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과 광기의 암호를 해독하다
리처드 레티에리 지음, 변익상 옮김 / 애플씨드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보다 정교해진 과학수사.

하지만 그만큼 범죄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흉흉한 세상 앞에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범죄'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방송에서 <알쓸범잡>이 방영했던 이유였고,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님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무엇보다 '범죄자의 마음속'을 알아본다는 점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가?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가?

에 대해 묻고 그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볼 수 있는 이 책.

한 번은 제대로 마주해야 했던 우리의 숙제였습니다.

법의학 정신분석가의 범죄 심리 프로파일

"악의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충동과 광기의 암호를 해독하다



저자는 30년 동안 1,000건 이상의 끔찍한 범죄를 조사한 미국의 저명한 법의학 심리분석가 '리처드 레디테리' 입니다.

그는 변호사에게 의뢰를 받거나 법원에 선임되어 다양하고 복잡한 법적 문제에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가 마주했던 범죄에 대해, 피고인을 이야기하면서 인간 내면의 '충동'과 '광기'에 대해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총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부에서는 '다이모닉'이라는 개념에 대해 소개를 합니다.

다이모닉은 넓고 깊은 인간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다이모닉은 마구 분출되는 증오뿐 아니라 장엄한 사랑과 [출산, 육아, 복지 행동, 취업 등과 같은] 생산성을 위한 잠재력이다. 다이모닉은 우리 존재의 역설이자 불가사의다. 그런데 다이모닉이 감동적인 노래를 만드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혐오스러운 성범죄를 저지르는 힘이 되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밝으면서도 어두운 다이모닉의 이중성은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개인의 이력과 재능에서 어떤 요소 때문에 다이모닉의 어둡고 사악한 면이 (법과 도덕적 관습을 거슬러) 육체와 영혼을 파괴하는 힘으로 나타날까? - page 24

사회적 관습이나 두려움, 의무감, 동정심, 용기, 죄책감, 사랑하는 사람과 일체감과 같은 여러 요소의 규제를 받으며 균형을 유지하는 '다이모닉'.

뭔가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것 안으로 녹아들지만, 내면에 존재하는 어둡고 그늘진 면 때문에 언제나 위태롭게 흔들리는 '다이모닉'.

이 다이모닉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2부에서 그 해답을 사례와 자료를 통해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책 속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의 기본적인 심리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적으로 범죄 심리의 광기만을 다루지 않기에 보다 광범위하게 추론을 해 나갈 수 있음에 오히려 여느 심리학보다 흥미롭고도 재미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편집증, 우울증, 종교적 망상, 스트레스, 애정결핍, 상실감, 정신 장애, 성격 장애 등.

특정 인물들만이 겪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 속에도 잠재되어 있다가 이것이 끝내 충동과 광기로 분출되어 버리면 범죄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3부에서는 발달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신경과학의 새로운 성과에 비추어보면 인간 본성의 합리성에 기초한 법률 체계가 때로는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나아가 형사사법 제도가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긍정적인 방향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올리버 웬들 홈스 대법관은 법의 역사는 논리의 역사가 아니라, 경험의 역사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법체계는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바로잡으며 계속 개선되고 발전해갈 것이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법체계도 불완전하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계몽된 상승을 계속해갈 것이다. - page 378

왜 이 책을 읽고 나서

'인간처럼 굴곡진 나무로는 아무것도 똑바로 지을 수 없다'

라는 철학자 칸트의 말을 되새기게 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원초적 감정과 함께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형사법체계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이면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질 수밖에 없음에 참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범죄자인가?

이 답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범죄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어느 누군가가 책임지는 것보단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 무엇보다 '관심'을 가지는 태도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직면한다는 것이, 특히나 내면을 직면한다는 것이 복잡하지만 한 번은 들여다봐야 함.

특히나 '다이모닉'이라는 개념.

이 책에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단어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짧지만 강렬했던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방향성.

심층적으로 다가갔기에 더 진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우디 집사
배영준 지음 / 델피노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이 끌렸던 건 천재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살바토르 문디' 작품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거장의 작품에 어떤 요소를 넣어 재미를 더해줄지 궁금하였습니다.

