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 - 가정법원 부장판사의 이혼법정 이야기
정현숙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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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20년차 판사이자 20년차 아내이면서 세 아들을 키우는 엄마 '정현숙'

저는 그녀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헤어질 결심 한 부부들을 위해 '이혼주례'를 서는 정현숙 판사.

"대본 쓰기도 어려운 일이 가정법원엔 정말 많다"

며 충격적인 이야기들로 경악을 하며 보았었는데...

마지막에 이혼으로 힘든 분들에게 전했던 한마디

"이혼 소송은 순간마다 상처받고 찢기는 전투와 같은 긴 싸움이거든요

그 긴 전투를 마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혼 소송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이 지나며 새로운 시작이 있으니까

이혼 소송 이후의 삶을 기대하면서 버티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이 참 울림으로 다가왔었는데...!

그리고 난 뒤 <어쩌다 어른 10주년 특집>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 정현숙 판사.

이번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러다...

어?!

이미 판사님이 책을 출간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냥 티비로 보고 좋은 말씀들을 흘리기엔 너무나 아까웠던 찰나!

책으로 오랫동안 간직해 보고 싶었습니다.

왕년에 이혼가방 한번 안 싸본 사람 있습니까?

이혼이라는 삶의 파도에 휩쓸려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감동

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

2011년 3월 밀양에서

판사 생활 7년차에 처음으로 이혼주례(가정법원 판사들 사이에서 협의 이혼기일에 이혼의사 확인을 하는 과정을 '이혼주례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고민과 상념으로 협의이혼실에 들어간 첫날, 허무하리만치 속전속결로 끝나버린 이혼주례.

밀양을 떠난 뒤 이혼사건과 이별하여 잊고 지내다가, 2017년 부산가정법원 가사전문법관으로 선정되어 다시 이혼하게 되었다는 그녀.

긴긴 시간 매일매일 이혼하면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자로서, 판사로서 많이 힘들었고 아팠으며 분노했던 시간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이혼으로 입장'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혼 행진' 중인 이들에게

이혼 이후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고자 했다는데...

저는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더 가족에 대한 끈끈함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 어떤 부부관계서보다 더 의미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책 속의 이야기엔 사실 방송에서도 접했던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땐 짧은 찰나에 느꼈던 감정이 오랫동안 묵직이 남는 것이...

이혼이란......

미완으로 끝나버렸던...

재판기일마다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해 변호사와 함께 진지하게 임했던 그.

아내가 다른 남자와 부정행위를 했고, 급기야 회사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알게 된 그가 아내와 이혼을 위한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그는 자살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를 아내 쪽에서는 마치 남편이 사업을 부도덕하게 해서 이것이 발각될까 하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자살 시도한 나약한 남자라 몰아세운 겁니다.

남편: 판사님, 저는 정말 억울해서 잠이 안 옵니다. 예. 맞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탈세로 인한 부담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고요? 저 여자는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제가 자살시도한 것은 저 여자가 나에게 저지른 엄청난 잘못들 때문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사건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살 시도에 이르게 되었다는 자료들이 모두 있으니 그러한 자료들을 제출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살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좀 더 빨리 사건을 진행해서 이혼판결을 해주었더라면 원고가 죽지 않았을까?

지난 기일에 피고가 유책배우자이고 당신은 이 이혼소송에서 승소할 것이라고, 좀 더 확실한 메시지를 주었더라면 그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그때 좀 더 시간을 내어 그의 마음을 살피고 더 위로해 주었더라면 그가 지금 살아있을까...

그녀의 긴 한숨이...

제 마음도 갑갑했는데...

너무나도 비참함이 느껴졌던 이혼으로 가는 행진...

끝이 보이지 않는 길로 떠나버린 그 남자의 뒷모습이 아련히 보이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이 사연도 속상했습니다.

오랫동안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었던 그.

그런 아들이 아내 없이 혼자 지내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노모는 한국으로 시집와 잘 정착하여 살고 있던 이웃집 베트남 여자가 자기 조카를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에 솔깃했고 결혼식을 하기 위해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됩니다.

꿈같은 일주일을 보냈지만 신부는 비자가 없어 한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되었고

할 수 없이 그는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혼인신고를 마친 후 그녀가 얼른 시험을 통과하여 한국으로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코로나가 겹치면서 그녀로부터 오는 연락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기존에 연락을 주고받던 SNS에서 탈퇴해 연락이 두절되고 만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그녀는...

'sorry who?'

