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좀 더 읽자
착각하지 마시길, 두뇌가 아니라 두“뇌”, 즉 협력에 관한 뇌 이야기.하나보다는 여럿이 낫다는 아주 상식적인 결론입니다만 그 여럿이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라는 게 함정(?)그렇다면 민주적 의사결정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나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 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대중이 비슷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비슷한 수준의 전문가들에게 모든 의사결정을 맡기는 엘리트주의가 더 좋은 시스템일까요? 두 가지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일단 민주주의는 효율성이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제도라는 것이죠. 당연히 비효율적입니다. 다만 의사 결정의 결과를 오롯이 감내하고 시행해야 할 주체들이 가능한 한 많이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자는 게 그 취지고 의의겠지요. 두 번째는 수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수준이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책에서는 인지능력이나 지식수준을 이야기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수준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히 측정하고 매길 수 있는 표지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산불이 났을 때 화재 진압 전문가인 소방관들에게만 현장의 모든 의사결정을 맡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지역 토박이들의 지리적 지식(샛길이나 지름길)이 합쳐질 때 훨씬 효율적으로 화재 진압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그 수준이란 게 어떤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지 답하기 쉽지 않지요. 책 내용으로 약간 쓸데없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래픽 노블이라 쉽고 재미있게 읽히니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쪼’대로 사는 마음과 연민의 마음, 그 둘 사이쯤 어디
번역에 필요한 최적의 단어를 찾기 위해 온라인으로 영국 데번 지방 사투리 사전을 주문하고, 너드(nerd)와 긱(geek)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아이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 두 번역가의 이야기.(전 도라이에 가깝네요 ㅋㅋㅋㅋ)
두 작가는 24절기처럼 꾸준하지만 지루한 삶의 토막 토막마다 서로를 위한 아니 어쩌면 자기를 위한 다정함을 내놓는다. 다정함은 수고를 내는 일이다. 삶의 무게에 한 짐을 더하는 그런 수고가 아니라 서로의 어깨 위 작은 돌멩이를 덜어내는 그런 수고다. 그리고 그런 수고는 늘 기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