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니타 프로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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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 짜릿했습니다.

'메이드'라는 직업.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더 궁금했던 이 소설.

빠르게 읽어보았습니다.

당신은 그녀를 볼 수 없지만, 그녀는 당신을 봅니다.

당신의 비밀, 더러운 치부까지도... 그녀는 호텔 메이드입니다.

"사회적 약자가 빛나는 순간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경쾌하고 위트 있는 소설"

메이드



책장을 펼치면 우선 만날 수 있는 <프롤로그>.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메이드.

하지만 나는...?!



오성급 리전시 그랜드 호텔에서 메이드로 일하는 스물다섯 살의 '몰리 그레이'.

그녀는 소통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엔 따돌림당하기 일쑤였고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이가 바로 '할머니'였습니다.

상대의 행동에 담긴 뜻을 읽어내는 능력이 매일, 모든 면에서 좋아지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주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남의 생각은 신경 쓰지 마라. 중요한 건 네 생각이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사람은 자신의 도덕률에 따라 살아야지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서는 안 된다. - page 16

하지만 몇 개월 전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가 된 몰리.

이젠 혼자서 이 복잡하고도 고단한 삶의 여정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몰리는 메이드로서의 일을 사랑합니다.

할머니가 늘 말씀하시듯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하면 넌 평생 하루도 일하는 게 아니야." - page 13

처럼 남들에겐 하찮은, 눈에도 띄지 않겠지만 매일의 일이 자신에게는 즐거움이었고 이 일은 천직이었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을 하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유명한 기획자이자 재계의 거물, 재력가인 '찰스 블랙' 회장.

찰스 블랙 씨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지젤 블랙은 리전시 그랜드의 오랜 단골이었습니다.

시내에서 부동산 관련 업무를 처리할 때마다 매달 적어도 일주일은 호텔에 머물던 그.

아침에 블랙 씨의 펜트하우스에 들어가 구석구석을 청소했습니다.

지젤이 들어가 있는 욕실만 제외하고.

오후가 되어 다시 블랙 씨의 욕실을 청소하러 들어갔습니다.

몇 시간 전 자신이 떠났을 때와 달리 깔끔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방.

메이드의 일은 끝이 없구나. - page 23

아무래도 스위트룸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청소해야 할 듯해 뒤쪽에 있는 침실로 다가가 보았습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흰색 플러시 가운이 문지방 바로 앞에 떨어져 있고 블랙 씨가 침대에 등을 댄 채 누워 있었습니다.

가슴 포켓에 꽂았던 종이가 사라져있고

침대는 오랫동안 뒤척인 듯 헝클어져 있으며

네 번째 베개가 사라지고

신발 두 짝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

그리고

"안녕하세요. 전 손님이 아니에요. 원래 도움을 청하는 전화는 잘 하지 않아요. 전 메이드 몰리예요. 지금 스위트룸 401호에 있는데 좀 특이한 상황에 처했어요. 여기 아주 엉망이에요."

"왜 여기로 전화했죠? 방이 어질러졌으면 하우스 키핑 부서로 연락하세요."

"제가 메이드라니까요." 나는 언성을 높였다. "스노우 씨한테 연락해서 이 스위트룸에......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손님이 있다고 전해주세요."

"영원히 일어날 수 없다고요?" - page 26 ~ 27

찰스 블랙의 죽음으로부터 몰리는 목격자가 아닌 용의자로 의심을 받게 되고 사회성이 부족해 늘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던 몰리는 그저 메이드일 뿐이었는데 그녀가 무엇을 알겠는가?

다행히 그녀 주변 지인들이 블랙 씨의 사인을 밝혀줄 단서들을 찾아주면서 진범을 찾아내기 시작하는데...

'때가 됐다.'

사회적 약자였던 몰리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런 그녀에게 응원해 주셨던 할머니가 있었기에,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었던 주변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건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니 지금의 우리가, 아니 내가 가지고 있던 색안경, 시선에 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곤 하였습니다.

"준비됐어요."

"할 수 있어요, 몰리." 샬럿이 말한다.

"우린 널 믿는다." 프레스턴 씨가 덧붙인다.

후안 마누엘은 내게 엄지를 들어 보인다.

모두 나를 신뢰한다. 나를 믿고 있다. 확신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다.

'마음만 먹으면 너도 할 수 있어.' - page 310

"아마 형사님은 저에 대해 속단하셨을 거예요. 저에게서 형사님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특정한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고, 그 반응이 나오지 않자 절 유죄라고 짐작하셨어요(assume). 형사님과 절 바보로 만드셨죠(ASS out U and Me)."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그녀가 말한다.

