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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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아일랜드에서는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2021년부터 미국 독자 대중 사이에 서서히 화제가 되더니, 이제는 독자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하려는 듯 애타게 찾는 소설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 세대에 한 명씩만 나오는 작가"로 불리는 아일랜드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클레어 키건'.

드디어 한국 독자들에게도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에서는 출간 이래로 교과과정에 줄곧 포함되어 자국의 국민 모두가 읽는 소설로 자리 잡고 있으며 영화 「말없는 소녀」 로 제작되어 올해 5월 31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이 작품, 읽어볼 만큼 매력 있지 않나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하며 소녀를 따라가봅니다.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소녀가

인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짧고 찬란한 여름

사랑과 다정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

태어나 그것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는

맡겨진 소녀



일요일 이른 아침, 클로너걸에서의 첫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을 향해 웩스퍼드 깊숙이 차를 달린다. 덥고 환한 날이다. - page 9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어린 소녀는 아빠의 차를 타고 달리며 먼 친척 킨셀라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아주머니로부터 어색함에 주저하며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 page 17

가난한 집에서 아이가 많아 제대로 애정을 받지 못하며 자랐던 소녀는 이제 먼 친척 부부의 집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집에서 마주하는 것들은 소녀가 그동안 겪어온 일상과는 완전히 상반되는데...

살뜰한 관심과 배려로 소녀를 돌보는 아주머니.

겉으론 무뚝뚝해 보여도 다정히 마음을 전하는 아저씨.

이들로부터 소녀는 사랑과 다정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내 짧고도 찬란한 여름의 끝자락을 맞이하게 됩니다.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차라리 빨리 가고 싶다. 얼른 끝내고 싶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축축한 밭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들, 언덕들을 내다본다. 처음 왔을 때보다 더 푸르러진 것 같다. - page 81

하지만 소녀는 돌아가는 킨셀라 아저씨를 향해 달리며 외치게 되는데...

나는 손을 놓으면 물에 빠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저씨를 꼭 붙든 채 아주머니가 목구멍 속으로 흐느끼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꼭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때문에 우는 것 같다. 나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억지로 뜬다. 킨셀라 아저씨의 어깨 너머 진입로를, 아저씨가 볼 수 없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 page 98

짧지만 강렬했던 소설.

소녀의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씩 풀리는 모습이 찡했다고 할까...

특히나 마지막의 "아빠"라는 외침이 왜 이리도 가슴을 울리던지 아이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지면서 책장을 덮기 싫었습니다.

소설 속에 장면 하나하나가 의미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초상집에 다녀와서 아저씨와 해변으로 긴 산책을 갔던 장면이었습니다.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 page 73

내가 저 멀리 바다를 본다. 아까처럼 불빛 두 개가 깜빡이고 있지만 또 하나가, 두 불빛 사이에서 또 다른 불빛이 꾸준히 빛을 내며 깜빡인다.

"보이니?" 아저씨가 말한다.

"네." 내가 말한다. "저기 보여요."

바로 그때 아저씨가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는다. - page 75

그 어떤 미사여구가 없어도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 장면을 읽으면서 잠시 한 템포 쉬어갔었습니다.

너무나도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웠던 이 소설.

아무래도 곱씹게 될 것 같았습니다.

이 감정 잊지 않고...

영화도 꼭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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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철학자 - 지혜롭고 안온한 삶을 위한 나무의 인생 수업
카린 마르콩브 지음, 박효은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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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선량하고 아름다운 목숨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무에게 배워야 합니다."

-나태주(시인)

이 추천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아이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게 되었었고 사랑하는 한 소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준 나무의 이야기에 한동안 헤어 나오지 않았었기에 더 이 책이 이끌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무'로부터 큰 가르침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나무가 전하는 인생 수업.

가만히 귀 기울여볼까 합니다.

"나무는 빗속에서도

춤을 추는 법을 알고 있다"

4억 년을 살아온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철학자,

나무로부터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

숲속의 철학자



4억 년 전부터 이 지구에서 살아온 '나무'.

그 긴 세월 동안 생존을 위해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 최적의 기능을 발달시켰습니다.

인간보다 훨씬 경험이 풍부하고 현명한 나무.

이 나무를 우리 인생의 롤 모델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세월이 켜켜이 쌓인 나무의 기둥을 손끝으로 훑어내리며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로부터 삶의 지혜와 용기를 배우고자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뿌리부터 천천히 성장하는 인내심,

평생 한자리에서 살아가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단순함,

모든 것이 불타도 다시 소생하고 마는 회복탄력성,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너른 품을 내어주는 포용력,

생존이 아닌 공존을 위해 주변을 돌보는 감수성

그리고 침묵, 연대, 리더십, 소통, 치유의 힘까지.

