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리히텐슈타인 베이식 아트 2.0
재니스 헨드릭슨 지음, 권근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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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

어?!

이 그림 아는데!!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누구신지......

'로이 리히텐슈타인'

1950년대 후반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는 시장에 뛰어들며 미국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고 새로운 예술 용어를 정의한 그.

이번을 기회로 그의 이름을 새겨보려 합니다.

팝 스타

예술이 꽝! 터졌을 때

로이 리히텐슈타인





1923년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정상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리히텐슈타인.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짧게 공부한 후, 오하이오에서 실습과정을 밟고 미술 학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특히 교수 중에 호이트 L. 셔먼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어두운 방에서 스크린에 순간적으로 이미지를 비추는 '플래시 룸'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그리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강한 잔상, 총체적 인상을 어둠 속에서 그려야 했다. 부분이 전체와 관계를 맺는 지점이 어딘지를 알아채는 것이 요점이었다. [...] 그것은 과학과 미학이 뒤섞인 작업이었고, 바로 내 관심의 초점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 예술과 비예술을 규정하는지 늘 궁금했다. 셔먼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으로 통하는 길을 가르쳐주다. 그 자신은 이를 '지각의 통일'이라 불렀다." - page 10

시각이란 서술적이거나 감상적인 경험이라기보다는 광학적 과정이라며 가능한 한 의미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지각력을 키워야 하고, 작품에 항상 예술가의 의도가 깔려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셔먼의 생각이 리히텐슈타인에게 가장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대상 지향과 피할 수 없는 미술가의 의도 지향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중시했던 리히텐슈타인.

이런 긴장감이 자기가 그린 이미지의 주된 힘일 뿐 아니라 이미지를 익살스럽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뒤늦게 추상표현주의를 따라가던 1957년경, 추상표현주의는 새로운 조류의 배경으로 물러나고 있었고 리히텐슈타인은 미술시장의 주류와 관계를 맺으려 애쓰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58년 럿거스에서 캐프로의 작품을 알게 되고 해프닝에 몇 번 참여하면서

해프닝은 재미있고 많은 것을 시사하는 연극적인 이벤트이며 자신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가운데 하나

라 말하며 이때부터 도발적인 만화 그림이 등장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리히텐슈타인은 이전의 미술 감상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중요시되지도 않았던 전화번호부에 실린 작은 광고 드로잉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작품이 아무리 비개성적으로 보인다 해도, 그리는 과정 자체에 사람의 손길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내재해 있음에 그는 고급예술에 익숙한 대중에게 가장 저급한 것, 가장 예술성을 박탈당한 예술을 제시함으로써 논점을 던졌습니다.

"나는 어떤 것은 예술이고 어떤 것이 예술이 아니라고 구분 짓는 기준을 늘 알고 싶었다" - page 25

그래서 그는 일간지에 실린 휴양지 포노코스의 신혼여행 호텔 광고로부터 <공을 든 소녀>의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리히텐슈타인은 <공을 든 소녀>에 단순히 진부한 이미지만 재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추상적 형태를 조작해 특정한 의미를 연상하도록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확실히 이런 형태들은 다중의 의미를 지니며, 2차원적 표면의 디자인과 눈에 보이는 실제 그림의 명시적 의미 사이를 오간다. 리히텐슈타인은 자기 작품의 형식적 측면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구성은 적어도 주제만큼 신중하게 고려해 선택한 것이었다. <공을 든 소녀>에 나타난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원형은 리히텐슈타인의 초기작에서 계속 되풀이된다. 후기의 만화 그림에서 그녀는 좀 더 세련된 모습이며 말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말풍선이 함께 등장한다. - page 32 ~ 33

그는 만화 같은 성격의 그림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적 형태의 작품도 하는 등 실험적인 작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중은 난해함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삶에 대한 풍자적인 통찰을 그려냈던 그로부터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대중적인 미국 팝 아트의 전형이었던 리히텐슈타인의 미술은 종종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대중적 친밀함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추하고 저급한 것들을 유별난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어째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셨습니다?' '어째서 작업의 완전한 기계화를 좋아하게 되셨습니까?' '어째서 저급한 예술을 좋아하게 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무엇이든 세상에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리히텐슈타인은 나름대로 의견이 있었지만, 사회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자신의 예술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급'문화가 세련미를 독점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과연 어떤 것을 예술로 간주해야 하는지 새롭게 가치를 매겼다. '고급'문화를 지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거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했다. - page 38



늘 구분의 경계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

자신의 작품을 통해 모순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함으로써 던진 메시지.

마냥 '만화'같은 그림이라고 여겼던 저에게도 일침을 주었던 그의 이야기였습니다.

"나의 작품은 모두 어떤 면에서

다른 예술에 관한 것이다.

그게 만화일지라도."

-로이 리히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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