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좀 더 빨리 사건을 진행해서 이혼판결을 해주었더라면 원고가 죽지 않았을까?
지난 기일에 피고가 유책배우자이고 당신은 이 이혼소송에서 승소할 것이라고, 좀 더 확실한 메시지를 주었더라면 그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그때 좀 더 시간을 내어 그의 마음을 살피고 더 위로해 주었더라면 그가 지금 살아있을까...
그녀의 긴 한숨이...
제 마음도 갑갑했는데...
너무나도 비참함이 느껴졌던 이혼으로 가는 행진...
끝이 보이지 않는 길로 떠나버린 그 남자의 뒷모습이 아련히 보이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이 사연도 속상했습니다.
오랫동안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었던 그.
그런 아들이 아내 없이 혼자 지내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노모는 한국으로 시집와 잘 정착하여 살고 있던 이웃집 베트남 여자가 자기 조카를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에 솔깃했고 결혼식을 하기 위해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됩니다.
꿈같은 일주일을 보냈지만 신부는 비자가 없어 한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되었고
할 수 없이 그는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혼인신고를 마친 후 그녀가 얼른 시험을 통과하여 한국으로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코로나가 겹치면서 그녀로부터 오는 연락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기존에 연락을 주고받던 SNS에서 탈퇴해 연락이 두절되고 만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그녀는...
'sorry who?'
그는 그녀가 자신의 돈을 편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기결혼을 했다는 생각에 소송을 제기했고 끝내 자신을 모른 척했던 그녀와의 혼인을 무효로 만들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무효가 아니면 취소라도 시켜주고 그것도 정 안된다면 이혼판결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술로 나날을 보내던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노모의 울부짖음...
"다 내 잘못입니더. 다 내 잘못이라예. 내가 가(그 애)를 억지로 베트남 여자캉 결혼시켜가꼬 가가 그래 세상을 등졌는기라예. 나도 가 따라서 그만 죽고 싶습니다. 판사님예."
"판사님, 그라믄예 우리 아들 혼인무효로 만들어 주이소. 죽은 놈 원이라도 없게 그래 해주이소. 세상 마지막 떠나는 길에 코빼기도 안 비치는 그게 우예 마누라입니꺼. 이 결혼은 무효아입니꺼."
이 사건에 대한 그녀의 판결이...
법리와 구체적 타당성을 두고 이틀여를 고민하다 마음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AI 판사였다면 고민도 없이 법리대로 기각판결을 했겠지만, 나는 AI 가 아니지 않은가.
법대 아래에서 가슴 치며 울고 있는 노모의 눈물을 미약하나마 판결로라도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 page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