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로컬, 브랜드 -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곽효정 지음 / 지금이책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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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오래 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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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
정경아 지음 / 세미콜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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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나이는 마흔에 접어들었고...

그러다 문뜩 그 중심엔 제가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공허함...

그렇다고 뭔가 도전하는 게 두려워 움츠리고 있었는데......

그러다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마냥 움츠렸던 저는 그녀로부터 도전을 배우고자 합니다.

지구생활 60년 기념 사업으로 시작한 공부!

문화센터라는 놀이터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찾아나가는

68세 K-그랜마의 명랑 노년 탐사기

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



언젠가 저도 그럴 것이고 누구나 때가 되면 '노인'이 됩니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될까...

내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해야 잘 늙을 수 있을까...

겪어보지 않았기에 두려움이 있음이 사실입니다.

'이 나이쯤 되면 배우는 게 최고 놀이'라는 그녀.

지구생활 60년 기념사업으로 동네문화센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노년에도 노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설렘과 재미를 꾸밈없는 목소리로 들려줌으로써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있음을,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음을, 그래서 우리 모두 노인의 삶을 멋들어지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단군 이래 최초로 백세 시대를 맞았다. 남은 생을 무엇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노년에 이른 모두의 큰 숙제다. 해답은 바로 지금, 노년기를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우리 생애 '세 번째 30년'으로 정중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장착하자는 말이다. 노년을 늙고 병들어 죽는 일밖에 남지 않은 여생 또는 죽음의 대기실로 생각하지 말고, 숨 쉬는 마지막 날까지 삶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이 주인공임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 page 14 ~ 15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배우는 게 치매 예방에 좋다고 말한 친구의 말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동네문화센터의 '중국어 첫걸음' 강좌에 등록하고는 '매년 한 가지씩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일 저지르기'를 부르짖으며 60대 초반에 배우기 시작해 어느덧 햇수로 7년 차.

물론 중국어를 배워 취직할 것도 아니고 승진 요건이 되지도 않지만 느슨한 학구열로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중국어 교재 한 권과 돋보기를 넣은 배낭을 메고 문화센터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만의 '갓생'을 살아가는 열정에 절로 박수가 나왔습니다.

나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노년은 오래 벼르거나 미뤄왔던 것을 시작하고 이어가기 좋은 시기이다. 그러니 그게 무엇이든 우선 찾아내기를 추천한다. 시작은 반이다. 나머지 반은 웃는 얼굴로 오래오래 가보는 것. 혼자보다는 관심사를 공유한 이들과 어울려 가는 방법이 더 좋겠다. - page 32

동네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고, 나이 제한이 없으며, 경로 할인까지 제공하고, 진도가 빠르지 않아 부담 없이 무리하지 않고 배울 수 있는 동네문화센터 프로그램의 매력.

그동안 아이들이 어릴 때에만 갔었는데 새삼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서로 잘하지 말자고 서로의 발전을 은근 방해하며 양꼬치맥 뒤풀이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이것이야말로 인간미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중국어뿐만 아니라 전통춤, 댄스스포츠, 펜화 블로그 만들기 등

마음속에 새로움이 결핍될 때 인간은 늙고 낡아가는지도 모른다. 배움은 부족해진 새로움을 채워 넣으려는 안간힘일 것이다. - page 89

무엇이든 배우는 삶으로부터 노년에도 성장할 수 있음을, 노년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고 희망과 용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눈물 나게 예쁜 봄을 다시 한번 맞은 엄마. "들여다볼수록 봄꽃들이 기특해. 약하고 작은 것들이 겨울을 견뎌내고 연둣빛 이파리를 피우는 걸 봐라. 세상에 제일 힘센 건 바로 봄이야."

90대 엄마의 느릿느릿한 일상 궤적을 따라가면 그곳에 미래의 내가 보인다. 머지않아 다가올 내 70대와 80대의 날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 알 수 없는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우게 될까? 길례 씨가 말한다. "몸은 해마다 늙고 낡아가도, 오는 봄은 모두 새봄이더라. 이런 예쁜 봄날에 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오늘이 너무 좋다. 특별히 나랄 게 하나도 없어." - page 210

그녀의 모습은 사실 우리 엄마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딸들이 결혼을 하고 나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신 엄마.

