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역은 붐볐다. 오랜만에 그곳을 찾은 기무라 유이치는 그것이 일상적인 혼잡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특별한 행사가 있어서라고 한다면, 그 말도 납득이 갈 만했다. 오가는 수많은 이용객들에게 압도되며, 와타루와 함께 텔레비전에서 봤던 펭귄 무리를 떠올렸다. 수많은 펭귄들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었다. 그러나 펭귄들이 복작거리는 건 그나마 이해된다. 그 녀석들은 추울 테니까. - page 5
저에겐 이 첫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튼 왕년에 킬러였던 알코올 중독자 '기무라 유이치'.
그는 권총 한 자루를 들고 도쿄에서 모리오카로 향하는 신칸센 하야테에 오르게 됩니다.
이유는 바로 여섯 살이었던 자기 아들을 건물 옥상에서 떨어뜨려 중태에 빠뜨린 소년 '왕자'를 찾아 살해하고자 열차에 탔습니다.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영악한 두뇌를 가진 사이코패스 왕자는 오히려 기무라를 위협하며 위기에 빠뜨립니다.
한편 콤비 킬러 '밀감'과 '레몬'은 인질로 잡혔던 보스 '미네기시 요시오'의 아들을 구하고 몸값이 든 검은 트렁크를 들고 하야테에 탑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검은 트렁크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고 트렁크를 찾으로 왔다갔다한 순간 의뢰인의 아들이 죽게 됩니다.
쇼크사...?
아님.... 살해?!
같은 시간 '마리아'의 지시로 검은 트렁크를 찾아내 토코 다음 역인 우에노에서 내리라는 미션을 받은 '나나오'.
하지만 트렁크가 사라져 나나오 역시도 내리지 못하고...
두 시간 반 동안 밀폐된 기차 안.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
과연 이들은 무사히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 중 승자로 남을 사람은 누구일까?
이 박진감 뭘까!
아무래도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서로를 향한 총구는 결국 한 사람으로부터 일어난 이 아이러니함.
그럼에도 작가는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 않게 그 중심을 잡아가며 이야기를 끝까지 이끌어간 점이 대단하다 여겨졌습니다.
소설 속에선 '인간'에 대한 고찰이 엿보이곤 하였습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정당화가 필요하다.
자기는 옳고, 강하고,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의 언동이 그런 자기인식과 괴리되었을 때,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변명을 찾아낸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바람피우는 성직자, 실추된 정치가, 그들은 하나같이 변명을 구축한다.
타인에게 굴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기 정당화가 발생한다. 자신의 무력과 역량 부족,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이유를 찾아낸다. '나를 굴복시키는 걸 보면, 이 상대는 대단히 뛰어난 인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그 누구도 저항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며 스스로를 이해시킨다. 자존심이 세고 자신감이 강할수록 자신을 설득시키는 힘은 크게 마련인데, 일단 한번 그렇게 되어버리면 역학 관계는 명확하게 굳어진다. - page 135
"있잖아, 아저씨, 세상에서 올바르다고 하는 게 뭔지 알아?"
왕자는 신발을 벗고 무릎을 접어 올리더니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좌석에 등을 붙이고 엉덩이로 균형을 잡았다.
"올바른 게 어딨어."
"맞았어, 바로 그거야."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옳다고 여겨지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옳은지 어떤지는 알 수 없어. 그러니까 '이것은 올바른 거다'라고 믿게 만드는 사람이 제일 센 거지." - page 295
"결국은 정보가 많고, 그것을 자신의 상황에 유리하게 제공할 수 있는 인간이 가장 강한 거야. 예를 들면 이 트렁크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만 알아도 사람은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어." - page 299
참... 무섭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이 소설은 『그래스호퍼』, 『마리아비틀』, 『악스』로 이어지는 '킬러 시리즈'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정주행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초고속 열차의 멈추지 않는 논스톱으로 달리면서 각 소설마다 그려질 '킬러'를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긴 여운 속에 책을 덮어봅니다.
"다 왔어"라고 마리아가 말했다. 정류장에 도착했다는 의미겠지만, 나나오는 씁쓸하게 웃으며 '운이 없어"라고 중얼거렸다. - page 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