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 - 정상의 가면을 쓴 그들의 이야기
이윤호 지음, 박진숙 그림 / 도도(도서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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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이 단어가 익숙해지고 있었습니다.

'사이코패스'

익숙해졌다는 점부터 섬뜩한데...

근데 또 닮은 듯하지만 다른 단어도 있었습니다.

'소시오패스'

하아...

이젠 이러한 학술 용어가 대중 용어로 변모하고 우리들 속에 깊이 자리 잡았는데 저자의 이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올바르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에 대한 진실과 오해, 그 모든 것에 대해 알려준다고 하였습니다.

어둠의 그늘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그 실체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본능은 살아 있다.

그저 숨을 죽인 채 살고 있을 뿐!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허상,

그 진실을 밝히다!

우리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를 이야기하기 전 우리가 확실하게 인지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이코패스는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

그럼 우린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저 같은 경우에도 그들을 범죄자로 치부하면서 피해자의 고통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위험하고도 뒤틀린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많은 오해의 소지를 낳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그들은 누구일까?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허비 클레클리는 '사이코패시'에 대해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정신건강 상태에 의해 숨겨진 뿌리 깊은 감정적 병리'라고 기술했다. 다른 정신질환자들과는 대조적으로, 반사회적인격장애자들은 겉으로 자신감이 넘치고, 확신에 가득 차 있으며 사교적이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 저변에 깔린 장애로 인해 시간을 두고 그들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반사회적 행동들을 스스로 표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 page 21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임상적 진단이 아니며 반사회적인격장애의 진단 범주에 속하기에 이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모든 사이코패스가 범죄자가 아니듯, 모든 범죄자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시오패스 또한 사이코패스처럼 살인마, 범죄자, 잔인하고 비정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대다수의 소시오패스는 조용하게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이웃이나 동료가 될 수 있고, 가족이나 연인이 될 수 있다. - page 182

우리의 잘못된 통념 하나를 부셔야 비로소 평범하게 묵묵히 살아가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들도 사회에 잘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에 대한 이야기.

표면적으로 드러나있는 사건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만나는 이들을 통해 조금은 색안경으로 바라보았었는데 본질을 들여다보니 그들 또한 우리처럼 자신의 삶의 길을 걸어가는 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사실은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제임스 팰런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반사회적인격장애 뇌사진을 연구하면서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그가 위험한 사이코패스가 아닌 저명한 신경과학자가 된 건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의지'로 반사회적으로 될 수 있는 성향을 친사회적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주었습니다.

책 속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성향이나 인격을 측정하는 <로버트 헤어의 사이코패시 체크리스트(PCL-R)>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사이코패스를 진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이코패스 성향을 알아보기 위한 이 검사지.

점수가 높다고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이 아닌 반사회적 성향이 어느 정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활용 정도이기에 무조건적으로 확증 편향하지 않길 바라며.



책을 통해 그들을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하고도 상관있는 사람들일 수 있다는 점.

또한 나조차도 그러한 성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그들과 함께 하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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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사피엔스 - 과학으로 맛보는 미식의 역사
가이 크로스비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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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쩌다가 지구에서 유일하게 요리하는 종이 되었을까?"

이 질문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동안 '요리'라는 행위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못했기에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 궁금했으며 알고 싶었습니다.

불로 요리하는 원시인에서 요리로 예술하는 현대인까지.

요리 예술의 역사와 과학에 대해 한번 알아보려 합니다.

과학이 쏘아 올린 인류 최고의 예술, 요리

우리가 아는 지금의 '요리'는 어디서 출발했을까?

푸드 사피엔스



책 속에는 '인류 최초의 레시피'부터 '요리 혁명'을 거쳐 '요리 과학 시대'에 이르기까지 총 7장에 걸쳐 인류가 요리를 발전시킨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피고 과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따라 읽다 보니 요리가 인류의 진화에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요리는 과학이다!

