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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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icity, simplicity, simplicity!"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1845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위치한 월든 호수 근처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손수 먹을 것을 구하고 사색과 명상, 글쓰기에 집중한 것이다. 자연을 경외하고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사랑한 그가 쓴 <월든 : 숲 속의 생활>에서 누누이 주장한 것이 "simplicity", 즉 간소함 삶에 대한 추구이다. 소로는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를 '최소한의 먹고 살기 위한 노력' 이상의 불필요한 노동이라고 보았으며, 과잉의 노동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자연을 관조하고 개인의 내면으로 되돌리는 것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라고 보았다. 일례로 그는 직접 콩을 재배하여 거두면서 일부 콩들은 우드척(설치류의 한 종류)을 위해 자라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잉여 생산물을 자연으로 돌렸다. 물질 문명을 비판하고 소박하고 간소한 삶을 추구하며, 자연을 벗 삼아 개인의 내면에 침잠하는 안빈낙도의 삶, 정말 멋지지 않은가?

​그런데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여전히 논란이 많은 작가이자 사상가이다. 구글에서 간단히 검색만 해봐도 그에 대한 비난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러 가지 비판이 있지만, 핵심만 요약하면 그가 월든 호수에서 2년 2개월을 살 때, 자급자족하지 않았고 소박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그의 오두막에서 불과 걸어서 15~20분 거리에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소로는 스스로 빨래를 한 적이 없으며 빨랫감을 모두 어머니께 맡겼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지 않은 대로 하라고 설교한 위선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로가 <월든>에서 그와 같은 사실(빨래나 가족들과의 식사 등)을 일부러 감춘 것이 아니며, 은둔자로 살라고 설파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손수 세탁 또는 음식을 만들거나 집안일을 하지 않은 많은 작가나 유명인 중 유독 소로에게만 가혹한 대중적 지탄이 쏠리는 것에 의문을 표했다. 또 어느 기사에서는 왜 소로가 꼭 ‘문학적 성자’나 ‘오만한 사기꾼’ 둘 중 하나여야만 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소로도 인간이기에 그 사이에 위치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위대함만을 강조하는 반면 한쪽에서는 깎아내리기만 한다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월든>이 함축하고 있는 삶과 실천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글은 조금이라도 '인간 소로'와 별개로 생각할 만한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재미있는것은 이러한 지행합일의 개념은 지극히 동양적이라는 것이다. 동양에서의 인식, 즉 앎이라는 것은 실천이 전제된 행위다. 예를 들어 자전거 대해 안다는 것은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것이고, 예법을 안다는 것은 예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서양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앎과 실천이 분리되어 있다. 자전거를 안다는 것은 자전거의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고, 윤리에 대해 안다는 것은 윤리의 개념과 범위를 관념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무아의 관점에서 보면 자아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불변하는 실체는 없으며 매 순간 변화한다. 또한 인간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고 입체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 사람을 하나의 틀에만 가둘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변화하는 형상 안에서 잉태된 사상이나 저작들을 어느 선까지 우리가 받아 들일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집단 지성의 체로 어느 정도 거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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