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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세상에. 여러분 제가 엊그제도 글을 쓰고 오늘도 글을 쓰고 있어요. 이건 마감을 앞둔 레포트 쓸 때와 일 외에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게다가 이 글도 꽤 장문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제 안에 이런 성실함과 열정(!)이 있었다니. 스스로에게 감동과 배신감을 함께 느끼는 중입니다. 저는 이 영광을 미용사 언니(어제 미스코리아 대회가 있었다더니 잠시 착각했어요)... 아니죠, 다카노 가즈아키 씨에게 돌립니다. 게다가 이 말투, 네, 오랜만에 구어체 리뷰에 도전해볼까 합니다. 오랜만에 하려니까 쑥스...럼을 느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모르겠습니다! 저 지금 굉장히 흥분했거든요!!(느낌표 빵빵) 여지껏 제가 구어체 리뷰를 택할때는 거의 이 이유였죠. 리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하는 책이기 때문. 이 책도 누군가에게, 안 되면 혼자라도 말해야 할 그런 책입니다. 하하. 정확히는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책이기도 하죠. 아, 시작하기 전에 제가 읽느라 정신을 팔려 메모를 (정말)하나도 못했기에 인용은 단 한 문장도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려야겠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요, 아 장점이 너무 많아서 어떤 점부터 꼽아야할지 모르겠군요. 그래, 스토리를 이야기해볼까요. 『제노사이드』는 크게 세 군데의 물리적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이야깁니다. 하나는 미국, 주로 펜타곤이라 불리는 높은 분들의 영역이 되겠구요. 또 하나는 일본, 고가 겐토라는 약학대학원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미지의 인류가 살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이 되겠습니다. 이 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차례차례 비춰가는데 물론 대부분은 동시간대에 이뤄지는 일이고요, 전혀 상관 없는 일들로 비춰지는 몇몇 사건들이 실은 서로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형식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진행이에요. 동시간의 다른 곳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보여주는 영화들 있잖습니까. <아모레스 페로스>나 <바벨>같은? 아니면 <크래쉬>나 <밴티지 포인트>같은 영화들이요. 아니지, 헐리웃 영화 같을 뿐 아니라 영미문학 같기도 합니다. 등장인물이 외국인이고 배경이 외국이라서, 다카노 가즈아키 씨가 미국에서 체류한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저도 앞날개 보고 알았답니다, 영화 연출을 한 적도 있더군요. 그래서 헐리웃 영화스러운 진행도 자연스러운 걸까요?) 이야기의 굵기나 둘레, 진행, 묘사, 설명, 서사까지 모든 것이 그렇군요. 그런데 이 책의 장르가 뭘까요. 으으으음, SF가 가장 무난할까요. 아니면 과학 어드벤처나 스릴러, 액션(?) 어떤 면에서는 재난물일수도 있겠습니다.
장르소설을 쓰는 분들, 특히 영미권 작가들은 자신의 전직이나 경험을 살려 글을 쓰는 경우가 꽤 있죠. 존 그리샴과 제프리 디버는 변호사였고 마이클 코넬리는 기자였고 퍼트리샤 콘웰은 법의관이었으며 존 르 카레는 MI6에서 일한 사람이죠. 헌데 다카노 가즈아키 씨는 약학은 커녕 컴퓨터를 전공한 이력이 전혀 없으며 당연히 특수부대원으로 근무한 적도 없을 것에요. 그런데도 약에 대해 설명하고 컴퓨터 알고리즘을 해석하며 특수부대원들의 촉각을 묘사하는 것을 어떻게 이렇게 잘할까요. 아는 것을 말하는 것과 잘 모르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차이가 있죠. 말투, 어투, 쓰는 단어, 서술, 무엇보다 숨길 수 없는 자신감과 확신이 그렇죠. 잘 모르겠지만 그런다더라, 내가 알기론 그렇던데, 가 아니라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자, 내가 아는 것을 당신에게 들려줄게" 라며 거들먹거리는 게 아니라 "제가 아는 건 이런 겁니다", 라고 공손하게 말하죠. 작품을 위해 작가가 리서치를 철저히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해도 이 정도의 내용을, 이렇게 말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까요. 품을 팔아 책을 찾고 독학을 하고 여기저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겠죠. 그 다음에는 그들이 설명하는 것을 자신의 머리로 옮기고 해석하고 확신한 다음 자기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머리가 아프고)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 저는 거의 경외의 감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다카노 닐슨이라고 불러줘야 합니다. 암요.