나무가 전하는 열 가지 삶의 미덕에 대해 전하며 우리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성찰할 수 있게끔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명상하듯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고요히 눈을 감게 되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에 찰랑이는 나뭇잎들로부터 소리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인자하게 바라보는 나무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평온하였다고 할까.

간만에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나무는 질문하는 법이 없다.

우리가 누구인지도 상관하지 않고

너른 품을 내어준다. - page 78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가진 나무.

그런 나무를 우리는 그동안 어떤 태도로 바라보았는가...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웠습니다.

나무는 안정감을 주기 위해 궁리한 적도 없고,

우리를 안아줄 팔도 없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보듬어준다. - page 231

이 시대의 우리는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자연결핍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모든 면에서 어른들을 따라 하는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자. 우리를 지탱해주고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숲과 나무, 그리고 우리에게 온갖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는 대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자. - page 239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는 나무와 함께해야 함을 전해주었습니다.

다가오는 주말 아이들과 함께 숲으로 들어가 나무를 껴안아보려 합니다.

나무가 전한 이야기를 곱씹으며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나무에게 배운 열 가지 삶의 미덕.

덕분에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살아가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릴 때 이 책을 다시 이정표 삼아 읽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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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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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광기의 시대.

그 속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천재 과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방사성 원소를 발견해 핵물리학 연구의 서막을 연 천재 과학자 '마리 퀴리'

양자역학을 통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 '막스 플랑크'

원자 무기의 평화적 사용을 강대국에 주장한 '닐스 보어'

과학과 철학의 접목을 위해 노력했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과학뿐 아니라 문학과 철학에 있어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던 '에른스트 슈뢰딩거'

다른 부가 설명이 필요 없는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세상을 뒤집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

안 읽어볼 수 없지 않을까!

그 위대한 여정에 저도 발맞추고자 합니다.

고전물리학의 세계관이 설명할 수 없는 자리에 들어선

'새로운 과학'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세계를 발견하는 과학'과 '과학이 바꿔놓은 세상',

그 사이에서 빚어진 위대한 물리학의 명장면들을 포착하다!

불확실성의 시대



1900년 10월 7일 일요일.

막스 플랑크와 마리에 플랑크 부부는 베를린 그루네발트의 대저택에서 이웃에 사는 하인리히 루벤스와 마리에 루벤스 부부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내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남편들은 물리학 얘기를 하고 있는데 물리기술제국연구소 실험실에서 최근에 측정한 곡선이 지금까지의 공식과 일치하지 않음에 플랑크의 머리에서 몇 년째 이리저리 떠돌던 퍼즐 조각들이 새로운 패턴으로 맞춰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뉴턴에 버금가는 아주 중요한 걸 발견했단다."

19세기 물리학자들의 난제 중 하나였던 '흑체복사곡선'에 대해 자신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방법론까지 동원해가며 흑체복사선에 대한 연구를 한 끝에 12월 14일 금요일 오후 5시, 물리학 학회에서 '정규 스펙트럼의 에너지 분포 법칙 이론'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것이 전체 계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우리는 에너지가 매우 특정한 수의 유한한 등가성 알갱이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자연상수 h = 6.55·10^-27 erg/sec를 사용합니다." 양자는 세상에 존재한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 page 28

이 발표는 후대 물리학자들로부터 "양자물리학의 탄생 시간"이라 불리게 됩니다.

또한 그가 말했던 '알갱이'는 양자 개념으로 플랑크의 양자가설은 이후 아인슈타인의 광양자가설에도 영감을 주게 됩니다.

1903년 파리에서 마리 퀴리는 베크렐의 우라늄선에 매료되어 이후 '유라늄선' 대신 방사성 관선'이라 부르며 연구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당시 과학 지식에서는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원자'에 대해

화학자들은 더는 쪼개지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화학반응으로 연결이 끊어지기도 하고 다시 연결되기도 하는 최소 구성 성분으로

