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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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쉽게 접하고 잘 알려진 명화를 살펴보면 유독 여성 누드를 그린 작품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에서도 굳이...

그리고 또 하나.

위대한 화가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선뜻 여성 화가의 이름을 떠올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에 의한 삶의 고통을 멕시코적 전통에 실어 작품으로 승화 시킨 '프리다 칼로'가 떠오르긴 하지만...

그리고는...?!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의 시선'으로 미술의 역사와 고전으로 내려오는 그림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오거나 이미 익숙해져 간과해왔던 의문을 끄집어내 '불편한 시선'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동안은 무심코 당연시 여겼던 것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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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지 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

열 가지 키워드를 통해 다시 읽는 여성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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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사실 그녀가 꼬집어 얘기하기 전까지는 그저 '명화'이니까 당연시 받아들이곤 하였습니다.

여성이 나체로 몸부림치며 힘센 남자들에게 납치되는 장면이 신화라는 베일을 뒤집어쓰고 있으므로 용인되고, 이차 성징도 나타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가 성욕을 이글이글 불태우는 작품도 인간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너그럽게 해석되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다른 이름을 뒤집어쓴, 알고 보면 여성에 대한 폄하, 비하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눈이 뜨이기 시작하면서 저 역시도 껄끄럽고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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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느꼈던 불편함의 원인을 찾아보기 위한 키워드 열 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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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선뜻 떠오르지 않을까?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누드라면 왜 미술관에는 여성의 누드 작품만이 이렇게 많을까?

신화와 종교 이야기, 역사 속에서 남성을 유혹해서 파멸시키는 여성들이 어느 시대에 한꺼번에 소환되어 나온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심지어 영웅적인 여성조차도 이런 파멸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인이 자연스럽게 그려져 온 역사를 우리는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

거울을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여성이 거울을 들고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모습만 어리석음의 표상으로 그려졌을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일대 사건인 임신과 출산은 왜 미술의 본격적인 주제가 되지 못했는가?

명백히 소아성애를 담은 작품들을 우리가 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남성 노인은 기품 있게 그려지는 반면, 늙은 여성의 모습이 추악하고 사악하게 그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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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불편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이 각 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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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질문을 다시 바꿔야 할 것이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 없었던 사회적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여성 미술가가 남성과 동등하게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가?

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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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울분이 일어났던 수많은 '여류'들은 실력보다는 '미모'에 대한 평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작품은 좋은데 얼굴이 못생겨서 그림을 의뢰한 사람이 실망했다거나, 너무 아름다운 여성이라 실력을 의심받는다거나 하는 일이 미술사에 흔하디흔한 가십이라는 것은 결국 미술사 기술의 주체가 '남성'이라는 데서 기인했던 이유임에 너무나 불편했던 진실!

언제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화가, '로살바 카리에라'



물감과 붓 대신 파스텔을 사용해 사실주의적인 방식으로 대상의 특징을 아주 정확하게,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내지 못할 만큼 빠르게 구현했던 그녀에게 빈의 궁정에 초청받았을 때, 그를 소개한 이에게 칼 6세가 했던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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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베르톨리, 네가 데려온 여성 화가는 정숙한 여자처럼 보인다. 그런데 별로 아름답지는 않구나." - page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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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무례하고 쓸모없는 평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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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살바 카리에라가 평생에 걸쳐 남긴 작업물과 자화상을 보면 그가 아름다운지 아닌지 뒷말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하는 의문은 커져만 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카리에라의 용모에 대한 세간의 한심한 평가는, 그 이후에도 여성 화가들이 숱하게 겪는 외모 지적에 대한 시작일 뿐이었다. - page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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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편했던 '누드'에 대하는 태도.

'누드'라는 서양미술 속의 개념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남성 누드는 행동하는 주체이지만 여성 누드는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이 불평등한 관계의 존재가 껄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바버라 크루거'가 <너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조각상은 여성을 소재로 한 전통적인 작품이다. 한 손으로 음부를 가리고 다른 손으로 옷을 든 채 맨몸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던 크니도스의 비너스 이래 여성 조각상은 너무도 쉽게 관음적 시선의 대상이 되어 왔다.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을 사랑하여 함께 자고 입 맞추고 지극한 정성을 쏟은 끝에, 조각상이 체온을 가진 여성이 되어 그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신화 역시, 여성의 모습을 한 조각상을 조각상이 아닌 여성으로 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크루거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 조각상을 바라보는 남성 일반의 에로틱한 시선을 지적한다. 성별이 구분되어 있는 인간에게 에로티시즘 자체는 당연한 감정이지만, 그 시선의 방향이 일방적이라면 시각적 통제, 폭력성의 관점으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 page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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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시선으로 인해 껄끄럽고도 불편했던 미술계의 모습은 단순히 미술계만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이라는 표식 대신 '인간'으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정정엽'의 <흙이 되는 자화상>이 전하고 있었습니다.



감긴 눈과 벌어진 입, 한쪽으로 약간 찌그러진 얼굴, 얼굴 위의 마른 식물과 깃털 그리고 부장품일지도 모르는 팥 알갱이 무더기가 붉은 화면 아래에 숨겨져 있다. 이것이 인간과 자연의 마지막 교감이다. 남성이 문명의 상징이니 여성이 자연의 상징이니를 떠나, 여성이고 남성이고 제3의 성별이고 간에 이것이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귀결이 될 것이다. 이토록 편안한 휴식이 도래할 것이며, 그것은 내일이 될지, 10년 후가 될지, 50년 후가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먼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우리 여성은, 남성은, 모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문제이다. - page 359 ~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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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이었던 사회에, 관념에 대해 비난하기 전에 나는 어땠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저 무심했기에 아직도 남아있는 이러한 불편한 시선들.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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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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