시작은 200만~1만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불의 발견'

고인류는 요리라는 행위를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불을 경험했음이 틀림없고, 그런 불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다 플라이스토세(약 258만 년~1만 1,700년 전까지)에 빙하기가 시작되자 이제는 온기와 빛을 얻고 포식동물을 막는 등 불을 직접 피우고 이용하고 관리해야 할 이유가 충분해졌다.

...

요리도 처음에는 우연의 산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령 멧돼지가 산불에 타 버렸다든가, 사냥해 온 작은 동물을 모닥불 옆에 무심코 놔두었다가 익혀 버리는 사건처럼 말이다. - page 18

어쩌다 '불'을 마주하여 '요리'가 탄생하게 되었고 불에 구워진 식재료의 그 매혹적인 '풍미'로 인간이 또다시 반복하여 요리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요리하는 종이 '인간'이 된 이유를 묻는다면 '어쩌다'가 답이었습니다.

그러다 농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수천 년간 나타난 새로운 음식과 요리법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저에겐 너무나도 감사한 이집트 사람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최소 3,000년 전, 야자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법을 터득한 뒤에 팜유로 식재료를 튀기기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튀김이...

그리고 과학의 르네상스를 맞으며 우리가 아는 그 '요리'가 시작되게 됩니다.

예술의 영역을 넘어 과학의 세계에 진입한 '요리'.

특히나 요리 과학은 의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에 지금까지 요리에 대해, 요리 과학을 반드시 배워야 하는 이유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요리 과학의 잠재적인 폭발력은 우리가 먹는 음식의 영양 품질을 최대화하는 동시에, 비타민, 미네랄 등 필수 영양소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항산화제, 프리바이오틱스, 식물 영양소 같은 영양소를 강화하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는 데 있다.

우리가 음식을 '과학적'으로 요리할수록 심혈관 질환, 뇌졸중, 비만, 제2형 당뇨병, 치매, 각종 암 같은 만성 질환의 발병률도 낮아질 것이다. 요리 과학은 우리 삶의 질과 기쁨을 드높여 줄 것이다. 요리는 더 이상 기술이나 예술이 아니라 예술과 과학의 융합으로 이해될 것이고, 맛있고도 건강한 음식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 page 296

어려운 과학 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엄선한 레시피를 통해 과학적 원리를 설명해 주었던 이 책.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상식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있어서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도 선사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요리 '상식' 중 하나, 고기를 삶으면 육즙이 풍부해질까?

그렇지 않다! 산성도가 일정하다고 가정했을 때, 가열 시 고기 안에 유지되는 수분의 양은 가열 방법이 아니라 가열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왜냐하면 고기의 온도가 근섬유의 수축 정도와 수분 유지량, 고기의 부드러운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

보다시피 사라진 물의 양(및 소량의 지방)은 습식 요리와 건식 요리 양쪽에서 사실상 똑같다. 다만 물이 사라지는 방식이 다르다. 삶을 때는 주로 유실로 수분이 사라지는 반면 구울 때는 증발로 수분이 사라지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고기를 액체에 넣고 삶는다고 해서 육즙이 더 풍부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주 분명하게 밝혀졌다. - page 166 ~ 167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십자화과 채소'.

이는 30여 년 전부터 특정 암의 발병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에는 유방암과 방광암은 물론 어쩌면 폐암과 전립선암까지 예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하니 이 채소, 꼭 알아두어야겠습니다.

십자화과 채소의 예방 효과는 채소를 씹거나 잘라 파괴할 때 세포벽 내에서 형성되는 생리 활성 분자가 담당한다고 한다. 이 물질은 십자화과 채소의 얼얼한 맛과 냄새를 담당하는 화합물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십자화과 채소는 약 36종에 이르는데, 미국에서는 그중에서도 주로 케일, 콜라드잎, 중국 브로콜리(카이란), 양배추, 사보이 양배추, 브뤼셀 스프라우트, 콜라비, 브로콜리, 브로콜리 로마네스코, 콜리플라워, 브로콜리니 등 배추속에 속한 채소를 먹는다. 그 밖에 호스래디시, 청경채, 브로콜리 라베, 순무, 아루굴라, 물냉이, 무도 많이 소비된다. - page 250 ~ 251



다양하고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건 과학의 발전 덕분이라는 사실!