천재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살바토르 문디'

이 작품을 풀어가는 비밀의 열쇠

사우디 집사



2021년 2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몸은 마지막 실낱같은 온기의 불씨마저도 꺼져가고 있었다. 그 순간,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기나긴 터널 끝에서 한 줄기 빛과 함께 내 이름을 부르는 나지막한 음성이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

"사우디 집사! 피터!"

"자네는 내가 되고 난 자네가 되었네."

"이제 길고 길었던 그 죽음의 어두운 터널에서 떠나가게."

...

그 실체는 바로 살바토르 문디! 그 자체였고 구세주였다. - page 10 ~ 11

그리곤 시간은 거슬러 가기 시작합니다.

주인공 피터는 한국에서 치열했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50 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프랑스 국립 집사학교에 입학합니다.

프랑스 국립 집사학교 500년 역사상 유일하게 한국인 학생으로 선발되어 교육과정을 우수하게 이수하고 수석으로 졸업하게 된 피터는 일하고 싶은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됩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 가문, 한국의 현대자동차그룹,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우디 국왕 반살림 가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이곳들 중에 그가 선택한 곳은 다름 아닌 사우디 반살림 왕가의 집사였습니다.

황량한 사막!

맥주 한잔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금주의 나라!

석유 왕국!

도대체 왜 이곳을 선택했을까...?

하지만, 사우디를 선택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우디 제다 건설 현장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때문이었다. - page 17

그렇게 그는 사우디 오아가에서 집사로 일하게 되고 왕궁 내에 비밀리 보관하고 있던 '살바토르 문디'라는 작품을 접하게 됩니다.

그와는 인연이 있었던(?) 살바토르 문디.

집사학교 교양 필수과목인 다빈치의 작품세계 연구 강의에서 그는 살바토르 문디를 주제로 선택하여 동기생들과 열띤 토론을 펼치곤 했었는데 이렇게 500년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의 눈앞에 존재하다니.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기억 속에서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내 앞에 펼쳐졌다. 갑자기, 누군가 내 마음의 문을 강하게 세 번 쿵! 쿵! 쿵! 두드렸고 내가 마음의 문을 열자, 거센 폭풍우 속 한가운데 고요한 폭풍의 눈처럼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살바토르 문디! 구세주가 내 안에 들어와 내 온몸을 완전히 휘감았다. 일순간 내 심장과 두 눈은 마치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 순간 나는 살바토르 문디가 되고 살바토르 문디는 내가 되었다. - page 90

피터는 이 작품의 신비한 능력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그의 눈앞엔 상상도 못할 일들이 펼쳐지게 되는데...

전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반살림 왕과 그레이스 왕비, 자밀라 공주, 미술 관리인 제임스 쿡 등 다양한 인물들과 함께 스펙터클하게 그려지고 있는데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습니다.

러블리 수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슬픔이 찾아오기도 하죠. 러블리 수는 그런 면에서 어려움들을 잘 이겨내며 살아온 것 같아요."

"네. 부모로부터 버려진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던 남자를 작전 중에 잃게 된 기구한 인생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 순간들이 한 줌 한 줌 모여서 지금, 바로 이 순간 단단한 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항상 깨달아요." - page 176

그리고 자밀라 공주가 했던 말.

"어려서부터 어머니께 그 태몽을 듣고 항상 사우디 여왕이 될거라는 소망을 갖고 살아왔어요. 아마 그 누구도 제가 사우디 최초 여성 외무장관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전 현재 왕세자 서열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하지만 원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그 찬란한 꿈을 향해 걸어간다면, 세상은 변하고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 있다고 믿어요." - page 208

이들의 말을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피터와의 만남은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를 기다리며

마사할 카이르! (아랍어 저녁 인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닿고 싶다는 말 - 공허한 마음에 관한 관찰보고서
전새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참 예뻤습니다.

특히나 요즘 날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찰나였는데 다정히 건넬 작가의 이야기에 마음을 기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위로를 선사해 줄지 기대하며...

마음이 곰팡곰팡한 이들에게 보내는

따사로운 햇볕과 같은 공감과 위로

닿고 싶다는 말



저자는 글쓰기의 목적이 소중한 것들에게 '닿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흔한 '힘내'라는 격려도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담담한 고백이 더 와닿았고 다정히 손을 건네주었다고 할까.

