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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 순교 성지를 찾아서
문갑순 지음 / 프리뷰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고백하자면...
천주교 신자가 된 지 십여년이 되었지만 누군가가 묻는다면 쭈뼛거리게 됩니다.
잘 알지 못하기에...
그래서 알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을 이제야 알고자 했다는 점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한국천주교회 신앙 선조들의 불꽃 같은
삶과 죽음의 현장
『한국천주교 순교 성지를 찾아서』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많은 성지가 있었다는 사실에!
이 성당들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다는 사실에!
프랑스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신자들의 헌신을 벽돌 삼아 필생의 사업으로 성당 건물을 완성했다는 사실에!
그렇기에 어느 곳도 허투루 볼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에 첫 신앙의 싹 '홍유한'.
그는 주위의 반대를 받지 않고 서학을 실천하기 위해 소백산 자락의 구고리로 이주하여 1785년 죽을 때까지 10년간 홀로 신앙생활을 실천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축일표나 기도책이 없었던 그 시절에 매월 7일, 14일, 21일, 28일을 안식일로 정해 모든 일을 쉬고 기도에만 전념하며, 금육일이 언제인지 몰라 항상 좋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는 점은 가히 존경스러웠습니다.
그 싹이 토대로 한국에 천주교 신앙을 전파한 선구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벽'
솔직히 낯설었습니다.
"이벽이라는 자가 푸른 두건으로 머리를 덮어 어깨까지 드리우고 아랫목에 앉고, 이승훈과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삼 형제와 권일신 부자가 모두 제자라 일컬으며 책을 옆에 끼고 앉아 있었다. 이벽이 설법을 하고 깨우쳐 주는 것이 유가의 스승과 제자간 예법보다 더 엄격했다. 모두 얼굴에 분을 바르고 푸른 두건을 썼으며 거동이 해괴하고 이상스러워..." - page 26 ~ 27
관원들이 그들의 거동을 수상히 여겨 체포하고, 예수의 화상과 서적, 그리고 몇 가지 물건을 압수하여 형조에게 바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인 '을사추조적발사건' 또는 '명례방 사건'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천주교회의 첫 영세자 '이승훈'.
그에게 조선천주교회의 주춧돌이 되라는 의미로 그라몽 신부가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주고 그는 신유박해 때 정약종 등과 함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당하며 순교합니다.
이후 진산사건, 신해교난, 기해교난을 거쳐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서품과 순교라는 숨가쁜 격동의 길을 걷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는 처형을 앞두고 어머니 우르슬라가 가장 눈에 밟혀 페레올 주교와 친구 최양업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편지를 쓰게 되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합니다. 죽은 다음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면 여러분도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 page 133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는 물음에 직면할 때마다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라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하였던 그의 의연한 모습이 가슴 한켠에 시리게 다가왔습니다.
그의 나이 25세...
한국천주교사에서 총 순교자 수는 1만 명에서 3만 명으로 추정되고 한국천주교 성지 순례사목위원에서는 2019년 전국에서 167곳의 성지를 발굴 선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 수는 이천여 명에 불과하였고 피의 광풍 속에서 쓰러져간 병인박해의 수많은 순교자 중 24위만 선발해 시복했다는 사실은 무명의 순교자들의 침묵 속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병인 순교자 24위 시복식이 한국 순교 복자 103위의 시성 운동을 종교회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하는 촉진제가 되어 1984년 5월 6일 마침내 한국의 여의도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으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와 103위 순교복자 시성식'이 거행되었다는 점이 그나마 그들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한국 최초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
정말 존경할 수밖에 없는 그.
서울대교구장 취임사에서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
고 강조하며 가난하고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상을 제시하는 그의 모습.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을 강행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1971년,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미사 강론 중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국가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라고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말을 한 그.
진정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었던 그의 모습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그립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책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전란이 휩쓴 이 땅에서 수많은 이들이 헌신으로 이루어진 성지.
저자는 성지들을 다니며
순교자들이 역사를 이끄시는 하느님이 특별히 사용한 그릇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고통도 결국은 어둠 속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깨달음이다. - page 5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순교자들의 성지를 잘 가꾸고 지키고 현양하는 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수환 추기경 잠언짐에 '기도'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년 암흑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 하며 만생을 유익하게 하는 묘약이다.
오늘은 그들을 위해 두 손을 모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