"할머니는 늘 살다 보면 배우게 된다고 하셨어요. 다음번에는 형사님도 함부로 짐작하지 않으실지도 모르죠." - page 369

이렇게 끝났다면 조금은 밋밋하다고 느꼈을 텐데 마지막 반전은!

소름보단 시원한 사이다처럼 짜릿함이 느껴졌었습니다.

강자와 약자.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음을 보여주었던 이 소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일러주었던 편견과 차별 속 현실을 극복하고 상대적 평등을 보여주었던 그 희망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우영우 변호사가 첫 재판 진술 전 외쳤던 그 대사를 적어볼까 합니다.

모든 진술에 앞서 양해 말씀드립니다.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 여러분이 보시기에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을 도와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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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3
존 그리샴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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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의 명성은 익히 알지만 막상 작품은 만나보지 못했던...

법정 스릴러의 대가 '존 그리샴'

이번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치에서 픽! 한 이 소설.

원제는 『The Firm』이었고 이미 톰 크루즈 주연으로 영화 <야망의 함정>으로 재현되었던 이 소설.

두께감에 사실 주저하였지만...

과감히 첫 장을 펼쳐들었습니다.

부와 명예, 양심과 자유의 선택길에 선 젊은 변호사의 고뇌,

평생토록 보장된 부와 명예 뒤에 숨어있던 진실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가난하지만 뛰어난 두뇌와 야망에 인상까지 호감이 가는 '맥디르'.

월 스트리트의 명망 있는 법률 회사들 대신 최고의 연봉과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한 테네시 주 멤피스의 세금 관련 법률 회사 벤디니, 램버트&로크에 입사하게 됩니다.

마흔한 명의 변호사가 소속된 이 회사는 멤피스 4위 회사였습니다.

회사의 구성원들은 광고하거나 홍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배타적이었으며 회사 밖의 다른 동료 변호사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은, 일종의 '벤디니, 램버트&로크' 대가족이었습니다.

서로 굉장히 밀착되어 불편함이 없지 않지만 성공에 대한 원대한 야망이 더 컸기에 그저 열심히 일을 하게 됩니다.

아직 정식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회사의 신기록을 기록할 만큼.

8월 첫째 주 월요일.

회의실이며 회사의 도서실 네 군데 가운데 가장 넓어 명소로 알려진 1층 중앙 도서실에 회사 전체 회의가 소집하게 됩니다.

경건한 분위기 속 올리버 램버트가 마틴 코진스키와 조셉 하지의 애도사를 말했습니다.

맥디르는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별다른 마음이 없었고 앞으로 걸어가 초상화를 살펴보게 됩니다.

코진스키와 하지 초상화, 그리고 그 옆으로 약간 작지만 마찬가지로 엄숙한 분위기의 초상화 석 점.

죽은 변호사들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한 다음날 아침.

20년 동안 다섯 명의 변호사가 죽었다는 사실은 이곳은 일하기에 위험한 곳임을 알려주는 것 같은데...

「뭐 하고 있나?」

그가 물었다.

맥디르는 네이선 로크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미소를 지으려고 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변호사 자격시험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로크는 초상화를 흘끗 쳐다보고 나서 맥디르를 응시했다.

「알고 있네. 왜 저 초상화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

「그냥 호기심이 일어서요. 우리 회사가 그 비극을 나눠 걸머지고 있으니까요.」

「이미 죽은 사람들이네. 자네가 변호사 자격시험에 떨어지면 정말 비극이 일어나겠지.」 - page 148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그의 이름이 신문에 나가고 1주일이 지났을 때 낯선 사내가 그에게 다가옵니다.

FBI 특별 수사관이라는 '웨인 태랜스'.

그는 맥디르에게 회사에 대해 경고를 합니다.

누구도 믿지 말라고.

집에서건 사무실에서건 건물의 어느 곳에서건 당신이 하는 말은 전부 녹음되고 있다고.

돈이 나무에서 열리진 않는다고.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던, 무엇보다 왜 신참내기인 자신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었는데...

