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허나영 지음 / 비에이블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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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림 속으로 숨는다...

저도 갈피를 잡지 못할 때면 미술 전시를 찾아다니기에...

마치 내 얘기인 것 같고...

저자는 어떤 그림 속으로 숨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림 속에, 저자의 이야기와 함께 저도 살짝 숨어볼까 합니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이다."

문득 마음에 짙은 안개가 깔리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에는

고요한 위안이 되어주는

미술관으로 오세요.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이 책은 다른 미술 에세이처럼 마음이 평안해지도록 돕는 색이나 형태가 있는 그림이라든지, 문학적인 수사를 통해 감성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예술을 철학과 심리학, 사회학 등의 이론으로 접근해왔던 입장에서, 미술치료에 도움이 되는 감상법이나 평가에 공감할 수 없었다.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그림을 보면 오히려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나 비평적 의미가 함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 page 10

그래서 저자는 그림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보다

다양한 감정을 변화무쌍한 날씨에 비유해서 공통의 심상이 이어지는 작품과 작가의 삶에 대해 소개

했습니다.

불안과 고독은 안개로,

슬픔과 좌절은 바람으로,

애정과 사회적 결핍은 구름이 낀 흐린 날로,

그리고 눈이 내리면 세상을 깨끗하게 바라볼 수 있듯이 맑은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은 삶을 되돌아봄으로써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등

아홉 가지의 날씨 속에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건네주었습니다.

단순히 그림 이야기가 아니었고

이렇게 그려질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의 내면을 바라보며

공감과 이해로부터 오롯이 ''로 몰입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진정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가며

내 감정의 그림을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느 미술 에세이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을 소개하자면...!

안개가 자욱한 것 같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

그런 저에게 말을 건네주었던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

마그리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라 하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해석할 때 그의 성장 배경이 자주 언급되었는데...

어린 마그리트가 하얀 수건으로 얼굴을 덮은 채 누워 있는 어머니의 시신을 보며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가 그린 <연인Ⅱ>에서 두 사람이 얼굴을 흰 천을 가린 채 키스를 하고 있다.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어도 결국은 자신의 진실을 가릴 수밖에 없고 자신도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은유다. 이는 자기 자신을 위해 거짓으로 위장한 사랑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상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에게 상처가 될 만한 것을 억누르거나, 혹은 자신을 가려서라도 상대에게 맞추고 싶은 사랑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를 위하고 상처 주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해도, 이는 건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자아를 지우고 억누르다 보면 결국 껍데기만 남을 것이고, 상대방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page 24 ~ 25


불안...

이 불안에서 나올 수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이제부터라도 작은 것부터 차근히 알아가며 나를 찾는 여정에 올라가 보길...

저에게 건넨 메시지였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많이 들었던 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를 보여주었던 인상주의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

살롱전에 낙선과 논란 속에서 동료 화가들과 새로운 회화를 선보였었는데...

초기에는 그림의 완성도를 갖추지 못하고 '인상'만을 그린 화가들이라는 조롱의 의미로 '인상주의자'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이 명칭은 곧 그들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름이 되었고 점차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인생의 물결이 우연히 나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내가 스스로 이 방향으로 노를 저어왔는지도 모른다. 주류 미술계의 인정을 갈망하면서도 끝내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포기하지 않았던 마네처럼 말이다. - page 115

마네의 그림을 바라보며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바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했습니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로 귀결되었습니다.

오늘은...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나와의 대화를 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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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그림들 -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
이원율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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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림과 화가, 역사.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헤럴드경제 '후암동 미술관' 연재로 많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원율' 기자가 이번에는 

우리가 주로 예술작품으로 접하는 그림을 역사적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하였습니다.


역사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

그림 속 장면을 따라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천 자의 기록보다 강력한 한 장의 그림

읽고 외우는 역사를 넘어, 목격하고 체험하는 역사 속으로


위험한 그림들

책은 

선사시대 크로마뇽인이 그린 동굴벽화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수용소까지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된 장면 30가지

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동안 역사를 수천 자의 글로만 이해했다면

하나의 그림으로 텍스트로만 전해질 수 없는 그 순간, 그 사람에게 우리를 데려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게

해 줌으로써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을 확장시켜주었습니다.


