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역사
최경식 지음 / 갈라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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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의 목적, 암살에 숨겨진 진실들을 찾아서 


공식 역사기록만큼 승자독식인 게 없다. 명확하다. 한 산에 호랑이 두 마리가 살 수 없듯, 누군가는 쫓겨나야 하고, 쫓겨나는 데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크게 보면 “대의명분”이라는 그럴듯한 논리를 들고나온다. 명분이라는 포장 안에 숨겨진 진실한 이유는 어떤 당해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후에, 뒷이야기가 나온다. 사실이든 조작된 풍문이든 간에.


암살, 누군가를 남몰래 죽인다는 뜻이다. 이 책<암살의 역사>에는 한국과 세계사 편으로 나뉘어 각각 10건의 암살 사건을 다룬다. 전자는 고려 시대에서 대한제국을 거쳐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10건의 암살을 다루고, 후자는 새로운 미국을 열었던 링컨에서 이집트의 사다트까지의 암살을 다룬다. 세계 1차대전의 도화선이 페르디난트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의 자초지종과 볼셰비키 혁명, 소비에트 연방 건설의 걸림돌 트로츠키는 누가 죽였을까, 발키리 작전으로 알려진 히틀러 암살 미수, 인도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투쟁을 이끌었던 간디, 케네디, 마틴루터 킹,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 뒤로 보이는 사회상황들이 무척 흥미롭다. 


한국사 편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고려 왕건의 장자 나주 오씨 소생으로 2대 왕에 오른 혜종이 고려 통일의 후과를 뒤집어쓴다. 권력 쟁투에 부자가 어디 따로 있던가, 왕건이 죽기 전에 병상에서 고명대신들에게 혜종을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건만 동생들에게 죽임을, 형을 죽인 동생은 또 그 동생에게 죽임을 당하고…. 조선조 단종을 잘 보필하라고 지정한 고명대신들을 쳐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수양, 그는 형인 문종도 암살한 것인가? 비교적 일반에는 익숙지 않은 문종암살설, 17세기로 접어들면서 TV 역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광해와 이를 몰아낸 인조 이야기, 그의 장자 소현세자의 의문사, 무수리 출신의 생모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던 영조는 그의 이복형 경종을 암살했는가, 정조, 고종의 암살설, 현대사의 첫 대목, 광복의 언저리에서 포병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스러진 김구, 박정희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 장준하는 누가 죽였는가?, 결국에는 박정희도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죽고, 고려와 조선의 초창기와 말기에 일어났던 왕들은 왜 암살당했을까? 


암살이란 누군가를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커다란 역사 물줄기를 바꿔놓을 만한 계기를 만드는 그 순간에 일어난다. 암살을 당한 이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그 죽음 전후를 살펴본다. 지은이는 공식 역사기록 속에서 끊어진 사건의 앞과 뒤의 공백을 상상과 추리에 그치지 않고, 당대 주변의 권력의 향방과 흐름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톺아보면서, 아슬아슬한 소설의 영역 언저리까지, 역사에는 만일이라는 가정법은 통하지 않지만, 이 또한 늘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20명의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세상이 그들 각각을 어떻게 평가하든, 왜 그들은 죽어야만 했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풀어내는데 이 책의 묘미가 있지 않을까,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약간 각도를 달리하면 새로운 모습으로 비치는 이들 사건, 그래서 역사(정사, 야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일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능력 있고 문학적 재질도 뛰어났던 지도자 조조가 소설 속에서는 천하의 간신 조조였으니 말이다. 


대중을 위한 역사서를 많이 썼던 이덕일의 <조선왕독살사건 1~2권>(1권은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2권은 효종에서 고종까지, 2019, 다산초당)에서도 나오는 조선왕들을 둘러싼 암살이야기다.


정치와 권력의 향방의 물꼬를 바꾸는 암살


고려 혜종과 공민왕, 조선의 문종, 소현세자, 경종, 정조의 죽음은 당대의 정치 권력의 질서를 바꾸려 행동으로서 암살이지 싶다. 고종 역시도 정치 권력의 범주이기는 하지만, 국권 침탈의 결정적 계기를 잡으려는 이들의 행동이었고, 이의 반작용으로 3.1 만세운동과 대한민국의 수립이라는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 냈다. 박정희 암살로 시작된 반전, 레드퍼지(빨갱이 때려잡기)만큼 정적을 제거하기 좋은 구실도 없다. 한국전쟁 당시 자행한 국방군의 거창 양민학살 역시도 빨갱이 때려잡기였다. 1947년에 일어났던 제주 4.3도, 이의 진압에 동원된 여수 14연대의 불복종도 역시 이데올로기라는 프레임(틀)을 씌워놓고 주홍글씨를 세기면 끝이듯. 정점의 타격을 한 암살과 그 역사. 만약 이들이 암살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시계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역사에서는 금물인 "만약에~했더라면"이라는 상상의 유혹이 강한 게 역사라는 영역이기도 하기에. 


암살의 역사는 그저 역사적으로 당대에 중요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바뀌는 질서와 거기에서 이익을 얻고자 하는 목적이 숨겨져 있다. 이 책에 실린 암살의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가 잡히는 게 아마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군데군데 번득이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어 돋보이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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