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 -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여행의 끝
주오일여행자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여행'에 대한 환상과 낭만만을 가진 저.

막상 떠나기 전의 설렘과 기대와는 달리, 여행을 다니는 동안엔 긴장감과 두려움, 하지만 그 속에 소소한 행복과 안도감이 있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엔 그 모든 것이 아쉬움으로 남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고나면 한층 성숙해진 내 모습을 기대하고 그 전의 일상에서의 변화를 기대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였고 똑같은 일상에서 또다시 실망하며 어제와 같이 오늘도 지내곤 합니다.


그런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한 이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주오일여행자'.

회사를 때려치우고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지만,

남은 건 텅 빈 통장과 심한 여행 후유증을 앓고 있는 나.


"여행이 끝난 후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건 정말 나뿐인 걸까?"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여행의 끝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

 


첫 장을 펼치면서 일러준 여행의 끝.

여행이 끝났는데도

세상은 멀쩡한 거 있죠

2년 동안 지구 반 바퀴 여행을 다녀온 그.

한국에 오자마자 만난 사람은 종로 술집 한복판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55위 대학 선배와의 만남.

"지옥에 돌아온 걸 축하한다! 소감이 어때? 좀 들어보자."

"뭐, 얼떨떨했는데, '웰컴 투 헬-'이라고 하시니까 도망가고 싶어졌어요, 방금."

"하하. 농담이지! 그래서 2년 가까이 여행했는데 어땠냐고. 취업은 언제 할 거야?"

"글쎄요. 여행이 끝났는데도 세상은 멀쩡하네요." - page 12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선배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그.

그리고 그는 생각합니다.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인생이라는 양동이가 한번에 뒤집어져 경기 역전에 성공할 것 같지만, 삶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행의 끝은 지옥문에 더 가까운 법이니까.


"그래서, 아직도 세상이 망하지 않았다고요? 내 여행이 끝났는데도, 이 글을 다 썼는데도, 여전히 세상이 멀쩡하다고요? 그럼 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죠?" - page 23


여행이 끝난 일상.

그는 허연의 시, <목요일>을 외워봅니다.

...

오늘은 목요일.


결국 오늘도

꿈이 피를 말린다.

그 꿈이 나한테 이럴 수가.


'죽이 끓든 밥이 끓든 / 나는 변하지 못했고 / 또 목요일'이네요. 그러니까요,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요. 여행으로도 변하지 못한 내가 또 시시한 목요일을 살다니요. - page 30


그러던 그가 오랜만에 책을 덮고 집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무려 2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 덕.

역시나 친구들도 유치한 사춘기를 이제껏 앓는 그에게 불행하다 말하면서도, 끝내는 미안한 표정으로 술을 따라주는 그들의 진심에 그는 생각합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건 정말 불행일까? 그래, 어쩌면.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나의 불행을 미안해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게, 불행 중 다행인가 봐. - page 45


그리고 그는 여행의 기억을 곱씹어보곤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그래내드캐니언'.

그랜드캐니언에서 일몰을 보는 것이 오랜 소원이라는 노부부를 바라보며 그는 '할머니'를 떠올리게 됩니다.

돌아서서 걷는 할머니의 초록색 외투를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언어로 감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이 풍경을,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다 생각했다. 온갖 시간의 굴곡과 비정의 협곡을 넘어온 사람, 멋진 주름이 살아온 역사를 증명하는 나의 할머니와 말이다.

계단 모양의 단층에 차곡차곡 쌓인 세월이 꼭 지구의 주름처럼 보였기 때문일까? 켜켜이 쌓인 주름과 고된 세월이 담긴 단단한 표정까지, 그랜드캐니언과 할머니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할머니의 주름이 그리웠다. 여행 중 처음으로,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할머니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담기지 않는 곳까지 뻗어 나간 거대한 협곡 위에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할머니! 나야! 제 목소리 들려요?" - page 155 ~ 157

하지만 할머니는 전화비 걱정에 짧게 통화를 마칩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이야기.