「미치, 당신네 회사에는 살아서 회사를 나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소. 세 명이 시도를 했지만 모두 살해됐소. 두 사람은 막 회사에서 나오려 할 무렵인 지난 여름 죽었소. 변호사가 일단 벤디니, 램버트&로크에 들어가면 회사를 떠날 수가 없소. 은퇴해서 입 다물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데 은퇴할 무렵이면 그들은 이미 공모자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발설할 수가 없소. 회사는 빌딩 5층에 엄청난 경비 기관을 갖추고 있소. 당신 집과 차는 도청되고 있소. 사실상 당신의 말은 한 마디도 빠짐없이 도청되고 녹음되고 있소. 그들은 당신을 미행하고 어떤 때는 부인까지 따라다니고 있소. 우리가 대화를 하는 이 순간에도 놈들은 여기 워싱턴에 있소. 미치, 알다시피 그 회사는 단순한 회사가 아니오. 그 회사는 엄청난 사업체의, 대단한 이익을 내는 사업체의 일부분이오. 엄청난 불법조직 회사의 주인은 파트너들이 아니오.」

...

「미치, 벤디니, 램버트&로크는 시카고의 모롤토 범죄 조직의 소유요. 마피아지. 갱단 말이오. 그들은 거기 앉아서 진두지휘를 하지. 우리가 여기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오.」 - page 314

FBI 요원으로부터 그 회사가 마피아 계열의 로펌이라는 사실을 접하게 되고 지난 회사 소속 변호사 다섯 명의 사고사의 다음이 자신이 될 수 있음을 느낀 맥디르.

평생토록 보장된 부와 명예, 그리고 양심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던 맥디르는 각종 탈법 행위와 돈 세탁을 본업으로 하는 회사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마피아와 FBI 사이에서 온갖 협박과 위협 속에서 과연 그는 무사할 수 있을지...

지금의 우리 사회처럼...

「분명히 그럴 거야. 이런 일은 앞으로 벌어질 일의 일부분이야. 애비. 이건 약자는 잡아먹히고 강자는 부자가 되는 등이 휘어지는 직업이라고. 마라톤 같아. 참는 사람이 금메달을 차지하게 돼.」

「그리고 결승점에서 죽겠지요.」 - page 130

우리가 부와 명예를 좇는 이유.

사회가 그리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 맥디르는 직업의식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이 마피아와 FBI 사이에서 자기 이속만 챙기는 모습에서 마냥 비판할 수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소설을 읽기 전까지 제목이...? 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수천 개의 섬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계속 옮겨 다닌다면 그들은 찾아내지 못할 거요.」

...

「숨어 살기에 가장 안전한 장소는 어딥니까?」

「이 보트. 훌륭한 작은 요트니까 조정법만 배우면 당신에게 집이 될 수 있을 거요. 어디 작은 섬에, 리틀케이맨이나 케이맨브랙 같은 곳에, 두 군데 다 아직도 원시적이니까, 그곳에 집을 지으시오. 내가 사는 대로 살아요. 그리고 이 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오.」

「쫓기는 데 대한 걱정은 언제나 없어집니까?」

「나는 아직도 그 생각을 하고 있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돈은 얼마나 있소?」 - page 662

하지만 원제를 살렸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남기며.

두께감이 안 느껴질 만큼 흥미로웠던 소설.

영화는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원작과는 결말이 다르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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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베이식 아트 2.0
재니스 헨드릭슨 지음, 권근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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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

어?!

이 그림 아는데!!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누구신지......

'로이 리히텐슈타인'

1950년대 후반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는 시장에 뛰어들며 미국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고 새로운 예술 용어를 정의한 그.

이번을 기회로 그의 이름을 새겨보려 합니다.

팝 스타

예술이 꽝! 터졌을 때

로이 리히텐슈타인





1923년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정상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리히텐슈타인.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짧게 공부한 후, 오하이오에서 실습과정을 밟고 미술 학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특히 교수 중에 호이트 L. 셔먼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어두운 방에서 스크린에 순간적으로 이미지를 비추는 '플래시 룸'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그리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강한 잔상, 총체적 인상을 어둠 속에서 그려야 했다. 부분이 전체와 관계를 맺는 지점이 어딘지를 알아채는 것이 요점이었다. [...] 그것은 과학과 미학이 뒤섞인 작업이었고, 바로 내 관심의 초점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 예술과 비예술을 규정하는지 늘 궁금했다. 셔먼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으로 통하는 길을 가르쳐주다. 그 자신은 이를 '지각의 통일'이라 불렀다." - page 10

시각이란 서술적이거나 감상적인 경험이라기보다는 광학적 과정이라며 가능한 한 의미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지각력을 키워야 하고, 작품에 항상 예술가의 의도가 깔려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셔먼의 생각이 리히텐슈타인에게 가장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대상 지향과 피할 수 없는 미술가의 의도 지향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중시했던 리히텐슈타인.