놀라웠습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과학.

과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 하나를 또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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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탐정 유동인 2 - 리턴즈 서점 탐정 유동인
김재희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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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왔었습니다.

강아람 형사와 서점 MD 유동인, 아니 서점 탐정 유동인을.

추리소설이라 하기엔 풋풋했던 그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던 이 소설.

드디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망부석 같지만, 매력적인 서점 탐정 '유동인'.

거칠 것 같지만, 순정파 여형사 '강아람'.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읽어보았습니다.

연애만 빼고 완벽한 남자 유동인이 돌아왔다.

서점 탐정 유동인 2 리턴즈



아람은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서점에 근무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책, 특히 추리소설을 수천 권 독파한 동인은 그간 아람과 함께 종갓집 종부 실종사건과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인사건, 북토크 음독사건, 물품을 이용한 사기 사건 등을 해결했다. - page 9

그리고 이 둘 사이에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연말 동인에게 고백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동인이 책보다 너의 냄새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큰 진전 없이 아람이 사건을 자문하면 동인이 그걸 조사해 주고,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사건 해결에 있어서만큼은 찰떡궁합을 보여준 이 둘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가을.

"저 사실 유 대리님이 서점 탐정으로 소문나서 뵙자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하신다는 게..."

"이게 박태영 작가님이 실종된 지 오래됐는데 해결이 안났거든요." - page 20

2016년 베스트셀러였던 추리소설 《인간의 파멸일기》 로 대히트 친 추리작가 박태영.

아내가 암으로 사망하면서 실의에 빠져 절필하였고 실종 직전 갑자기 글을 쓰기 위해 취재하려 간 이후 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그는 어디로, 왜 사라진 것일까?

이 사건을 필두로 유동인과 강아람은

서점 안 책 속에 숨겨진 천만 원짜리 수표

고가의 슈퍼카를 이용한 계속되는 접촉사고

발레 학원에서 발견된 몰래카메라

각 계절마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 사건들은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기에 현실성이 있게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아람과 동인은 죽이 참 잘 맞는 친구였다. 원장과 사장처럼 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동하며 벚꽃 잎이 흩날리는 걸 손바닥으로 받았다. 아람은 분홍빛 꽃잎에 가슴이 두근대며 설렜다. 동인이 옆에 있어 그런 건가. 이렇게 또 봄날은 간다. - page 225

이 둘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고 살펴보는 재미까지.

진정한 '코지 미스터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들 중 <미림문고 보물찾기 사건>에서 엿볼 수 있었던 '스토킹'.

'사랑'이란 이름 하에 일어난 이 일.

"난 그래도 널 진심으로 생각해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 나의 이별 이벤트를 영원히 기억해 주길 바랐는데."

...

"네가 이래서, 번번이 이래서 헤어지는 거야.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 왜! 왜! 내가 돌려받을 돈인데 여기 서점 직원들과 형사님까지 힘들게 하면서 고생시키는 거야! 대체 왜! 이 밤에!"

"그, 그거야 너에게 완전한 이별 이벤트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 page 143 ~ 144

이 역시도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용한 범죄행위.

자신의 사심을 채우기 위한 범죄행위.

예전엔 쉬이 넘어갔다면 이젠 경각심을 가져야 함을 당연한 사실이지만 또다시 다짐해 봅니다.

이젠 이 둘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묵직하면서도 따스함이 묻어 있었던 이 소설.

그래도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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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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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게 되었습니다.

재독해도 재미있었고, 저에게 세상 사는 게 힘겹고 지치더라도 꿋꿋하게 견디다 보면 밝은 빛이 오리라는 것을 일러주었던 소설.