통화가 끝나고, 나는 할머니와 나의 3분이 이 거대한 협곡 어딘가에 얇은 주름 한 줄로, 짧은 나이테 한 겹으로 새겨지길 바랐다. 할머니의 고단했던 80년이 위대하고 자아대한 지구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이곳에 새겨지길 간절히 바랐다. 할머니가 끝내 이 협곡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흔적은 이곳에 남도록 간곡히 빌었다. - page 158

그는 할머니와의 전화를 떠올리며, 행복의 의미에 한 줄을 추가하게 됩니다.

행복은, 할머니와 먹은 어느 가을날의 알밤, 그리고 세월이 주름처럼 차곡차곡 쌓인 그랜드-캐니언에서 그랜드-마더에게 거는 3분의 통화다. 시간이 더 흘러 할머니 없이도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건 모두 이 대자연에 새겨진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 때문일 거라 확신했다. - page 161

제 할머니도 떠올랐습니다.

항상 갈 때면 손수 음식을 해 맞이해 주시고 자신의 무릎 베개에 누으라고 하셨던 할머니.

죄송합니다, 못난 손녀딸이었습니다......

언제 한 번 할머니께 어리광 부리러 가야겠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유.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서른이 넘은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더는 성장하지도, 더는 나아지지도 않는 인생의 정체기에서 어쩌면 여행이나 결혼이 생을 완전히 바꾸는, 그래서 비로소 달라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친구가 대학원에 가고, 결혼을 결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재상영관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제와는 다른 인생을 그리며 각자의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미완성인 이 생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미동도 없이 표류해 가는 삶 속에서 어떤 부표를 잡아야 더 나은 항해가 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여행으로 혹은 결혼으로 우리 인생이 완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에 우리가 결혼이나 여행으로 생을 완성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절망하게 될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 page 81 ~ 82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미완성이지만 그래도 세상을 부딪혀 나가고자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행의 끝을 맞이한 우리에게 그는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여행을 시작하고 끝내며 사는 게 우리 삶이라는 그의 말처럼 오늘도 내일도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며 살아보겠습니다.

조금은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그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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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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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에게도 '밤'시간은 그 어느 시간보다 특별합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그래서 잠을 줄이더라도 나를 위해 이 시간만은 마음껏 즐기곤 합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책 한 권.

가끔은 노래와 함께......


이번에 만나게 된 이 책.

누구에게나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밤이 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한 날.

나만 재미없는 매일을 사는 것 같아 초라해지는 날.


그런 '날' 위로해 줄 책이었습니다.

그림과 함께.

저자의 따스한 위로와 함께.

『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나의 새벽도 이러할까?!

​

 

 


내 안에 있는, 잘 웃던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아이가 기다리다 지치지는 않을까......

오늘도 내 안의 아이와의 만남을 기대해봅니다.


'산책'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든 이 책은 공감되는 이야기과 그 이야기와 어울리는 그림을 보다보니 지쳤던 하루가, 그래도 오늘을 살아간 나에게 넌지시 칭찬과 위로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쉽게 읽어내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중 공감했던 <나의 영양제는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은 지친 내 마음에 영양을 보충해주는 시간이자 반복되는 일상에서 살짝 비켜나는 시간이다. 요즘의 내게 독서는 비타민, 음악은 마그네슘, 식물 가꾸기는 철분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는 이런 영양제를 더 맛있게 섭취하게 만드는 조미료? 그래서 과다 사용하면 역효과니 조심! - page 50

나에게 부족한 철분과 조미료.

무엇으로 채워볼까......


최근에 무기력증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던 저에게 이 충고를 들었었더라면......

현실을 잠시 멈춰야만, 생각이 가능하다. 오늘 하루는 혼자 있으며 지난 며칠 간의 시간에 브레이크를 걸고 내 몸을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그늘에서 잠시라도 쉬자. 쉼 없는 삶을 살다 보면, 영원히 쉬어야 할 수도 있다. - page 137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나무가 우리 험담을 하진 않겠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일수록 동물과 식물에 더 마음을 의탁한다고 합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농부를 그린 최초의 화가 밀레가 한 말.

