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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놓치지 마 -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
이종수 지음 / 학고재 / 2022년 2월
평점 :
'명화'라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서양화가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우리의 멋지고도 좋은 작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보자마자 읽어야겠다 다짐을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귀하고 값지고 소중한, 그래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우리 그림'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없을 것 같기에 옛 그림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 국보 · 보물 그림에 담긴 깊은 뜻, 귀한 의미
『이 순간을 놓치지 마』

삼국시대 석탑과 불상부터 고려시대 건축과 도자기, 그리고 조선시대 실록과 회화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문화재의 종류는 다양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2,643점이나 되는 국보 · 보물 가운데 그림은 303점이 전부라는 사실은 조금 놀랍기만 하였습니다.
그런 그림들 사이에 추리고 추려 자신의 보물을 들려준 그.
세 가지 주제로 그림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첫 장은 이상, 꿈을 보여준 그림들이었습니다.
이상향을 그려낸 산수화나 시정을 담아낸 시의도, 군자의 지조를 상징하는 사군자 등 꿈을 그린 그림, 꿈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담아낸 그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첫 장에 등장하였던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긴 겨울이 지나가고 봄꽃이 하나둘 피는 요즘.
꽃향기와 새들의 지저귐으로 오감이 깨워지고 있는데 이 그림 속 선비에게도 그의 걸음을 멈추게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흘러내린 버들가지를 거슬러 오른 시선 끝, 갈라진 가지 사이로의 꾀꼬리 노랫소리.
그리고...
화가는 제 봄을 주인공에게 깊이 투영했다. 가던 길 멈추고 꾀꼬리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 누구일까. 계절의 오고감이 새로울 것도 없는 젊음의 시선은 아니다. 파릇한 새싹마냥 근심없던 어린 시절을 지나 환한 햇살처럼 눈부신 젊음을 건넌 뒤,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 거다. 해마다 봄은 또 오겠지만 같은 빛깔로 다가오는 계절은 없다.
기쁨과 상실 사이를 오가는, 그런 봄을 꽤나 여러 차례 흘려보낸 마음이리라. 햇살과 함께 반짝이는 계절이라고, 기쁨으로 들뜬 시간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마음까지 꽃밭일까.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이 있을진대, 굳은 가지 속에서 긴 겨울 견뎌낸 새잎이 있을진대. 그저 무해하고 평온한 계절일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 그림에 눈길이 사로잡혔다면, 화면 속 선비마냥 걸음을 멈추었다면 우리의 봄도 편히 지나가주기는 어렵겠다. - page 22 ~23
문득 저도 이 그림을 보며 잠시 멈추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봄은 어떤지...
무탈한지...
둘째 장은 현실, 삶 속에서 만난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강산을 새롭게 바라본 진경산수화, 생활 현장을 생생히 살려낸 풍속화, 실사의 정신으로 탐구한 자화상 등 다른 장보다는 친숙한 그림들을 마주하게 되어 반가웠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 그림들과 친해진 느낌이랄까.
그렇게 내 마음속에 간직할 우리의 그림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셋째 장은 역사, 기록으로서의 의미가 남다른 그림들이 우리에게 역사 속 그날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국가 행사를 그린 기록화와 전신사조 정신으로 무장한 초상화, 선현에 대한 추숭을 담아낸 기념화 등 앞서의 그림과는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작자 미상의 <독서당계회도>를 통해 전한 저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남곤 하였습니다.
계회가 열린 그날의 풍광을 떠올려본다. 부드러운 강바람 숲사이로 떠돌고 뒷산에선 간간이 새가 울었으리라. 한 잔 술에 시 한 수를 더하거나, 혹은 이 분위기에 깊이 빠져드는 이도 있었으리니. 그림 하단에 또박또박 적힌 인물들의 기억 속에, 독서당의 한 시절은 자랑으로 새겨졌을 것이다.
그 가운데 누구의 기억이 기록으로 남았을까. 정작 우리에게 이 장면을 남겨준 것은 그 유명 인물들의 회고가 아니다. 한 무명 화가의 고민과 붓이 이루어낸 이야기다. 이름을 남기지 못했으면 어떤가. 그의 기억만이 기록으로 남아 역사 속 그날이 되었다. - page 209
그리고 부록 아닌 부록으로 넷째 장이 더해져 있었습니다.
바로 보물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덜하지 않은 그림들.
왜 아직 보물로 지정되지 못했을까란 아쉬움과 언젠가 보물 지정 소식이 들려오겠지란 기대를 가지고 여느 작품보다 더 오래 들여다보곤 하였습니다.
그 마지막을 장식한 '나도 원'이라고 당당히 말했던 화가 장승업의 <호취도>.

화면 가득한 생동감으로 제법 화려하게 느껴지건만, 실상 주인공인 매와 구도의 중심을 잡아준 나무줄기는 먹으로만 그렸다. 색이라고 해봐야 엷게 채색한 나뭇잎과 바위 주변의 태점과 꽃. 그림의 화려함은 색채가 아닌, 먹과 붓의 쓰임에서 나온 것이다. 현란한 필묵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마음 한편이 간질거릴 만큼 장승업의 붓에는 아슬아슬한 대목이 있다. 옛 그림에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날것의 생생함. 배운다고 되는 건 아니다 싶은, 그런 필력이다. - page 345 ~ 347
전통과 근대 사이에서 최선을 다했던 아름다움.
조선 회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오원의 그림이 강렬한 여운으로 남곤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의 보물, 그림 한 점마다 지닌 이야기가 이토록 반짝거릴 줄 몰랐습니다.
이제라도 그 반짝임을 오래도록 간직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르고 지나쳤을 옛 그림들 속의 반짝임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아야겠다는 다짐 역시도 해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