그래서 그의 이 소설도 관심이 갔기에 구매해 놓고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초판 2021년에 구입해 놓았었는데 어느새 40만 독자를 사로잡은, 2022년 가장 사랑받는 소설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시나 이 소설!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의점.

그곳에서 일어나는 우리네 이야기.

어떤 모습이 그려질지 기대해 봅니다.

불편한데 자꾸 가고 싶은 편의점이 있다!

힘들게 살아낸 오늘을 위로하는 편의점의 밤

정체불명의 알바로부터 시작된 웃음과 감동의 나비효과

의점



염영숙 여사가 가방 안에 파우치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차는 평택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 page 7

분명 서울역에서 KTX 기차표를 끊을 때까지는 파우치를 지니고 있었는데 어디서 그것을 잃어버렸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불안해하던 찰나.

"염......영숙......이에요?" - page 8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동물의 음성 같은 어눌한 말투로 자신이 지갑을 주웠고 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갑을 돌려준다는데도 뭔가 불안하고 다른 걸 요구할까 두려움이 번졌던 염 여사.

곰의 목소리를 지닌 사내에게 다가가는데 낯선 사내 셋이 그를 둘러싸 파우치를 빼앗으려 하고 필사적으로 파우치를 지킨 그의 모습을 보고 노숙자이지만 뭔가 특별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이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청파동 골목 편의점을 하는 염 여사.

야간 알바를 하는 이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자리에 염 여사는 노숙자 독고 씨를 고용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저한테 왜...... 잘해주세요?"

"독고 씨 하는 만큼이야. 게다가 나 힘들고 무서워 밤에 편의점 못 있겠어요. 그쪽이 일해줘야 해요."

"나...... 누군지...... 모르잖아요."

"뭘 몰라. 나 도와주는 사람이죠."

"나를 나도 모르는데...... 믿을 수 있어요?"

"내가 고등학교 선생으로 정년 채울 때까지 만난 학생만 수만 명이에요. 사람 보는 눈 있어요. 독고 씨는 술만 끊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 page 50

느릿느릿한 말투, 굼뜬 행동, 곰 같은 사내.

그런데 그와 있으면 그동안 터놓지 못했던 말들을 할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며 한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 누군가를 돕는 일이 보람 있다는 걸 체험했고, 자기에게 그럴 능력이 숨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어제도 유튜브 영상을 찍으며 독고 씨를 생각했다. 그에게 가르쳐주듯 차분히, 천천히, 말하고 움직였다. 어쩌면 노숙자 같은 사람들을 도울 방법은 그렇게 좀 더 느리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아무런 사회와의 끈도 없다고 느끼던 자발적 아싸인 자신이 무언가 연결점을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독고 씨에게 도움을 받은 셈이다. - page 80

저 역시도 독고 씨를 통해 참 많은 걸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위로도 받았습니다.

특히나 이 소설에서 우리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이 이야기.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 page 252 ~ 253

힘겨운 시대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조금 특별한 편의점으로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편의점.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 page 243

오늘은 편의점에서 '옥수수수염차'를 사 음미한 뒤 『불편한 편의점 2』를 읽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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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의 인문학 - 아주 사소한 이야기 속 사유들
박홍순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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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이면 개인적으론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곤 합니다.

연말이라 그동안 문자로만 안부를 전하던 이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도 있고...

설레임과 아쉬움으로 맞이하는 12월이면 마냥 가볍고도 즐겁게 지내고픈 1인입니다.

우선 '수다'라는 말에 끌렸습니다.

친구나 동료, 또는 지인들이랑 일상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누며 가볍게 넘기고 금방 잊어버리곤 하는 그런 수다를 이 책에선 조금 더 들여다보면서 인문학적, 철학적 탐구를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야말로 가볍게 읽으면서 인문학적 사유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저 없이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먹방, 꼰대, 줄임말, K팝, 음모론, 보수, 진보...