뭔가 배운다는 즐거움을 나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지만 그땐 귓등으로 흘려버렸던...

새삼 우리 엄마도 멋진 분이셨다는 것을, 힘찬 응원의 박수와 건네봅니다.

저도 동네문화센터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걸 배워볼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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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칸타타
김병종.최재천 지음 / 너와숲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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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와 과학자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는데 이들이 '생명'을 주제로 대담을 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되었었습니다.

두 저자의 시선 끝에 나의 시선도 마주할 수 있을까...?!

그들의 동행에 저도 동참해 봅니다.

생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생명 칸타타



생명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바보 예수>와 <생명의 노래> 연작을 통해 끊임없이 생명을 화두로 작품 세계를 펼쳐온 한국화가 '김병종'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살라'는 '명령'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숨 쉬는 일이고 움직이는 일이다. 그림도 살아 있는 생물이다.

내 그림은 모두 숨 쉬고 움직이며 이동한다. 멈춰 선 순간처럼 보이는 그 속에도 정중동의 미묘한 움직임이 있다. 노래는 그 움직임들이 서로 만나고 흐트러지면서 순간순간 만들어내는 가락이다. 따라서 내 그림 속에 진정한 의미의 스틸 라이프는 없다. - page 13

젊은 나이에 입원 생활을 하면서 줄레줄레 주사 줄이 꽂혀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서 비로소 생명의 울림, 소중함이 사무치게 다가왔다는 그.

그래서 작은 것들, 어렸을 때 만난 생명의 호흡들을-바람의 향기, 햇빛, 구름의 이동, 분분히 날리던 송홧가루 같은- 그리게 되었다는 그.

그의 그림을 보면 생명의 아름다움을, 같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저에게는 <몽환의 구름, 송화분분>으로부터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송화 꽃에도 암수가 있어서 먼저 꽃을 피워 모체를 떠나는 것이 수꽃이라 합니다.

수꽃들의 발화가 가장 왕성하게 일어날 때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그 노란색 생명체의 여행을 도와준다는데...

안타까운 것은 아주 적은 수의 꽃들만이 암수 결합하여 생명을 잉태하고 대부분은 낙화하고 만다는 사실. 방하착. 이상적 만남으로 생명 유전자가 무사히 싹을 틔우면 낙락장송도 나올 수 있지만, 대부분 화롯불에 떨어지는 눈꽃 한 송이처럼 그렇게 소멸해간다. 그토록 소멸해갈 것이라면 저 노란 점들은 왜 저토록이나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태어나 떠나가는 것일까. 아름답지만 슬프다. 몽환의 구름처럼 떠가던 그 송화분분. - page 37

어디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그 몽환적 노란색의 이동.

이토록 쓸쓸하고도 찬란한 송홧가루를 그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에 대해 동물과 곤충들의 행동 연구를 통해 인간의 삶, 나아가 생명의 과학적 진리를 찾아 나서고 과학의 대중화를 주창해 온 최재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에 관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해요. 할 수 있다면 종교에서 바라보는 생명의 의미, 예술가들이 그려내는 생명의 모습 등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생명을 죄다 다뤄보고 싶어요. 이런 생각을 왜 하게 되었는가 하면,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하긴 했는데 어느 날 생명의 가장 보편적 속성이 뭘까 하는 생각을 스치듯 하다가 아, 죽음이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적어도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은 언젠가 끝이 나잖아요. 모든 생명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이 바로 죽음이에요. 그 생각을 하고 나니까 '아, 이거 한번 제대로 정리해봐야겠다' 싶었어요. - page 123 ~ 124

죽음을 전제로 한 생명.

그럼에도 영속성이 있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연속성도 있는 '생명'의 고귀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늘 사고하며 살아가는 유일한 동물도 아니고, 가장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의 영장이라는 책임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인간이 참으로 특별난 종임에는 틀림없으나, 인간도 엄연히 이 자연계의 한 구성원이며 진화의 역사를 가진 한 종의 동물에 불과하다는 사실 역시 틀림없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글의 제목을 '자연 앞에 겸허한 자세로'라고 붙였었다. 그러다가 글을 써 나가던 도중에 '자연 속에 겸허한 자세로'라고 바꿨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감히 자연 앞에 건방지게 설 수 있겠는가? 그 말 또한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켜놓고 보는 이원론이 아닌가? "드디어 적을 찾았다. 그런데 그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라는 표현처럼 겸허한 자세로 자연 속에 다시 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page 214

생명의 끝은 죽음, 죽음의 시작은 생명.

