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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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허영의 시장>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새커리 스타일의 어울리지 않는 남녀보다 잘 지낼 것이라는 편견, 같은 대상에서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심리적 조화라는 편견, 어떤 책을 이해하는 것이 그 책을 읽은 다른 독자를 이해하는 길이라는 편견 때문에 그의 문학적 반응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으면서도 우리를 환대하는 주인이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파티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 서재를 기웃거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도 그런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화이트 와인을 홀짝이며 속으로 그들을 어두운 콘래드주의자, 퇴폐적인 피츠제럴드주의자, 삭막한 카버주의자라고 낙인찍곤 한다. - 알랭 드 보통, 키스할 때 우리가 하는 말들

 

  편견이란 편견이기 때문에 허황되고 편견이기 때문에 견고하다. 편견이기에 쉽게 천착되고 편견이기에 쉽게 닳지 않는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군인지 말해줄 수 있다. 라고 말하는 당신의 말을 듣고 나는 웃는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다른 사람을 곧잘 취향으로 책으로 음악으로 영화로 역사를 점쳐보지만 정작 자신이 탐험을 당하면 불쾌해한다. 고작 내가 좋아하는 책 몇 권 혹은 영화 몇 편으로 나를 안다고 생각하지 마, 라는 생각한다. 그러니 나 이제 당신을 책으로, 한 권의 책으로서 들여다 볼 것이 자명하다해도 그래서 당신이 속상하다 해도 별 수 없다. 불행하게도 당신은 글이자 책이자 작가이고 나는 독자니까.

 

당신의 표제작인「위험한 독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글이다. 독서치료라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다. 학위, 자격, 상대가 없을 뿐 내가 나에게 늘 하고 있는 것이 실은 그것이니까. 내가 의외라 생각했던 것은 그가 사람들에게 추천한 책들이 너무 전형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조교제를 하는 여학생에게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방화를 하는 소년에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기는 그녀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사양』을 읽게 하는 것이 옳았을까. 당신은 그 책들이 그들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글쎄, 나라면 누군가 내게 작위적으로 어떤 책을 그것도 현재의 나와 유사한 것을 내밀었다면 분노하거나 불쾌하거나 모욕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을 동시에 담은 어떤 책을 만난 것은 분명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것을 남으로부터 받았다면, '이것이 네 삶이다' 라고 말한다면, 어떤 수치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들은 어떻게 수치심이나 공격성을 갖지 않고 그의 독서 '치료'를 받아들였을까.

 

당신은 그녀가 작가의 삶을 작품에 대입시키는 점을 지적했다. 작품과 작가는 동일하지 않다, 고 그는 그녀에게 충고한다. 책날개에 의지하지 말고 읽으라고. 나는 다시 웃는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를 읽을 때 미수와 성공에 이른(?) 그의 자살을 떠올리지 않고, 미시마 유키오의 글을 읽되 극우주의와 할복을 생각하지 말고, 공산당에서 탈퇴 당하고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을 감행한 쿤데라의 삶을 무시하고, 루 살로메에 대한 릴케의 사랑을 짐작하지 않고. 그럴 수 있을까. 그 사람의 전부를 담은 책이라 해도 그 사람은 아니기에, 어떤 텍스트도 상대방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독자인 우리는 그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삶의 흔적들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도 강해서 작가의 삶과 작가의 글을 떼어놓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와 이런 글은 어떻게 나왔는지, 는 비슷하지만 다른, 중요한 의문이 아니던가.

 

당신의 「천년여왕」과 같은 글을 좋아한다. 안과 밖이 없고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않고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작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 이 글에 담긴 우화적이면서도 동화적인 요소들이 좋았다. 아내는 정말 사람일까.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기억할 수 있을까. 아내가 사람이 아니라면 그녀는 왜 이곳에, 영원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묻게 되는 오묘한 상황들. 하지만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명예의 근거로 삼아야 해요. 라는 말처럼 그런 것은 상관없다. 오히려 이 단편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표절에 대한 두려움, 창작에 대한 고뇌, 수많은 책들에 대한 당신의 열등감 같은 것이었다.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든가 모든 책을 다 읽든가. 가난한 내 독서는 전자를 불가능하게 했고 후자를 난망하게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독서에 열을 올렸다. 익히 들어본 작품들을 독서목록의 우선순위에 올렸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처럼 정작 완독한 적은 없지만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들.

