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page 35
1999년 겨울, 이 문장을 한 번 더 반복하고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뗀 '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 번 더, 베이비... 한 번 더, 나는 그날 밤의 일과 그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더는...
어떤 기억의 편린도 찾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하게 되는데...
그녀를 생각한다. 만날 수 없으므로 죽은, 나의 왕녀를 생각한다. 실은 죽은 지 오래였던 나를, 돌이켜본다. 내게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 과연 이 글을 나는 끝까지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너무나 오랜 시간이 사막의 바람처럼 우릴 휩쓸고 지나갔다. 헤어진 모래처럼 서로를 찾을 수 없다면, 다시 저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람이 다시 데려다주기만을, 나는 기다리고 기다릴 것이다. 검푸른 드레스를 입고 선 그녀의 곁으로... 이제는 죽은, 왕녀의 곁으로... - page 39
그렇게 이야기는 1986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뒤늦게 인기배우가 된 잘생긴 아버지와 그런 남자를 위해 헌신한 못생긴 여자였던 어머니.
성공을 거머쥐자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내 나이 스무 살.
나는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누구도 쳐다보기 싫어하던 못생긴, 하지만 자꾸만 신경이 쓰였던 '그녀'
가족에 대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하지만 정신적 스승이 되어준 '요한'
나와 그녀는 서로 사랑했고, 즐거웠지만 어느 날 사라져 버린 그녀.
그 뒤에 그녀로부터의 편지로부터 지난 그녀의 삶을 듣게 되는데...
'외모'로 인한 세상의 시선들...
그 억압된 시선들로 하여금 상처받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 흐르고 소설가로 성공한 '나'는 수소문 끝에 그녀를 찾게 됩니다.
낯선 나라에서의 재회...!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는!!!)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히 선 두 개의 탑처럼 우리는 눈앞의 광경을 오래오래 바라보았고, 굳은 표정으로.... 그러나 부드럽고, 부드러운 무언가를 가슴 깊이 담고 서 있었다. 정말 이곳에 올 수 있었네요, 그녀가 속삭였다. 인생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거야, 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인생처럼 - page 406
가슴 시렸던 이 소설.
'외모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는 이들의 처절한 목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일침을 선사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무엇도 믿지 않았다. 따라 뛰는 사람들, 피리 소리를 따라 어디론가 달려가던 사람들과...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세상의 풍경들을 그저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름다워지는 여자들... 아름다워 <져야만> 하는 여자들과... 학력을, 차를, 또 집을... 말하자면 힘을 <가져야만> 하는 남자들... 서로에 의해, 서로에 비해, 올라선 서로를 위해 구축하던 프리미엄과... 올라서지 못한 서로에게 요구되던 또 그만큼의 스펙에 대해... 그러나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삶의 성질에 대해... 오로지 스펙과... 프리미엄만 늘어날 뿐인 이 삶에 대해... 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수 없었다. 30년만 지나면 허물어야 할 한 채의 집을 위해, 실은 조건과 조건... 이윤과 프리미엄에 의해 만난 서로에 의해... 하여, 실은 있지도 않았던 사랑에 ㄷ내내 절망할 이 삶에 대해... 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 page 344 ~ 345
여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그런 방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답고, 아름다울 수 있고... 해서 진심으로 사랑받고... 설사 어떤 비극이 닥친다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그런 방, 말이에요. 아무리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 해도 결국엔 문득
그 방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전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찾아올 리 없지만, 그래도 그 방문에 몸을 기대면... 기대어 울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죠. - page 220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픈 이야기
우리의 손에 들린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 page 436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사랑해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음에
진정한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
왜 많은 이들이 좋아했는지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괜스레 저도 남편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퇴근하고 오는 남편에게 말없이 안아주며 가벼이 서로의 술잔을 채워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