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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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R‘이 전율하는,
레베카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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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와 이론
예발트 일리옌코프 지음, 우기동.이병수 옮김 / 책갈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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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메니데스 "모든 것은 하나다"  VS  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존재와 실재에 관해 대척점에 선 두 철학자가 눈에 띈다. 존재론의 문을 처음 연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고 하며 없는 것(비존재)은 사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고, 있는 것(존재)은 생성, 변화, 소멸을 겪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만물의 근원은 불이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비유하며, 만물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고 생성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본 원리를 논리학에 적용한 개념이 형식 논리학과 변증법적 논리학이다. 형식 논리학은 어떤 대상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인식하고 대상에 대한 단일한 규정을 고집한다. 대상의 대립항이나 모순은 제거해야 할 것으로 여기며 다음과 같은 3가지 논리 법칙을 기본으로 한다.

동일률 : A는 A다.
모순율 : A는 A인 동시에 A가 아닐 수 없다.
배중률 : A는 B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변증법적 논리학은 대상을 고정적으로 지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변화와 발전의 방향성은 대상의 내적, 외적 대립물(모순)에 의해 촉발되고 심화된다. 헤겔이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테제(정) - 안티테제(반) - 진테제(합)이다.

아주 허접하지만 예를 한번 들어보자. 오른쪽 책장을 보니 진짜 재미없어 보이는 벽돌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꽂혀있다. 그렇다 스티븐 핑커가 쓴 그 책 맞다. 방금 확인해 보니 1400페이지가 넘는다. 분홍 파스텔톤의 표지가 예쁜데 들어보면 어마무시하다. 다 읽었냐고 묻지는 마시라.(^^;) 쓸데없는 얘기는 이쯤 하고, 어쨌든 이 책은 다른 누군가의 책장 한구석에 외로이 처박혀 있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과 동일하다.(동일률) 또한 이 책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이면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아닐 수 없다.(모순율) 덧붙여 이 책은 옆에 더욱더 재미없어 보이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배중률) 이런 식으로 대상의 변하지 않는 고정된 모습을 가지고 사유의 형식적 원리를 연구하는 것이 형식 논리학이다. 

조금 더 진행해보자. 몇 년 전 호방한 기세로 구입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지금의 책은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같은 책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완전 똑같지는 않다. 대충 앞 부분 정도는 읽었기에 미약하지만 손때도 묻었고 세월이 지나 전체적으로 약간 바래기도 했다. 이렇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험이 쌓이고 운동하며 변화해 가는 관점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 변증법적 논리학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대상의 변화, 발전은 대립물(모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대립물은 대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의 발견으로 인해 시작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두꺼운 벽돌 책이다. 그런데 책으로써 어떤 테제(읽기 위한 것, 지식 전달)에 반하는 안티테제(두꺼워서 읽기 힘들다. 어렵다)를 만난다. 그런데 마침 라면을 끓인 냄비를 받칠만한 받침대가 필요하다. 두꺼워서 쓰기 좋은 그 책을 받침대로 쓴다.(진테제) 맛있게 먹는다. 끝. (허접해서 죄송합니다. -_-;;)

이 책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와 이론을 주요 철학자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어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유물론의 토대를 만든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걍 어렵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두꺼워서 질린다 뿐이지 사실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1/4 페이지 수에 불과한 이 책은 진짜 어렵다. 몇 번은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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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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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icity, simplicity, simplicity!"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1845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위치한 월든 호수 근처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손수 먹을 것을 구하고 사색과 명상, 글쓰기에 집중한 것이다. 자연을 경외하고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사랑한 그가 쓴 <월든 : 숲 속의 생활>에서 누누이 주장한 것이 "simplicity", 즉 간소함 삶에 대한 추구이다. 소로는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를 '최소한의 먹고 살기 위한 노력' 이상의 불필요한 노동이라고 보았으며, 과잉의 노동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자연을 관조하고 개인의 내면으로 되돌리는 것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라고 보았다. 일례로 그는 직접 콩을 재배하여 거두면서 일부 콩들은 우드척(설치류의 한 종류)을 위해 자라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잉여 생산물을 자연으로 돌렸다. 물질 문명을 비판하고 소박하고 간소한 삶을 추구하며, 자연을 벗 삼아 개인의 내면에 침잠하는 안빈낙도의 삶, 정말 멋지지 않은가?