게다가 『제노사이드』는 문장력도 좋고 진행의 속도나 이야기를 꾸려가는 방식 또한 좋습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때로는 그들의 어릴적부터 현재까지, 또는 현재의 거의 모든 상황을 설명합니다. 가끔은 딱 한 번만 등장하는 인물도 나옵니다. 그런데도 굳이 이 인물의 시점이 필요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페이지수가 상당하고 이야기의 둘레가 나무로 치자면 오백년 거대한 나무 정도 되는데도 사족이라고 느낄만한 부분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어요. 물론 이건 제 생각입니다, 게다가 저는 책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사람이니 믿지 못하셔도 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요. 특히 소년병의 이야기 같은 경우는 짧은 이야기인데도 임팩트가 굉장히 컸어요. 아마 그 이유는 작가의 균형감각과 연결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균형감각, 사람의 신체에서는 달팽이관이 그 역할을 한다죠. 그렇다면 사고의 균형감각은 어떨까요. 다카노 가즈아키 씨에게 제가 이 책으로 호감을 물씬 느꼈던 것은 그 부분이었습니다. 상당히 완벽주의자군, 오호 글도 잘 쓰네, 이런 객관적 감탄이 아니라 존경할만한 사람이라는 감상을 갖게 된 부분이죠. 이 책으로 비춰본 완벽한 편견에 따르자면 다카노 가즈아키 씨는 첫째로,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졌고요, 두 번째로 많이 배운 사람 같아요. 고학력이라거나 명문대를 나왔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많이 오래 배운 사람 말이죠. 왜, 배운 사람일수록 오히려 편협함이나 선입견이 견고해지고 자신의 지식에 틀에 갇히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더 보수적인 것 말이죠.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의 지식과 사고를 더 많이 배우고 고민하도록 '지성'으로 끌어올려진 매우 드문 경우 같았습니다. 어떤 문제를 다각도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그 중 어떤 것에 동의를 표할 것인지 진지하고 꼼꼼하게 결정하는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건 작가로서도, 성인(成人)으로서, 원론적으로는 한 인간으로서 엄청나게 중요한 자질이잖아요? 갖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제가 갖는 호오(好惡)가 작가가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이라서는 아닙니다, 전혀. 오히려 눈에 띄게 한국인,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서 되레 의심을 했죠. 감상적인 이유에서는 아닌가, 조국에 대한 정서적 반작용이 아닌가 해서요. 헌데 이 분은 단지 한국인이 좋아요, 오, 김치 맛있어요, 그런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고,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역사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과거에 대해 책임감과 비판을 서슴지 않더군요(때문에 자국에서는 좌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하죠). 그건 한국이 좋아서, 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으로 비춰볼 때 이건 일본이, 나의 조국이, 비록 나의 조국이라 해도 그 일(들)은 잘못했기에, 라는 뉘앙스로 읽혔어요. 비단 일본 뿐 아니라 미국이나 여러 강대국들의 제노사이드에 대해서 심한 혐오감과 탄식을 갖고 있는 듯 보이더군요. 그리고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전쟁과 테러와 학살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고양이처럼 눈을 치켜뜨고 오랜 시간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자, 이래이래서 너희는 나빠, 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이런 결정을 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 거야, 라고 -결코 무심코 넘길 수 없는 픽션으로- 묘사합니다. 학살당한 쪽과 학살하는 쪽을 함께 비춥니다. 그러면 독자들은 좀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되며 더 깊게 생각하게 되죠.
소년병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볼까요.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볼 때 저는 '충격의 반전'보다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버린 그 남자의 삶에 더 신경이 쓰였거든요. 나는 평화롭고 문명화 된 환경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요. 저 남자는 저런 환경에서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당한 것이 그것이니.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폭력과 살인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구나, 하는 것 말이죠. 그런 환경에서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폭력이나 살인을 하지 않을 자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저 남자의 지극한 선의(善意)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 등등의 생각 말이죠. 소년병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 생각이 들더군요. 이 잔인한 꼬마, 가엾은 꼬마, 결국 이 꼬마도 이기가 만든 피해자였음을 말이죠. 때문에 더욱 이 현실에 입각한 사실에 잔인한 것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쳤습니다.