"자네도 숲이 얼마나 멋있는지 알겠지! 오후 끝 무렵에 그리로 달려 나갔다가 기진맥진해서 돌아오기도 하지. 무섭도록 거대한 고요와 마주치고. 그래서 나는 정말로 두려워. 망나니들처럼 얽힌 나무들이 저들끼리 수군대는데 우리가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 것 같네. 우리가 나무와 말이 통하지는 않잖나. 그러니 별수 없지. 그래도 나무들이 저들끼리 험담인들 하겠나." - page187

알프레드 상시에,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정진국 옮김, 곰, 2014


그가 그린 <만종>이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 우리에게 경건하게 다가왔습니다.


책을 읽고난 뒤 가슴 한 켠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서 이 책과 함께 충만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겠지요.

새벽 1시 45분.

이 책과 함께 자신만의 그림 산책을 떠나보는건 어떨지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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텨댜 : 마음 가는 대로
최설아(텨댜) 지음 / 북치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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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텨댜 알 수 없어 두렵지만, 알 수 없어 재밌는 내 인생』 을 보았던 독자이기에 그녀의 'To Be Continued'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

그래서 웃고 즐기는 사이에 어느새 그녀의 이야기가 하나 둘 가슴에 새겨지기도 하였습니다.


또다시 제 곁에 와준 그녀.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텨댜, 마음 가는 대로』

 

​

​저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녀의 뒷모습.

쓸쓸하던 호주에서의 어느 날,

바다의 노을을 보며 나는 결심했다.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기로.

이번엔 그녀의 '워킹 홀리데이' 이야기를 기점으로 일상과 행복, 사랑,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우선 <텨댜의 일상>을 보다가 '빵' 터졌던 에피소드. 

​

 

 

설마......

다음 작품 제목이...... 아니겠지요?!


그녀의 '워홀'.

상상했던 것만큼의,기대만큼의 자유와 행복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면 그녀에게 '노동 지옥'을 선사해 주었고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면서 곤란한 일을 한두번 겪은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는 말하였습니다.

워홀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나는 워홀에서 했던 고생과 경험 등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실제로 내 지인들에게는 '워홀을 떠나라'고 많이 추천하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워홀의 낭만'만 생각하고 워홀에 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워홀을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고 겁내라는 말은 아니다. 현재 본인의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워홀의 힘든 점, 어려운 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보고 그래도 가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떠나길 추천해 본다. 물론 준비가 안 된 채로 가서도 잘 부딪혀낼 수 있는 멘탈과 체력을 가졌다면 언제든지 '마음 가는 대로' 떠나도 되긴 하지만.

...

그리고 만약 워홀에 간다면 너무 힘들게 노동만 하지 말고 여행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가끔은 돈도 펑펑 쓰며 즐기시길! 우린 아직 너무 젊고 소중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이니까. 마음 가는 대로, 그렇지만 상처받지 않고 더 큰 세상에서 새로운 행복을 누리기를!! - page 171


이번에도 그녀의 연애사가 실려있었습니다.

역시!

남의 연애사만큼 재밌는게 없다지요!


이번 책이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녀의 '가족'이 등장한 점이었습니다.

오늘의 '텨댜'가 있게 해 준

엉뚱하고 보여주기식 부성애의 일인자 아빠,

꽤 쿨하고 언제나 날 믿어주시는 엄마,

별로 친하지 않아서 만화엔 출연하지 못했던 오빠.

그리고 그녀가 제일 사랑하는 뚱보 고양이 설탕이까지.

무엇보다 아빠의 에피소드들.

다음 책에서도 등장해 주실꺼죠?!


또다시 웃고 즐기는 사이에 책의 마지막장을 덮게 되었습니다.

아쉬움만 남은 채......

하지만 그녀는 다음에도 꼭 다시 만날 것을 약속(?)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같이 매일 행복하고, 매일 웃고, 매일 모험하며 신나게 살아봅시다!!


다음 책에서도 꼭 다시 만나요! - page 415


그녀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

무엇보다 내 주변엔 나를 있게해 준 소중한 이들이 있음에 평범한 일상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텨댜.

다음에 꼭 다시 만나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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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포소설가 ㅣ 놀놀놀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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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포물'을 안 좋아합니다.