마냥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었던, 어쩌면 당연시 여길 수 있었던 사람들을, 사건들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역사의 흐름을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어떤 화가가 어떻게 구성할지가 기대되곤 하였습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과거로만 국한된 것이 아닌 현재에도 울림을 선사해 준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6. 성지를 탈환한 무슬림의 영웅

함께 보는 위험한 그림: 크리스토파노 델 알티시모 <살라딘의 초상화>


과거 십자군(유럽 기독교) 세력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던 그.

그런데 그의 행보는 너무나도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대를 풀어주겠소. 귀족들 또한 몸값만 주면 풀어주리다."

"우리가 당신과 당신 민족에게 여태껏 해온 악행이 있는데...!"

"이미 많은 희생을 치렀소."


적군에게 보복 대신 자비를 베풀었던 그.

크리스토파노 델 알티시모가 그린 초상화와 같은 모습과 표정이었을까.

침착한 눈빛과 사색 깊은 표정은 전쟁터 안에서는 위엄과 철저함을,

밖에서는 자비와 배려심을 돋보이게 했을,

냉철함 속에 피어나는 뜻밖의 관용

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사자심왕 리처드와의 대결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리처드 1세가 낙마해 위기에 처하자 "아무리 전쟁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지만, 이토록 용감한 전사가 땅바닥에서 싸우는 건 옳지 않다"며 살라딘이 말을 보내주는 모습


"살라딘이여, 멋진 승부였소. 나는 곧 돌아올 것이오. 그때 결판을 내도록 하지요."

"리처드 1세여,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혹시라도 예루살렘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면, 당신 같은 훌륭한 사람에게 빼앗기는 게 좋겠소."


리처드 1세에게서 패기와 결단력을,

살라딘에게서 겸손과 너그러움을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그의 행보는 진정한 리더십의 표본으로 남았습니다.


평생 소박하게 산 살라딘은 자기 장례식을 치를 돈조차 넉넉지 않았다. 술탄이었음에도 나무로 짠 투박한 관에 뉘어야 했던 이유다. 훗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이를 보고 대리석 소재의 고급 관을 전했지만, 그의 겸손한 정신을 기려 시신을 옮기지 않았다. "한번 흘린 피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관용과 애정으로 신망을 얻어라!" 살라딘은 언젠가 아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 지금의 세계 지도자들이 새겨야 하는 게 아닐까. - page 94

그리고 우리의 세계사를 되돌아보면...

큰 획을 그었던 '세계대전'을 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

인간의 잔혹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이 전쟁...

그렇기에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함을 자꾸만 되새기게 해 주었는데......!


수많은 참담한 그림들 속에서 유독 저에겐 이 그림이 자꾸만 가슴을 울리곤 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아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손자를 잃은 화가 케테 콜비츠의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백 마디 말보다 이 투박해 보이는 그림이 전한 울림...


이제부터라도 인류는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지키고, 보듬어야 한다는 경고가 담긴 작품이었다. 한편 아우슈비츠 또한 현재는 이 광기의 순간을 응축한 박물관이 돼 인류를 향해 경고하고 있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전쟁이, 이런 참혹한 학살이 벌어져선 안 된다고. - page 294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폭격과 파괴가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쟁의 광풍은 또 다른 광풍을 예고할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더 이상 위험한 그림들이, 아픈 그림들이 다음 장을 장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씨앗들이...

더 이상 짓이겨지지 않도록......

이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숙제로 남겨졌습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명화'의 의미 역시도 되새길 수 있었는데...


명화는 명화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가치가 있지만,

그 안에는 유행, 사회적 분위기, 역사적 사건까지 담긴

시대의 거울이다.


거울삼아 우리는 배우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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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유해성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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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을 마주했을 때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명탐정이 유해하다고?

호기심에 집어 들게 된 이 책.

어째서 명탐정이 유해한 존재가 되었는지 저도 한 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AI도 SNS도 존재하지 않던 그 시절,

세상에는 '명탐정'들이 활약했다고 전해진다

#명탐정 유해성


"어서 오세……." - page 7

도쿄 동쪽에 자리한 서민 동네 가메이도.

역에서 북서쪽으로 도보 십 몇 분, 가메이도 덴진을 지나 해가 잘 들지 않는 샛길에 위치한 33제곱미터 넓이의 오래된 가게 '오이디푸스 찻집'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루미야 유구레'

누군가가 들어왔습니다.

"어? 아저씨 혹시 유명한 사람 아니에요?"

