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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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

요즘 그녀의 작품들이 리커버로 나오는 건 알고 있었고...

그렇게 예전 작품들을 다시 마주하며 그녀의 필체에 젖어들 무렵!

신간 장편 소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그동안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분위기라고 하였습니다.

특히나 팬데믹 시대를 반영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은 생동감 있게 펼쳐졌다고 하니 또다시 그녀만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에 빠져들어보려 합니다.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여위고 키가 크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여든여섯 살의 '시노다 간지'.

대머리에 몸집이 작은 여든 살의 '시게모리 츠토무'.

축 늘어진 뺨이 불도그를 연상시키는 데다 숏 보브 스타일의 백발이 남의 이목을 끄는 여든두 살의 '미야시타 치사코'.

12월 31일 세 사람은 바 라운지 부스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마실 거리를 주문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 세 사람.

그래서 모두 추억담이라면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은 아직 길고 집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방은 하나밖에 잡지 않았지만 오늘 밤 세 사람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 page 14

1월 1일.

노인 셋은 엽총으로 자살하게 됩니다.

이미 충분히 살았습니다.

왜 세 사람은 섣달그믐날 밤에 함께 목숨을 끊었는지 그 이유를 말해 줄 이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에 남아있는 자들에겐 혼란이 찾아들고 그렇게 소설은 죽음 앞에 선 세 노인들과 타인의 죽음 뒤에 선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뭔가 진하고 어쩐지 쓸쓸한 맛만이 남았던 이 소설.

세 사람의 대화를 엿보면

"저기, 벤짱은-"

치사코는 큰맘 먹고 입을 열었다. 어쩐지 간지 앞에서는 묻기 힘들었는데 지금 간지는 자리를 비운 참이다.

"간지 씨가 처음에 계획을 말했을 때 어째서 곧바로 '나도'라고 했어?"

...

"하지만, 돈 따위."

말을 이으려던 치사코를 츠토무는 가로막는다.

"촌스러운 말은 하지 않기. 선택할 수 있는 건 '언제'냐는 것일뿐, 그건 만인에게 공평하게 오는 거니까."

치사코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하고 속으로 말한다. 나는 돈은 있지만, 돈이 있어도 갖고 싶은 게 없어져 버렸어.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 page 152 ~ 153

더없이 쓸쓸하고 공허한 이 말.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조금이라도 해방감을 느꼈을까...

살아남은 자들-아들, 딸, 손녀, 손자, 옛 동료, 부하 직원, 제자 등-로부터 생전 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부재로부터 오는 가눌 수 없는 슬픔과 원망, 자책, 감사, 그 외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가운데도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이...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이 왜 이리도 가슴 사무치게 남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잠 못 드는 날이 이어져 과호흡 증세를 일으키거나 너무 울어서 토할 때도 있다 보니 남편이 억지로 데려갔다. 남편의 지인인 의사는 여러모로 잘해 주긴 하지만 그곳에서 처방받은 여러 약을 복용해도 여전히 눈물은 느닷없이 흘러넘친다. 곤란한건 언제 어느 때 눈물이 터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마당에 심은 구근 하나가 올해 처음 꽃을 피운 것을 발견했을 때라든지 슈퍼마켓에서 장을 다 보고 바깥에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을 때 혹은 우연히 탄 택시의 운전기사의 느낌이 좋지 않았을 때 갑자기 세상이 아버지의 부재로 구성되어 있다는 감각에 휩싸인다. 그 감각은 손에 닿을 듯이 생생하고 세상 그 자체와 맞먹을 만큼 거대해서 미도리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러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쉬기가 힘들어지면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 - page 142 ~ 143

하지만 애초에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미도리는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쓸쓸했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비로소 용납되는 일이 있고 미도리는 그것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통감했다. - page 250

저 역시도 소설을 읽고 난 뒤 스스로에게 묻곤 하였습니다.

