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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평점 :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끝낼 수 없다라니...
어떤 의미일까...?!
역사적 증언으로서, 천 개의 언어를 뛰어넘는 한 점의 그림의 힘!
사제복을 입은 은둔의 인문학자가 '지금 여기'에 던지는 지적 파문
『끝낼 수 없는 대화』

책의 저자는 '장동훈' 신부님이었습니다.
화가를 꿈꾸었으나 이제는 성직자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사학자인 그는 이 책에서도 그림보다는 그림 속의 역사와 사회, 종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예술서'일 거라고 접근했던 저에겐 크나큰 울림이었다고 할까요.
또 단순히 그가 신부님이기에 성화들이 나오지 않을까? 라 생각했던 저에게 또 그는 세속화들을 보여줌으로써 미술을 떠나 저자가 관심을 기울여온 사유의 대상 역시 '바깥'의 세상이었음을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편집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세속화를 선택한 나의 고집도 사실 여기에 있었다. 공의회의 고백처럼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 실로 거룩한 것이라면, 예술작품이 무릇 인간에 대한 저마다의 깊이대로의 고뇌와 질문이라면, 성속의 경계를 걷어내고 그렇게 한참 내려가다 보면 결국 인간이라는 궁극의 질문에서 함께 맞닿아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page 9
총 네 가지의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현대문명과 오늘의 사회에 관한 질문을 담은 1부
'지금, 여기'를 살아내야 하는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조명한 2부
상품처럼 소비되고 있는 종교와 교회의 내일을 묻는 3부
시대와 이념, 신념과 체제,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힘겹게 피워낸 예술가들의 성취를 담은 4부
이 각각을 '삶을 위한 예술'이라는 시선으로 조용하게, 하지만 그 끝은 뜨겁게 가슴에 울리곤 하였습니다.
사실 '그림'을 좋아하기에 그와 관련된 책을 나름 읽어보았지만 이번 책은 뭔가 '특별'했습니다.
아무래도 여느 책들은 그림을 그린 화가로부터, 그림 자체에서-구조, 재료, 구성-느껴지는 것으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는데 이 책에서는 미술보다는 인문학적 이야기로 풀어나가기에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면 '묵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묵묵히 기도하듯 잠잠히 성찰하게 만든 그의 이야기.
왜 책의 제목이 『끝낼 수 없는 대화』라고 하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 실격』을 읽은 후에 읽어서일까.
아니면 이 책의 첫 이야기라서 일까.
아무튼 '에드워드 호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체험을 그린다"
라는 호퍼의 말처럼 그의 화면엔 불안과 공허, 고독이 감상자를 옭아매곤 하는데 저자는 그의 작품에서 '깃들지 못함'이라는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엿보았다고 하니...
그러면서 전한 이야기.
자연으로부터 단절되고 문명이라는 공간에 유폐된 인간은 과르디니의 표현대로 뿌리내릴 곳 없이 쉽 없이 부유할 뿐이다. 카페, 술집, 극장, 휴양지, 호텔 객실, 주유소처럼 모두 언젠가는 떠나야만 하는, 결코 주인일 수 없는 공간에 계류할 뿐인 호퍼의 그림 속 주인공들처럼. - page 35
결심이라면, 호퍼의 그림 속 군상들의 화면 밖 어디론가 뻗어나간 아득한 시선에 초점을 찾아주는 것이겠다. 그것을 전망, 영감, 또는 다른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 제 손으로 건설한 문명의 구조물에 갇혀버린 인류가 이제 그다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동행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 page 38

한 번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내 것으로 만들고자 곱씹으며 다시금 읽고.
이 책은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나에게 오롯히 남겨지기에 좋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그림과 함께 했던 이야기도 참 울렸습니다.
세탁물을 든 엄마의 손을 잡고 아이가 계단을 힘내서 오르는 오노레 도미에의 <세탁부>.

로메로는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은 "거대한 계획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며 자신은 "끝내 그 결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하곤 했다. "우리의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해 다만 일할 뿐"이라고 말했던 그는 자신을 건축가가 마음에 품고 있는 완성된 건물의 모습을 모두 알 수 없는 '목수'일 뿐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는 "가끔 뒤로 물러나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여정을 미완으로 남겨둘 줄 알았다. 역사 앞의 겸손이자 남겨진 이들에게 거는 엄청난 신뢰가 아닐 수 없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연민이 빚어낸 낙관론이자 이상주의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희망이다. 현실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낭만을 잃지 않았던 것은 도미에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우리가 황혼녘 계단을 오르고 있는 모녀의 모습 속에서 슬픔을 너머 어떤 위로를 얻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page 146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일까. 팬데믹 선언 직후 곳곳에서 피어나던 인문학적 성찰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전염병의 '종식'과 '박멸'만이 모든 담론을 집어삼킨 듯하다. '어떻게'라는 방법이 '어떤 세상'이라는 철학을 압도한 모양새다. 이대로 '보건'이 '보안'으로, 과학이 종교로, 인간이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로, 목숨이 무심한 통계수치로 쪼그라들어도 그만인 것일까. 낯선 사막의 땅에서 마주친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하던 그들처럼 가늠할 수 없는 내일 앞에 꼼짝없이 갇힌 지금의 모두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모든 형태와 이름의 초안을 포기할 용기, 그리고 늘 새롭고도 가장 오래된 궁극의 질문, 인간은 무엇인가를 되묻는 것은 아닐까. - page 279
인간은 무엇인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선 그의 이야기 역시도 끝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