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처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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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2년 소설 『다이브』로 데뷔한 후

2023년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로 박지리문학상을,

개의 설계사』로 문윤성SF문학상을 수상하며 종횡무진 활약해온 '단요' 작가.

이번엔 이민 2세대 청소년 '주현'이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야기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다문화 시대에 진입은 하였지만...

여전히 거론되고 있는 차별, 편견...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책도 중요하지만 우선 우리의 인식부터 중요함을...!

과연 소설 속에선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불완전한 조각들이

엉키고 섞이면서 완성되는 삶


이 가면을 쓰고

나는 무엇이 될까


캐리커처

스리랑카 출신 어머니 밑에서 자란 '김주현'

식당 사장이지만 시비 거는 손님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에 


"말도 이렇게 잘하면서 왜 못하는 척하냐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도 되는 거잖아. 왜 고모가 주방에서 나올 때까지 가만히 있는 건데."

엄마가 호호 웃는다.

"저 양반, 딱 봐도 깔보는 상대한테 한 소리 들으면 훨씬 더 심하게 꼬장 부리는 스타일이야. 좋게 좋게 하자는 말 모르니. 나쁘게 생각하면 주름진다. 이 나이에는 주름 하나하나가 다 돈인 거 알지." - page 11 ~ 12


그런 엄마가, 아니 이런 게 싫은 주현...

갖가지 말을 입속에 눌러 담은 채 엄마가 내온 우거지국밥 한 그릇을 먹으려던 찰나

고모가 커다란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납니다.


"주현아, 이따 승윤이네 어머니 오시면 이거 전해 드려라."

"뭔데요?"

"한라봉. 항상 신세 지고 있으니까 감사 인사도 드리고." - page 14


사실 주현은 얼마 전부터 승윤네 부모님의 호의로 대치동 학원 주말 강의를 들으러 다닙니다.

처음 학원에 들어선 날 거의 기절할 뻔했는데...

강의실 전체에 새하얀 애들로만 채워져 있는 모습에 주현은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동네 애들은 모두 '진짜' 한국인이고, 아빠들은 죄다 근사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집은 언제나 아파트다. 여기에 몇 번을 오더라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승윤 형이 돌연 낯설어졌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 낯선 감각은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 page 17


한편 주현의 학교에는 이민 2세대 청소년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주현과 동갑인 '요한'은 주현과 달리 목소리가 작고 소심합니다.

승윤의 비호 덕분에 무리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않았지만 '동남아'라 부르는 게 불편한 주현은 승윤에게 항의해 보지만...


"하는 짓이 같아야 같은 대접을 해 주지, 노아가 요한이랑 같냐. 그래도 잘해 주려 노력하고 있긴 해."

"그런 별명을 붙이는 게 노력인가. 난 아니라고 보는데. 형도 호주 살면서 힘든 거 많았을 테니까, 이런저런 부분 생각해서 잘해 줄 수도 있는 거잖아."

승윤은 잠깐 아무 말도 않더니 단호한 어조로 으르렁댔다.

"야 인마,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너도 남아시아 할래?" - page 42 ~ 43


요한의 잘잘못을 떠나, 수많은 특징 중 가장 손쉽게 공격할 수 있는 부분은 왜 그의 '존재'에 대한 것일까...?


주현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 자신의 정체성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지만 요한의 문제로부터 정체성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래서 문학 과제에 스리랑카 내전을 다룬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을 소재로 제안하게 되고

이 소설로 친구들은 주현을 스리랑카 내전 사령관인 프라바카란에 빗대어 '반군 사령관'이라 부르며 치켜세웁니다.

장난스러운 선망의 눈길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 주현...

게다가 승윤이 점점 과도한 것을 요구하면서 주현은 승윤과 아슬아슬한 관계에서 균열이 생기게 되는데...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반겨 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까?"


소설이 참... 묵직했습니다.

남을 가리킨 손가락 뒤 나머지 손가락이 가리킨 나에 대해...


책 제목처럼 '캐리커처'라는 의미에


내가 생각하기에 어딘가에 온전히 소속된다는 것은 캐리커처에 갇히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

캐릭터에 완전히 잡아먹히는 상황만 피할 수 있다면 이건 큰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인정하건대 그때그때 캐리커처를 갈아 끼우는 능력은 인생살이를 돕는다. - page 81


모두가 저마다의 가면을 쓴 채...


누군가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기 맨 얼굴을 보이려 한다면, 건방지다는 소리나 듣겠지.

