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발전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산업혁명 덕분에 인류의 생산력은 높아졌지만, 한편에서는 방직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었습니다.
19세기 초 절박한 현실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일으킨 기계 파괴(러다이트) 운동...
그리고 현재 AI 기술 발달은 더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으니...
작가는
"대규모 단종이 예고된 '인간의 노동'이라는 카메라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자 한다"
며 국내외에서 발간된 보고서에서 머지않아 사라진다고 지목한 직업 가운데 넷을 골라, 그 직업들의 '비망록'을 남겼습니다.
작가는 네 직업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우선 <전화받다 - 콜센터 상담원>.
소위 감정노동의 '끝판왕' 자리에 있는 직업답게, 어느 고객의 말마따나 (고객들의) '감정처리'를 목적으로 생긴 이 직업.
그럼에도
오늘날 사람들은 묻는다. "어떤 직업들이 사라질 것인가?" "어떤 직업들이 나타날 것인가?" "직업이 사라진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콜센터를 떠날 때는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하고 싶어졌다. "어떤 직업들이 사라지는 게 나은가?" 급여도 적고 처우도 열악하고 이렇다 할 만족감도 주지 않는 일이라면, 운영 상태가 엉망인 기업을 도산 처리하는 게 나은 경우가 있듯이 직업도 그렇게 정리하는 게 나을 수 있을까? 나는 콜센터를 떠올리며 그렇다고, 이런 일자리는 그냥 사라지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상이 현실이 된 광경을 보니 그것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인지 깨달았다. 없어져도 상관없는 것에, 없어지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는 무언가 때문에, 사람들이 영하의 길거리에서 그것을 돌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을 리 없었다.
...
그래도 일하고 싶다. 생존에 있어 진실은 노동에 있어서도 진실이다. - page 108 ~ 109
<운반하다 - 택배 물류센터 상하자>.
소위 '까대기'로 칭하는 물류센터 상하차 일.
생명을 축내서 돈을 번다고 해야 할 이곳에서 작가는 '최고의 미스터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석구 형님의 아침 해를...
"... 오기 전엔 나도 걱정 많이 했어요. 20대 때 노가다 좀 뛰었지만 그거야 30년 전 일이고 젊은 애들도 골골댄다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처음엔 좀 버벅댔지만 끝날 때쯤 되니까 할 수 있겠더라고. 나는 거뜬히 하는데 등치 막 이따만 한 노랭이들이 힘들다면서 집에 가는 거 보니까 기분도 좋고 흐흐.
그러면서 밖에 나왔는데... 노오오오란 해가 떠 있는 걸 딱 보고 있는데... 그걸 뭐라고 할까, 아... 뭐라고 하면 좋을까... 나 살 수 있겠다... 충분히 살 수 있겠다.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게 참 희한해.
..." - page 177
희망의 풍경을 경험했다는 그.
하지만 이 직업의 대체확률이 0.99라고 하니...
이 동사의 멸종이란......
<요리하다 - 뷔페식당 주방>.
요리라고는 전혀 모르는 작가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간신히 자신의 몫을 해내게 됩니다.
정량화된 레시피대로 조리에 가까운 요리를 하는 뷔페식당이라지만...
분화된 파트 간, 그리고 주방과 홀 직원 간의 기싸움, 거기에 관리자까지.
그래서 작가는 이곳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주방은 정서장애를 유발하는 공간이다. 만족과 분노의 곡선이 주식 시세마냥 널뛰기하는데 이런 증상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뚜렷해진다. - page 259
그럼에도 버티는 사람이 있으니...
"보면은 직장에서 젊은 사람들 힘센 남자들, 이런 사람들만 뽑으려고 하잖아요? 그게 뭘 모르는 거예요. 그런 젊은 애들, 덩치 좋은 남자들은 언제든지 내키지 않으면 그만둬요. 우리 남편만 해도 누구랑 싸웠다고 누가 기분 나쁘게 했다고 그만둔 게 몇 번째예요. 그치만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여자들은 가게가 망하기 전까진 절대 안 그만둬요. 그런 사람들은 정말 필사적이에요. 절대 중간에 일을 그만두지 않는 사람들은 애 있는 엄마들이에요. 직원들이 자꾸 들락날락해서 골치가 아픈 사람은 애 키우는 엄마들만 뽑아야 돼요." - page 259
씁쓸함이란....
마지막으로 <청소하다 - 빌딩 청소>.
주방에서의 채용 기준선이 '경력'이었다면 청소에서는 그 선을 '노년'에 긋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 허탕을 치고 나서야 자리를 구하게 된 그.
그리고 이 일을 통해
하지만 누구도 얼룩 하나 없이 닦인 유리창의 가치에는, 막힌 변기를 뚫는 일의 가치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일은 지극히 단순하기에 이 일을 수행하는 인간에게 부여하는 의미에 조금의 모호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일을 제대로 안 해서 부끄러울 순 있겠지만 열심히해서 끝마친 후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자괴감은 들지 않는다. 우리는 그날그날의 결과물에 떳떳할 수 있었고, 우리가 속한 작은 세계 속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루어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 page 345
성취의 감각을 부단히 일깨워 준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동사의 대체확률이 1.00이기에 멸종은 결국 감각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책은 앞에서 <소개하다 - 직업소개소>와 마무리 <쓰다 - 작가>까지의 동사도 포함이었습니다.
유쾌하면서도 익살스러웠던 직업 풍경에 피식 웃다가 마지막의 쓸쓸한 풍경...
만감을 교차하게 해 주었습니다.
생산 활동에 인간의 노동력이 필수적이지 않게 된 상황을 두고 현재 전문가들은 해결책으로 기본소득 지급을 야기하는데...
사라지는 동사들 속에 '노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묵직한 한 방이 있었던 이 책.
많은 이들이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