이런 긴장감이 자기가 그린 이미지의 주된 힘일 뿐 아니라 이미지를 익살스럽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뒤늦게 추상표현주의를 따라가던 1957년경, 추상표현주의는 새로운 조류의 배경으로 물러나고 있었고 리히텐슈타인은 미술시장의 주류와 관계를 맺으려 애쓰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58년 럿거스에서 캐프로의 작품을 알게 되고 해프닝에 몇 번 참여하면서

해프닝은 재미있고 많은 것을 시사하는 연극적인 이벤트이며 자신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가운데 하나

라 말하며 이때부터 도발적인 만화 그림이 등장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리히텐슈타인은 이전의 미술 감상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중요시되지도 않았던 전화번호부에 실린 작은 광고 드로잉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작품이 아무리 비개성적으로 보인다 해도, 그리는 과정 자체에 사람의 손길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내재해 있음에 그는 고급예술에 익숙한 대중에게 가장 저급한 것, 가장 예술성을 박탈당한 예술을 제시함으로써 논점을 던졌습니다.

"나는 어떤 것은 예술이고 어떤 것이 예술이 아니라고 구분 짓는 기준을 늘 알고 싶었다" - page 25

그래서 그는 일간지에 실린 휴양지 포노코스의 신혼여행 호텔 광고로부터 <공을 든 소녀>의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리히텐슈타인은 <공을 든 소녀>에 단순히 진부한 이미지만 재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추상적 형태를 조작해 특정한 의미를 연상하도록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확실히 이런 형태들은 다중의 의미를 지니며, 2차원적 표면의 디자인과 눈에 보이는 실제 그림의 명시적 의미 사이를 오간다. 리히텐슈타인은 자기 작품의 형식적 측면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구성은 적어도 주제만큼 신중하게 고려해 선택한 것이었다. <공을 든 소녀>에 나타난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원형은 리히텐슈타인의 초기작에서 계속 되풀이된다. 후기의 만화 그림에서 그녀는 좀 더 세련된 모습이며 말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말풍선이 함께 등장한다. - page 32 ~ 33

그는 만화 같은 성격의 그림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적 형태의 작품도 하는 등 실험적인 작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중은 난해함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삶에 대한 풍자적인 통찰을 그려냈던 그로부터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대중적인 미국 팝 아트의 전형이었던 리히텐슈타인의 미술은 종종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대중적 친밀함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추하고 저급한 것들을 유별난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어째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셨습니다?' '어째서 작업의 완전한 기계화를 좋아하게 되셨습니까?' '어째서 저급한 예술을 좋아하게 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무엇이든 세상에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리히텐슈타인은 나름대로 의견이 있었지만, 사회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자신의 예술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급'문화가 세련미를 독점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과연 어떤 것을 예술로 간주해야 하는지 새롭게 가치를 매겼다. '고급'문화를 지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거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했다. - page 38



늘 구분의 경계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

자신의 작품을 통해 모순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함으로써 던진 메시지.

마냥 '만화'같은 그림이라고 여겼던 저에게도 일침을 주었던 그의 이야기였습니다.

"나의 작품은 모두 어떤 면에서

다른 예술에 관한 것이다.

그게 만화일지라도."

-로이 리히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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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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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를 뒤흔든

단 하나의 심리 스릴러

이 문구만으로도 스릴러 마니아는 가슴이 설렙니다.

찌릿찌릿

두근두근

더 이상의 망설임은 사치였습니다.

"소소한 일상 속 두 가족의 비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무섭다."

완성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자의 책임 그리고 욕망

배니시드



두 살 터울의 딸과 아들을 둔 가정주부 '연정하'.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힘겹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일곱 살짜리 딸이 다섯 살짜리 남동생을 상대로 어른 노릇을 하는 것을 보면 든든하면서도 안쓰러운 그녀.

제 나이보다 조숙한 딸 덕분에 자신은 아들의 놀이 상대가 되어주긴 하지만...

아빠가 해 주었으면...

싱글맘도 아니고, 주말부부도 아닌데, 밤 시간에 꼭 홀로 있길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순수하리만큼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남편 '오원우'.

남편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빠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않는 그.

삑삑삑삑. 삐리릭. 쉬릭. 철커럭. 쉬리릭.