왜 저만 이런 일을 당하나요? 불공평합니다.

너만 당하는 게 아니니까 가만히 있거라.

제가 더 심하게 당하는데요......

그런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내가 보기엔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나라 사람들은 소속감 없는 상태에 소속된 사람들 같다. 돈만 잘 벌면 되는 나라라는 건 그런 의미 같다. 사람은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려면 돈이라도 많아야 한다는 거다. 나는 그게 언제나 싫다. 우리가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너한테 허락된 배역은 이것이고, 네가 넘어올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라며 세상 전체가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 page 82


'더불어 산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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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산사 - 10년 차 디자이너가 펜으로 지은 숲속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방
윤설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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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찌는 듯한 더위가 언제쯤 끝날까... 했었는데...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놀러 가고픈 마음이 생기는데...

이 책을 보자마자 관심이 생겼습니다.


산사라...

푸르른 숲과 함께 고즈넉한 사찰...

상상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는데...

벌써부터 지친 마음을 책에 기대어봅니다.


지친 평일을 뒤로하고 떠나고 싶은 주말,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주말엔 산사'


주말엔 산사

삼성전자에 10년 넘게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윤설희' 작가

원룸, 카페, 사무실... 도심 속 작고 네모난 공간이 아닌 '나만의 공간'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고


우리는 포도알만 한 눈으로 세상을 인식합니다.

더 넓은 관점으로, 세상 속의 나를 인식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그래서 작은 공간을 벗어나보기로 했습니다.

공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삶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page 8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전국의 산사를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2019년부터 주말마다 100여 곳의 산사를 직접 방문하고 취재했다는 작가.

그중에서 가장 각별했던 산사 7곳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펜 그림으로 산책하듯 담아낸 가장 각별했던 산사 7곳

수묵화를 연상시켜 은은한 아름다움이, 단아한 멋이 느껴지면서 

마냥 마음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당장이라도 산사로 가 가만히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모든 산사는 저마다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저자는 그중에 '금산사'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고 하였습니다.

넓게 펼쳐진 마당과 산세와 어우러진 절의 배치.


제가 느낀 한국 고건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대화'입니다.

주변이 시끄러우면 나도 목소리를 높이고, 떠드는 사람이 많으면

말을 줄이고 듣습니다. 상대방의 성격에 따라 대화의 주제나

성격을 바꾸기도 하죠.

건물에 머무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

어떤 자연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대화하듯 건물의 크기나 각도,

재료, 위치 등을 정합니다. 수치화된 법칙을 두지 않고 그때의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금산사가 나누는 유연한 대화가 좋았습니다. - page 206 ~ 207


이곳은 10월 11월 단풍에 방문하면 좋다고 하니 언젠간 저도 이 책과 함께 방문하고자 합니다.

(쫌 멀어서... 선뜻 나설 수가 없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눈길이 갔던 곳이 아무래도 저도 가보았던 '봉은사'였습니다.

신라 시대 만들어져 1000년이 넘은 절이지만,

접근성이 좋고

절의 구조를 잘 갖추고 있어

일반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절을 이해하기에 좋은 산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매년 한 번씩은 찾아가곤 하는데...

저자가 남긴 이 말을 들으니 더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좋은 장소에 자리하며 멋진 풍경을 품은 산사도 좋지만, 그것만이 

중요한 건 아닌 듯합니다.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위치라면, 모든 사람이 쉽고 재미있게

불교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봉은사는 충분했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상업적이고 고즈넉함 없이

화려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봉은사는 자신의 위치에 맞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것보다는 그것을 보는 내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것만 채우면 됩니다. - page 334


산에 있는 절 '산사'

세계의 수많은 절이 산에 있지만, 그래도 한국의 산사가 특별한 건 

70퍼센트가 산지인 한국은 산마다 절을 짓다 보니 세월이 흘러 산에 지은 절 그 자체가 하나의 건축양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산사를 통해 한국 건축의 깊이(역사)와 너비(지역)을 이해할 수 있기에

산사를 그저 관광지로만 찾기보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 나를 이해하는 곳으로

인지하며 그렇게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가기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일러주었습니다.


그동안 주말이면 그저 카페나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며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라는 정체성을 잃어가곤 하였는데

다가오는 주말부터 '나'를 위한 공간으로의 여행을 떠나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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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사랑하는 삼각형 - 열기구에서 게임, 우주, DNA까지 거리와 각도의 놀라운 수학
맷 파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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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요즘 학교에서 '삼각형'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삼각형

이등변삼각형

개념을 같이 공부하면서 배우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자마자

어?!