그 세 사람을 말릴 수 있었을까...?

아니 말리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일까...?

역시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뭐,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이란 게 있으니까요." - page 219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것이 '죽음'이기에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메시지였습니다.

너무나 깊은 여운이 남아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왠지 떨어지는 나뭇잎에, 불어오는 바람에도 눈물이 맺힐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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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세상과 만나다
이강엽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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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고전은 쉽게 접하면서도 읽곤 했었는데 고전은...

솔직히 어렵다는 벽이 존재하곤 합니다.

텍스트 자체의 해독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란...

(주입식으로 배운 몇 가지가 떠오르면서 또다시 어렵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젓게 되는데...)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자유로운 소통을 위한 가교로 이 책을 출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선 이 책을 쓰기에 앞서 60여 개의 키워드를 먼저 꼽았다고 하였습니다.

가난, 가문, 권세, 금기, 선악, 귀신, 깨달음, 꽃, 꿈, 나라, 달, 도, 도깨비, 돈, 돌, 땅, 물, 미인, 바보, 변신, 병, 복, 복수, 부처, 사랑, 서울, 성, 선비, 선악, 성숙, 성장, 수수께끼, 술, 스승, 시간, 신선, 아버지, 어머니, 여성, 여행, 영웅, 우애, 우정, 운명, 유배, 이상향, 임금, 자연, 저승, 전란, 정절, 죽음, 중국(기타 외국 포함), 지감, 집, 출세, 충, 칼, 탄생, 편지, 하늘, 학, 한, 호랑이, 혼인, 환생, 효.

와...

이렇게나 많은... 걸 다 했으면.... 거부감이 나타날 법 했는데 다행히 저자는 그 가운데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주제로 10가지 키워드를 선정하여 작품, 갈래, 작가, 시대별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꽃, 가난, 선악, 변신, 사랑, 자연, 죽음, 하늘, 복, 호랑이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펼쳐질 선조들의 지혜, 우리 문화의 원형을 탐색해 보고자 합니다.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를 넘어

우리 한국문화로 들어서는 문을 여는 열쇠"

고전문학, 세상과 만나다



솔직히....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작품들에서 키워드 속에 담긴 여러 의미들.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키워드가 끝나고 나면 뭔가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랄까.

분명한 건 고전문학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꽃'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꼽히는 모란, 장미 등을 도리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가난'을 깨끗한 가난 청빈, 가난을 편안히 여기며 안빈,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은 끝이 없는 망빈, 적수공권 적빈으로 가난의 여러 얼굴들을 이야기하였고

'선악'처럼 단순히 악에 대한 승리를 향해 치닫는 문학에서부터 악을 교화하는 문학으로까지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악을 응징하여 물리치고 악인의 추한 면모를 폭로하는 일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언제나 악을 물리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상대의 추악함을 폭로한다고 해서 자신의 선함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니다. 개과천선이 악한 존재 또한 교화를 통해 선하게 할 수 있다는 외적인 해결점이라면, 전화위복은 겉보기에는 악으로 인식되더라도 잘 다스릴 수 있다면 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내적인 해결점이다. - page 126

그리고 각 주제들은 각 장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 연관되곤 하였습니다.

'자연'을 이상적인 안식처로 표현하는 문학과 '죽음'이 또 다른 시작임을 인지하는 문학과 긴민하게 연관되며 그러한 문학작품에서 추구하는 '복'은 청복이기 쉬웠고

'사랑'을 이루지 못해 '변신'하는 문학이 있는가 하면,

'변신'을 통해 온전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모습도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자연'을 바라보던 선조들의 지혜.

모든 삶의 근원이 되는 전원에서부터, 잠깐 세속을 떠나 쉬는 휴식처, 또 끝내 몸을 의탁하여 영원한 평온을 갈구하는 이상향으로서의 자연까지 그 진폭이 넓었습니다.