'명탐정 사천왕'이라 불리던 탐정 '고코타이 가제'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사실 고코타이와 나루미야는 명탐정과 조수로 전국을 떠돌며 사건을 해결했지만 이제는 옛일이 되어버렸었는데...

다음 날.

찻집 단골들이 '명탐정의 유해성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어째서 명탐정을, 그것도 붐이 종언을 맞이한 지 약 20년 지난 지금, 갑자기 고발한다는 거지?

이제 다 지난 일인데! 게다가 다들 그때는 도움을 받아서...... 명탐정에게 그렇게 고마워했는데. - page 43

명탐정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그러니까 명탐정은, 필수 노동자 행세를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란 말이죠. 그게 찜찜하더라고요. 명탐정은 오리혀 사냥꾼, 게이머 아니에요? 산 사람의 운명을, 목숨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퀴즈라도 푸는 것 같은 기분으로, 모르는 타인의 인생을 좌우하잖아요. 그래 놓고 모른 척 가버리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그렇군요."

"그런 일방적인 특권이 허락되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어요? 인도적으로 너무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 page 45

어쩌다 명탐정에 대해 이런 오해가 있는 건지...

"도망친다고 할지, 난 스스로 증명해야 해. 혼자가 되고 나서 그걸 알았다. 그래서 일단 나루미야 널 데리러 온 거야. 명탐정한테는 조수가 필요하니까."

"증명?"

"즉, 내가. 우리가. 옳다는 걸. 우리는 지금까지 쭉 옳았다는 걸 말이지."

"뭔 소리야?"

"그렇잖냐. 과거를 아는 건 우리 세대잖냐. 게다가 명탐정에 관해 정확하게 아는 건 당사자인 나랑 나루미야 너 아니냐. 그런데 그렇게 수상쩍은, 그냥 젊기만 한 녀석한테 영문 모를 트집이나 잡혀서. 과거를 그렇게 멋대로 고쳐 쓰는데 닥치고 참으라고? 걘 그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나루미야, 명탐정의 올바름은 증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올바름은 존재하기 때문이지. 존재하는 건 증명할 수 있어. 당사자인 나라면. 그리고 내내 함께 행동했던 너라면. 그러니까!" - page 52 ~ 53

그리하여 고코타이와 나루미아는 자신들이 '정답'이라 믿었던 결론이 과연 진실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건의 현장과 관계자들을 차례로 방문하게 됩니다.

'인체의 신비전'을 시작으로 펜션에서 일어난 연속 살인사건, 폭발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 학교에서 일어난 괴담 같은 살인사건, 대형 공연장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까지...

이번엔 '범인'이 아닌 '진실'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들의 결론은 어떨지...!

"그러니까 말이지, 과거에 내가 늘 옳았던 게 아니란 걸 안 게 나한테는 큰 수확이었어. 전와하고 이야기했는데, 내가 좋은 뜻으로 한 일이 상대방을 난처하게 했다든지, 추측한 게 사실하고 달랐다든지. 부부관계 악화 사건의 수수께끼가 지금에 와서 하나씩 풀렸지 뭐냐. 그래서 난 생각했다. 그 친구하고 전과는 다른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지금, 내 여행은 끝난 게 아닐까 하고. 야, 나루미야...... 너만은 알아주겠지? 옛날에 난 누가 뭐라든 진짜 명탐정이었다는 걸. 쉰 살이 된 지금 난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마지막 추리를 한 거야. 자기 인생의 수수께끼를 죽을 힘을 다해 푼 거라고. 똑똑한 조수랑 함께. 명탐정 고코타이 가제 최후의 사건, 그게 이 여행이었던 거다." - page 471

그 시대에

그것은 최선이었고

그래서 진실이라 믿으며

'명탐정'들이 활약했었지만...

"그러니까 그때 나와 있는 증거를 바탕으로 최선의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고자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완벽한 최선의 결과를 내는 건 늘 불가능했어. 그럼 차선의 결과에 착지하고자 노력하는 게 어른의 판단이다. ......차선이면 충분하잖냐? 충분하고도 남잖냐? 좌우지간 그때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고. 사건의 피해자가, 범인으로 의심받는 사람이, 도와달라고 명탐정한테 매달리는 사람이 많았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지금 이 순간 추리하는, 지금 이 순간의 존재였어. 그렇기에 명탐정이었던 거야." - page 331

완전히 증명되기란 어렵다는 것을

그때의 정의가 지금은 유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도 해결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해 주었습니다.