이것은 운명인가!

그렇다면 지금은 삼각형에 빠져야 할 때가 아닌가!!


삼각형이라 하면 생각나는 '피타고라스 정리'

a + b = c

다른 공식들은 다 잊어도 이것만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럼 나도 수학을 좋아하는...?

삼각형을 좋아하는 거 아닐까...?!

헛된 생각을 잠깐이나마 해 보았습니다만...

아무튼!

삼각형의 매력이 무엇일지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각형의 유용한 면과 필수적인 면,

그리고 쓸모없는 면까지 모두 보여주겠다"


수학자, 공학자, 록밴드는 왜 삼각형을 사랑하는가

단순하면서도 다재다능한 삼각형의 비밀


수학이 사랑하는 삼각형


수학을 대중문화로 확장하는 영국의 유쾌한 수학 커뮤니케이터 '맷 파커'

그는 이제껏 크게 주목받지 못한 '삼각형'의 매력을 이 책을 통해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거리와 각도를 나타내는 기본 단위이자

다양한 형태와 수학적 패턴을 만들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도형으로

현실 세계를 만들고 지탱하는 가장 실용적인 수학적 도구

'삼각형'

거리 측정부터 도로, 건축, 스포츠, 3D 게임, 우주, 음악 세포까지

그야말로 


삼각형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삼각형이다.


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우선 살펴보았던 건 아주 이른 시기에 기록된 수학 텍스트가 남아있는 이집트의 파피루스였습니다.

기원전 1550년 무렵에 아메스라는 서기가 수백 년 전의 오래된 문서를 베껴적은 '아메스 파피루스'

(그 원본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이름이 전하는 최초의 수학 저자가 아메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수학 문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푸는 계산 기술을 보여주는 고대의 수학 교과서로

살펴보면 다양한 피라미드의 경사면 길이를 계산하는 문제들(너무 전형적이라 오히려 진짜일까 싶은 느낌이 든다는 저자...)을 비롯해 농경지 면적을 계산하는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았던 저자의 한 마디


삼각형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친숙했었던 건물의 높이를 재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기원전 6세기에 필레토스의 탈레스라는 그리스인은 이집트 여행 중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보곤 높이를 측정하고자 

피라미드와 자신의 키와 그림자, 막대기의 그림자를 이용해 측정했었는데...

이렇게 그림자를 사용해 물체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법을 그는 휴가 때 자와 지도를 들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한다고 합니다.

음...

이에 대해 저자의 변명 아닌 변명이...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내가 자와 지도를 들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건, 수학자들이 휴가를 보내는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행동일 뿐, 친구와 가족 들의 말처럼 "휴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아니고, "현지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 page 32


정말 대단히도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던 삼각형 탐험기.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나 삼각형과 삼각법이 많이 쓰였나 싶었습니다.

또한 이를 이용해

삼각형 유리판으로 UFO 모양의 돔을 설계하기도 하고

수학 마니아인 DJ의 요청으로 특별한 디스크 볼을 만드는 등

어쩌면 다소 황당하게도 여겨질 수 있었던 일들이 신비롭게 이루어지는 과정이 흥미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사물

각도가 있는 곳

그중에서 오늘도 보았던 도로 위의 표시들이 책에서 보았기에 반가웠습니다.

이는 특정 지점에서 완벽한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애너모픽 아트' 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이면의 기하학은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보다 복잡하지 않다. 빛은 직선으로 움직이므로, 보는 사람의 눈과 지각 평면에 맺히는 의도한 이미지 사이를 잇는 선을 삼각법으로 계산하면, 그 선이 실제 바닥 어디에 닿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지점에 그림을 그리면 보는 사람의 눈에는 떠 있는 그림처럼 보인다. 이 계산은 자동화할 수 있는 만큼 간단하며, 초당 60번씩 실행하면서 애너모픽 이미지를 실시간 비디오 스트림에 삽입할 수 있다. - page 360


그동안 삼각형을 단순한 도형으로만 여겼었는데...

어떤 물체든 삼각형 메시(또는 격자)로 표현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으며

어떤 신호든 사인파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삼각형이 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심히 놀라웠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주변엔 무수히 많은 삼각형들이 존재하고 있을 텐데...

이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껴보는 건 어떨지!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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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 - 가정법원 부장판사의 이혼법정 이야기
정현숙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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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20년차 판사이자 20년차 아내이면서 세 아들을 키우는 엄마 '정현숙'

저는 그녀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헤어질 결심 한 부부들을 위해 '이혼주례'를 서는 정현숙 판사.