물리학자들은 작은 당구공처럼 진공상태를 떠다니며 충돌하여 기체의 압력과 열을 생산하는 것으로

철학자들은 데모크리토스 이후로 세계를 구성하는 불멸의 성분으로

이론적으론 연관성이 없지만 똑같이 '원자'라 불린 것을 마리 퀴리는 원자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주장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연구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피에르가 조끼 주머니에서 라듐브로마이드가 든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에서 빛이 나와 그들의 얼굴을 비췄다. 술기운에 붉어진 편안한 얼굴, 그리고 화상으로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피에르의 손가락. 그것은 언젠가 마리를 죽게 할 방사능 질병의 전조이자, 그들이 쫓고 있는 지식의 무게를 알려주는 첫 번째 암시였다. - page 41

그들이 쫓고 있는 지식의 무게가 훗날 핵물리학으로 발전하게 될 과학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은 1905년 베른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베른 특허청의 3등급 시사관이었던 그는 1905년의 물리학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게 됩니다.

빛, 즉 모든 전자기선은 파동이 아니라 일종의 입자인 양자로 구성되었다! - page 48

이를 필두로 고전물리학의 한계를 타파하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현대물리학의 태동에서부터 황금기에 이르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상대의 이론을 접하며 논쟁하며 그렇게 새로운 과학의 토대를 쌓아가는 모습이 생생히 그려져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계속해서 철학 안개 속을 헤매는 보어와의 토론에서

"과학은 대화에서 발생한다"

고 즐겨 말하곤 하였지만 종종 절망 속에 토론을 마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보어가 이의 제기를 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예전 여름 아인슈타인이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에 반대하며 안개상자 - 흔적 얘기했을 때 아인슈타인이

"자신이 실제로 관찰한 것을 기억하는 것은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의 관점에서 볼 때, 관찰 가능한 수치만을 토대로 하려는 이론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정확히 그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관찰할 수 있을지를 이론이 먼저 결정합니다." - page 282

이 말을 곱씹으며 그동안 양자역학의 핵심으로 통했던 위치와 운동의 불확정성에 직면하게 됩니다.

"불확정성의 원리"

다른 물리학자들은 불확정성 원리의 의미를 가늠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인과성은 이미 1년 전에 보른에 의해 폐기되었다고, 일부 이론가들은 말하고, 일부 실험가들은 불확정성 원리를, 정교한 장비로 양자 현상의 더 선명한 그림을 얻으려는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이해했다. 세계는 그저 불확실하게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실제로 불확실하다! "세계와 우리의 언어가 맞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하이젠베르크가 말한다. - page 288

그리하여 이 책의 제목처럼 1900년에서 1945년 '불확실성의 시대'로 명명한 이유였습니다.

특히나 이 시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과학의 양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의 핵분열 연구는 나치의 손에서 위험하게 쓰일 수 있음을 경계해 이를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에게 알리게 되고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로 원자폭탄을 개발해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게 되는데...

1945년 8월 14일에 하이젠베르크는 동료 포로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폭탄의 임계 반경이 6.2~13.7센티미터라고 계산했다. 폭탄 표면은 폭발할 때 태양보다 2,000배 더 밝게 빛난다. "가시광선 압력이 과연 물체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 흥미롭네요." 하이젠베르크가 강연을 끝맺었다. 그는 다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과학자의 영토에 있다. 한참 뒤에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25년 동안 함께 겪었던 원자물리학의 진보가 수십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직시해야만 했다." - page 477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했고 세계는 불확실해졌으며 그야말로 오랫동안 확신했고 익숙했던 윤곽들이 흐릿하게 지워지게 되었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100년 전에 세워진 그들의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겨뤘던 논쟁들도 여전히 중심에 있듯 그 역사는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우리의 시대는 어찌 될지 관심을 가져야 함을 느끼며 물리학의 매력에 흠뻑 매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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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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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을 계기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소설가이지만 저에겐 에세이만 읽었던 작가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그랬고 김영하 작가가 그러했습니다.

소설이 유명하고 영화화된 것도 알지만 막상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읽게 되었고 에세이로 친숙한...

그러다 이번에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을 처음 읽게 되었습니다.

이미 베스트셀러이자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 작품.

제 지인들도 읽었었고 호불호가 있었던 이 작품.

과연 어떤 이야기가 그려져있을지 기대감을 안고 읽어보았습니다.

외로운 소년이 밤하늘을 본다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이분법을 허무는

김영하의 신비로운 지적 모험

작별인사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바로 운동화를 꿰어 신고 나가 달리던 철이.

그런데 그날은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연석 옆에 떨어져 죽은 새 한 마리를 보게 됩니다.

아직 어린 잿빛 직박구리.

"잘 묻어줬니?"

"다 보셨잖아요."