잔인한 사건.

흐르는 피.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긴장감.

그래서 굳~~~~이 '호러물'은 찾아보지 않습니다.


근데 이 책은 왠지 읽고 싶었습니다.

'호러'가 아닌 '호러광'이 쓴 이야기이기 때문에, 왜 그는 공포를 좋아하는지 저로써는 궁금했기에 읽었습니다.

『난 공포소설가』

 

​

<프롤로그>에서 그는 언급해주었습니다.

미리 말하자면,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전혀 무섭지 않다. 그런 쪽, 그러니까 턱이 덜덜 떨이고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꿈자리가 뒤숭숭한 쪽을 원한다면 내가 쓴 소설을 읽어 보시길. - page 4

오히려 무섭지 않다고 해 주어서 감사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

꼬맹이 어린 시절부터 대출금을 걱정해야 하는 아저씨가 된 지금까지 나는 꾸준히, 끈덕지게, 늘, 한결같이, 지독할 정도로 호러 장르를 사랑해왔다. 거의 30년 넘게 그 사랑을 이어 오고 있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랑하다 못해 언젠가부터 호러 장르를 가지고 소설을 써오고 있으니 감히 지고지순하다 말해도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 page 5

정말 왜 그가 이 책을 '호러에 보내는 연애편지'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에겐 세상 둘도 없는 '호러'에 대한 연애편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TV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

그에게 <전설의 고향>은 과자종합세트였다고 하였습니다.

약속을 저버리거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교훈도(그 덕에 내가 성실한 인간이 됐다), 누구나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깨달음도, 눈물짓게 만드는 감동도, 깔깔거리게 만드는 웃음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다 들어 있었다. - page 12 ~ 13

그래도 그가 좋아하는 결정적인 이유.

'귀신'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 공포 뒤의 '희열'을 느끼게하는, 해소의 기쁨을 선사하면서 운명이 되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태풍이 분 건지 장마가 진 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폭우로 동네 하수구가 막히고 그렇게 해서 넘친 물이 그의 집을 덮친 상황.

어머니와 아버지는 바가지와 세숫대야를 동원해 필사적으로 물을 퍼냅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넘실거리는 수챗물을 바라봤다. 검디 검은 그 물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아주 나쁜 마음을 품고 우리 집을 박살내기 위해 찾아온 귀신. 너무 무서워서 울음이 터지려는 걸 꾹 참았다. 내가 울면 동생들도 다 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의 4형제 중 장남으로 살다 보면 아무리 어리더라도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기가 막히게 알게 된다. - page 17

조금씩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비가 그친 그날 밤.

어둑한 방 안에 홀로 앉아 <전설의 고향>을 보던 그에게 몸져누운 남편을 살리려고 사방팔방으로 노력하는 부인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조금은 실망하며 보던 찰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귀신과 맞닥뜨리며 극한의 공포를 체험한 그.

"내 다리 내놔라!"

시체가 부인을 좇으며 세 번 째인가 네 번째 외쳤을 때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따뜻한 손길로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다. 다 괜찮아."

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그 품에 안겨 참고 있던 울분이 터지게 됩니다.

조금 진정이 된 후 그는 새로운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남편처럼, 한참 울고 난 나도 아주 개운하고 환한 얼굴이 되었다. 마음속 한구석에 꽉꽉 뭉쳐 있던 응어리가 스르르 풀려 사라진 느낌이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우리 집은 가난했고 단칸방이었으며 언제 또 수챗물이 차고 넘칠지 몰랐다. 그럼에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아무렴, 내 다리 내놔라 귀신보다 무서울 수는 없었고 그마저도 어머니의 품 안에서라면 견딜 만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무섭다는 감정의 저 아래에는 그걸 극복한 뒤 찾아오는 놀랄 만큼 개운한 해방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 챈 것은. - page 22


그리고 6학년이 된 그는 무서운 경험을 하고자 합니다.

폐가 탐험.

A와 B와 함께 동네 폐가에 가게 된 그.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돌아다니가 폐가 탐험의 마지막 코스인 작은 방의 문을 여는 순간.