사실 저도 사건 '해결'에만 초점을 두었지 그 후의 이야기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동안 사건들을 향해, 범인을 향해서만 손가락을 가리켰었는데 이제 나머지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은 이들의 눈물을, 울부짖음을...

그리고 우리의 인생도, 세상도 과거의 잘못을 지금이라도 바꿔 더 나아갈 수 있기에

되짚고, 보다 정의로운 선택으로 새 길을 열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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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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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온라인 연재 당시부터 17년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이 소설.

계속 눈여겨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영화 <파반느> 개봉을 앞두고 있기에

좋아하는 배우가 등장한다기에

(이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긴 하지만...)

매번 그렇듯 영화화된 작품들은 원작을 찾아 읽었기에

원작을 구입했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읽게 된 이 소설!

이번 개정판에는 소설 속 '나'와 '그녀', 요한의 17년 후 이야기를 더했다고 하니 더 소장 가치 뿜!뿜!!

이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그 이유를 저도 한 번 느껴보겠습니다.

사랑이라는 칼날로 벗겨낸 삶의 허상들,

그 변두리를 비춘 눈부시게 초라한 사랑의 기억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page 35

1999년 겨울, 이 문장을 한 번 더 반복하고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뗀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 번 더, 베이비... 한 번 더, 나는 그날 밤의 일과 그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더는...

어떤 기억의 편린도 찾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하게 되는데...

그녀를 생각한다. 만날 수 없으므로 죽은, 나의 왕녀를 생각한다. 실은 죽은 지 오래였던 나를, 돌이켜본다. 내게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 과연 이 글을 나는 끝까지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너무나 오랜 시간이 사막의 바람처럼 우릴 휩쓸고 지나갔다. 헤어진 모래처럼 서로를 찾을 수 없다면, 다시 저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람이 다시 데려다주기만을, 나는 기다리고 기다릴 것이다. 검푸른 드레스를 입고 선 그녀의 곁으로... 이제는 죽은, 왕녀의 곁으로... - page 39

그렇게 이야기는 1986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뒤늦게 인기배우가 된 잘생긴 아버지와 그런 남자를 위해 헌신한 못생긴 여자였던 어머니.

성공을 거머쥐자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내 나이 스무 살.

나는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누구도 쳐다보기 싫어하던 못생긴, 하지만 자꾸만 신경이 쓰였던 '그녀'

가족에 대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하지만 정신적 스승이 되어준 '요한'

나와 그녀는 서로 사랑했고, 즐거웠지만 어느 날 사라져 버린 그녀.

그 뒤에 그녀로부터의 편지로부터 지난 그녀의 삶을 듣게 되는데...

'외모'로 인한 세상의 시선들...

그 억압된 시선들로 하여금 상처받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 흐르고 소설가로 성공한 '나'는 수소문 끝에 그녀를 찾게 됩니다.

낯선 나라에서의 재회...!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는!!!)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히 선 두 개의 탑처럼 우리는 눈앞의 광경을 오래오래 바라보았고, 굳은 표정으로.... 그러나 부드럽고, 부드러운 무언가를 가슴 깊이 담고 서 있었다. 정말 이곳에 올 수 있었네요, 그녀가 속삭였다. 인생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거야, 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인생처럼 - page 406

가슴 시렸던 이 소설.

'외모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는 이들의 처절한 목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일침을 선사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무엇도 믿지 않았다. 따라 뛰는 사람들, 피리 소리를 따라 어디론가 달려가던 사람들과...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세상의 풍경들을 그저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름다워지는 여자들... 아름다워 <져야만> 하는 여자들과... 학력을, 차를, 또 집을... 말하자면 힘을 <가져야만> 하는 남자들... 서로에 의해, 서로에 비해, 올라선 서로를 위해 구축하던 프리미엄과... 올라서지 못한 서로에게 요구되던 또 그만큼의 스펙에 대해... 그러나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삶의 성질에 대해... 오로지 스펙과... 프리미엄만 늘어날 뿐인 이 삶에 대해... 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수 없었다. 30년만 지나면 허물어야 할 한 채의 집을 위해, 실은 조건과 조건... 이윤과 프리미엄에 의해 만난 서로에 의해... 하여, 실은 있지도 않았던 사랑에 ㄷ내내 절망할 이 삶에 대해... 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 page 344 ~ 345