그는 그녀가 자신의 돈을 편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기결혼을 했다는 생각에 소송을 제기했고 끝내 자신을 모른 척했던 그녀와의 혼인을 무효로 만들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무효가 아니면 취소라도 시켜주고 그것도 정 안된다면 이혼판결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술로 나날을 보내던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노모의 울부짖음...

"다 내 잘못입니더. 다 내 잘못이라예. 내가 가(그 애)를 억지로 베트남 여자캉 결혼시켜가꼬 가가 그래 세상을 등졌는기라예. 나도 가 따라서 그만 죽고 싶습니다. 판사님예."

"판사님, 그라믄예 우리 아들 혼인무효로 만들어 주이소. 죽은 놈 원이라도 없게 그래 해주이소. 세상 마지막 떠나는 길에 코빼기도 안 비치는 그게 우예 마누라입니꺼. 이 결혼은 무효아입니꺼."

이 사건에 대한 그녀의 판결이...

법리와 구체적 타당성을 두고 이틀여를 고민하다 마음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AI 판사였다면 고민도 없이 법리대로 기각판결을 했겠지만, 나는 AI 가 아니지 않은가.

법대 아래에서 가슴 치며 울고 있는 노모의 눈물을 미약하나마 판결로라도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 page 60

이것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 아닐까...!

그리고 이 사건...

티비에서도 다루었었는데...

"판사님... 저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러다간 저희 가족 모두 죽을 것 같아요. 아이들을 키워야 해요. 사랑하는 아내에겐 정말 미안합니다. 끝까지 남편으로 남아 있어 주지 못해서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래도 착한 내 아내는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줄 겁니다..."

학교 선생님으로서 다정하면서 책임감이 강했던 남편은 사랑스러운 아내와 결혼해 곧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뇌병변과 지적장애 등 중복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아픈 아들을 열심히 돌보았는데...

건강했던 아내가 40대 초반의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이 가정은 평범했던 일상이 멈추게 됩니다.

아픈 아내와 중증 장애를 가진 큰아들, 어린 둘째와 셋째 자녀까지.

어쩔 수 없이 시설에 보내게 된 큰아이.

아내와 큰아이의 병원비와 간병비로 거액을 지출하게 되면서 가정경제는 급격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어 이혼소장을 제출하게 된...

여기서 눈물이 났던 건

병원에 누워있던 아내가 법원에서 온 이혼소장의 내용을 전해 듣고 이혼에 동의하냐는 물음에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는 것에서...

그 '어쩔 수 없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자녀가 있는 모든 이혼사건에서 반드시 이혼주례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위의 사건은 예외였지만...)

엄마와 아빠는 서로 원해서 결혼했고 서로 원해서 이혼하지만

아이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엄마 아빠가 헤어지는 이혼가정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니

자녀들의 상처를 회복시키기 위한 책임감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이혼과정 속에서 입는 아이들의 상처를 회복시키기 가장 좋은 방법이 비양육친의 정기적이고 원활한 '면접교섭'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몹쓸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다른 한쪽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거부감과 분노감이 생긴 것은, 아이들의 정서가 병들어 가고 있는 심각한 신호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혼 진행 중에 있는 부모들은 자신의 힘든 상황에만 함몰된 나머지 자녀의 영혼이 아파하며 소리 없이 울부짖는 것을, 그러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면접교섭을 거부하는 그 상황을 이용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보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여기며 소송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전진합니다. 아이는 상대방과 단절시키기만 하면 저절로 잘 회복될 거라고, 그렇게 시간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믿으며 말입니다.

자녀를 재판에 이용하지 마세요. 자녀는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감 해소를 위해 소모되어야 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 page 66 ~ 67

아이들보다 못한 어른...

참으로 부끄럽고...

제발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사...

참 힘듭니다.

그래도...

원인의 결과가 나에게 달려 있고 내 인생의 운명이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지 남(편) 탓할 것 없는 것이니

이걸 안다면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음에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이 자꾸 밀어내니...)

어린 새끼들을 바라보며 무언가에 묶여 있음이 참 좋다고 느끼길...

쇠사슬일지, 거미줄일지 모르지만 '나이 들어서 누군가와 묶여 있다는 것, 그건 꽤 괜찮은 관계야'라고 느끼며 풍화되어가며 유장해지는 부부의 애정을...

저도 다짐하고 또 다짐해 봅니다.

또다시 이혼주례를 하고 있는 정현숙 판사.

그녀의 바람이 어렴풋이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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