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 -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여행의 끝
주오일여행자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여행'에 대한 환상과 낭만만을 가진 저.

막상 떠나기 전의 설렘과 기대와는 달리, 여행을 다니는 동안엔 긴장감과 두려움, 하지만 그 속에 소소한 행복과 안도감이 있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엔 그 모든 것이 아쉬움으로 남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고나면 한층 성숙해진 내 모습을 기대하고 그 전의 일상에서의 변화를 기대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였고 똑같은 일상에서 또다시 실망하며 어제와 같이 오늘도 지내곤 합니다.


그런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한 이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주오일여행자'.

회사를 때려치우고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지만,

남은 건 텅 빈 통장과 심한 여행 후유증을 앓고 있는 나.


"여행이 끝난 후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건 정말 나뿐인 걸까?"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여행의 끝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

 


첫 장을 펼치면서 일러준 여행의 끝.

여행이 끝났는데도

세상은 멀쩡한 거 있죠

2년 동안 지구 반 바퀴 여행을 다녀온 그.

한국에 오자마자 만난 사람은 종로 술집 한복판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55위 대학 선배와의 만남.

"지옥에 돌아온 걸 축하한다! 소감이 어때? 좀 들어보자."

"뭐, 얼떨떨했는데, '웰컴 투 헬-'이라고 하시니까 도망가고 싶어졌어요, 방금."

"하하. 농담이지! 그래서 2년 가까이 여행했는데 어땠냐고. 취업은 언제 할 거야?"

"글쎄요. 여행이 끝났는데도 세상은 멀쩡하네요." - page 12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선배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그.

그리고 그는 생각합니다.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인생이라는 양동이가 한번에 뒤집어져 경기 역전에 성공할 것 같지만, 삶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행의 끝은 지옥문에 더 가까운 법이니까.


"그래서, 아직도 세상이 망하지 않았다고요? 내 여행이 끝났는데도, 이 글을 다 썼는데도, 여전히 세상이 멀쩡하다고요? 그럼 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죠?" - page 23


여행이 끝난 일상.

그는 허연의 시, <목요일>을 외워봅니다.

...

오늘은 목요일.


결국 오늘도

꿈이 피를 말린다.

그 꿈이 나한테 이럴 수가.


'죽이 끓든 밥이 끓든 / 나는 변하지 못했고 / 또 목요일'이네요. 그러니까요,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요. 여행으로도 변하지 못한 내가 또 시시한 목요일을 살다니요. - page 30


그러던 그가 오랜만에 책을 덮고 집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무려 2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 덕.

역시나 친구들도 유치한 사춘기를 이제껏 앓는 그에게 불행하다 말하면서도, 끝내는 미안한 표정으로 술을 따라주는 그들의 진심에 그는 생각합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건 정말 불행일까? 그래, 어쩌면.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나의 불행을 미안해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게, 불행 중 다행인가 봐. - page 45


그리고 그는 여행의 기억을 곱씹어보곤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그래내드캐니언'.

그랜드캐니언에서 일몰을 보는 것이 오랜 소원이라는 노부부를 바라보며 그는 '할머니'를 떠올리게 됩니다.

돌아서서 걷는 할머니의 초록색 외투를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언어로 감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이 풍경을,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다 생각했다. 온갖 시간의 굴곡과 비정의 협곡을 넘어온 사람, 멋진 주름이 살아온 역사를 증명하는 나의 할머니와 말이다.

계단 모양의 단층에 차곡차곡 쌓인 세월이 꼭 지구의 주름처럼 보였기 때문일까? 켜켜이 쌓인 주름과 고된 세월이 담긴 단단한 표정까지, 그랜드캐니언과 할머니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할머니의 주름이 그리웠다. 여행 중 처음으로,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할머니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담기지 않는 곳까지 뻗어 나간 거대한 협곡 위에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할머니! 나야! 제 목소리 들려요?" - page 155 ~ 157

하지만 할머니는 전화비 걱정에 짧게 통화를 마칩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이야기.

통화가 끝나고, 나는 할머니와 나의 3분이 이 거대한 협곡 어딘가에 얇은 주름 한 줄로, 짧은 나이테 한 겹으로 새겨지길 바랐다. 할머니의 고단했던 80년이 위대하고 자아대한 지구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이곳에 새겨지길 간절히 바랐다. 할머니가 끝내 이 협곡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흔적은 이곳에 남도록 간곡히 빌었다. - page 158

그는 할머니와의 전화를 떠올리며, 행복의 의미에 한 줄을 추가하게 됩니다.

행복은, 할머니와 먹은 어느 가을날의 알밤, 그리고 세월이 주름처럼 차곡차곡 쌓인 그랜드-캐니언에서 그랜드-마더에게 거는 3분의 통화다. 시간이 더 흘러 할머니 없이도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건 모두 이 대자연에 새겨진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 때문일 거라 확신했다. - page 161

제 할머니도 떠올랐습니다.

항상 갈 때면 손수 음식을 해 맞이해 주시고 자신의 무릎 베개에 누으라고 하셨던 할머니.

죄송합니다, 못난 손녀딸이었습니다......

언제 한 번 할머니께 어리광 부리러 가야겠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유.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서른이 넘은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더는 성장하지도, 더는 나아지지도 않는 인생의 정체기에서 어쩌면 여행이나 결혼이 생을 완전히 바꾸는, 그래서 비로소 달라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친구가 대학원에 가고, 결혼을 결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재상영관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제와는 다른 인생을 그리며 각자의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미완성인 이 생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미동도 없이 표류해 가는 삶 속에서 어떤 부표를 잡아야 더 나은 항해가 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여행으로 혹은 결혼으로 우리 인생이 완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에 우리가 결혼이나 여행으로 생을 완성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절망하게 될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 page 81 ~ 82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미완성이지만 그래도 세상을 부딪혀 나가고자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행의 끝을 맞이한 우리에게 그는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여행을 시작하고 끝내며 사는 게 우리 삶이라는 그의 말처럼 오늘도 내일도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며 살아보겠습니다.

조금은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그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