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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천사 ㅣ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4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작가 '에드거 월리스'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영화 《킹콩》의 원작자이자 영국추리작가협회 선정 '100대 추리소설'에 이름을 올릴만큼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그.
요즘들어 그의 작품이 하나 둘 번역되어서 한국 독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저에게는 이번 작품이 첫 만남이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반전 매력.
그래서 더 기대를 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공포의 천사』

숨 막힐 듯한 법정 안.
약혼녀 진 브리거랜드의 위증으로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언도받게 된 '제임스 메레디스'.
하지만 그의 친구이자 변호사 '잭 글로버'는 음모라 믿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글로버. 자네 정말 저 불쌍한 약혼녀가 악랄하기 그지없어서 사랑하는 약혼자에 대해 거짓 증언을 했다고 믿는 건가?"
"'사랑하는'이라......!" 잭 글로버가 이렇게 따라 말하자 상대는 어리둥절했다. - page 9
그렇게 잭 글로버는 '리디아 베일'양에게 사건의 내막과 함께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진실은 이러합니다. 메레디스는 진 브리거랜드 양과 약혼했습니다. 그러다가 브리거랜드 부녀의 신용상태가 대단히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메레디스는 진정으로 브리거랜드 양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녀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청혼을 한 거였지요.
메레디스는 이대로 결혼하면 일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마침 브리거랜드 부녀에 관해 떠도는 이상한 소문도 듣게 되었죠. 그래서 약혼을 파기하러 그날 밤 브리거랜드 양 집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리죠. 사실 메레디스의 아버지는 조혼이 좋다고 믿는 좀 별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유언을 남겼는데, 메레디스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재산을 누나와 누나의 상속인에게 넘어가도록 한 것입니-다. 메레디스의 누나는 지금은 고인이 된 브리거랜드 양의 어머니입니다. 당연히 상속인은 그 남편과 딸인 브리거랜드 부녀가 되지요. - page 33 ~ 34
그리고 이어진 제안.
서른 살이 되기 전 월요일 아침, 제임스 메레디스와 결혼을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모르는 사람을, 그것도 사실이 어찌 되었든간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결혼을 제안해 달라는 것 자체가 황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리디아는 몇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을 승낙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그야말로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였습니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진 브리거랜드는 결혼식 날 불쑥 나타납니다.
"메레디스를 원해요." 여자가 짧게 대답하자 글로버가 킬킬 웃어댔다.
"그쪽은 늘 메레디스를 원했었지, 브리거랜드 양." 잭이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원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소." - page 44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브리거랜드 양.
그런데 이때, 밖에서 총소리가 들립니다.
바깥은 눈발이 흩날리고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
월계수 덤불이 구불구불 드리워진 숲길을 따라 달리고 마주한 공구 창고에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그곳에 한 남자가 팔을 쭉 뻗은 채 땅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는 피로 흥건했고 잿빛으로 변한 손에 권총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잭은 경악하여 소리치며 쓰러진 남자 옆으로 달려갔다. 제임스 메레디스였다. 메레디스가 죽은 것이다. - page 45
그렇게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태가 험악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을 거야." - page 49
<범죄 연대기> 책을 좋아하는 그녀, 진.
그녀의 아버지 역시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네 입에서 '교수형'과 같은 말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단다." 브리거랜드가 기겁하며 말했다. "너무 잔혹해. 진, 신이 듣고 있다면......"
"전 '천사'라구요." 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를 '천사'로 묘사한 신문 기사도 있는 걸요! <데일리 레코더>지가 지미의 재판 증인석에 앉아 있던 제 모습을 보고 쓴 반 단짜리 칼럼을 보셔야 해요." - page 70
남편을 잃은 '리디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녀 역시도 죽을 고비가 찾아오곤 합니다.
원래 그녀의 심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태도를 보면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악녀같은 진의 모습이 섬뜩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천사같은 모습으로 저지르는 악행은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하게 그려졌었고 끝까지 그녀만은 살아남은 모습에서 과연 진실은 사라진 것인지라는 의문도 들곤 하였습니다.
진이 이토록 악마가 될 수 밖에 없었을까......
"인간을 죽이는 것은 베이컨을 얻기 위해 돼지 목을 베는 것보다 더 잔인할 게 없어요.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요리 중에 고의적 살생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물론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실 테지만요. 하지만 인간이 말을 하고, 동물과 식물로 옷을 만들어 입고, 금속과 반짝이는 석영 조각들로 치장하는 동물이라고 하여, 소에게 부정하는 가치를 인간은 스스로에게 부여해요. 자신들의 성 안에서 말이에요!
무언가를 죽이는 행위는 편의의 문제예요. 전쟁이라 부르면 괜찮게 들리고, 살인이라 부르면 끔찍하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게 그건 그냥 죽이는 행위일 뿐이에요. 아버지가 누군가를 죽인 것을 들키면 사람들은 아버지를 죽일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정당한 처사라고 말하겠지요.
인간 삶이 신성하다는 말 따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 만들어낸 슬로건에 불과해요."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돈 없는 삶이 더 두려워요." 진이 조용하게 말했다. - page 164
죽음보다 돈 없는 삶이 더 두렵다고 말하는 진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인 이유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진면모가 들어났던 장면.
진은 미끄러지듯 걸어가서 문을 닫고 방을 나왔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문을 세게 닫지도, 계단을 서둘러 내려가지도 않았다. 모돈의 숙소를 나와서는 주변을 살핀 뒤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저택으로 들어갔다. 길쭉한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악마가, 파괴에 굶주린 악마가 웅크리고 있었다. 이제껏 그 누구도 진 브리거랜드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지만, 적어도 한 사람이 그녀에게 엄청나게 강렬한 증오를 불러일으킬 것만은 분명했다.
진은 손수건에 물을 묻혀 입술을 닦고는, 마치 더러운 것에 오염된 것인 양 창문 밖으로 휙 던져 버렸다. 프랑수아 모돈은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 page 257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유정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이였지만 알고보니 그 속엔 악마가 웅크리고 있었던 그녀.
아직까지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사건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아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이 사건 속 그녀가 마치 '진'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결말과는 달리 우리는 꼭 사건의 진실을 찾았으면 합니다.
'사랑'이었지만 결코 '죽음'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그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