일상의 수다 속 소재에서 뻗어가는 인문학 이야기!

수다의 인문학



본문에 들어가기 전 '모래알'이란 단어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래알이란 단어를 들으면 흔하고 사소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 "부서져버린 모래알처럼" 등과 같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덧없음을 비유할 때 쓰이는 것처럼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한 알갱이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우주를 본다"

라는 문장을 쓴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로부터 저자는 이야기하였습니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가 있다. 모래를 있게 한 원리가 곧 세계를 만들어낸 원리이기도 하다. 비슷한 의미에서 정지한 듯 보이는 일상의 짧은 시간에는 견고한 사회구조를 만든 오랜 역사가 녹아 있다. 일상에서 접하는 작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 절실한 삶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과 사회를 만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 page 7

우리가 친구들고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는 동안 하는 자잘한 이야기, 사소한 불만 등 열띠게 말하다가도 그 자리가 끝나면 일상의 수다로 치부되는 그 '수다'로부터 그 이면의 역사적인 맥락이나 사회구조 이야기의 지평을 확장해 보고 나아가 철학적으로 깊어진 인식까지 나아갈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하였습니다.

책의 목차는 이러했습니다.



목차만 보더라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먹방, 꼰대, N포세대, K팝, 음모론, 진보와 보수 등으로부터 인문학, 철학적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것을 보니 정말이지 인문학과 철학은 어렵지 않은,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자리에 가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오곤 합니다.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

이 말로부터 프랑스 화가 알베르 기욤의 <막간극>에서 해석해 보고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으로부터 삶에서 일과 여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며

"여가의 현명한 이용은 문명과 교육으로 가능하다. 평생 장시간 일해 온 사람이 갑자기 일하지 않게 된다면 따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상당한 양의 여가 없이는 최상의 많은 것에서 차단된다. (중략) 현대의 인간은 모든 일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일하는 법이 없다. (중략) 농부들의 무도회는 외진 시골을 제외하곤 사라졌지만, 그들을 도야시켜 주던 그 충동은 여전히 인간의 본성 속에 남아 있음이 분명하다. 도시 사람들의 즐거움은 대체로 수동적인 것으로 되어버렸다."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보았었습니다.

직업을 위한 교육이 중요한 만큼이나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여가 교육도 절실하다. 어떤 분야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람을 넘어 예술이나 스포츠 분야에 직접 행위 주체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차적으로 사회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그때까지 자신의 즐거움을 미룬다면 바보짓이다. 먼저 민간 차원에서의 여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할 일이다. - page 85

그리고 읽으면서 뜨끔했던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

'신동엽'이라는 이름과 함께 누가 먼저 떠오르는지 묻는다면 저 역시도 개그맨 신동엽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에피소드로 《신동엽 전집》의 해프닝이 그려지면서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자가 전한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미친 듯이 정신과 육체를 뒤흔들어대는 그 헛것을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벗으로 느낀다. 오히려 언제든지 뒤쳐지거나 탈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대중매체를 대하며, 거기에 기꺼이 온몸을 맡긴다. 진정 자기 인생의 주인이고자 한다면 고독해져야 한다. 내 안에서 성찰하고 시인의 감성을 만나고자 한다면 외로워져야 한다. 최소한 밤의 시간만이라도 자기 안을 고독으로 채우자. - page 105

무조건적으로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멀리하자는 말이 아닌 여가의 균형을 찾는 일이 필요함을.

사색이나 문학적 감흥을 통해 내면을 깊고 풍요롭게 하는 독서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어떨지가 결국 앞서 이야기했던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의 해결책 중 하나였음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럼없이 읽어내려가면서도 내면에 조금씩 쌓이는 교양에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이 책.

덕분에 아주 사소한 이야기라도 한 발 더 들어가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음 역시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다 떠는 것에 눈치가 보였다면 이젠 맘껏 수다 떨며 그 이면의 인문학의 지평도 넓혀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고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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