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녀가 꼬집어 얘기하기 전까지는 그저 '명화'이니까 당연시 받아들이곤 하였습니다.
여성이 나체로 몸부림치며 힘센 남자들에게 납치되는 장면이 신화라는 베일을 뒤집어쓰고 있으므로 용인되고, 이차 성징도 나타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가 성욕을 이글이글 불태우는 작품도 인간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너그럽게 해석되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다른 이름을 뒤집어쓴, 알고 보면 여성에 대한 폄하, 비하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눈이 뜨이기 시작하면서 저 역시도 껄끄럽고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느꼈던 불편함의 원인을 찾아보기 위한 키워드 열 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선뜻 떠오르지 않을까?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누드라면 왜 미술관에는 여성의 누드 작품만이 이렇게 많을까?
신화와 종교 이야기, 역사 속에서 남성을 유혹해서 파멸시키는 여성들이 어느 시대에 한꺼번에 소환되어 나온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심지어 영웅적인 여성조차도 이런 파멸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인이 자연스럽게 그려져 온 역사를 우리는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
거울을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여성이 거울을 들고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모습만 어리석음의 표상으로 그려졌을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일대 사건인 임신과 출산은 왜 미술의 본격적인 주제가 되지 못했는가?
명백히 소아성애를 담은 작품들을 우리가 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남성 노인은 기품 있게 그려지는 반면, 늙은 여성의 모습이 추악하고 사악하게 그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불편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이 각 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질문을 다시 바꿔야 할 것이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 없었던 사회적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여성 미술가가 남성과 동등하게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가?
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음에...
무엇보다 울분이 일어났던 수많은 '여류'들은 실력보다는 '미모'에 대한 평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작품은 좋은데 얼굴이 못생겨서 그림을 의뢰한 사람이 실망했다거나, 너무 아름다운 여성이라 실력을 의심받는다거나 하는 일이 미술사에 흔하디흔한 가십이라는 것은 결국 미술사 기술의 주체가 '남성'이라는 데서 기인했던 이유임에 너무나 불편했던 진실!
언제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화가, '로살바 카리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