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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
박종호 지음 / 풍월당 / 2021년 12월
평점 :
클래식 음반 전문 공간 풍월당(http://www.pungwoldang.kr/)을 만든 박종호님의 클래식 오리엔테이션. 뜬금없지만 학교 다닐 때 참가했던 많은 오리엔테이션이 떠오른다. 강의실, 운동장, 수련원 등에서 숨소리 하나 크게 날까봐 각 잡고 긴장하던 그 분위기. 진행하는 선배들은 늘 진지하면서도 고압적인 태도였다. 이 책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냄새가 살짝 난다.^^;
그렇다면 왜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가? 저자는 그 이유를 궁극적으로 나를 성장시키기 위함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무엇보다 클래식은 지금의 나를 보다 크고, 보다 가치 있고, 보다 자족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가 발을 담그고 있는 이 번잡한 세상과 나를 유리 시켜줍니다. 분리해주고 차단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세상에서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게 하고, 남의 기준에 나를 적용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힘을 줍니다. 클래식을 듣는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의 잣대로부터 벗어나서 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클래식을 듣는 행위는 대단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무기 속에서 우리는 성장합니다." -39쪽-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 하지만 다른 취미나 취향도 진지하게 접근하면 모두 저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물론 저자는 꼼꼼하게 클래식이 다른 취미와 차별되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음악은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뛰어넘으면서도 언어가 필요없는 가장 강력한 예술 방식이다. 그 중 클래식은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향유할 만한 가치를 지닌 최상의 걸작이다. 따라서 이런 클래식을 듣는 것이 앞서 말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취미이다.
듣는 태도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들어라. 왠지 공부하는 분위기...맞다 클래식은 교양을 위한 인문 공부다. 클래식을 듣는 행위는 내가 판단하고 내가 선택하고 나의 취향과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탐구하고 작품들을 섭렵해 나가는 과정이다...라고 말이다.
역시 대가의 글은 달지 않다. 클래식 대중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곡 추천, 작곡가의 뒷이야기 이런 건 전혀 없다. 하지만 클래식 감상의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니고 대중의 클래식 화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그의 주장은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돌이켜 보면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의 오리엔테이션은 꼭 필요한 것이긴 했다. 먼저 경험한 이들은 후배들에게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시행착오를 덜 겪게 하고픈 심정이 충만했으리라. 결국은 지나면서 알게 된다. 참 그렇다고 이 책이 진지한 분위기만 풍기지는 않는다. 틈틈이 아주 깨알 같은 유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