"대본 쓰기도 어려운 일이 가정법원엔 정말 많다"

며 충격적인 이야기들로 경악을 하며 보았었는데...

마지막에 이혼으로 힘든 분들에게 전했던 한마디

"이혼 소송은 순간마다 상처받고 찢기는 전투와 같은 긴 싸움이거든요

그 긴 전투를 마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혼 소송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이 지나며 새로운 시작이 있으니까

이혼 소송 이후의 삶을 기대하면서 버티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이 참 울림으로 다가왔었는데...!

그리고 난 뒤 <어쩌다 어른 10주년 특집>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 정현숙 판사.

이번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러다...

어?!

이미 판사님이 책을 출간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냥 티비로 보고 좋은 말씀들을 흘리기엔 너무나 아까웠던 찰나!

책으로 오랫동안 간직해 보고 싶었습니다.

왕년에 이혼가방 한번 안 싸본 사람 있습니까?

이혼이라는 삶의 파도에 휩쓸려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감동

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

2011년 3월 밀양에서

판사 생활 7년차에 처음으로 이혼주례(가정법원 판사들 사이에서 협의 이혼기일에 이혼의사 확인을 하는 과정을 '이혼주례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고민과 상념으로 협의이혼실에 들어간 첫날, 허무하리만치 속전속결로 끝나버린 이혼주례.

밀양을 떠난 뒤 이혼사건과 이별하여 잊고 지내다가, 2017년 부산가정법원 가사전문법관으로 선정되어 다시 이혼하게 되었다는 그녀.

긴긴 시간 매일매일 이혼하면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자로서, 판사로서 많이 힘들었고 아팠으며 분노했던 시간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이혼으로 입장'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혼 행진' 중인 이들에게

이혼 이후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고자 했다는데...

저는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더 가족에 대한 끈끈함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 어떤 부부관계서보다 더 의미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책 속의 이야기엔 사실 방송에서도 접했던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땐 짧은 찰나에 느꼈던 감정이 오랫동안 묵직이 남는 것이...

이혼이란......

미완으로 끝나버렸던...

재판기일마다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해 변호사와 함께 진지하게 임했던 그.

아내가 다른 남자와 부정행위를 했고, 급기야 회사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알게 된 그가 아내와 이혼을 위한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그는 자살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를 아내 쪽에서는 마치 남편이 사업을 부도덕하게 해서 이것이 발각될까 하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자살 시도한 나약한 남자라 몰아세운 겁니다.

남편: 판사님, 저는 정말 억울해서 잠이 안 옵니다. 예. 맞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탈세로 인한 부담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고요? 저 여자는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제가 자살시도한 것은 저 여자가 나에게 저지른 엄청난 잘못들 때문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사건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살 시도에 이르게 되었다는 자료들이 모두 있으니 그러한 자료들을 제출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살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좀 더 빨리 사건을 진행해서 이혼판결을 해주었더라면 원고가 죽지 않았을까?

지난 기일에 피고가 유책배우자이고 당신은 이 이혼소송에서 승소할 것이라고, 좀 더 확실한 메시지를 주었더라면 그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그때 좀 더 시간을 내어 그의 마음을 살피고 더 위로해 주었더라면 그가 지금 살아있을까...

그녀의 긴 한숨이...

제 마음도 갑갑했는데...

너무나도 비참함이 느껴졌던 이혼으로 가는 행진...

끝이 보이지 않는 길로 떠나버린 그 남자의 뒷모습이 아련히 보이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이 사연도 속상했습니다.

오랫동안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었던 그.

그런 아들이 아내 없이 혼자 지내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노모는 한국으로 시집와 잘 정착하여 살고 있던 이웃집 베트남 여자가 자기 조카를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에 솔깃했고 결혼식을 하기 위해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됩니다.

꿈같은 일주일을 보냈지만 신부는 비자가 없어 한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되었고

할 수 없이 그는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혼인신고를 마친 후 그녀가 얼른 시험을 통과하여 한국으로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코로나가 겹치면서 그녀로부터 오는 연락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기존에 연락을 주고받던 SNS에서 탈퇴해 연락이 두절되고 만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그녀는...

'sorry who?'

그는 그녀가 자신의 돈을 편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기결혼을 했다는 생각에 소송을 제기했고 끝내 자신을 모른 척했던 그녀와의 혼인을 무효로 만들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무효가 아니면 취소라도 시켜주고 그것도 정 안된다면 이혼판결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술로 나날을 보내던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노모의 울부짖음...