자연은 곧 인간에게 천지만물의 이치를 드러내는 단서이다. 이런 자연관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일상이나, 철이 바뀌어 새로운 계절이 오는 이치가 곧 천도가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도학자로 명망이 높은 학자가 자연에 깃들면, 그 구체적 공간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치며 즐거워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때로는 벼슬을 물리고 치사하여 고향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이치를 궁구하기도 했고, 때로는 뜻밖의 귀양살이를 통해 속세에서 등한시했던 오묘한 도리를 알아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기행문이나 기행시라고 할법한 많은 작품들에서 심오한 철학을 담아낸 문학이 양산되었다. - page 206

이 책을 읽고 나서 예나 지금이나 중시되었던 것, 지금은 그 의미가 축소되었던 것,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것 등 그 모습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마주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고전문학에서 현대문학으로의 흐름.

그 발자취들이 오늘의 우리 문화를 이루어냈음에, 그리고 앞으로 더 무궁무진해질 이야기에 기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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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 다정한 문장으로 담아낸 흡족한 인생 한 그릇
최갑수 지음 / 얼론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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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얘기에 진심인 1인.

음식으로부터 오는 따스함 때문일까...

그런데 음식과 함께 다정한 문장을 전한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섬세하고 투명한 문장으로 여행과 인생, 사랑과 위로의 감정을 그려내는 작가 '최갑수'.

그가 처음 선보이는 음식을 주제로 한 에세이라고 하는데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읽어야 했습니다.

인생, 오늘도 맛있게 지나갑니다.

군만두, 두부, 짜장면, 막국수, 돈가스, 고등어구이, 재첩국, 멸치국수, 주꾸미 샤부샤부,

조개찜, 반지회, 매생잇국, 맥주, 라멘, 쌀국수, 크루아상, 우동, 와플......

음식과 인생에 관한 매콤하고, 짭짜름하고, 끝내는 달콤한 이야기들

맛있고 행복한 순간들의 기록!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전작으로도 느꼈었지만...

이번 에세이... 그냥 '좋다'란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읽어보지 않으면 느껴보질 못할 이 감정.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리고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 속엔 때론 달콤하고 짭짤한, 먹고 난 뒤의 씁쓸함에서 결국 우리네 '인생'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저자와 함께 공감하며 위로를 얻곤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먹고 마시는 일을 빼고 나면 뭐가 남을까. 인생은 허무한 것이고, 그 허무의 날들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사랑을 하고 여행을 떠난다. 고작 며칠 후면, 길어야 일 년 뒤면 새까맣게 잊어버릴 슬픔과 분노를 억지로 집어삼키고 잊어버리려고 애쓰느라, 우리는 소중한 시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돌이켜보니, 인생 아무것도 없다. 열심히 일하고 악착같이 살았던 기억은 머릿속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먹고 놀고 사랑했던 기억만이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 page 22 ~ 23

정말이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지만 어느덧 나도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어릴 적 바람은 그저 바람처럼 남겨졌고 이루어놓은 것 없는...

생각하니 울컥하게 되는데...

그런 나에게 전한 이 메시지가 참 울렸습니다.

자, 어쨌든 이만큼 왔다. 월급 말고는 얻는 게 별로 없는 인생이지만, 이젠 누구를 탓할 나이도 아니다. 열심히 해도 이룰 수 없다는 것쯤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도 쿠시카츠 한 입을 베어 물고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면 인생이 무작정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쓸데없다면 쓸데없는 말 같지만,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모여 내 인생이 있는 거지 하고 생각하면서 쿠시카츠를 한 입 베어 문다. 입술에 기름기가 잔뜩 묻지만 이게 또 튀김을 먹는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튀김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속수무책이다. 죄책감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두손 두발 다 들고 튀김 속으로 뛰어드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 page 146 ~ 147

오늘 저녁엔 튀김과 캔맥주 한 잔으로 나를 위로하고 어깨를 두드려주려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위로.