"으악!"

수많은 비둘기들이 푸드덕, 푸드덕 정신없이 날갯짓을 하며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냅다 뛰는 그들.

"큰일 날 뻔했다."

두 친구 A, B는 웃기 시작하고 그 역시도 웃게 됩니다.

그리곤 깨닫게 됩니다.

진짜 무서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래서 모든 감정을 다 연소시키고 나면 남는 것은 순도 높은 웃음과 안도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장은 여전히 벌렁거리고 마구 돋아난 소름 역시 채 사라지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알았다. 우리는 무사하다는 사실을. - page 59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B는 이 말을 합니다.

"무섭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웠던 거야."

맞다. 귀신의 손이라고 생각하니까 무서웠던 거다. 그곳이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생각하니 그토록 두려웠던 거다. 상상은 곧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은 언제나 행동을 조정한다. 그걸 역순으로 쫓아가면 끝내주는 상상력만 있으면 세상에 못할 게 없다는 말이 된다. 나는 그런 상상력을 가지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누군가를 오싹하게 만들고 겁에 질리게 만들어줄 그런 상상력이 있었으면 했다. 그런 오싹함 뒤에는 속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 page 60 ~ 61


그리곤 그는 몸이 약해 정규과정은 밟지 못하게 되고 방황을 하게 됩니다.

방황을 붙잡아 준 것은 바로 소설, 그중에서도 공포소설이었습니다.

역시!

그에게 '공포'는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을 또다시 느끼게 됩니다.

《링》

​이 소설을 통해 그는 누군가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 그대로 소설에 접목하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방법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무튼 나는 내 안의 어딘가에 소설가라는 화석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큰 수확이었다. 다음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걸 조심스레 발굴하면 될 일이었다. - page 119 


그의 발굴 의지에 불을 지핀 건 《검은 집》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히 소설을 써내려가게 되고 마침내 책이 나오게 됩니다.


마지막에 그의 '호러'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

소설을 쓰는 한 계속 호러를 쓰겠다는 그.

그의 '호러'에 대한 애정에 박수를 건넵니다.

​

그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호러가 단순히 '무섭다'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려움 뒤에 마주하게 될 순도 높은 웃음과 안도감.

그리고 무서움은 나의 상상이 빚어낸 결과라는 걸 알게되니 조금은 호러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무섭기에, 두렵기에 조금씩, 천천히 호러를 마주하려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간 그의 작품도 읽을 날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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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ㅣ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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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명강'

정말 '명강의'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없을 정도로 국내 최고의 교수진이 인문학 콘텐츠를 일러주는데 강의가 끝난 후 차마 그 여운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하곤 합니다.


그래서 찾아 읽고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제 생각의 폭도 조금씩 넓어지고 결국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이번에 만나게 된 강의 역시나 심상치 않았습니다.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이번 강의는 <문학>이었습니다.

문학 중에서도 '서어서문학'이라고 합니다.

낯설었습니다.

'뭘까?'

이어서 정의가 나왔습니다.

스페인어권 세계의 언어와 문학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문헌학적 접근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우리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한편, 인간다움의 추구라는 인문학의 근본정신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에는 스페인어권과 역사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친연성이 높은 포르투갈어권까지 범위를 확장하여 이베리아 반도와 라틴아메리카, 미국의 라티노 공동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을 교육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 page 5

우리에게도 익숙한 문학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붐을 대표하는 작가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쿠바 혁명으로 소위 라틴아메리카 붐이 일어났지만 붐 세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역내에서 세계적으로 읽힐 만한 작가들만 발굴해서 지원하다 보니 라틴아메리카 역내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작가들이 갈수록 사라지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고 지금은 자신의 국가 경계를 넘어 읽히는 작가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씁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게 됩니다.

소설이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시인은?

지금의 멕시코시티 북동부에 존재했던 도시국가 텍스코코의 문화적 황금기를 열었던 통치자이자 철학자, 시인 네사왈코요틀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는 시적 전통이 매우 강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네루다'는 이런 말까지 하게됩니다.