"다 내 잘못입니더. 다 내 잘못이라예. 내가 가(그 애)를 억지로 베트남 여자캉 결혼시켜가꼬 가가 그래 세상을 등졌는기라예. 나도 가 따라서 그만 죽고 싶습니다. 판사님예."

"판사님, 그라믄예 우리 아들 혼인무효로 만들어 주이소. 죽은 놈 원이라도 없게 그래 해주이소. 세상 마지막 떠나는 길에 코빼기도 안 비치는 그게 우예 마누라입니꺼. 이 결혼은 무효아입니꺼."

이 사건에 대한 그녀의 판결이...

법리와 구체적 타당성을 두고 이틀여를 고민하다 마음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AI 판사였다면 고민도 없이 법리대로 기각판결을 했겠지만, 나는 AI 가 아니지 않은가.

법대 아래에서 가슴 치며 울고 있는 노모의 눈물을 미약하나마 판결로라도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 page 60

이것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 아닐까...!

그리고 이 사건...

티비에서도 다루었었는데...

"판사님... 저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러다간 저희 가족 모두 죽을 것 같아요. 아이들을 키워야 해요. 사랑하는 아내에겐 정말 미안합니다. 끝까지 남편으로 남아 있어 주지 못해서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래도 착한 내 아내는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줄 겁니다..."

학교 선생님으로서 다정하면서 책임감이 강했던 남편은 사랑스러운 아내와 결혼해 곧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뇌병변과 지적장애 등 중복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아픈 아들을 열심히 돌보았는데...

건강했던 아내가 40대 초반의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이 가정은 평범했던 일상이 멈추게 됩니다.

아픈 아내와 중증 장애를 가진 큰아들, 어린 둘째와 셋째 자녀까지.

어쩔 수 없이 시설에 보내게 된 큰아이.

아내와 큰아이의 병원비와 간병비로 거액을 지출하게 되면서 가정경제는 급격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어 이혼소장을 제출하게 된...

여기서 눈물이 났던 건

병원에 누워있던 아내가 법원에서 온 이혼소장의 내용을 전해 듣고 이혼에 동의하냐는 물음에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는 것에서...

그 '어쩔 수 없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자녀가 있는 모든 이혼사건에서 반드시 이혼주례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위의 사건은 예외였지만...)

엄마와 아빠는 서로 원해서 결혼했고 서로 원해서 이혼하지만

아이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엄마 아빠가 헤어지는 이혼가정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니

자녀들의 상처를 회복시키기 위한 책임감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이혼과정 속에서 입는 아이들의 상처를 회복시키기 가장 좋은 방법이 비양육친의 정기적이고 원활한 '면접교섭'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몹쓸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다른 한쪽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거부감과 분노감이 생긴 것은, 아이들의 정서가 병들어 가고 있는 심각한 신호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혼 진행 중에 있는 부모들은 자신의 힘든 상황에만 함몰된 나머지 자녀의 영혼이 아파하며 소리 없이 울부짖는 것을, 그러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면접교섭을 거부하는 그 상황을 이용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보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여기며 소송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전진합니다. 아이는 상대방과 단절시키기만 하면 저절로 잘 회복될 거라고, 그렇게 시간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믿으며 말입니다.

자녀를 재판에 이용하지 마세요. 자녀는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감 해소를 위해 소모되어야 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 page 66 ~ 67

아이들보다 못한 어른...

참으로 부끄럽고...

제발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사...

참 힘듭니다.

그래도...

원인의 결과가 나에게 달려 있고 내 인생의 운명이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지 남(편) 탓할 것 없는 것이니

이걸 안다면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음에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이 자꾸 밀어내니...)

어린 새끼들을 바라보며 무언가에 묶여 있음이 참 좋다고 느끼길...

쇠사슬일지, 거미줄일지 모르지만 '나이 들어서 누군가와 묶여 있다는 것, 그건 꽤 괜찮은 관계야'라고 느끼며 풍화되어가며 유장해지는 부부의 애정을...

저도 다짐하고 또 다짐해 봅니다.

또다시 이혼주례를 하고 있는 정현숙 판사.

그녀의 바람이 어렴풋이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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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구리 냄새 폭탄 2 - 오예스와 저승사자 구리구리 냄새 폭탄 2
백혜영 지음, 김현정 그림 / 겜툰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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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3월에 만났던 수수께끼 너구리 '구리구리'

또다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구리구리 얼굴을 쏙 빼닮은, 주먹만 한 폭탄 '구리구리 폭탄'

이번엔 누구에게 전달되었을까?!


