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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작년 여름,『야행』이란 책을 읽으면서 기묘한 밤의 모험 속으로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때 느낀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섬세하면서도 현실과 가상을 오고가는 묘미에 야행열차 속에서 한참을 떠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 년 뒤인 오늘.
또다시 작가로부터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게으름뱅이'.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닌 듯한데 이 게으름뱅이는 '거룩한'이란 형용사를 붙이면서 게으름뱅이의 위상이 한껏 올라갔습니다.
과연 이번 주인공인 '게으름뱅이'는 어떤 모험으로 초대할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평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하지만 주말이 되면 밤낮 없이 깔아놓은 이부자리와 한 몸이 되는, 골수 게으름뱅이인 그 '고와다'.
그런 그에게 '폼포코 가면'이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잘 모르는 법이야. 진정한 자네는 스스로 원하는 곳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으려고 바로 이 순간 갈등하고 있어. 그 괴로움은 이해하네, 내 잘 알지. 이 몸 또한 그랬으니까. 갈등을 극복했을 때, 자네는 한층 단련된 멋진 남자가 되는 게야. 이런 너구리 괴인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나? 그러나 이 몸에게도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더는 이 부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네. 그렇다고 소중한 폼포코 가면을 이대로 은퇴시켜 버리기는 아깝지 않은가? 자네도 아깝다고 생각하겠지?" - page 45 ~ 46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그 제안을 받아받아들일 수 있을까?!
"누가 좋아서 정의의 사도 따위를. 나는 굳건하게 내 휴일을 지켜낼 거예요. 게으름 피울 수 있다면 뭐든 할 겁니다." - page 50
부지런한 폼포코 가면.
그런데 어느 새 골수 게으름뱅이인 그가 폼포코 가면을 쓰고 있었고 자신만의 모험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곧 있으면 찾아오는 여!름!휴!가!!
주인공이 진정한 여름휴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고와다는 평소에 조금 더 긴 휴가를 원했다. 하루나 이틀의 휴가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괜스레 부족함을 느낄 뿐, 지루함의 바닥까지 이를 수 없다. 따분하고 따분해서 싫증이 날 정도로 게으름을 부리지 않으면 일할 의욕 따위 샘솟을리가 없거늘.
"지루함의 바닥까지 느껴져야 진정한 여름휴가지!" - page 134
캬~악!
왜 큰 공감을 하고 있지?
역시 나도 게으름뱅이였군...하하핫;
책을 읽으면서 '교토'를 가보지 않았지만 왠지 그 곳이 머릿속에 그려졌었고, 그들의 모습을 보진 않았지만 친숙하게 다가오면서 이미지화되는 것을 보니 이 소설, 소설로 끝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소설에서 나아가 애니메이션으로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
또다시 작가의 섬세한 필체와 감각적인 등장 인물들의 설정과 모험들.
이 책을 읽는 순간 게으름뱅이마냥 방 한 구석에 배를 깔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흡입력이 다가오는 휴가 때 또다시 만나야할 책이었습니다.
책 속의 게으름뱅이가 우리가 차마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우치게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앞서 게으름뱅이입니다."
"게으름 피울 여유는 없어."
"인간은 자신이 진실로 추구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법이죠."라고 말하면서 고와다는 절벽 끝에서 겨우 버티는 큰 바위를 힘차게 미는 듯함 감촉을 느꼈다.
"당신은 모르고 있어요. 자신을 속이고 있죠. 두려울 뿐이에요. 사실은 게으름뱅이가 되고 싶겠죠? 그렇죠? 되고 싶어서 몸이 달았을 거야. 나는 알 수 있어요. 그 갈등을 극복했을 때, 당신은 한층 단련된 멋진 남자가 되는 겁니다." - page 293
음......
지금의 우리들에게 일깨워주는 것.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것.
사실 게으름뱅이가 되고 싶다는 것.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룩한 게으름뱅이란 평범한 사람이 보면 이상한 존재이지만 하늘의 질서와는 맞는 존재이며, 쓸모없어 보이는 가운데 쓸모 있는 사람이다.
...
쓸모없음의 쓸모 또한 쓸모 가운데 하나이며, 그 쓸모 또한 쓸모없음 가운데 하나라고 친다면, 무용지용 또한 쓸모가 있으면서 없는 것으로...... - page 328
거룩한 게으름뱅이.
참으로 정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우리에게도 폼포코 가면을 쓴 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지런하지 않은......
거룩한 게으름뱅이......
그를 만나서 진정한 '게으름'을 배워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