짜장면은 다 먹었지만 만두는 반을 남겼다. 배가 너무 불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봐야 짜장면 한 그릇에 군만두 한 접시지만 그래도 이 한 그릇에 사람 마음이 이토록 흡족해진다. 행복이란 게 별것 있나. 마감 끝낸 후 짜장면 한 그릇이면 된다. - page 67

군만두를 먹을 때마다 느낀다. 군만두 접시를 사이에 두고는 적과도 즐겁게 건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만두집을 나오며 생각한다. 인생은 짧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다. 따끈한 군만두 한 접시를 마음껏 먹을 수 없다면 인생 따위가 뭐란 말인가. - page 33

어차피 태어난 이상 죽음은 필연적인 것을.

굳이 골머리 아프게 지내기엔 그 하루가 아깝지 않은가!

그러니 맛있는 음식 먹으며 웃고, 울고, 행복해지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것 아닐까!



그에게 음식을 먹는 일은 생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덕분에 음식을 먹고 즐기는 일의 소중함을, 내 인생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오늘밖에 없는 것이지.'

달짝지근한 인생의 맛을 음미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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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1 -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편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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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

단풍과 가을바람이 내 마음을 살랑이는 요즘.

떠나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여행을 많이들 떠난다는데...

아직 나에겐 나중을 기약할 뿐...

굳이 몸이 떠날 필요가 있을까? .

책으로 떠나면 되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보곤 합니다.

그래서 만나게 된 책에서 떠나볼 여행지는 유럽에서도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와우!

떠나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가이드까지!

이야기꾼 '유시민' .

이만하면 떠나볼 만하지 않나요!

망설이면 지체할 뿐 당장 떠나보았습니다.

'인생은 너무 짧은 여행'이란 말에 끌려

몇 해 전 유럽 도시 탐사 여행을 시작했다.

_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1



저에게 여행은 그저 일상에서의 탈출이었고 유럽은 청춘이었습니다.

이십 대의 방황, 무모한 도전, 열정.

되돌아보니 그때의 '감정'만이 유럽을 대신하였기에 이번에 제대로 유럽을 느껴보고자 하였습니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나는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나 자신과 인간과 우리의 삶에 대해 여러 감정을 맛본다. 그게 좋아서 여행을 한다.

그러려면 도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건축물과 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일 뿐이다.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듯 도시의 텍스트도 해석을 요구하는데, 그 요구에 응답하려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 콘텍스트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말한다.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 그들이 처해 있었던 환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어떤 제약 조건 아래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다. - page 7

이제 도시에 말을 걸어보겠습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쉽지 않다?!

분명 가 본 곳이었는데... 심오하다!!

그땐 닫혀있던 귀가 뚫리니 묵직한 이야기가 한가득이라니!

놀라움과 감탄과...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이란 아쉬움과...

오만가지 감정과 생각이 뒤섞이면서 여행이라 쓰고 서사라 읽고 싶었습니다.

요즘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는 '로마'.



서구 문명의 가속 팽창 흔적을 지닌 도시답게, 고대부터 현대까지 문명의 발전 양상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는 이곳의 여행은 한 번의 여행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어떤 순서로 무엇을 보아야 할지, 로마 여행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오직 로마에만 있는 것은 되도록 빠뜨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가령 콜로세오를 비롯한 고대 유적과 가톨릭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이다. 도시 전체에 널린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건물과 광장, 미술관, 박물관, 기념관들은 마음이 끌리는 곳을 골라서 다녔다. 어차피 다 볼 수 없고, 비슷한 것은 다른 도시에도 많으니까. - page 100

정치, 군사, 종교, 오락, 미디어 복합단지였던, 고대 로마의 뇌수와 심장이었던 이곳 황궁 테라스를 바라보면서 서울 땅에 재현한 모습은 그가 아니라면 해 보지 못할 상상이랄까.

(난 절대 안 해봤을 상상을...)