남편이 돌아왔다. 실눈이 떠졌다. 시간은 1시 58분. 잘났다, 이 인간아. 이제야 기어들어 오니? 아주 밖에서 처잘 것이지. 하루 종일 처자식이 뭘 하고 사는지 관심도 없지? 어휴, 여기까지만 하자. 너에게는 저주도 아깝다. - page 47 ~ 48

그런데...

웬일로 오랫동안 씻는 것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밖에서 온갖 때를 묻히고 들어와서는 세수도 안 하고 덜컹대며 소변을 보고 양치도 안 하고 벌러덩 드러누워 코를 골며 곯아떨어질 남자가 한참을 뭔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쏴아. 첨벙첨벙. 헉헉.

잠이 확 달아났다. 남편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라도 왔나? 아니다. 남편은 당황한 상태였다.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긴박한 어떤 일이. - page 49

피!

욕실에서 피 묻은 옷과 칼을 치우는 남편.

놀라움과 두려움 속 다음날 그녀는 집안에 어설프게 남아있던 흔적들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보름 전, 피범벅이 된 채로 돌아온 남편의 귀가 시간이 앞당겨졌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다 뉴스에서 보도된 '호프집 살인 사건'.

왜인지 몰라도 쓱 스쳐 지나가듯 비춘 그 호프집의 정경을 본 순간, 이거다, 싶은 불안감이 다가왔습니다.

다음 날.

남편은 평소처럼 출근했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사라진 지도 벌써 13년이 흐르고 이제는 실종 선고를 넘어선 사망 선고를 내려도 되는 시기가 지났습니다.

무자비하게, 바람처럼 지나간 세월.

그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비슷한 시기 아내를 자연사로 잃은 앞 동 남자 '최우성'.

"정말이야. 당신과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어.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어떤 일을 겪게 되든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각오를 하고 열심히 연구했지. 그리고 결국 꿈을 이루었어. 지금 당신과 한집에 있으니." - page 272

온갖 고생 끝에 만난 과분하지만 이상형의 완벽한 남자.

과연 이 모든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치밀한 계획이었을까?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일어난 두 가족의 비밀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황량한 결혼.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

그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정하의 딸 하원이의 말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엄마, 이제 좀 잊으라고요. 난 이제 겨우 행복해졌어. 엄마는 모를 거야. 집에만 오면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어! 축 늘어져서 허공만 보고 있는 엄마, 아빠만 찾아대는 남동생. 그 틈에서 나는 엄마에게 언니처럼 굴어야 했고 동생한테는 엄마 노릇을 해야 됐어. 난 최우성 아저씨를 좋아한 적 없었어. 지금도 그래. 아저씨가 내 눈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거야. 어차피 남인걸! 하지만 아저씨는 나에겐 구세주였어. 그 먹구름이 잔뜩 낀 집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세주! 아저씨 덕분에 내 어깨는 조금 가벼워졌어. 난 아저씨가 엄마를 좋아해서, 그래서...... 엄마가 탐나서 아저씨가 아빠를 죽였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였어. 왜냐하면 아저씨는 최소한...... 엄마를 좋아하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했거든. 엄마를 좋아하지도 않던 아빠보다는 아저씨가 더 나으니까! 아빠? 아빠 따위 필요 없어. 지금까지 우리끼리 잘 버텨왔어. 엄마도 이제 잊어버려요.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좀 행복해지라고!" - page 336 ~ 337

간신히 버텨왔다고 울부짖는 아이.

이제 현재를 살자고 외치는 이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전하고자 한 바는 이 이야기가 아닐까.

두 판의 퍼즐이 있고 우연히도 두 퍼즐이 각각 하나씩 일부를 잃어버렸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두 판의 퍼즐의 빈 부분끼리 딱 맞아서 한판의 퍼즐이 될 수는 없다. 모든 판을 뒤엎고 새로운 판 위에 퍼즐을 재배치해도 그 퍼즐 역시 완성이 될까 말까다. 앞 동 남자도 나도 인간이지 퍼즐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맞아서 꽉 채워진 퍼즐의 판 같은 가정이 세상에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런 가정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외부에서 볼 때만 '그렇게' 보일뿐이다. 가정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 page 213 ~ 214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가족 이야기.

우리는 인간이기에 '완벽하게' 맞춰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각기 다른 퍼즐에서 떨어져 나간 한 조각이 완벽하게 맞아들어갈 확률은 낮다. 그건 퍼즐 조각일 뿐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우성 씨와 나는 퍼즐 조각이 아닌 인간들이다. 인간이기에 상대방의 굴곡과 틈에 알맞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page 418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나간다는 것.

