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몰랐었는데...

<헤어질 결심> 영화에 말러의 교향곡이 삽입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름답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던 음악.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그래서 그에 대해 궁금하였습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인연이었을까.

마침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삶과 예술 공간을 찾아간다고 하니 그 발걸음에 저도 발을 맞추고자 하였습니다.

삶, 그 속되고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용한

구스타프 말러의 삶과 예술 공간

말러



말러 음악의 음향적 원천이 된 이홀라바에서부터 음악 인생의 정점을 찍은 빈을 거쳐 마지막 예술혼을 사른 뉴욕에 이르기까지.

그 여정이 웅장한 서사였고 음악처럼 진한 여운을 남기곤 하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디에서나 소외된 자의 운명적 고독이 묻어 있었던 구스타프 말러.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에서는 유대인으로, 어디에서나 이방인이고 환영받지 못한다" - page 11 ~ 12

타고난 고독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살지 않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적 드문 숲속에서 몽상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자연만이, 음악만이 온전한 자신만의 세계였던 말러.

그래서 말러의 음악은 여느 작곡가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세상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당시 사회가 존중하던 형식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파괴했고, 촌부들의 세속적인 권주가 혹은 거리의 노래를 서슴없이 음악적 재료로 사용했다. 여기에서는 당시 고전음악을 듣던 부르주아들의 고상한 취향도, 세상을 향한 아부도 발견할 수 없다. 그랬기에 그가 생전에 작곡한 작품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 page 12

말러가 살던 시대는 '죽음'에 꽤 익숙하였습니다.

전쟁과 전염병이 삶을 갉아먹던 시절.

열네 명의 형제자매들 중 절반이 사망했을 만큼 죽음은 그의 가족 가까이에서 아른거렸고, 그런 가장 괴롭고 슬픈 상황 속에서 그가 살던 집 아래층 선술집으로부터 흥겨운 유행가 가락이 울려 퍼지는 정서 부조화의 순간을 비일비재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죽음과 같은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도 나와 상관없다는 듯 들려오는 웃음소리.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자각한 그는 훗날 음악에 고스란히 담게 됩니다.

말러가 장송 행진곡과 죽음의 무도를 통해 바라본 죽음은 한 개인의 물리적 죽음이라기보다는 정신적 또는 사회적 죽음을 암시한다. 전쟁, 인종차별, 문화적 소외로 무의미해진 인간들에게 현실은 파편화되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불우한 존재들의 사회적 죽음을 암시하는 말러의 장송 행진곡에서는 그러나 애도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대신 그들의 부당한 죽음에 시위하듯 저벅저벅 행진해 온다. - page 223

말러의 인생을 이야기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알마 말러'.

말러 곁에서 영감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이상적인 예술 조력자 알마는 '말러의 뮤즈'라 칭송할 수 있었고 그 역시도 자신의 음악을 헌정한 처음이자 마지막 인물이 알마 말러뿐이었습니다.

타고난 미모와 몸매, 그리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사교계의 꽃으로 급부상했던 그녀.

스스로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았으면서도 유대인을 혐오하는 자기모순에 빠졌으며, 유대인인 말러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강한 혐오를 드러냈던 그녀.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도 보수적인 남편의 반대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가정주부로 살아야 했던 그녀.

만약 말러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알마는 그녀의 소원대로 작곡가가 되어 '알마 신들러'라는 자신의 이름을 음악계에 남길 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만큼 공허한 단어도 없지만, 지금 전해지는 알마의 악보는 그녀의 음악성을 가늠하기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턱없이 부족하다. 1910년, 말러의 적극적인 격려 아래 출판된 그녀의 첫 가곡 악보집은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화해의 징표였다. 아내와 그로피우스의 외도로 고통받던 작곡가는 그녀를 예술적으로 억압해서 벌어진 비극이라 자책했던 것 같다. - page 174

혼인 관계 중 불륜을 저지르며 말러에게 정서적 치명상을 입힌 그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평생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도 기울지도 않은 채 자기만의 외길을 걸었던 말러.

그만의 독창적인 음악은 늘 바로 지금, 동시대의 소리로 치열하게 승화되어 울려 퍼져 왔습니다.

말러 음악의 동시대성, 아니 현재성을 최고의 희열과 더불어 감상할 수 있는 연주는 명반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실황 콘서트다. 수십 개의 악기가 동시에 소리를 터뜨릴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벌어지는 예측불가능한 신성한 '화합'은 인공적인 음원으로 복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소음과 음악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는 와중에 말러의 음악은 듣는 이는 물론 연주하는 이 하나하나의 인생에 저마다 진한 의미를 남기고, 추억을 빚어내며, 삶의 모순을 마주할 용기를 심어 준다. 가장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공동체적인 예술. 말러의 음악이 지닌 가치는 바로 그런 것이다. - page 316




부조화 속에서 피어난 그의 삶과 예술.