이 슬픈 알고리즘 속에서 이들이 전한 메시지.

한번은 짚고 넘어갈 우리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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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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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최후 비밀>이란 대체 무엇일지 그 해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현재와 과거가 갈마들며 펼쳐지는

쾌락과 인간 심리, 뇌 속 비밀에 대한 탐구

뇌 2



<최후 비밀>이란 무엇일까...?!

과거 시점의 리스(리스란 Locked-In Syndrome의 줄임말로, 신경 체계가 마비되어 눈 깜박임만 가능한 질환을 의미합니다.) 환자 '루이 마르탱'의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은 거슬러 1954년 미국의 한 연구소.

당시 미국의 신경 생리학자 제임스 올즈는 뇌에 전기 자극을 주면 쾌감을 느끼는 부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걱정해 숨겼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핀처와 마르탱이 발견하고는 '쥐'로 실험을 하게 됩니다.

최후 비밀에 전선을 연결하여 전기 충격을 주면 그 쾌감으로 자신의 능력 최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그건 불의 발견이나 원자력의 발견과 같은 거예요. 우리를 따뜻하게 해줄 수도 있고 우리를 태워 버릴 수도 있죠. 둘 중에서 어느 쪽이 되느냐 하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 page 22

이를 생쥐가 아닌 인간을 상대로 실험해 보고 싶었던 핀처.

「장루이, 한번 상상해 보게. 인간이 이 생쥐들처럼 강한 의욕을 갖고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장애든 뛰어넘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두개골에 구멍을 내서 뇌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영역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 실험을 누가 받아들이겠나?>

「내가 있잖아.」 - page 108

그리하여 최종적인 목표였던 그 이유를, 그 실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유쾌하다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그 부위를 자극함으로써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겁니다.」

그는 스스로 쾌감 중추로 규정한 작은 점을 볼펜 끝으로 콕콕 찌른다. 그 바람에 종이 식탁보에 구멍이 생긴다.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게 바로 이거예요.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이유죠. 사뮈엘 핀처는 이 부위를 <최후 비밀>이라 명명했어요.」 - page 143

그리고 최후...

그 끝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심이 어떨지요...!

이 소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120

그런데...... 나는 진정 무엇 때문에 이 모든 일을 기도하고 행하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제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한 기계라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무엇.

바로 '동기'와 '쾌락'.

그럼 다시금 묻게 됩니다.

우리의 뇌는 쾌락을 만족하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것일까...?

단순한 듯했지만 심오했던, 뇌라는 미지의 영역에 한 발 다가간 느낌이었습니다.

왜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걸작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던, 추상적이고 까다로운 소재를 추리적 기법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파고들며 소설적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었던 이 소설.

덕분에 '뇌'에 대해 더 알고 싶었습니다만...그렇다고 뇌과학으로 깊이 있게 갈 만큼의 수준은 아니고...

아무튼 많은 공부를 한 것 같았고 소설인 듯 과학인 듯한 그의 다른 작품 역시나 기대가 되었습니다.

무얼 읽어볼까나......

또다시 기웃거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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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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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의 작가 데뷔가 어느덧 30주년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30주년 기념으로 펴낸 에세이도 읽었었고, 그의 작품은 최신작부터 역으로 읽어가던 중 아직 접하지 못했던 전작들...

그러다 이번에 한국어판 출간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판형과 장정으로 단장한 그의 작품들이 속속히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그의 매력에 빠져든 저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기에!

차근히 그의 작품 하나하나 격파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을 나누다 사망한 체스 챔피언

그가 밝히지 않았던 <은밀한 동기>란 무엇인가

뇌 1



1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대모갑테 안경을 쓴 이 남자.

체스 세계 챔피언 자리를 놓고 <디프 블루 Ⅳ>라는 컴퓨터와 대결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체스보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 그 눈 뒤에는 시각신경, 후두엽의 시각 영역, 대뇌 피질이 있다.

