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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ㅣ 쿤룬 삼부곡 1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평점 :
제목 자체에서 풍기는 묘한 매력...
알고 보니 『13. 67』의 작가 '찬호께이' 의 추천사가 있었습니다.
블랙코미디와 추리 요소, 두 가지 특성을 모두 훌륭히 표현해 낸 작품. 캐릭터의 세부묘사에 무척 공을 들여 작품의 재미를 한껏 끌어올렷다. 이는 작가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스릴러 혹은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이 작품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_ 찬호께이, 홍콩 추리소설가
이보다 더 극찬이 있을까!
작가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니!
그렇다면 추리소설 마니아, 아니 좋아라하는 1인으로 이 소설은 그냥 읽어야 함이 옳았습니다.
"주기적으로 청소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큰 실례입니다."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여느 때와 똑같이 야근하다 밤 10시가 넘어서 회사를 나서는 '샤오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저축액은 언제나 0에 수렴하기에 그만 둘 수 없고 아쉬운 대로 버티며 직장 생활을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회사 내에서 은근히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웃으며 인사를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기만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우악스러운 손이 나타나면서 샤오쥔의 코와 입을 막았습니다.
순간 눈앞이 핑 돌고 낯선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 그만 의식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쩌자고 이런 진부한 드라마 같은 일이 내게 벌어진 걸까? 역시 최악의 순간 같은 건 따로 없나 봐. 살면 살수록 이전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니까 말이야......' - page 14
천보는 낡은 소파에 몸뚱이를 파묻고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피자 배달 왔습니다!"
꾸깃꾸깃한 500타이완달러 지폐를 철제 방범문 틈에 꽂아 배달원에게 건네준 뒤 발소리가 멀어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문을 연 천보.
따뜻한 피자 상자를 막 들어 올리려는데, 목 언저리에 서늘한 기운이 퍼지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피자 상자 위에 방울져 내렸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낯선 얼굴 하나가 쑥 들어옵니다.
하얀 피부에 유난히 새카매 보이는 눈동자.
딱 마주친 소년의 눈동자엔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죽어가는 천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배낭에서 걸레와 고무장갑을 꺼내 청소를 합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
"혈흔을 찬물로 미리 닦아 두면 뒤처리가 쉽습니다." 소년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일깨워 주듯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그 문제를 고민할 필요는 없겠군요." - page 20
난장판이 된 바닥을 청소하던 소년 '스녠'.
그러다 화장실에 감금된 샤오쥔을 발견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소년은 일러 주듯 말을 합니다.
"이제 갈 시간이야."
그리고는 샤오쥔을 보내주는 스녠.
소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옵니다.
그때 소년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정보는 계속 제공할게. 내 정보력이 신통한지 아니면 네 직감이 더 예민한지 무척 궁금하거든. 너는 언제나 놈들의 다른 점을 구별해 내잖아."
"눈으로 구분하는 거예요. 그놈들은 딱 봐도 다르니까요."
"그게 바로 타고난 능력이라는 거야. 신이 내린 선물이지." - page 33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고아였던, 그래서 이름이 없고 유일한 호칭인 '스녠'.
이 소년은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숭배하는, 쾌락만을 위해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JACK 조직원들을 살해합니다.
오롯이 조직원 전부를 죽여 없애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은 그.

살인을 저지르지만 왠지 모르게 연민이 느껴지는 스녠.
어쩌다 그는 'JACK' 조직원들의 살해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의 오른쪽 가슴에도 새겨진 'J' 표식,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들...
과연 그에게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살인이 나쁜 것인 줄 알지만, 그래서 그 행위를 하는 이 역시도 범죄자임을 알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결국 '사회'가, '우리'가 그렇게 '살인마'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 '다크웹'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조직원들은 악명 높은 살인마 잭 더 리퍼를 숭배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지. 잭이 결성된 후 조직원들은 다크웹에 비정기적으로 스너프 필름을 올려 왔어. 전부 실제 상황이고 연출된 영상은 하나도 없지. 조직원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으니 피해자도 분산되어 있고, 특정 지역에서 피해자가 대량으로 나타나지도 않아. 다크웹의 링크 주소는 비정기적으로 바꾸기 때문에 늘 접속하는 사용자만 입구를 알아낼 수 있어. 그래서 큰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거지. 뭐, 다크웹에 스너프 필름이 올라오는 건 일상다반사기도 하고. 잭 더 리퍼는 영국 사람이지만, 내가 조사한 바로는 조직원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지역은 미국이고 그다음이 유럽이야.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가장 많고 타이완은 그다음이지. 스녠이 목표로 삼은 건 타이완의 잭 조직이고." - page 116
여기서 '한국'이...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뉴스로도 많이 접하지만... 다른 나라 작가의 작품에서 만나게 되니...
정말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드라마 <악의 꽃>이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소설 속 '스녠'의 모습은 드라마 속 '도현수'와도 닮은 듯해서 참으로 씁쓸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냉혹했지만 이 모습도 결국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에 쉬이 책장을 덮어도 끝맺지 못하고 한동안 긴 여운에 잠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