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이 집이었던 소년 '요아힘'
아버지는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 원장이었는데 이들의 집은 시설의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매일 아침 등굣길의 절반은 정신병원 경내를 지나가야 했고
천오백 명이 수용된 이들이 밤이면 통곡인지 환호인지 모를 비명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습니다.
그런 요아힘이 갓 학교에 들어간 어린 시절부터 혼란스러운 청소년기, 청년이 되어 집을 떠나기까지의 삶이 담겨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 소설의 말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의 이야기로부터 진한 여운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과거란 사실 미래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고 확정되지 않은 곳이 아닐까 하고. 흔히 우리는 내 뒤에 놓인 것이야말로 확정된 것이자 완료된 것이자, 이야기되기만 기다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것은 이른바 아직 만들어가야 할 미래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만일 과거 또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철저히 파고들어 재구성한 과거로부터만 열린 미래 같은 것이 생겨난다면? 이런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가끔은 아직 내 앞에 놓인 삶이 내게 맞게 재단된, 피할 수 없이 끝까지 걸어가야 할 구간처럼 느껴진다. 끝까지 조심조심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야 할 하나의 선처럼.
그래, 나는 이제 믿는다. 내가 기억의 꾸러미를 다시 하나하나 풀어 꺼내놓을 때, 겉으로 확실해 보이는 과거에 대한 믿음을 접고 과거를 혼돈으로 받아들이고 형상화하고 꾸미고 기념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나의 죽은 이들이 모두 다시 살아나 친숙하면서도 내가 지금껏 인정한 것보다 더 낯설고 자율적인 존재가 될 때 비로소 나는 현재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야말로 미는 그 영원한 약속을 이행하고 불확실해지고, 하나의 선이 하나의 면으로 넓어질 것이다. - page 478 ~ 479
과거의 확실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혼돈 속에서 과거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지금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과거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가능성으로서의 미래가 열리다는 것을
한 소년의 삶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요아힘에게 세상 사람들은 유해하였습니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기 일쑤였고 골칫덩이였던 그.
오히려 정신질환자라고 불리는 페르디난트에게서 공감과 위로를 받았고
유일하게 무서워했던 '종지기'는 그저 커다란 종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울리는 것 외에는 무해하고 심지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면서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살펴보면
아버지는 정작 가족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외도를 일삼았었고
어머니는 가정에 헌신하였지만 그녀마저도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무신경한 남편에게 지칠 때면 발작적인 히스테리를 부렸던...
그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관찰하며 나아갔던 요아힘을 바라볼 때면 가슴 한편이 아려오곤 하였습니다.
정상과 비정상.
그 기준은 무엇일까...
오히려 이 경계를 허물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해'라는 자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억눌렸던 과거의 기억들이 날아오르며 비로소 자유로워진 요아힘.
이젠 제 자신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준비를 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