여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그런 방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답고, 아름다울 수 있고... 해서 진심으로 사랑받고... 설사 어떤 비극이 닥친다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그런 방, 말이에요. 아무리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 해도 결국엔 문득

그 방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전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찾아올 리 없지만, 그래도 그 방문에 몸을 기대면... 기대어 울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죠. - page 220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픈 이야기

우리의 손에 들린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 page 436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사랑해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음에

진정한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

왜 많은 이들이 좋아했는지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괜스레 저도 남편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퇴근하고 오는 남편에게 말없이 안아주며 가벼이 서로의 술잔을 채워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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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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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이 의미심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소개글을 보았더니


정신 병원에서 자란 소년의 눈에 비친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의 유쾌한 공존


심상치 않은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 소설 이전에 연극으로 먼저 발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이 작품.

그에 힘입어 발표한 소설은 부작 시리즈로 모든 책이 출간 직후 슈피겔 베스트셀러 차트에 진입,

독일에서만 3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세계 11개국에 수출되었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 정도면 이 작품은 반드시 읽어야 했습니다.


배우이자 연출가 요아힘 마이어호프의 유쾌하고 탁월한 데뷔작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 한가운데에서 자라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아이러니하지만 눈부시고, 고통과 사랑이 공존하며

산 자와 죽은 자가 손을 잡고 끝까지 걸어가야 할 삶에 대하여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정신병원이 집이었던 소년 '요아힘'

아버지는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 원장이었는데 이들의 집은 시설의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매일 아침 등굣길의 절반은 정신병원 경내를 지나가야 했고

천오백 명이 수용된 이들이 밤이면 통곡인지 환호인지 모를 비명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습니다.

그런 요아힘이 갓 학교에 들어간 어린 시절부터 혼란스러운 청소년기, 청년이 되어 집을 떠나기까지의 삶이 담겨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 소설의 말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의 이야기로부터 진한 여운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과거란 사실 미래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고 확정되지 않은 곳이 아닐까 하고. 흔히 우리는 내 뒤에 놓인 것이야말로 확정된 것이자 완료된 것이자, 이야기되기만 기다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것은 이른바 아직 만들어가야 할 미래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만일 과거 또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철저히 파고들어 재구성한 과거로부터만 열린 미래 같은 것이 생겨난다면? 이런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가끔은 아직 내 앞에 놓인 삶이 내게 맞게 재단된, 피할 수 없이 끝까지 걸어가야 할 구간처럼 느껴진다. 끝까지 조심조심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야 할 하나의 선처럼.

그래, 나는 이제 믿는다. 내가 기억의 꾸러미를 다시 하나하나 풀어 꺼내놓을 때, 겉으로 확실해 보이는 과거에 대한 믿음을 접고 과거를 혼돈으로 받아들이고 형상화하고 꾸미고 기념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나의 죽은 이들이 모두 다시 살아나 친숙하면서도 내가 지금껏 인정한 것보다 더 낯설고 자율적인 존재가 될 때 비로소 나는 현재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야말로 미는 그 영원한 약속을 이행하고 불확실해지고, 하나의 선이 하나의 면으로 넓어질 것이다. - page 478 ~ 479


과거의 확실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혼돈 속에서 과거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지금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과거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가능성으로서의 미래가 열리다는 것을

한 소년의 삶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요아힘에게 세상 사람들은 유해하였습니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기 일쑤였고 골칫덩이였던 그.

오히려 정신질환자라고 불리는 페르디난트에게서 공감과 위로를 받았고

유일하게 무서워했던 '종지기'는 그저 커다란 종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울리는 것 외에는 무해하고 심지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면서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살펴보면

아버지는 정작 가족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외도를 일삼았었고

어머니는 가정에 헌신하였지만 그녀마저도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무신경한 남편에게 지칠 때면 발작적인 히스테리를 부렸던...

그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관찰하며 나아갔던 요아힘을 바라볼 때면 가슴 한편이 아려오곤 하였습니다.


정상과 비정상.

그 기준은 무엇일까...

오히려 이 경계를 허물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해'라는 자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억눌렸던 과거의 기억들이 날아오르며 비로소 자유로워진 요아힘.

이젠 제 자신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준비를 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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