쓸쓸함과 고독이 마냥 처절하게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는 고난 속 극복이 아닌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포용하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의 음악을 가만히 음미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타라 미치코 지음, 김지혜 옮김 / 더난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살고 싶어!"

"저렇게 나이 들고 싶어요."

감탄, 공감, 응원, 소망, 희망의 댓글이 끊이지 않는다는 <Earth 할머니 채널>의 주인공 '타라 미치코'.

그녀의 일상이 궁금하였습니다.

아니, 뭔가 위안을 얻고 싶었습니다.

촘촘히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

손길 하나마다

한땀

한땀

삶이 짜여간다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지금 87세인 타라 미치코.

55년 된,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아파트에서 예전엔 다섯 가족이 함께 살았지만 딸 하나와 아들 둘은 오래전 독립했고 남편은 7년 전에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살고 있는 그녀.

2020년, 당시 중학생이던 손자(둘째 아들의 아들)와 <Earth 할머니 채널>이라는 유튜브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어떤 꾸밈이나 거창한 이벤트도 없는,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담았는데 그 모습으로부터 사람들은 위안을 받게 됩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행복한 87년이었습니다. 저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고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살아가려고 했어요. 언제나 '즐기지 않으면 손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기에 힘들 때도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돌아보면 항상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 page 40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요. 때가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죠. 실제로 항상 그렇게 되어왔고요. 그래서 지금도 미래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이지요.

그보다는 지금을 즐기고 싶어요. 매일 긍정적으로 살아야지요. - page 206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고 일러주시는 그녀로부터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은 삶에서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15평의 아파트 모든 공간에 그녀의 손길이 닿아있었습니다.

손수 그린 그림, 직접 바느질하고 뜨개질한 침대 시트, 오랫동안 모아온 예쁜 그릇들.

따스함과 정겨움이 느껴졌던 이 공간이 무척이나 특별해 보였습니다.

혼자 밥 먹을 때 쓰는 그릇은 바로 꺼낼 수 있도록 부엌 싱크대 위의 찬장에 넣어둡니다. 적게 먹는 편이라 조금만 담아도 에쁜 작은 그릇이 대부분이에요.

대충 자른 어묵도 마음에 드는 그릇에 담으면 훌륭한 반찬처럼 보인답니다. 눈이 즐거우면 배 속도 마음도 만족스러워지는 법이지요. - page 58

버림받은 작은 천 조각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직접 만드는 즐거움 중에 하나예요. 컵 받침이든 마스크든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보람이 있죠.

주로 저녁을 먹고 나서 바느질을 해요. TV를 보면서 2시간 정도 짬짬이 하는 바느질은 나만의 힐링 시간이죠. 손을 움직이며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는 기쁨이 크답니다. 마감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바느질하는 시간을 즐깁니다. - page 145

그렇다고 마냥 소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속에서도 레몬식초와 같은 특별함이 더해져 그녀만이 그려낼 수 있는 낭만이 엿보이곤 하였습니다.

요리는 간단한 것이 좋지만 음식 만드는 수고를 즐길 줄도 알아요. - page 89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가고 싶은 곳에 못 간 적은 없어요. 일단 가서 친구를 사귀면 되니까요. 친구를 사귀지 못하더라도 여행의 목적인 영국의 시골, B&B, 펍을 즐길 수 있다면 만족스러운 여행이지요.

...

혼자 여행을 떠나면 불안하지만 저는 호기심이 불안감을 밀어내는 편이에요. 일단 뛰어들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니까요. - page 175

나이가 들면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고 힘에 부칠 테지만 그녀는 나이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모습은 저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고 적당히도 괜찮다

고 알려주신 그 가르침 새겨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
한새마 지음 / 북오션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플레시아'

저에겐 포켓몬으로 귀엽게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열대우림의 덩굴식물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식물이며 식물종 중에서 가장 큰 꽃을 가지고 있다. _ 두산백과

검색해 보니 붉은색이 감돌며 얼룩무늬가 있는 큰 꽃잎들로 피어난 꽃이...

저에게 조금은 충격적인 비주얼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라플레시아, 표지에 그려진 저 여인의 등에 새겨진 이 꽃.

이 문신으로부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였습니다.

라플레시아,

시체꽃 문신에 숨겨진 비밀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



심상치 않은 날씨.

선체는 색색의 휘장으로 휘감았고 갑판엔 온갖 문양의 깃발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동, 서, 남, 북을 가리키는 네 개의 창.

