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625년 5월 아침, 파리 루브르궁에 있는 어떤 소녀가 인생을 흔들 가장 중요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면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는 잉글랜드의 왕 찰스와 약혼할 것이기 때문이다. - page 27
헨리에타의 어린 시절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헨리에타가 한 살이 채 안 됐을 때, 고결한 아버지는 라바이약의 비수에 찔려 암살당해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됩니다.
어머니의 총애를 받지 못했지만 대체로 건강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삶엔 계속해서 먹구름이 드리워지는데...
자신보다 9살 연상인 찰스 1세와 결혼 준비가 끝났을 때, 예전과 결이 다른 사건이 발생해 결혼식이 다시 지연되기도 하였습니다.
제임스 1세의 서거.
그리고 자신의 종교적 이유로 왕의 측근들은 왕과 왕비 사이를 이간질했고 그녀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음에.
그녀를 호위한 더프린스호와 다른 배들은 아주 노련한 조타수들이 워낙 능숙하게 조종하나 덕택에 [불행히도 돈은 못 받았지만] 24시간 안에 영국 해협을 건넜다. 도버 항도 안전했고, 헨리에타 마리아는 눈을 번뜩이는 군중에게 관심ㅇ을 받으며 새로운 왕국의 땅을 밟았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예전처럼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바다는 다시 으르렁거리니, 마치 혼자 계속 자연의 분노를 받는 듯했다. - page 52 ~ 53
특히나 이들 사이를 냉담하게 만든 이는 찰스 1세가 가장 총애하는 신하였던 버킹엄 공작이었습니다.
남편의 머리와 가슴을 사로잡았던 버킹엄 공작.
1628년 8월 23일 휘황찬란한 업적을 쌓던 버킹엄 공작은 펠턴의 칼에 찔려 생을 마감한 뒤에야 두 사람의 애정이 점점 커져 유럽인들이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왕인 남편에게 왕위를 물려받을 후계자를 안겨주고팠지만 태어난 남자아이가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자마자 죽자 매우 괴로웠지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기운 차리려 했던 그녀.
그 후로 후계자 찰스를 비롯해 여러 아이를 낳으며 남편의 사랑과 아이들 사이에 안정적인 왕비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 행복이 지속되면 참 좋으련만...
찰스 1세와 왕비의 궁정에서 가톨릭교도가 활동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토록 당당하게 제 나라의 종교를 믿는다고 설파하다가 종교를 믿는다고 설파하다가 종교를 포기한 사람(남자든 여자든)이 가끔 나타나도 놀랍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개신교도는 감정이 격해지기 일쑤였고, 왕은 괜히 봐줬다가 문제가 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친히 경악하고 격분하며 함부로 개종한 범법자를 한동안 멀리하곤 했다. - page 163
그렇지 않아도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앙리에트 마리.
찰스 1세와 의회의 갈등은 최악으로 치닫고 내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녀는 누이 크리스틴에게 편지를 썼었는데 얼마나 절망에 빠졌는지...
"난 갑작스레 운명의 변화를 겪고 미친 게 분명해요. 여태 누리지 못한 행복에 겨워 불행을 모두 겪었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까지 힘들어했어요. 가련한 가톨릭교도와 제 폐하의 신하들이 고통을 겪을 때마다 제 가슴도 아파서 떨립니다. 폐하의 권력이 빼앗기고, 신자가 박해당하고, 사제가 교수대에 오르고, 우리에게 헌신한 사람이 폐하를 모셨다는 이유로 내쫓기고 목숨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는 제 심정을 상상해보세요. 전 아직 죄수이기에 폐하께서 스코틀랜드로 가면 그들은 제가 동행하면 안 된다고 할 거예요."
...
"전 왕국에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왕은 불행하고 가끔은 누구보다 더 불행하다는 사실을 잘 알아요." - page 224 ~ 225
외국에 피신한 그녀는 남편을 돕고자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은 오히려 더 그녀의 평판을 나쁘게 만들었고 사실상 전 세계에 유례없는 반향을 일으킨 찰스 1세의 처형.
수많은 불행에 시달린 탓에 헨리에타는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여느 때보다 종교를 가지고 사람을 더 편협히 대하게 됩니다.
남편이 떠났으니 더 이상 남편의 종교를 지킬 의무는 끝났다고 생각하며 장남과 차남에게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자 했고 이후엔 수도원을 지어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눈은 피로하고 체념했지만,
영혼은 예전처럼 눈물 흘리며"
여전히 반반하고 아름다운 흔적이 있기에 더없이 처연한 그녀의 모습.
그렇게 그녀는 조용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아버지와 오라비처럼 남편이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백성들을 보살피기를 바랐던 그녀.
하지만 국민들은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고, 역사는 그녀를 '남편을 홀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악녀'로 기록한 그녀의 이름, 헨리에타 마리아.
"나는, 나는 왕비 중 가장 행복하고 다복한 사람이에요.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 page 91
슬픔으로 지새운 나날을 떠올리며 이 말을 전했던 그녀의 모습이 지난 역사 속 평가에 다시금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를 비난했던 그 손가락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녀가 악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