐 읽는 것만으로도 온종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읽고 바로 실천하는 방법도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박상배,<이기는 독서, 탈Book> (이코노믹북스, 2025).당신의 미래에서 기다라는 '최고의 나'를 만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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