잔인하게 살해된 어린아이 시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여자아이.

"얘, 괜찮니? 너 이름이 뭐야?" - page 9

넋이 나가 있는 여자아이의 주먹에 우주함대 선장 면허증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아이의 생년월일과 이름이 적혀 있었고

<02.10.09 ㅁ시호>

좁고 마른 여자아이의 등판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갑판에 죽어 있던 여자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시체꽃 문신이었다. - page 10

범인은 무슨 이유로 시호의 동생을 잔인하게 죽이고 시호 등판에 끔찍한 문신을 새긴 것일까?

어느덧 시간은 흘러 시호는 강력팀 형사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잡히지 않은 범인들.

왜 동생을 처참하게 죽어야 했으며, 그 모습을 왜 자신의 등에 새긴 것인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기에 전국의 사찰과 타투숍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자가 없기에 스스로 자신의 문신과 똑같은 문신을 새기는 라플레시아 걸로 범인들을 추적하던 중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시체에 얼굴이 없는, 아니 누군가 얼굴을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댄 끔찍한 살인사건.

피해자의 왼손 손바닥에 산스크리트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다섯 개의 꽃잎을 붉은 산스크리트어로 채워져 있기에 공부를 했던 시호.

'옴 마니 반메 홈'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완진언' 줄여서 '관세음보살 진언' 혹은 '육자진언'.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세요?"

"글쎄, 그건 자네들이 알아내야 하는 거고." - page 29

수사가 진행될수록 사이비 종교 단체의 어둡고도 더러운 진실이 밝혀지고 조금씩 자신이 알고자 했던 시체꽃 문신의 비밀도 파헤쳐 가는데...

잔인하지만 슬픈 이야기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하아...

사이비 종교에 빠진 이들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가여웠습니다.

그렇게 만든 가정, 사회...

그들을 향한 손가락의 나머지는 우리의 책임이었음에.

"나 진짜 자존감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있었어. 근데 여기 다니고 나서부터는 확 달라졌어. 나한테 관음교는, 이제 믿음의 문제가 아니야. 친구고 가족이고 연인이야."

나도 그랬다. 여기 있으니 돈을 벌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엄마 일을 거들어주지 않아도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았다. 외롭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기분이었다. - page 77

시호는 사건을 마주하면서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부분을...

자꾸만 되뇌게 되는 건...

살인은 살인으로 갚으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동생의 배를 가른 놈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한 이유가 순전히 누군가의 목숨을 연명해 보겠다는 어리석은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면? 과연 그놈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과연? - page 233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진정한 용서가 있을 수 있을까...

씁쓸하기만 하였습니다.

여전히 어디선가는 활동하고 있을 사이비 단체.

이들에 대한 규제법 제정이 필요함을, 그전에 사회가, 가정에서의 주변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을 지키는 아이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김정화 옮김 / 꿈꾸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보다 제가 더 좋아했던 『전천당』.

『전천당』의 작가이자, 어린이 판타지 문학에 독보적인 작가 '히로시마 레이코'가 이번엔 청소년 독자에서 성인 독자까지 아우를 수 있는 판타지를 선보였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읽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애처로울 수가...

목숨이 다하지 않은 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신과 함께 자유를 갈망하는 한 소녀의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시작된다.

신을 지키는 아이



고향을 떠난 지 여드레.

아침부터 밤까지 아저씨를 따라 줄곧 걷기만 한 열두 살 소녀에게는 몹시 힘든 여행이었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나게 됩니다.

빨간 기와지붕이 여러 개 있는 성처럼 거대한 저택.

"저기가 아고 저택이야. 이제부터 네가 신세를 지게 될 곳이지. 이제 조금만 참고 기운 내거라." - page 9

끼기기 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왜 이리 늦었나?"

"송구하옵니다. 눈이 발길을 붙잡아서요. 하지만 이 아이는 아주 당찹니다. 여기 올 때까지 우는소리 한마디 안 하더라고요. 어르신이 원하시던 강한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역시 거친 땅에서 자란 아이를 고르길 잘했군. ...... 주로, 자네는 물러나게. 이 아이에게 할 말이 있네." - page 14

열두 살의 치요는 이제부터 이곳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어떤 분의 수발을 들고 이야기 상대를 해 드리면 되는 일인데, 그 어떤 분이 바로 아고 집안을 지켜주는 보호신 '아구리코'.

별채 안 어두컴컴한 금줄 너머 아고 가문을 지켜주시는 보호신과의 첫만남은 아찔했습니다.

