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대한 작가의 명문장들 - 어휘력과 문장력을 키우는 필사 노트
오로라 엮음 / 문학세계사 / 2024년 10월
평점 :
왜 필사를 해야 할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서
필사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일화가 떠오른다. 당신의 아들 부부에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당신이 쓴 책을 필사하라고. 왜 그랬을까? 단지 유산으로 남길 저작권을 지키려는 것인가, 아니다. 그가 글을 쓸 때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고심하면서 한 문장 두 문장을 써 내려갔는지를 느껴보라는 것인데, 지은이가 말하는 필사의 이유가 조정래 선생이 아들 부부에게 무언으로 전하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지은이는 위대한 작가의 명문장들을 필사하면서, '어휘력과 문장력을 키우며 작가의 철학과 사회에 관한 인식 등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부제 '어휘력과 문장력을 키우는 필사 노트' 제목에 드러나 있다.
“ 왜 필사를 해야 할까요? 필사는 단순히 베껴 쓰기가 아닙니다. 필사는 우리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집중하며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깊이 이해할 기회를 제공합니다.”(5쪽)
필사하는 내 손끝에서 탄생하는 문장들은 단순히 읽을 때 보다 오래 남는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어 기억에 오래 남고, 더 깊게 새겨질 것이다. 필사를 통해 작품 속에서 길어 올린 어휘와 문장을 자신의 것으로(이 대목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습작 과정과도 같은 맥락이다)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적 통찰, 인간에 대한 이해, 시대를 초월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그가 생각하는 글은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담는 그릇이다. 작품 속 인물들의 고뇌, 사랑, 갈등, 분노와 희망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작가들은 문장으로 읽는 이들에게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복잡한 인간관계와 사회구조를 탐구한다. 필사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어휘력, 문장력을 길러주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어 감정의 깊이와 인간의 본질에 이해를 깊게 하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는 학술논문을 쓸 때도 많은 논문을 읽고 필사를 해보라고, 기승전결의 구조와 문제 제기, 논리 전개, 어휘선택, 완전한 문장 등을 쓰는 연습이기도 하지만, 선행연구의 흐름은 물론 자신의 논문 전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배우게 된다는 점이다.
위대한 작가의 명문장들
이 책은 4부, 122개의 문장이 실렸다. 우선 1부 ‘당신을 조금 사랑했던 것 같아요’라는 열쇳말로 수렴하는 20개 문장,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비롯하여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옙스키<카라마조프 형제들>,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 에밀리 브론테<폭풍의 언덕> 따위가, 2부 ‘위대함을 두려워하지 마라’에서는 30개 문장이 담겼다.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하여 호손<주홍글씨>, 루이스 스티븐슨<지킬 박사와 하이드> 디킨스<두 도시 이야기>, 오웰<1984>, 카프카<성>, 현진건 <운수 좋은 날>, 3부 ‘침묵이 얼마나 좋은가’ 에서는 35개 문장이 샤롯 브론테<제인 에어>을 시작으로 올콧<작은 아씨들>, 셸리<프랑켄슈타인>, 오스틴<오만과 편견>, 이상<날개>,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울프<파도>, 뒤마<몬테크리스토 백작>등이, 4부는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 라는 열쇳말에 어울리는 37개 문장이, 워튼의 <순수의 시대>를 비롯하여 디킨스<위대한 유산> 멜빌<모비딕>, 다자이 <인간 실격>, 코난도일<바스커빌의 사냥개>, 셰익스피어의 <베네치아 상인>들이다.
당신을 조금 사랑했던 것 같아요
여기에 실린 불후의 작가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위고의 명작 속 문장을 읽어보자. 이런 대목이 있었나 싶을 정도지만, 아무튼 흥미롭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 그래서 날개 달린 큐피드가 눈이 멀었다고 그려진다. 사랑의 마음은 판단력을 갖지 않으며, 날개는 있으나 눈이 없어 경솔함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랑은 어린아이라고 불린다. 선택하기에 있어 자주 속기 때문에,”
사랑은 어린아이다. 선택할 때 자주 속기 때문이다. “사랑”의 속성을 사랑하면 눈이 멀어요. 눈에 콩깍지가 씐 것처럼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아서일까?,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그는 마치 태양을 오래 바라볼 수 없듯이, 그녀를 오래 보지 않으려 애쓰며 물러섰지만, 보지 않아도 태양처럼 그녀를 느낀다.”
안 보면 보고 싶고, 헤어지고 나서 얼굴을 그려보지만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또 보려는데, 제대로 볼 수 없다. 얼굴이 화끈거리니….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받는 자, 더 사랑하라. 사랑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사랑에 의해 사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자 진실이다. 사랑의 마음을 더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문장 옆에는 줄이 쳐진 쪽이 있는데, 이를 보고 쓰는 것이다. 읽고 쓰고, 또 읽고, 암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자연스레 입에 익는다.
이 책은 왜 필사를 해야 하는지, 필사의 필요성을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어휘력과 표현력을 키우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최근 유홍준의 책<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부제는 “유홍준 잡문집”이 창비에서 출간됐다. 여기에는 글쓰기론이 실렸다고 한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유홍준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 잘 쓴 글, 글쟁이의 글은 내용은 풍부한데 군더더기 없고, 글은 압축돼있는데,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다 들어가 있는 문장을 쓰고 싶다고. 문사(文士)라는 표현 대신에 글쟁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은 에세이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힌트와 새로운 영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무려 122개의 문장을 익힌다면, 자기의 글도 자세가 잡히지 않을까 싶다. "사랑, 두려움, 침묵, 진실"이란 열쇳말로...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