​그런데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여전히 논란이 많은 작가이자 사상가이다. 구글에서 간단히 검색만 해봐도 그에 대한 비난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러 가지 비판이 있지만, 핵심만 요약하면 그가 월든 호수에서 2년 2개월을 살 때, 자급자족하지 않았고 소박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그의 오두막에서 불과 걸어서 15~20분 거리에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소로는 스스로 빨래를 한 적이 없으며 빨랫감을 모두 어머니께 맡겼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지 않은 대로 하라고 설교한 위선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로가 <월든>에서 그와 같은 사실(빨래나 가족들과의 식사 등)을 일부러 감춘 것이 아니며, 은둔자로 살라고 설파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손수 세탁 또는 음식을 만들거나 집안일을 하지 않은 많은 작가나 유명인 중 유독 소로에게만 가혹한 대중적 지탄이 쏠리는 것에 의문을 표했다. 또 어느 기사에서는 왜 소로가 꼭 ‘문학적 성자’나 ‘오만한 사기꾼’ 둘 중 하나여야만 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소로도 인간이기에 그 사이에 위치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위대함만을 강조하는 반면 한쪽에서는 깎아내리기만 한다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월든>이 함축하고 있는 삶과 실천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글은 조금이라도 '인간 소로'와 별개로 생각할 만한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재미있는것은 이러한 지행합일의 개념은 지극히 동양적이라는 것이다. 동양에서의 인식, 즉 앎이라는 것은 실천이 전제된 행위다. 예를 들어 자전거 대해 안다는 것은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것이고, 예법을 안다는 것은 예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서양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앎과 실천이 분리되어 있다. 자전거를 안다는 것은 자전거의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고, 윤리에 대해 안다는 것은 윤리의 개념과 범위를 관념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무아의 관점에서 보면 자아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불변하는 실체는 없으며 매 순간 변화한다. 또한 인간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고 입체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 사람을 하나의 틀에만 가둘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변화하는 형상 안에서 잉태된 사상이나 저작들을 어느 선까지 우리가 받아 들일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집단 지성의 체로 어느 정도 거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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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토입니다 - 어느 작은 고양이의 빛나는 이야기
심흥아 지음 / 고래가그랬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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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고양이의 빛나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모든 걸 말해주는 듯하지만, 봐야 알 수 있다. 참 멋있는 만화다!
토토의 <아프리카>가 듣고 싶다. (의식의 흐름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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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묻고 세계의 지성 100인이 답하다
윌 듀런트 지음, 신소희 옮김 / 유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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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영상 하나를 봤다. 뭐냐하면 ‘생명 현상’을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슬링키에 비유한 애니메이션이다. 위로 올라가는 방향(죽음)은 우주의 물리법칙이고, 아래로 내려가는 무지개링의 움직임은 살기 위한 세포의 복제 시스템인 것이다.

열역학 제2 법칙(엔트로피 증가)은 무심하고도 성실하게 우리를 위쪽으로 올려놓는다. 반면 하위계층의 세포들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을 역으로 되돌리기 위해, 또한 무심하고도 성실히 공간을 나누고 에너지를 만들고 소비한다.

사건이나 상태의 확률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고립계에서 절대적이다. 이는 깨트린 컵이 다시 붙지 않는 것처럼 일방적인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우리 집이 점점 더 지저분해지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_-;;) 그렇게 보면 끊임없이 낮은 확률을 유지하는 생명이란 현상은 참으로 경이롭지 않은가?

세포의 고군분투를 뒤로하고 상위계층의 이성과 감정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깊은 고뇌에 빠진다. 뭔가 아이러니하다. 물에 떠 있기 위해 물갈퀴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정작 오리는 왜 계속 물에 떠 있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격이다. 심지어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피엔스가 그렇게 진화한 것을.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추구:芻狗)로 여긴다지만, 그 중 일부의 추구는 의미를 찾는데 몰두한다. 설사 답이 없을지라도..

이 책에는 좋은 얘기들이 많다. 사실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읽는 사람의 마음에 몇 구절이라도 들어오면 그걸로 족할 것 같다. 뭐.. 안 들어오면 또 어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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