 

내가 쓰고자 했던 것은 이미 누군가 다 한 것이더군, 라고 말한 사람 누구였던가. 나 역시 가난한 독서력을 가진 자로서 모두 읽은 자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읽지 않은 자가 되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이미 너무 늦었다. 당신은 아마 작가이기에 창작자이자 독자일 수 밖에 없기에. 이 말은 꼭 당신 자신의 갈애나 괴리감처럼 느껴졌다.

 

두 편의 단편으로 나는 당신을 독서한다. 그가 그녀를, 그의 환자들을 책처럼 읽어냈듯이. 나 역시 당신을 읽는다. 아마도 당신은 작위적인 것을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버틸만큼 강하지 못하다. 거짓말에 능숙하진 않지만 순간적으로 둘러댈 수 있을 정도의 재치는 갖고 있다. 남들은 자신을 이성적인 사람이라 여기지만 스스로는 감성적인 때론 감상적인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두 편의 단편에서는 당신의 낭만성이나 고뇌를 일부 들여다보았다 넘겨짚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허황된 로맨티스트인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핍진성에 근거한 리얼리스트일지도 모른다.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은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와 닮은 면이 있다.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은 현실의 견고함에 바탕을 두지만 우화와 풍자를 끌어들였고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역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루며 있을법하기에 더 섬짓한 통각을 예민하게 다루었다. 「게임의 규칙」은「황홀한 사춘기」와 닮았다. 이미 지나가버린 어떤 시대를 현재의 어떤 시절에서 바라본다는 것. 과거는 참혹하거나 영광이거나 오류이나 어쨌든 그것들 모두가 현재와는 관련없다는 것. 나는 당신의 조언을 무시하고 당신의 나이를 떠올렸고 당신이 떠올렸을 이십대를 짐작해본다. 책날개를 무시하라고 당신은 말했지만 건방진 독자인 나는 역시 그럴 수가 없었다. 당신이 지금 내 나이였다면 내 부모님의 나이였다면 이 책과는 다른 내용이었을거라 짐작하는 것. 그것 역시 자만이자 오류일까. 나는 당신의「공중관람차 타는 여자」는「고독을 빌려드립니다」에서도 비슷한 향수를 느꼈다. 여유로움을 빌리는 자,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이 그랬듯 "나 돌아갈래"라고 외칠법하다고. 여유로움을 갖기 위해 고독을 없애기 위해 많은 길을 걸었는데 정작 이제와 가장 고독하고 여유로웠던 그러나 그것이 있는줄도 몰랐던 시절을 떠올리는 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명징함이 주는 달콤쌉싸래한 사실의 맛. 거기에「공중관람차 타는 여자」는 향수 위에 사랑을 얹었다.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나는 엉뚱하게도 거절의 방식과 사랑의 운명에 대해 회의적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당신을 다 읽었다. 겨우 한 권의 책을 읽은 것 아니냐,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당신이 읽는 책이 당신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당신이 쓴 책도 당신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이라는 매개체 내지는 대체물을 읽으면서 타인을 짐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은 독자는 다시 또 그 책의 역사를 갖게 된다. 책은 인생의 자서전이 되고 역사의 침전물이 된다. 역시 독서는 위험하다.「위험한 독서」의 그는 그녀에게 책을 쥐어줌으로써 그녀의 고통을 일소시키는데 도움을 줬지만 그녀는 그에게서 독립한다. 나는, 당신을 읽으며 김경욱이라는 책의 앞뒤가 궁금해졌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당신이 쓴 책을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당신은 내게 책이 되고 책은 내게 당신이 된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당신이라는 책, 그리고 당신이 쓴 책을.

 

 

  

 

 

 

* 문학동네 카페와 동시 게재하는 글로, 그림은 구스타프 아돌프 헤니히, <책 읽는 소녀> (1828) 입니다.

전체적인 형식은 『위험한 독서』의 표제작에서 빌리려..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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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26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기 전에 추천을 누르고 스크롤을 올렸는데,
글을 모두 읽고나서 놀란 나머지 깜빡잊고 또다시 추천을 눌렀습니다, 그려 ㅎㅎ
<위험한 독서>라는 표제부터 작가에 리뷰까지도 아주 매혹적인 작품인것 같습니다.
저는 언젠가 리뷰를 쓸 때 수많은 책의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은 무척이나 존경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늘로서 샤이닝님을, 아니 언제나 그래왔지만 존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려 ㅎㅎ

Shining 2012-02-27 11:11   좋아요 0 | URL
음? 읽기도 전에 추천을_- 그러면 아니되옵니다ㅋ 읽고 나서 마음에 와닿는 글만 해주시면 됩니다요^^
그런데 저 오늘 소이진님 말이 이해가 잘 안가요ㅠ 수많은 책이 거론되는 사람...아, 제 이해력은
이정도입니다ㅠ 저를 이해시켜주쎄요! 흑ㅠ 그나저나 존경이라니, 쑥스럽습니다 그려ㅋㅋ

아이리시스 2012-03-0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안녕.