그 과정 속에서 가족이 완성됨을, 저에게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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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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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이자, 출간 이래 항상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미스터리 소설!

세게 3대 추리 소설 중의 하나이자,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최고의 미스터리이자, 애거서 크리스티 자신이 뽑은 제일 좋아하는 작품 목록의 1위에 올라 있다는 이 소설!

이번엔 이 소설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게 그저 불가능하면서도 완전히 매력적이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중에 가장 대단한 소설이며, 앞으로 논리적 설명을 갖춘 미스터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대대로 이 작품이 언급될 것이다." _ 《뉴욕 타임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최근 여러 신문에서 떠들어 댔던 바로 그 섬!

온갖 종류의 암시와 흥미진진한 소문이 나도는 그곳.

'병정 섬'

그곳으로부터 열 명-워그레이브 판사, 베라 클레이슨, 필립 롬바드 대위, 에밀리 브렌트, 맥아더 장군, 암스트롱 박사, 앤터니 매스턴, 블로어, 로저스 부부-이 초대를 받게 됩니다.

자신이 왜 초대받게 되었는지 모른 채...

'병점 섬이라?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섬이군.' - page 48

다들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한 뒤 자유롭고 친밀하게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앤터니 매스턴이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이상하군요, 저거 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 page 53

둥근 식탁 한가운데에 놓인 회전 유리판 위에 도기로 된 꼬마 인형들.

토니가 말을 이었다.

"병정 인형들이네, 병정 섬이니까. 그래서 놓아둔 것 같은데요."

베라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런 것 같군요. 모두 몇 개죠? 열 개?"

베라는 감탄했다.

"정말 재미있군요! 쟤네들은 자장가에 나오는 열 꼬마 병정 같아요. 제 방 벽난로 선반 위에는 그 노래의 가사가 쓰여 있는 양피지가 액자에 들어 있어요." - page 53

모두들 입을 모아 자신의 방에도 노래 가사가 쓰여 있는 양피지 액자가 있다며 유치한 것 같다고 떠들어대던 중 아무런 경고도 없이 폐부를 찌르는 비인간적인 '목소리'가 울려퍼지게 되는데...

"신사 숙녀 여러분! 조용히 해 주십시오!"

...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죄목으로 기소된 죄인들입니다." - page 56

이 무슨 기괴하고도 황당한 일인가!

"바로 그렇소. 우리를 이곳에 초대한 사람은 미치광이인 게 분명하오. 어쩌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살인광일지도 모르지." - page 72

여기로부터 떠날 것을 다짐하지만 지금은 배가 없는 상황.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는 찰나.

앤터니 매스턴이 술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시다 그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맥아더 장군이 말했다.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소. 그저 사레들린 것뿐이잖소!"

에밀리 브렌트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은 우리의 삶 한가운데 있어요."

암스트롱 박사가 일어섰다. 그가 불쑥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레들린 것만으로 사람이 죽을 순 없어요. 매스턴의 죽음은 이른바 자연사가 아닙니다." - page 88

그리곤 응접실로 들어간 로저스는 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틀림없이 열 개가 있었는데." - page 94

탁자 한가운데 놓인 도기 인형이 하나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인디언 병정 시처럼 한 명씩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은...

반전을 더한 짜릿함을 선사해 준 이 소설.

또다시 그녀의 명성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 page 311

이 소설을 통해 뭔가를 배웠다기보단 추리소설의 매력을 한껏 받았다고 할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품 해설>을 살펴보니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희생자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모든 경우 범죄가 명백하지 않다. 외딴 곳에서 자행되어 목격자가 없거나, 실제로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불가피하게 죽음을 야기할 부주의를 저질렀거나, 엄격한 도덕적 태도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자살로 몰아갔다거나 하는 식이다. 다시 말해서 영영 드러나지 않고, 사실상 살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종류의 살인들이다. 하지만 정의라는 순수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들은 대낮에 토기에 대로에서 사람을 총으로 쏜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희생자의 목숨을 앗아 갔다. 말하자면 이것이 이 이야기의 도덕적 동기다. 어느 광신적인 도덕주의자가 과거에 저질러진 여러 불의들을 한꺼번에 바로잡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page 329

아하, 이야기의 동기가 이러했군!

아무튼 너무나도 흥미로웠던 이 소설.

다음엔 어떤 작품을 골라 읽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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