"어떻게 묻어줄 생각을 다 했어?"

"몰라요.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어디가 아팠을까요? 아니면 혹시 물을 못 먹어서 죽은 걸까요?" - page 16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휴먼매터스의 공학박사인 철이 아빠 최진수 박사와 데가르트, 칸트 그리고 갈릴레오라는 이름을 지닌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더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던 철이.

어느 날 검은 제복을 입은 이들로부터

"보십시오. 인간은 이렇게 H라고 뜹니다. 인간에게서만 방출되는 방사성원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감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한테서는 그게 나오질 않습니다." - page 37

무등록 휴머노이드라며 그를 수용소로 끌고 갑니다.

이제껏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던 철이는 그곳에서 선이와 민이를 만나면서 휴머노이드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 역시도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고는 '나는 누구인가'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전으로 불안전했던 세상은 민병대가 수용소를 부수고 로봇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을 타 철이와 민이, 선이는 탈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부의 레이더망에 걸렸고 민이를 잃게 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다. 온몸을 압도하던 공포가 물러가고, 이제 슬픔이 마치 따뜻한 물처럼 그녀의 마음에 차오르는 느낌이었고, 그 슬픔이 오직 선이만의 것은 아니라는 듯, 함께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이 단순한 행위를 통해 그녀가 느끼고 있을 유독한 슬픔이 아주 소량이나마 내게로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식이 사라졌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와 나, 그런 뚜렷한 경계가 사라지고 공통의 슬픔이라는 압도적 촉매를 통해 선이와 내가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괜찮아. 다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 민이는 이제 편안히 쉬게 될 거야." - page 127 ~ 128

철이와 선이는 호수에 다다르게 되었고 거기서 재생 휴머노이드 '달마'를 만나게 됩니다.

달마에게 민이를 되살려달라고 하지만 달마의 답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이니까요. 그들은 오랜 세월 사람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윤리를 확립해왔고, 그래서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살려두려고 합니다. 환자의 생각은 무시한 채 말입니다. 생명은 그 어떤 경우에도 소중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그걸 금과옥조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온 것은 또 아닙니다. 인류가 벌인 그 수많은 전쟁을 생각해보십시오. 하지만 그건 인간들의 문제이고 우리는 지금 한 휴머노이드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은 이 휴머노이드를 재활성화, 아니 여러분의 표현대로 살리는 것이 정말 이 휴머노이드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여러분이 확신하느냐는 것입니다." - page 147 ~148

이에 대해

"제 생각은 달라요.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정말 정말 드물어요. 비록 기계지만 민이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감각과 지각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어요. 고통도 느꼈지만 희망도 품었죠.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 page 151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나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그렇기에 민이를 살려야 한다는 선이의 말.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튼 민이를 살리고자 했지만 결국은 그리하지 못하게 되고 철이는 최박사와 재회를 하게 되는데...

이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철이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

자작나무숲에 누워 나의 두 눈은 검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한 번의 짧은 삶, 두 개의 육인이 있었다. 지금 그 두번째 육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의식까지도 함께 소멸할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때 회상은 나의 일상이었다. 순수한 의식으로만 존재하던 시절, 나는 나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억을 이어 붙이며 과거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이야기는 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에서 시작됐다. - page 9

단순히 소설이라 치부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존재의 의미에 대해 많은 여지를 남겨주었던 이 소설.

"당신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고자 합니까?" - page 228

책을 덮고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이 문장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 page 204

작별인사의 의미가 뭉클하게 다가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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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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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제목으로부터 오는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호기심은 복잡 미묘함으로 변하게 되면서 마지막 한 방까지!

신비롭고도 이상한 인물.

그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사람과

가장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덧없는 만남!

연기 인간



"내 말은, 당신 육신이 어떤 재질로 구성되었느냐 그 말이오, 뭐죠?"

"연기요."

"내가 그랬지! 맞아, 맞아! 연기 인간이야. 연기 인간이라고! 연기! 연기! 연기!" - page 14

페네, 라테, 라마 세 할머니가 벽난로에 장작을 태우면서 생긴 연기로부터 33년을 굴뚝 안에서 지내다가 사흘 전 굴뚝 아래에서 들려오던 단조로운 대화가 사라지고 타오르던 불도 꺼지면서 마침내 아래로 내려왔다는 그, '페렐라'.

그의 이름은 세 할머니 이름으로부터 불리게 되었고 신비한 외모와 이로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니 왕궁으로부터 초대를 받게 됩니다.