일부러 감성이 몰랑했던 새벽에 읽으면서 기대었던 책.

따스했습니다.

저도 참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걱정인 바로 누군가가 나를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남의 눈치를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되는데...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가슴 앓이...

삼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제자리다. 나는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신경을 쓰고, 혹시라도 점수가 깎일까 봐 전전긍긍하며 산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저 사람은 점수표를 꺼내 마이너스 십 점을 매기겠지.' 그런 생각을 시도 때도 없이 하면서 산다. 실은 점수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 졸이며 살아가고 있다. - page 27

제 마음을 알아주는 이 문장.

그리고는 다정히 건넨 이 말.



무엇보다 공감했던, 아니 제 이야기와도 같았던 <타인을 외롭게 만든 죄>.

임신했을 때 산전 우울증을 앓았었기에 그런 저에게 서운함을 표현했던 남편의 모습이 또다시 그려지면서 울컥하였습니다.



그땐 그랬었지...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과 내 마음과 저자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책을 덮으면서는 다정히 건넬 수 있었던 한 마디.

"고맙습니다!"

조심스레 건넨 인사가 쑥스럽기도 하고 참...

저자는 한때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 사이에서 방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그는 더 아픈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마음이 닿았으면 했다고 했습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는 마음의 감기 같은 거라고.

당신은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 존재라고.

혹여 혼자라는 마음이 들면 닿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결국 마지막에 전한 그의 이야기.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자는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건네주니 정말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저자가 건넨 이 손.

왠지 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자 마치 나를 유심히 바라봐온 것마냥 큼지막한 달이 빛나고 있었다.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가. 환하지만 눈부시진 않은 달빛이 여과 없이 밤의 풍경을 비추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닿고 싶다는 말을 하는 중이었다. 재미나고 새로운 것들을 향해, 권태와 외로움과는 먼 것들에게, 나를 다정하고 의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들을 향해, 닿고 싶다는 말을 하는 중이었다. - page 194

우리가 손을 잡는다는 건, 그동안 말 못 하게 외로웠다는 내밀한 고백인 동시에, '너도 힘들었지'라는 공감의 제스처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질적인 외로움을 통해 서로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상대방에게 닿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몹시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필연적으로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늘 그렇게 연결된 채 살아왔다는 걸, 비록 몸이 나뉜 것처럼 보여도 실은 살아 있는 것 모두가 하나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 page 231 ~ 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쉽게 접하고 잘 알려진 명화를 살펴보면 유독 여성 누드를 그린 작품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에서도 굳이...

그리고 또 하나.

위대한 화가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선뜻 여성 화가의 이름을 떠올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에 의한 삶의 고통을 멕시코적 전통에 실어 작품으로 승화 시킨 '프리다 칼로'가 떠오르긴 하지만...

그리고는...?!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의 시선'으로 미술의 역사와 고전으로 내려오는 그림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오거나 이미 익숙해져 간과해왔던 의문을 끄집어내 '불편한 시선'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동안은 무심코 당연시 여겼던 것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훔쳐보지 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

열 가지 키워드를 통해 다시 읽는 여성 미술사

불편한 시선



사실 그녀가 꼬집어 얘기하기 전까지는 그저 '명화'이니까 당연시 받아들이곤 하였습니다.

여성이 나체로 몸부림치며 힘센 남자들에게 납치되는 장면이 신화라는 베일을 뒤집어쓰고 있으므로 용인되고, 이차 성징도 나타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가 성욕을 이글이글 불태우는 작품도 인간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너그럽게 해석되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다른 이름을 뒤집어쓴, 알고 보면 여성에 대한 폄하, 비하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눈이 뜨이기 시작하면서 저 역시도 껄끄럽고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느꼈던 불편함의 원인을 찾아보기 위한 키워드 열 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선뜻 떠오르지 않을까?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누드라면 왜 미술관에는 여성의 누드 작품만이 이렇게 많을까?

신화와 종교 이야기, 역사 속에서 남성을 유혹해서 파멸시키는 여성들이 어느 시대에 한꺼번에 소환되어 나온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심지어 영웅적인 여성조차도 이런 파멸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인이 자연스럽게 그려져 온 역사를 우리는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

거울을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여성이 거울을 들고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모습만 어리석음의 표상으로 그려졌을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일대 사건인 임신과 출산은 왜 미술의 본격적인 주제가 되지 못했는가?