웃음이 뿡뿡 터지는

방귀 뿡뿡 너구리가 돌아왔다!


구리구리 냄새 폭탄 2

얼마 전 행운 초등학교에 다니는 소이가 구리구리를 찾아온 뒤 폭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구리구리'


"더 지독한 냄새가 퍼지게 만ㄷ늘어야 하는데...... 옳지, 그게 있었지!"


이번엔 역대급 폭탄을 만들기 위해 구리구리의 보물 1호 '스컹크 방귀'도 집어넣어 만들었습니다.

어느새 구리구리 얼굴을 쏙 빼닮은, 주먹만 한 폭탄이 만들어지고

구리구리는 구리구리송을 흥얼거리며 어둠 속으로 통통통 뛰어나갔습니다.


거절을 못 해 친구들에게 '오예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오예슬'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자신을 호구하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속상했었는데...

어?!

예슬이가 국어 교과서를 꺼내려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사물함을 열었더니 주먹만 한 너구리 얼굴 모양 장난감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창밖에 보였던 너구리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고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황금색 카드가 눈에 들어왔는데...


3일 안에 아래 미션을 완료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지독한 맛을 보게 될걸? 킥킥!)


☆오예슬에게 주는 미션☆

싫은 건 딱 잘라 거절하기!


안그래도 친구들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데, 이상한 미션까지 받으니 기분이 더 가라앉은 예슬이.

하루가 지나고 너구리 얼굴은 어제와 달리 무언가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바뀌고 얼굴색마저 누리끼리하게 변해 있는데...

역시나 지독한 입냄새 같은 냄새가 예슬이에게서 나기 시작하고...

어쩌지...

그러다 구리구리를 만나게 되는데


"널 호구로 봤냐고? 아니, 애초에 난 네가 누군지도 몰랐는걸. 물론 주문을 외운 순간 구리구리 폭탄이 알아서 네가 해결하기 어려운 미션을 내긴 했지. 네가 구리구리 냄새를 풍기면 내 친구가 돌...... 아, 아니다. 아무튼 난 그저 폭탄을 배달했을 뿐이야. 미션을 풀지 말지 선택은 네 몫이고. 이랬거나 저랬거나 행운을 빈다, 오예슬."


예슬이는 이 미션을 해결할 수 있을까...?!


"오예슬, 대체 다음 폭탄을 누구에게 배달하라는 거야? 이름을 정확히 써야지. 그냥 이렇게 편의점 할아버지라고 두루뭉술하게 쓰면 어떡하지?"


다음 폭탄의 주인공은 늘 검은색 옷을 입은,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의점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어린 손님에게 웃으면서 인사하기!


라는 미션이 주어졌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고...

어느새 너구리 얼굴색도 자줏빛으로 변하고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번엔 구리구리 폭탄이 터질까?!


또다시 구리구리는 편의점 할아버지가 적은 다음 폭탄의 주인공을 향해 가는데...


"이번에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겠지? 구리구리 냄새야, 더 널리널리 퍼져라. 널리 널리! 킥킥."


이번에는 '구리구리 폭탄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귀엽잖아~♥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데...!

아이도 노래가 재미있다며 무한 반복하며 듣고 있네요.

그러면서도 귀에 꽂히는 문구


선택은 너의 몫~♬


구리구리~ 아니아니~

럭키 위키~ 행운의 친구 폭탄~♬


저도 다짐하게 됩니다.


아무튼!

1권에서는 

친구 사귀기가 어려운 '이소이'에게 '먼저 다가가 말 걸기'라는 미션이 주어졌었고

결국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친구를 만드는 용기' 였다면

2권에서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오예슬'에게 '싫은 건 딱 잘라 거절하기'라는 미션이 주어졌고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싫어'라는 한 마디를 하면서

'나를 지키는 용기'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관계의 첫걸음을 내딛는 용기와 관계 속 나의 마음을 존중하고 지키는 선을 세우는 일을 가르쳐 주었던 《구리구리 냄새 폭탄 시리즈

덕분에 제 아이들도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만나게 될 친구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설마...

우리집은 아...니겠지?!


아이는 구리구리송을 틀어놓고는 종이로 구리구리 폭탄을 만들고 있네요~

혹시...

아이는 이 폭탄을 누구에게 건네고 싶은 걸까요...?!

아이의 미소 속에 감춰진 비밀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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