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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대모갑테 안경을 쓴 이 남자.
체스 세계 챔피언 자리를 놓고 <디프 블루 Ⅳ>라는 컴퓨터와 대결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체스보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 그 눈 뒤에는 시각신경, 후두엽의 시각 영역, 대뇌 피질이 있다.
뇌의 회색질 속에서 전투 준비와도 같은 일대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수백만 개의 뉴런이 활성화한다. 이 뉴런들은 미세한 전기 충격에 차례차례 반응하면서 저희의 축삭 말단으로 신경 전달 물질을 내보낸다. 이 과정에서 신속하고 강렬한 사고 작용이 이루어진다. 생각들이 뇌 속에서 질주한다. 마치 미로처럼 복잡한 거대한 곳간에서 생쥐 수백 마리가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과거에 이기거나 졌던 판들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고, 갖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최선의 수를 찾는다. 이제 전기 충격이 반대 방향으로 전달된다.
대뇌 피질. 척수. 손가락 근육 신경. 나무 체스보드. - page 16
모두가 숨죽인 듯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마침내...
「체크메이트! 」
사뮈엘 핀처가 디프 블루 Ⅳ를 꺾고 세계 체스 챔피언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와의 두뇌 대결에서 다시 인간이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두 기사가 패배한 뒤로, 체스에서는 기계가 갈수록 인간보다 영리해질 거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습니다. 저 역시 그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까 봐 두려워했으니까요. 하지만 강한 동기를 지닌 사람은 한계를 모릅니다.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위험과 맞서며 지중해를 건넜던 것은 그에게 강한 동기가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했던 것도 암스트롱이 우주 공간을 비행하여 달에 갔던 것도 그들에게 동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인류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 여러분께서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아침마다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나는 어떤 일에 힘을 들이고 애를 쓰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일까?>하고 말입니다.」 - page 21 ~ 22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사뮈엘 핀처 박사는 아티브곶의 자기 빌라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게 됩니다.
톱모델인 약혼녀 나타샤 아네르센과 사랑을 나누던 도중 황홀경에 이른 표정으로 돌연 죽음을 맞이한, 경찰의 수사 결과로는 그가 복상사를 한 것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학부의 셜록 홈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기자 출신 '이지도르 카첸버그'는 직감적으로 수사 결과에 의문을 품고 『르 게퇴르 모데른』 지의 기자인 '뤼크레스 넴로드'에게 함께 수사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뭘 기대하는 거죠, 이지도르?」
「우리가 다시 한 팀을 이루어서 일하면 좋겠다 싶어요. 사뮈엘 핀처 박사 피살 사건에 관해 함께 조사를 해보자는 거죠...... 내 직감으로는 뇌를 주제로 한 탐구가 필요할 것 같아요.」
...
「뇌라고요?」
되묻는 그녀의 얼굴에 꿈꾸는 듯한 표정이 어린다.
「그래요, 뇌. 그게 이 조사의 열쇠예요. 피살자가 누굽니까? 바로 <세계 최고의 두뇌>가 아닙니까? 게다가 이게 있습니다. 보세요.」 - page 33
핀처가 체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동기>라는 말을 할 때 무언가를 밝히려는 듯한 눈빛이 보였다는 점을 들면서 '뇌'가 이 사건의 핵심이라 말하는 이지도르.
그리하여 이지도르와 뤼크레스는 삶을 이끄는 주된 동기들을 찾아 핀처의 진짜 사망 원인을 추적하면서, 그 동기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최후 비밀>이라는 무언가를 알게 되는데...
「당신이 무척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성애보다 더 강력한 동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술이나 마약 같은 거 말인가요?」
「넴로드 씨,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죠? 한때 술주정뱅이였다고 또 술독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나에겐 알코올 의존보다 더 강력한 동기가 있어요. 마약으로 말하자면, 나는 환각을 일으키는 풀을 맛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주사를 맞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뭐죠? 무엇 때문에 당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거죠?」
「<최후 비밀> 때문입니다.」
「그런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신종 마약인가요?」
그는 파이프를 잡더니 그걸 가지고 손장난을 친다.
「그보다 훨씬 대단한 거죠. 모두가 말은 안 해도 다 그것을 갈망합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가장 경이롭고, 가장 위대한 것이니까요. 돈이나 섹스나 마약보다 대단한 것이죠.」 - page 285
<최후 비밀>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권에서 이어지는데...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작품 중에 이보다 더 몰입감 있게 읽었던 건...
(그동안 읽었던 건 고양이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미래였고... 인류의 미래를 둘러싼 이야기였고...
아무튼 인류와 문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어서 빨리 그의 사망 원인을, 무궁무진한 '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