명백히 소아성애를 담은 작품들을 우리가 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남성 노인은 기품 있게 그려지는 반면, 늙은 여성의 모습이 추악하고 사악하게 그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불편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이 각 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질문을 다시 바꿔야 할 것이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 없었던 사회적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여성 미술가가 남성과 동등하게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가?

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음에...

무엇보다 울분이 일어났던 수많은 '여류'들은 실력보다는 '미모'에 대한 평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작품은 좋은데 얼굴이 못생겨서 그림을 의뢰한 사람이 실망했다거나, 너무 아름다운 여성이라 실력을 의심받는다거나 하는 일이 미술사에 흔하디흔한 가십이라는 것은 결국 미술사 기술의 주체가 '남성'이라는 데서 기인했던 이유임에 너무나 불편했던 진실!

언제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화가, '로살바 카리에라'



물감과 붓 대신 파스텔을 사용해 사실주의적인 방식으로 대상의 특징을 아주 정확하게,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내지 못할 만큼 빠르게 구현했던 그녀에게 빈의 궁정에 초청받았을 때, 그를 소개한 이에게 칼 6세가 했던 말은

"친애하는 베르톨리, 네가 데려온 여성 화가는 정숙한 여자처럼 보인다. 그런데 별로 아름답지는 않구나." - page 38

이 무슨 무례하고 쓸모없는 평가란 말인가.

로살바 카리에라가 평생에 걸쳐 남긴 작업물과 자화상을 보면 그가 아름다운지 아닌지 뒷말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하는 의문은 커져만 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카리에라의 용모에 대한 세간의 한심한 평가는, 그 이후에도 여성 화가들이 숱하게 겪는 외모 지적에 대한 시작일 뿐이었다. - page 41

그리고 불편했던 '누드'에 대하는 태도.

'누드'라는 서양미술 속의 개념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남성 누드는 행동하는 주체이지만 여성 누드는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이 불평등한 관계의 존재가 껄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바버라 크루거'가 <너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조각상은 여성을 소재로 한 전통적인 작품이다. 한 손으로 음부를 가리고 다른 손으로 옷을 든 채 맨몸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던 크니도스의 비너스 이래 여성 조각상은 너무도 쉽게 관음적 시선의 대상이 되어 왔다.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을 사랑하여 함께 자고 입 맞추고 지극한 정성을 쏟은 끝에, 조각상이 체온을 가진 여성이 되어 그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신화 역시, 여성의 모습을 한 조각상을 조각상이 아닌 여성으로 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크루거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 조각상을 바라보는 남성 일반의 에로틱한 시선을 지적한다. 성별이 구분되어 있는 인간에게 에로티시즘 자체는 당연한 감정이지만, 그 시선의 방향이 일방적이라면 시각적 통제, 폭력성의 관점으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 page 84

이분법적 시선으로 인해 껄끄럽고도 불편했던 미술계의 모습은 단순히 미술계만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이라는 표식 대신 '인간'으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정정엽'의 <흙이 되는 자화상>이 전하고 있었습니다.



감긴 눈과 벌어진 입, 한쪽으로 약간 찌그러진 얼굴, 얼굴 위의 마른 식물과 깃털 그리고 부장품일지도 모르는 팥 알갱이 무더기가 붉은 화면 아래에 숨겨져 있다. 이것이 인간과 자연의 마지막 교감이다. 남성이 문명의 상징이니 여성이 자연의 상징이니를 떠나, 여성이고 남성이고 제3의 성별이고 간에 이것이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귀결이 될 것이다. 이토록 편안한 휴식이 도래할 것이며, 그것은 내일이 될지, 10년 후가 될지, 50년 후가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먼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우리 여성은, 남성은, 모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문제이다. - page 359 ~ 260

남성 중심이었던 사회에, 관념에 대해 비난하기 전에 나는 어땠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저 무심했기에 아직도 남아있는 이러한 불편한 시선들.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보니 인생은 꽤 괜찮은 것이더군요. 그러니 너무 염려말고 즐겁게 살길 바랍니다. 별 걱정 없이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길 바랍니다. - P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