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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 NT Novel
가노 아라타 지음, 유경주 옮김, 신카이 마코토 원작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오늘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 저는 집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펼쳐보곤 합니다.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빗소리, 흙내음......
이것이야말로 저에겐 또하나의 '소확행'이곤 합니다.
『언어의 정원』
이미 만화로도 유명세를 탄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만화를 접해보지 못하였기에 우선 책을 통해 저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어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구두'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비가 오는 날엔 너무나 당연하게 학교에 결석을 해도 된다는 주인공, '타카오'.
그런 그가 비가 오는 어느 날, 공원에서 아침부터 캔맥주를 마시는, 신비로운 느낌을 간직한 연상녀 '유키노'와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비가 오는 날엔 어김없이 공원으로 향하는 타카오.
암묵적인 약속인마냥 서로의 만남은 지속되고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알게 된 '유키노'의 본모습.
뒤늦게 밀려온 배신감이 있지만 어느새 성장한 그의 모습을 끝으로 소설은 막을 내립니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한 편의 수채화같은 동화가 연상되곤 하였습니다.
특히나 순수하게만 보이던 '타카오'의 모습이 책장을 덮어도 잔상으로 남곤 하였습니다.
소설 속 인상깊었던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맥주 마실래?"
"필요 없습니다."
"마셔, 사람이 권하는데."
엄마는 손을 들고 점원을 불러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주문한 게 나오자 점원이 간 뒤에 내 앞에 내려놓는다.
어쩔 수 없이 한 모금 마셨다.
"어때?"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아."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다라......." 엄마는 잠깐 시선을 허공에 돌렸다가 문득 뭔가 떠올린 듯이 말했다. "그러
인생같네."
"네?"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그래도 맛볼 만한 걸 찾아가는 것, 그게 인생이야." - page 90 ~
91
"단둘이 있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 던지는 말 하나도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안 들지, 상대의 말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안 들지.
결국은 그 둘 중 하나가 되어서 칼날처럼 서로에게 말을 들이대는 형태가 되어버리잖아? 하지만 셋이라는 수는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라는
틀에 들어가니까, 의견이나 발언을 상대가 받아들이게 하는 게 아니라 가볍게 그 자리에 둘 수 있게 되잖아. 셋이 아니라 네 명 이상이어도
좋지만." - page 113
"아마 옜날에는...... 얼마나 옛날인지는 모르지만, '뭐가 되고 싶어?'라거나 '뭐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솔직히 할 수 있었던
적이 있긴 있었겠죠. 아마 그 무렵에는 선택지가 매우 적어서 그만큼 가볍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응. 그런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기회가 열린 대신, '되고 싶은 게 되지 못하면 그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라는 말이 세트로
따라오죠. 요컨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패배하는 게임을 강요받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 억지스러운 게임에 응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구나."
"그리고 '뭐가 되더라도 일단 대학은 나와라'라고도 하죠. 그건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니까 구체적인
장래의 비전을 구성하고 싶지 않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진행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는, 아니, 그들은 남이
설정한 게임에 쉽게 달려들지 않을 만큼은 똑똑한 것뿐이죠." - page 133 ~ 134
무심코 집어 들었던 이 책.
하지만 타카오를 통해 지난날의 나를, 그리고 지금의 나를, 앞으로의 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빗소리가 들려옵니다.
똑! 똑! 똑!!
물웅덩이에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봅니다.
그러고나면 왠지 타카오가 멀찌감치 서 있을 것 같습니다.
수줍은 미소를 건네며......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마음의 안정을, 위로를 얻을 것만 같은......
왠지 이 비가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순간의 꿈으로 사라지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