그리고 포로 로마노 건축물들을 보며 흥미로운 신화와 역사를 품고 있다지만, 우리 눈에는 다 그게 그거 같아 보인다는, 역시 우린 같은 시선으로 보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는.

공감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때? 종종 만나서 놀면 괜찮지 않겠어?" 로마가 물었다. 테르미니역 승강장에서 공항 가는 기차에 오르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래, 가끔 만나는 건 뭐, 나쁠 것 없겠지. 다음에 보자. 바쁜 일 좀 끝나면. 차오(Ciao, 안녕)!" - page 165

이제는 국가 명칭이 '튀르키예'로 바뀐 이곳 '이스탄불'에서의 여행.

이 책에 나온 도시 중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역사가 무려 2천700년이나 되는 이스탄불의 최초 이름은 비잔티움이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름이 바뀐 4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였으며, 그다음 500년은 오스만제국의 수도였지만...

이젠 그 면모를 다 읽고 그때 만든 몇몇 건축물만 박제당한 공룡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는 이스탄불.

때론 난해한 텍스트들로 기묘한 불협화음이 느껴지지만 그마저도 매력적이기에 언젠간 이곳으로의 여행을 기대해 보려 합니다.

절망하진 마, 이스탄불. 물기를 머금은 잔 바닥의 커피 분말에서 오스만 제국의 향기를 맡는 여행자도 있어. 다음에 오면 생강가루를 섞은 커피를 청할게. 후미진 골목 구석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그리스정교 교회와 아르메니아정교 교횡에도 들어가 보고, 파묵 하우스도 가고 말 거야. 귀츨뤼 올, 이스탄불! - page 241

이미 그의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와있었습니다.

시대의 격랑을 이겨내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빛내는 네 도시,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의 이야기.

오...

다음 여행지는 너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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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마리아 - 혁명을 삼킨 불굴의 왕비
헨리에타 헤인즈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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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왕의 삶...

먼발치에서 바라볼 땐 부럽지만 실상은...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랬고 엘리자베스 여왕도 그랬고...

서태후 같은 이들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이 왕비의 이야기도 알고 싶었습니다.

온갖 음모와 계략, 혁명의 소용돌이 탓에 악녀가 됐고, 악녀가 됐기에 불행했지만, 불행을 견뎌내 꿋꿋이 살아남은 '헨리에타 마리아'.

그녀의 매력과 삶, 속 사정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국민 스스로 왕의 목을 벤 최초의 혁명,

국민의 원성이 대륙으로 둘려 퍼지는 가운데

혁명의 성패를 좌우한 여인

헨리에타 마리아가 있었다.

헨리에타 마리아





서기 1625년 5월 아침, 파리 루브르궁에 있는 어떤 소녀가 인생을 흔들 가장 중요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면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는 잉글랜드의 왕 찰스와 약혼할 것이기 때문이다. - page 27

헨리에타의 어린 시절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헨리에타가 한 살이 채 안 됐을 때, 고결한 아버지는 라바이약의 비수에 찔려 암살당해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됩니다.

어머니의 총애를 받지 못했지만 대체로 건강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삶엔 계속해서 먹구름이 드리워지는데...

자신보다 9살 연상인 찰스 1세와 결혼 준비가 끝났을 때, 예전과 결이 다른 사건이 발생해 결혼식이 다시 지연되기도 하였습니다.

제임스 1세의 서거.

그리고 자신의 종교적 이유로 왕의 측근들은 왕과 왕비 사이를 이간질했고 그녀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음에.

그녀를 호위한 더프린스호와 다른 배들은 아주 노련한 조타수들이 워낙 능숙하게 조종하나 덕택에 [불행히도 돈은 못 받았지만] 24시간 안에 영국 해협을 건넜다. 도버 항도 안전했고, 헨리에타 마리아는 눈을 번뜩이는 군중에게 관심ㅇ을 받으며 새로운 왕국의 땅을 밟았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예전처럼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바다는 다시 으르렁거리니, 마치 혼자 계속 자연의 분노를 받는 듯했다. - page 52 ~ 53

특히나 이들 사이를 냉담하게 만든 이는 찰스 1세가 가장 총애하는 신하였던 버킹엄 공작이었습니다.