이 책 재밌죠? 저도 역시 표제작이 짱 ^_____^ 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널리 알려진 책들을 소개하는데 그중에도 못 읽어본 게 상당해서 저 막 책장 뒤져서 다 꺼내온 기억이 나요.

소이진님 말은 샤이닝님이 글 쓰실 때 이것과 연관된 다른 책들을 많이 거론한다는 애기 같은데(그럼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고) 저도 동의해요. 못 들어본 것도, 들어봤지만 읽지 못한 것도 참 많이 나와요. 샤이닝님 리뷰나 페이퍼에는요. 살짝 질투^^

Shining 2012-03-03 20:12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안녕^^

표제작은 흥미로웠고 <천년여왕>은 재밌었어요. 저 이런 소설 좋아하거든요ㅋ 맞아요, 반가운 책들이 꽤 많이 나오더라구요. 특히 <금각사>는 저도 참 좋아하는 소설!

제가 얼버무린 말도 철썩같이 알아들으시고! 소이진님 말씀까지! 역시 아이리시스님^^b 저도 다른 분들 글 읽으면서 몰래 폭풍질투와 좌절해요, 당연히 아이리시스님도ㅋㅋ 다 똑같군요, 후훗:-)

맥거핀 2012-03-05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글을 읽었어요. 김경욱 작가..새 소설집이 나오면 무엇에라도 홀린 듯 사기는 하는데, 뭐랄까요. 성실한 작가라는 인상이 일단 있구요(뭐 외모 탓일수도 있고).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으나(이런 말을 미리 붙일수록 적절하지 않은 때가 많지만), 남을 웃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배워서 성실하게 하는 유머들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유머가 웃겨야 하는데, 웃기기 보다는 웃기기위해 애쓰는 모습 그 자체가 더 보인달까요. 얘기도 매우 흥미로운 경우도 많고,문장도 꽤 감탄하게 하지만, 너무 꽉 채우려드는 느낌이 조금은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이 작품보고 꽤나 감탄하기는 했어요.^^)

Shining 2012-03-05 16:57   좋아요 0 | URL
아, 왠지 맥거핀님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요. 맞아요, 성실. 김연수 작가의 외적인
성실함하고는 다른 뭔가 문장에서 느껴지는 조심스러움이랄까 섬세함이랄까. 그런데 가끔은
지나치게 성실하다는 느낌도 있고요^^ 오호, 그 책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읽어봐야겠군요+_+

<휴고>가 CGV 단독개봉도 모자라 제가 사는 곳에선 3D는 물론 2D도 제대로 상영을 안 하더군요.
이 영화가 이렇게 규모가 작은 영화였나요?ㅠ 당혹과 당황과 황당의 쓰리콤보입니다ㅠ 속상한 마음에
많이 늦었지만 <범죄와의 전쟁>을 봤습니다.

(저는 맥거핀님을 보면 책 얘기 하다가도 저절로 영화 얘기로 넘어가게 되네요^^;)

맥거핀 2012-03-06 12:50   좋아요 0 | URL
아..그런가요. <휴고>가 예술영화로 분류될 쪽은 아니라고 보는데,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들이 대중적이지 않던 때가 있었나요. 그의 영화들이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오히려 그 극반대죠),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특유의 감각이 충만한 영화들이었는데..아무튼 우리나라의 영화상영 기준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역으로 작은 개봉을 해야할 영화들이, 거대개봉을 하다가 그대로 골로가는 경우들도 있고요. 댓글을 읽다보니 왠지 걱정이 되는게 빨리 달려가서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에 어..어..하다가 놓친 영화들이 부지기수라.

Shining 2012-03-07 12:45   좋아요 0 | URL
제 말이요! 마틴 스콜세지인데다, 티저 예고편을 보면 판타지와 <올리버 트위스트>의 결합같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나름- 대작인줄 알았거든요ㅠ 스콜세지 옹의 근래작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만큼은 꼭! 그것도 (아바타 이후로 처음으로) 3D에 대한 열의를 태웠는데...

수도권 안 사는 설움은 이럴때 봇물 터지듯 나옵니다ㅠ 제 몫(?)까지 즐거이 보고 오세요,
맥거핀님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