왕비와 수녀, 시인, 왕자 등 여러 사람을 만나고 국왕 폐하로부터 새로운 법전을 만들기 위한 편찬 위원회의 세 번째 위원으로 지명을 받게 됩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여기 자리하신 고명한 기사 여러분, 나는 최고 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칙령에 의거해, 지고하신 대주교의 추인에 맞춰, 현명하고, 탁월하며, 뛰어나신 페렐라 씨께 사랑하는 우리 조국을 위한 새로운 법전의 집필을 온전히 맡아주십사 청하게 되어 대단한 명예로 생각합니다.

상하기 쉬운 육신과 연약한 감각을 지닌 어떤 사람이 우리의 피, 우리의 야심, 우리의 개인적인 관심, 우리의 당파성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어쩔 수 없이, 불공정하게, 두려움없이 그런 일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도 사람임을 잊고 법전 궁극의 목표인, 만인의 평등한 이익 추구라는 이 위대한 기획을 떠맡을 수 있겠습니까?

이분은 사람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해 불순한 것을 깨끗하게 하는 숭고한 불에 휩싸여 모든 감각의 자기 중심적인 작동을 중단시키고 무화하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 page 119

그러던 어느 날.

황혼 녘에 페렐라를 태운 마차와 수행단이 왕궁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너무도 황당한 일이 벌어져 모두가 아연실색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바로 왕궁 하인들의 우두머리인 알로로가 간밤에 사라진 것.

그에겐 도시에 사는 딸 하나가 있었는데 딸은 이틀 전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에 비해 너무나 들떠 보여서 당황하였고 그러다 초조한 모습을 보인 아버지 알로로.

지하의 거대한 납골당 아래, 옅어지는 연기 사이로 사람들은 사물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중간에, 바닥에, 넓게 평평하게 퍼진 잿더미 사이로 아직 여기저기 석탄불이 붙어 있고, 바닥에서 2미터쯤 되는 천장에는 쇠사슬 하나가 늘어뜨려져 있다. 거기서 십자가 형태로 까맣게 탄 몸통이 대롱대롱 매달려 수평으로 천천히 비틀리며 흔들리고 있다. 함부로 이어 붙인 두 개의 나무 기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잔재일 뿐이다. 알로로. - page 192 ~ 193

알로로의 죽음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중 알로로가 자신처럼 가벼워지고 싶어서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페렐라.

이때부터 그동안 페렐레를 추앙하던 군중들이 돌변하게 되는데...

"살인을 저질렀어요!"

"우리 모두를 불에 태우려 했어요!"

"왕궁 지하에 불을 질렀어요!"

"방화범입니다!"

"살인자!"

"비겁한 자!" - page 217

모욕과 저속한 손짓, 음탕한 소리, 경멸과 멸시의 말을 그에게 퍼붓는 이들.

특히나 겨우 세 살이나 되었을까 한 어린애의 행동으로부터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머리들이 한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가장 참혹하고 기괴한 놀이를 천진난만하게 찾아냈다. 사람들은 문과 창문에서 경멸적인 비웃음만 날리다가, 그 벌레들의 잔인함이 광적으로 고조될 때마다 "좋다! 잘한다!"라고 외치며 더 자극해댔다.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된 조난자는 이리저리 힘없이 휩쓸리기만 했다. 극도로 가벼운 그는 상대가 어린아이라 해도 전혀 대항할 수가 없었다. 놀이가 벌어지는 길 한복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조롱의 현장이 되었다. 그 불쌍한 얼굴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왜? 왜?" - page 236

법정에 이르게 된 페렐라.

그의 최후는 어찌 될까......

'가벼움의 존재 방식'에 대하여 일러주었던 '연기 인간'.

불에 타 사라지면서 생겨나는, 죽음이 삶이 되는 현상인 연기.

페렐라가 상징한 건 '사라짐-죽음'을 '나타남-삶'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도 죽음을 삶으로 바꾸며 존재하라고, 죽음을 통해 삶을 살아가라고 권유한다.

'죽음을 삶으로 대체하고, 사라짐을 통해 나타나라.' - page 302

그러면서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무엇인가...



낯설고 우스꽝스럽고 비정상적이고 역설적이고 애처로운 주변 인물들을 향해, 우리 사회의 전통 질서와 가치 체계를 향해 거침없이 냉소를 던진 '알도 팔라체스키'.

지금 우리 시대에도 따끔한 일침과도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직면해야할 인간의 민낯에 대해 또다시 반성해보게 되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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