남편의 머리와 가슴을 사로잡았던 버킹엄 공작.

1628년 8월 23일 휘황찬란한 업적을 쌓던 버킹엄 공작은 펠턴의 칼에 찔려 생을 마감한 뒤에야 두 사람의 애정이 점점 커져 유럽인들이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왕인 남편에게 왕위를 물려받을 후계자를 안겨주고팠지만 태어난 남자아이가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자마자 죽자 매우 괴로웠지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기운 차리려 했던 그녀.

그 후로 후계자 찰스를 비롯해 여러 아이를 낳으며 남편의 사랑과 아이들 사이에 안정적인 왕비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 행복이 지속되면 참 좋으련만...

찰스 1세와 왕비의 궁정에서 가톨릭교도가 활동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토록 당당하게 제 나라의 종교를 믿는다고 설파하다가 종교를 믿는다고 설파하다가 종교를 포기한 사람(남자든 여자든)이 가끔 나타나도 놀랍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개신교도는 감정이 격해지기 일쑤였고, 왕은 괜히 봐줬다가 문제가 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친히 경악하고 격분하며 함부로 개종한 범법자를 한동안 멀리하곤 했다. - page 163

그렇지 않아도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앙리에트 마리.

찰스 1세와 의회의 갈등은 최악으로 치닫고 내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녀는 누이 크리스틴에게 편지를 썼었는데 얼마나 절망에 빠졌는지...

"난 갑작스레 운명의 변화를 겪고 미친 게 분명해요. 여태 누리지 못한 행복에 겨워 불행을 모두 겪었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까지 힘들어했어요. 가련한 가톨릭교도와 제 폐하의 신하들이 고통을 겪을 때마다 제 가슴도 아파서 떨립니다. 폐하의 권력이 빼앗기고, 신자가 박해당하고, 사제가 교수대에 오르고, 우리에게 헌신한 사람이 폐하를 모셨다는 이유로 내쫓기고 목숨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는 제 심정을 상상해보세요. 전 아직 죄수이기에 폐하께서 스코틀랜드로 가면 그들은 제가 동행하면 안 된다고 할 거예요."

...

"전 왕국에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왕은 불행하고 가끔은 누구보다 더 불행하다는 사실을 잘 알아요." - page 224 ~ 225

외국에 피신한 그녀는 남편을 돕고자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은 오히려 더 그녀의 평판을 나쁘게 만들었고 사실상 전 세계에 유례없는 반향을 일으킨 찰스 1세의 처형.

수많은 불행에 시달린 탓에 헨리에타는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여느 때보다 종교를 가지고 사람을 더 편협히 대하게 됩니다.

남편이 떠났으니 더 이상 남편의 종교를 지킬 의무는 끝났다고 생각하며 장남과 차남에게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자 했고 이후엔 수도원을 지어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눈은 피로하고 체념했지만,

영혼은 예전처럼 눈물 흘리며"

여전히 반반하고 아름다운 흔적이 있기에 더없이 처연한 그녀의 모습.

그렇게 그녀는 조용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아버지와 오라비처럼 남편이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백성들을 보살피기를 바랐던 그녀.

하지만 국민들은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고, 역사는 그녀를 '남편을 홀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악녀'로 기록한 그녀의 이름, 헨리에타 마리아.

"나는, 나는 왕비 중 가장 행복하고 다복한 사람이에요.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 page 91

슬픔으로 지새운 나날을 떠올리며 이 말을 전했던 그녀의 모습이 지난 역사 속 평가에 다시금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를 비난했던 그 손가락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녀가 악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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