"길을 가다 아무 돌멩이나 뒤집어보라. 시인 다섯 명이 기어 나올 것이다." - page 36

그만큼 시인이 많은 나라, 이는 희망이 고갈된 출구 없는 현실의 방증을 의미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4명의 시인이 소개되었습니다.

이들은 소리없는 아우성을 글로, 시로 남겼기에 더없이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시인들의 시인, 루벤 다리오.

그는 거의 사용된 적이 없거나 이미 사용되지 않는 시행들을 도입하여 새로운 리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형식 실험을 통해 음악성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특히나 그가 있던 사회.

"저주받은 시인들은 낭만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동화되지 않는 것들을 추방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시는 부르주아지에게 계시를 주거나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부르주아지 사회는 시인을 추방하고 사회의 기생충이나 걸인으로 만든다." - page 98

그래서 그의 마지막 모습은 더없이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건강상의 문제가 심각했지만, 자유분방한 그의 삶에서 가장 치명적인 고통은 시인을 고립으로 이끄는 사회와의 불화였을 것이다. 시인을 추방하고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영혼 없는 사회와의 불화, 그것이 결국 그의 죽음을 앞당긴 것이 아닐까. - page 99 ~ 101


잉크보다 피에 가까운 시인, 파블로 네루다.

2010년 8월 칠레 산호세 광산이 붕괴되어 광부 서른세 명이 매몰되는 사고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그의 시를 읽을만큼 칠레인들의 일상에까지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시인이었습니다.

혁명과 반혁명이 예리하게 충돌한 고뇌의 시대를 살아가던 그.

그의 시는 현실과 동떨어진 시를 쓴 것이 아닌 삶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고통을 느끼고 호흡하며 시를 썼기에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시인'이라 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는 자연에서 여인으로, 또 역사와 민중으로, 라틴아메리카로, 우주로 끝없이 확장해가며 "움직이지 않는 여행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시가 내게로 왔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네루다>를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영혼을 위무하는 시인, 세사르 바에호.

평생 고통과 더불어 살았고 고통은 그의 문학의 뿌리이자 자양분이었다고 합니다.

죽음이 평생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녀 "장대비 쏟아지는 파리에서 죽겠다"며 일찌감치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시를 쓰기도 했는데, 외부 세계와 격리된 인간의 근원적 상실감과 고독이 더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그의 시 중「군중」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투가 벌어지고 누군가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적이 행해졌다. 죽었던 전사가 다시 일어나 "맨 처음에 온 사람을 껴안"는 행위는 폭력적 세계에 항거하는 진정한 인간적 연대의 표상이다. 이제 군중은 개인이 아닌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로 거듭난다. 이처럼 바예호는 개인적 소외와 고통 속에서도 "이 땅의 모든 구멍에 당신[어머니]의 / 사랑 방정식을 대입"하며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고통없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다. - page 259


신성한 전통에 총구를 겨눈 반시인, 니카노르 파라.

일반적인 시에 대한 통념과 편견 -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난해한 것, 매우 숭고하고 고상한 것 - 을 '반시'라는 개념으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그.

그의 거의 모든 시를 관통하는 시적 장치는 유머와 아이러니, 패러디가 있었습니다.

웃을 수 없는 농담과 예리한 풍자적 아이러니.

이를 통해 가짜 진실의 저격수로 현실의 언어 밑바닥에 잠복해 있는 우리 시대의 본질적 모순이나 부조리를 가차 없이 드러내곤 하였습니다.

파라의 시에서 지배 담론에 대한 전복 의지는 이처럼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교란적 의지로 확대된다. 세계로부터 소외된 자아의 냉혹한 시선으로 반유토피아적 전망을 드러냈던 부정의 미학, 총체적 니힐리즘과 아나키즘으로 치달았던 믿음의 상실과 냉소주의의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동일성의 회복에 대한 욕망, 즉 삶과 희망과 시의 존재 이유가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 page 337


네 명의 시인을 만나고나니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이라 쓰고 그동안의 '단절'과 '분열','불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끝엔 '희망'이 있었기에 잠시 주춤했던 그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비상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은 몰랐기에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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