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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특별히 사회성이 나쁘거나 협동심이 없는 것은 아닌데(혹 그렇다해도 그걸 숨길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고르자면 혼자인 쪽이 좋았다. 또는 혼자인 것이 싫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혼자임을 두려워 한 적이 없다고 해야겠다. 영화도 미술관도 연극도 도서관도 산책도 사실 혼자인 편이 좋을 때가 더 많았다. 운동도 구기종목이나 단체운동에는 흥미가 없고 그보단 조깅이나 수영, 자전거 등을 선호.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일 중 가장 좋아하는 일들 -책과 영화와 직소퍼즐과 각종 정리정돈;;- 은 모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냐고 친구가 지적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입을 다물었고 어쩐지 비난받은 기분이 되어 울적했지만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 남과 같이 하는 일이 몇 가지나 될까?
혼자서 책 읽는 시간, 이라는 제목을 보며 난데없이 그때의 울분을 터트린다. 이봐이봐. 책을 같이 읽을 수가 있는거야? 만약 누
군가 책을 읽어주거나 함께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는다해도 결국 책은 혼자만의 것 아니냐고. 좀 더 나가서 말하자면 궁극적으로 남과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된다고! 그렇다면 어째서 그녀는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저자인 니나는 세 자매의 막내딸이다. 저자의 말을 빌어 '형제간의 역학관계에서 볼 때 나타샤는 같이 노는 언니, 앤 마리는 신경 쓰이는 언니' 중 앤 마리를 병으로 잃게 된다. 언니를 잃고 삼 년, 그녀는 자신이 쉴 새 없이 뛰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도망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하루만에 읽은 그 날 그녀는 결심한다. 365일 프로젝트. 하루에 한 권 책 읽기. 그렇게 이 책은 티끌로 태산을 만든, 아니지 태산이 된 티끌들의 이야기다.
서평집과 독서 에세이 중간쯤 위치하고 있기에 책의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녀가 읽는 책들, 언급하는 책들이 국내에 번역이 안 된 책들이 수두룩해서 '서평집'으로의 기능을 기대한다면 글쎄. 하지만 이 책에는 분명 애서가들에게 각별하게 다가올 부분이 있다. 정확히는, 우리가 어째서 책을 읽는지 혹은 어떻게 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겪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당장 생각나는 챕터는 이것. 책을 빌리는 것과 빌려주는 것. 그녀는 지인으로부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빌려 읽었던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읽고 논리적인 허점과 비판을 하는 바람에 그녀와 멀어졌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책을 빌려주는 것, 혹은 누군가에게 책을 빌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말한다. 친구가 책을 권할 때는 훨씬 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책을 권하는 것은 손을 내미는 것이고, 저편이 손을 잡아주지 않아 거절당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어떤 책을 권했는데 거절당한다. 그게 우정을 망가뜨릴 수 있는가?
하하. 나는 여지껏 책선물을 거의 한 번도 임의로 해본적이 없다. 내 자신조차 책선물을 받을 때 어떤 책이라고 명확히 지칭하는데 (가끔 선택의 가능성을 두기 위해 두 세가지 책을 말할 때는 있다) 친구에게는 어떠랴. 읽고 싶은 책을 말해달라고 하거나 정 아니면 A와 B 중 어떤 책을 받는 것이 낫겠냐고 물어본다. 물론, 서프라이즈한 즐거움은 포장지보다도 적지만 책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이기에, 책장을 채우는 것은 소유주의 허락없이 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그쪽이 나은 것 같다.
책추천도 안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책 좀 추천해줘봐, 이런 사람 싫다. 내가 자신의 북마스터도 아닌데 웬 이래라저래라야? 싶은 것도 있지만(성격 나온다_-) 본인의 취향도 기호도 관심도 전혀 모르는데. 대체 내가 어떻게 추천을 해주냐고. 게다가 책추천이라는게 밑져야 본전인데 왜 나는 안절부절 못해야지? 이 사람이 맘에 들지 안 들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했는데 그 뒤엔 나쁜 피드백이 돌아올까봐 염려하고. 책 추천은 어렵고 민감하다. 그 책이 나한테 좋았어, 와 너도 그 책을 읽어봐, 는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니까.
독서를 통해 나는 삶이란 고통이 고르지도 않고 무한정 부담을 져야 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비극은 제멋대로, 불공정하게 떠안겨진다. 편안한 시간이 오리라고 약속했지만 거짓이 될 수도 있다.