뇌의 회색질 속에서 전투 준비와도 같은 일대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수백만 개의 뉴런이 활성화한다. 이 뉴런들은 미세한 전기 충격에 차례차례 반응하면서 저희의 축삭 말단으로 신경 전달 물질을 내보낸다. 이 과정에서 신속하고 강렬한 사고 작용이 이루어진다. 생각들이 뇌 속에서 질주한다. 마치 미로처럼 복잡한 거대한 곳간에서 생쥐 수백 마리가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과거에 이기거나 졌던 판들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고, 갖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최선의 수를 찾는다. 이제 전기 충격이 반대 방향으로 전달된다.

대뇌 피질. 척수. 손가락 근육 신경. 나무 체스보드. - page 16

모두가 숨죽인 듯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마침내...

「체크메이트! 」

사뮈엘 핀처가 디프 블루 Ⅳ를 꺾고 세계 체스 챔피언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와의 두뇌 대결에서 다시 인간이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두 기사가 패배한 뒤로, 체스에서는 기계가 갈수록 인간보다 영리해질 거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습니다. 저 역시 그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까 봐 두려워했으니까요. 하지만 강한 동기를 지닌 사람은 한계를 모릅니다.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위험과 맞서며 지중해를 건넜던 것은 그에게 강한 동기가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했던 것도 암스트롱이 우주 공간을 비행하여 달에 갔던 것도 그들에게 동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인류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 여러분께서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아침마다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나는 어떤 일에 힘을 들이고 애를 쓰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일까?>하고 말입니다.」 - page 21 ~ 22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사뮈엘 핀처 박사는 아티브곶의 자기 빌라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게 됩니다.

톱모델인 약혼녀 나타샤 아네르센과 사랑을 나누던 도중 황홀경에 이른 표정으로 돌연 죽음을 맞이한, 경찰의 수사 결과로는 그가 복상사를 한 것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학부의 셜록 홈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기자 출신 '이지도르 카첸버그'는 직감적으로 수사 결과에 의문을 품고 『르 게퇴르 모데른』 지의 기자인 '뤼크레스 넴로드'에게 함께 수사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뭘 기대하는 거죠, 이지도르?」

「우리가 다시 한 팀을 이루어서 일하면 좋겠다 싶어요. 사뮈엘 핀처 박사 피살 사건에 관해 함께 조사를 해보자는 거죠...... 내 직감으로는 뇌를 주제로 한 탐구가 필요할 것 같아요.」

...

「뇌라고요?」

되묻는 그녀의 얼굴에 꿈꾸는 듯한 표정이 어린다.

「그래요, 뇌. 그게 이 조사의 열쇠예요. 피살자가 누굽니까? 바로 <세계 최고의 두뇌>가 아닙니까? 게다가 이게 있습니다. 보세요.」 - page 33

핀처가 체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동기>라는 말을 할 때 무언가를 밝히려는 듯한 눈빛이 보였다는 점을 들면서 '뇌'가 이 사건의 핵심이라 말하는 이지도르.

그리하여 이지도르와 뤼크레스는 삶을 이끄는 주된 동기들을 찾아 핀처의 진짜 사망 원인을 추적하면서, 그 동기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최후 비밀>이라는 무언가를 알게 되는데...

「당신이 무척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성애보다 더 강력한 동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술이나 마약 같은 거 말인가요?」

「넴로드 씨,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죠? 한때 술주정뱅이였다고 또 술독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나에겐 알코올 의존보다 더 강력한 동기가 있어요. 마약으로 말하자면, 나는 환각을 일으키는 풀을 맛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주사를 맞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뭐죠? 무엇 때문에 당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거죠?」

「<최후 비밀> 때문입니다.」

「그런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신종 마약인가요?」

그는 파이프를 잡더니 그걸 가지고 손장난을 친다.

「그보다 훨씬 대단한 거죠. 모두가 말은 안 해도 다 그것을 갈망합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가장 경이롭고, 가장 위대한 것이니까요. 돈이나 섹스나 마약보다 대단한 것이죠.」 - page 285

<최후 비밀>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권에서 이어지는데...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작품 중에 이보다 더 몰입감 있게 읽었던 건...

(그동안 읽었던 건 고양이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미래였고... 인류의 미래를 둘러싼 이야기였고...

아무튼 인류와 문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어서 빨리 그의 사망 원인을, 무궁무진한 '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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