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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하는 문장들 - 지극히 사소한 밑줄로부터
이유미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1년 11월
평점 :
책을 읽으면 와닿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밑줄을 그으며 잠시 '나'를 대입하며 생각에 잠기곤 하는데...
나 말고 다른 이는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생각에 잠기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편애하는 문장들,
친애하는 문장들
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어."
위로하는 문장들, 일깨우는 문장들, 건너오는 문장들
관계에서 밑줄 긋기, 일상에서 밑줄 긋기, 책방에서 밑줄 긋기
일상을 읽는 시간, 나를 살게 하는 친애하는 문장들
『편애하는 문장들』

그녀가 자신의 편애한 문장들을 차곡차곡 모으게 된 건 자신의 책방 '밑줄서점'에서의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책방을 연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어느 손님이 읽던 책을 덮고 계산을 요구했습니다.
새 책이 있었음에도 저자(가 읽은) 책을, 그것도 밑줄이 좍좍 그어져 있고 군데군데 접힌 손때 묻은 책을 말입니다.
이때 저자는 생각합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손님이 없는 텅 빈 책방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긴 나는 불현듯 글을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을 남기는 게 아니라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문장에서 시작된 나의 이야기를 하나씩 남겨놓는다면 훗날 그 책을 손님이 사가도 덜 서운할 것 같았다. 책과 나는 미리 이별의식을 거행한 거나 다름없으므로. 어떤 글은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쓰였고, 어떤 글은 책을 다 읽고 난 뒤 한참이 지나 쓸 수 있었다. 어쨌든 가급적이면 뭔가 남겨놓고 싶었다. 그렇게 손님이 사갈 리 없는 책이라 할지라도 내가 편애한 문장에 곁들인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 page 5 ~ 6
그렇게 밑줄 그어진 문장들에 저자의 곁들인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어떤 문장은 나에게 다정하게
어떤 문장은 나에게 시니컬하게
다가와 나의 일상의 한 부분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읽어나가기보단 한 문장씩 곱씹으며 읽게 되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나에겐 무심히 지나쳤던 문장이 다른 이의 시선에선 이렇게 반짝였다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재미났습니다.
다시 그 책을 읽게 된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이 설렘!
기분 좋음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에서의 이 문장이 전한 이야기.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투닥거릴지도 모르지만 서로의 빈자리를 절실히 깨닫는 이때가 우리에게 '슬픔이 필요한 순간' 아닐까. 슬픔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빈자리가 슬플수록 서로 더 애틋해진다.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가 서로의 감정이 시들해졌다고 느낄 때 오래 전 슬픔을 떠올리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더 사랑스러워질지 모른다. 엄마의 여행을 슬퍼한 만큼 아이는 조금 더 성장했을 것 같다. 먼 훗날 서하도 삶에는 "슬픔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 좋겠다. - page 100
'슬픔이 필요한 순간'
어쩌면 모르고 지나칠 순간, 아니 어쩌면 외면하려 했던 순간이었기에 의미 있게 다가왔었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곳으로 가자》에서의 밑줄이 의미하는 바가 지금의 저에게도 저자님처럼 다가왔었습니다.

지금은 통장에 현금도 어느 정도 있고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큰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삶이 대단히 풍요로워진 건 아니지만 세 식구 오붓하게 살 수 있는 작은 집도 장만했으니 살 만해졌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9년이 걸렸다. 나도 지금 가진 돈을 과거의 나에게 좀 나눠주고 싶다. 그때 부족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기로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젊은 시절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오늘이,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살림이 여의치 않던 신혼시절, 자주 막막한 기분으로 한숨짓던 나에게 "너무 걱정 마. 앞으로는 계속 좋아져."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해결도 안 되는 근심으로 잠 못 이루던 나에게 걱정은 줄이고 좀 더 재미있게 하루를 보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진짜 그러고 싶다. - page 208 ~ 209
저자로 인해 읽고 싶은 책들도 생겼습니다.
책 목록이 늘어난다는 거...
그만큼 내 일상이, 내 삶이 풍성해질 수 있음에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다가온 문장들을 기록해보고 싶었습니다.
작지만 굉장히 빛날 그 문장들을...
써 내려간 문장들 속에서 건네질 위로들을...
밑줄 긋는 시간, 밑줄 그은 문장
"이별하기 아쉬운 문장들에 밑줄을 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