이 두 책은, 그리고 내가 읽고 있는 모든 훌륭한 책들은 인간의 경험이 가진 복잡성과 전체성을 다룬다. 우리가 잊고 싶어하는 것들과 더 많이 원하는 것들에 대해 다룬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는지를 다룬다. 책들이 바로 경험이다. 그것은 사랑이 주는 위안, 가족의 성취, 전쟁의 고통, 기억의 지혜를 입증하는 저다들의 말이다. 기쁨과 눈물, 즐거움과 고통, 모든 것이 보랏빛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내게 왔다. 나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그토록 많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온갖 무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험 중에는 내가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이 있다. 그것은 독서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 책은 그런 마법을 어떻게 발휘하는가?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기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을 독자들과 그토록 단단하게 묶어놓고, 책을 읽어나가는 우리를 그 캐릭터로 변화시키는가? 캐릭터와 플롯이 우리의 삶과 그토록 다른 경우에도, 특히 그럴 때일수록 왜 그렇게 될까?
책을 읽을 때, 나는 누구보다 나인 동시에 누구보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된다. 더운 여름날에도 나는 겨울의 구소련으로 날아가고, 여름밤의 베네수엘라로, 초봄의 도쿄와 늦가을의 코펜하겐으로 간다. 내 방에 앉아서도 체코와 케냐와 아르헨티나와 캐나다를 함께 여행한다. 70살의 할머니도 되어보고 9살 남자아이도 되어본다. 전쟁통의 화염속에서 콜록거리기도 하고 광활한 대지 위를 걷는 탐험가가 되었다가 코르셋을 입은 귀족아가씨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에는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할머니가 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아들이며 딸이자 동생이며 자식이 된다. 죽음의 비통함과 삶의 단애와 생의 무연함을 사랑의 떨림과 애증의 긴장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연인이거나 가족임은 아니며 헤어진다고 사랑하지 않는것도 아니고, 헤어짐이 만남보다 나은 순간도 만남이 헤어짐보다 어려운 시간도 온다는 것을 알게 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어릴 적 형제 셋을 한꺼번에 잃은 적이 있다.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작가의 외할머니는 하룻밤에 한순간에 같은 집에서 당신 자신이 전혀 짐작도 못한 순간에 자식 셋을 잃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라고 작가는 자문한다. 나는 거기서 삶이 죽음보다 어렵고 용감한 것임을 또 한 번 느낀다. 이렇게 책은 감정의 진폭을 넓힌다. 책 속에 일어난 모든 일은 나를 꿈꾸게 하며 현실을 자각케 한다. 내가 결코 나이기에 알 수 없었던 것과 알게 되었던 것을 함께 인지하게 한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생각지 못한,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세계와 상황 고민속으로 들어간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어떤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할지가 곧 내가 됨을 알게한다. 그렇게 내가 어떤 사람임을 주지하게 한다. 팔십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해도 전쟁을 겪지 않아도 남자가 되거나 부모가 되지 않아도. 그 모든 것들을 알게 한다. 작가의 말처럼 단지 보랏빛 의자에 앉아서.
내가 잘못 생각한게다. 이 책의 제목은 탁월하다. 책은 혼자서만 읽을 수 있고, 책 읽는 순간 우리는 전적으로 혼자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택한 고독이고 그 고독의 대가는 배울 것이 충분하다. 이런 고독이라면, 얼마든지 선택할 만하다.
덧) 6월 중순에 읽고 이제야 쓰는 리뷰. 뭔가 특별하게 쓰고 싶어서 썼다 지웠다만 반복했다; 서평집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는 책이다. 객관적으로 매우 좋다고 하긴 어려운데 몇 문장, 몇 문단 애서가들의 격한 공감을 얻을 구절들이 보인다. 당신이 애서가라고 자부한다면 읽어도 괜찮을 책.
보랏빛 의자에 앉아서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해도 가끔씩은 다른 곳에서 읽고 싶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고성(古城)의 벨벳 의자에서 산도르 마라이나 슈테판 츠바이크를 읽는다면, 노천카페에서 피츠제럴드를 읽는다면, 햇살이 부서지는 강가에서 발을 담그고 헤세나 지드를 읽거나 덜컹이는 야간열차 안에서 온다 리쿠를 읽는다면 어떨까. 보랏빛 의자에 앉아서도 이토록 멋진데 그곳에서 그들을 읽는다면 말도 못하게 멋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