작은 소녀의 몸이 갑자기 부풀어 올라 눈은 새빨갛게 불타오르고, 입은 귀까지 찢어지고, 날카로운 엄니를 내보이며 뿜어 나오는 격렬한 분노에 살갗으로 통증이 밀려오게 됩니다.

하지만 시중을 들 수밖에 없음에 매일 별채로 찾아가고 아구리코도 조금씩 치요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별채를 나와 저택 부엌에서 일하는 '고마키'라고 하는 이로부터 아구리코를 '마음의 병을 앓는 아고 유사이의 여동생'이란 공주님으로 불리며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채 살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정말 이상한 일이지. 아고 집안의 안사람들은 누구보다 좋은걸 먹고, 의원이 항상 옆에 있고, 약도 다 있는데 말이야. 어떻게 된 건지 태어나기 얼마 전에 유산이 되어 버린다니까. 와카사 님도 벌써 두 번이나 유산을 했어."

갑자기 고마키가 목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큰 소리로 말할 순 없지만 이 집에는 재앙이 내려져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무서운 일이 늘 일어날 수 있겠어? 아아 나도 느낀다니까. 여기는 무언가 있어. 아고 사람들을 미워하는 무언가가." - page 62

아구리코에게 따지듯 묻게 된 치요.

아구리코가 당했던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된 치요는 아구리코가 그토록 원하는 아구리 숲으로 도망갈 수 있게 하기 위해 탈출 작전을 짜게 됩니다.

과연 치요와 아구리코, 이들은 아고 집안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가슴 찡한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제 가슴이 참 먹먹하였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끝없는 욕심.

풍족해짐에 따라서 집안 사람들 마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소용돌이치게 되었다. 그것은 다시 가난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자기들이 계속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는 아구리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아구리코는 사람이 아니다. 언젠가 자기들을 버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구리코를 잡아둘 수 없을까? 그렇다. 영원히 잡아둘 수는 없을까? - page 69

추악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건...

순수한 이들이 있었기에.

자신의 목숨 바쳐 살리고자 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사람이 사악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간만에 '권선징악'으로부터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배신하지 않았던 히로시마 레이코의 이야기.

앞으로도 많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10만 부 기념 응원 에디션)
최서영 지음 / 북로망스 / 2022년 8월
평점 :
품절


출간 4개월 만에 10만부 돌파!

이렇게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기 계발서는 넘쳐나고 읽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에 뜸하게 읽곤 하기에 처음엔 주저하였습니다.

하지만 왜 수십만 독자들이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는지 궁금하였기에, 마침 저도 위로가 필요했던 요즘이기에 첫 장을 펼쳐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내 인생을 최고로 만들고 싶어"

오늘보다 더 근사한 내일을 위한 인생 길잡이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우선

나는 어떤 사람일까?

란 물음부터 시작하여야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뭐라고 단정 지어서 말할 수 없지만 주위의 평판에 신경을 쓰며 자기검열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런 저에게 건넨 충고.

나에 대한 모든 평가와 오해를 일일이 해명하는 것만큼 '을'을 자처하는 일이 없다. 그러니 내가 도마 위에 올랐다는 생각이 든다면, 변명하고 위축되기보다는 시간이 진실을 밝혀주길 기다리며 묵묵히 나의 할 일을 해나가는 편이 훨씬 낫다. - page 36

평판을 좋게 바꾸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그에 휩쓸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함을 일러준 그녀.

그리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선 크고 작은 배움들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새로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함을 일러주었습니다.



아마 저자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자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잘되길 가장 바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선택이 틀릴까봐 겁내는 대신, 내가 선택한 길을 맞는 길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 잊지 말자. 길을 만들면서 계속 걸어가면 된다. 그래야 내 인생이다. - page 130

틀렸다고, 아니라는 말 대신 건넨 그녀의 다정한 안부.

뭐든 해도 된다.

잘될 줄 알았어.

해낼 줄 알았어.

충고와 조언보다 이 말이 듣고 싶었기에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젠 청춘이라 불리는 나이를 벗어나게 되면서 조금씩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너무 멋지지 않은가!

무엇보다 멋지게 나이 드는 법은 따로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으면 좋았을 것들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하루하루 나를 발전시키다 보면 어느새 내가 꿈꾸던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란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1. 책 읽기

2. 일기 쓰기

3. 공부하기

4. 있는 그대로 몸 관찰하기

5. 내 색깔 찾기

아마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내 일을 잘 해내고 싶고,

행복에 가까워지고 싶고,

어제보다 더 잘살고 싶은.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엔 흑역사가 생기기 마련.

그렇다고 주저하기보단 여태까지 많은 실수들을 저지르고도 무사히 살아온 나니까 용기를 내 나아가보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나를 믿어주는 이를,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넨 이를 만나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