이렇게 『제노사이드』에는 사람 울컥하게 만드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다카노 가즈아키 씨는 심리학에도 탁월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무엇이 사람을 욱하게 만드는지를 잘 아시더군요.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길 재간까지 있다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이 무시무시한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좀 엉뚱할지 모르지만, 소설의 의미였어요. 대체 소설이 뭐냐고, 소설을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냐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저는 나름대로의 대답을 했지만 그건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 같았어요. 나는. 나는 이것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스스로의 정당함이었죠. 하지만 어떻게 그 정당함으로 타인을 설득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작 이 책 한 권을 읽으며 저는 어떤 이론서나 철학책 못지 않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폭력이 나쁜 것은 누구나 아는 문제이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어떤 의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는 압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강자가 약자를, 권력이 이성을 어떤 식으로 눌러왔는지 문명화된 세계이기에 우리는 어느정도는 압니다. 수많은 책들이, 이론서들이, 언론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인지하고 받아들이죠. 하지만 그 인지와 받아들이는 것에는 개인차가 있고 그것을 접하는데는 -불편한 사실이지만- 계층과 계급차이가 분명 있을 겁니다. 같은 글을 읽는다한들 어떻습니까. 지나치게 어렵거나 낯설거나 막연하죠. 혹은 이해할 수 없거나 납득하기 어렵거나 설득되기 힘든 것들이 있죠. 하지만 소설은 그것을 보다 쉽고 보편적으로, 설득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소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저는 그 전에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들어온 것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며 그 곳의 심각성을 짐작해봤고, 그때까지 재미삼아 읽었던 모든 꽃말책보다『꽃으로 말해줘』로 더 많은 꽃말을 외울 수 있었고, 그저 뉴스의 한 꼭지로 흘려듣던 과테말라 내전에 대해서는『나무소녀』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고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과『염소의 축제』를 통해 트루히요 정권에 대해 보다 면밀히 알게 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소설로 쓰여졌다고 진실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사실에 입각한 글, 그리고 그 사실에 입각한 글임을 믿기 위해 제가 스스로 찾아 보고 공부하고 읽어보게 하는 경각심만은 진실일 것입니다.
저는 이따금 소설을 읽으며 더 큰 진실, 혹은 진실을 가장한 거짓과 마주하곤 합니다. 때문에 현실 세계에 대해 더 촉각을 세우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더 키워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눈 앞의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내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네, 소설(小說). 작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 작은 세상이 때로는 어떤 이론서보다 어떤 과학책보다 인간의 마음을 쉽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 어떤 사람인가를 증명하게 하는 것. 그것이 소설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다카노 가즈아키 씨의 등단작『13계단』도 좋았고 단편집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도 괜찮았어요. 『그레이브 디거』도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모터 달린 듯 읽게 되는 가독성과 사람을 집중하게 하는 강렬한 매력에 끌렸었죠. 『제노사이드』의 유일한-굳이 꼽자면- 단점은 결말부분이 다소 싱겁다는 것? 그 외에는 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미덕을 다 가졌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궁금하시죠? 정작 내용은 말 안 해주니 간질간질하시죠? 대체 뭔데 그래? 내가 한 번 읽고 말해주지, 싶으시죠? 후후후후. 그런 마음이 드신다면 제가 이 글을 매우 잘 쓴 거군요. 제가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읽으세요, 이 책. 그 말 외엔 모두 사족이 될 뿐이라고, 저답지 않게 단호하게 말해봅니다. 그럼 다시 구어체 리뷰로 만날 날까지. 저는 이만 총총.
덧) 저는 여태껏 '다카노 카즈야키'라고 발음했는데 이 책에 '다카노 가즈아키'라고 써있더군요. 이 책을 존중, 리뷰에는 다카노 가즈아키로 통일하고자 했습니다. 혹시 잘못 쓴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