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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 산책 -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길
윤재웅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평점 :
'코로나19'로 뜻하지 않았던 집콕생활에 열심히 보는 프로그램이 생겼습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세계 속 다양한 도시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역사와 문화, 삶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그곳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기에 예전에는 잘 보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챙겨보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이 책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작은 마을부터 대도시까지
건축과 문학, 시와 예술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이번엔 국문학자와 함께 걸어서 유럽 속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유럽 인문 산책』
폐허에서 피어오른 지성의 힘 '이탈리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가 대제국을 이루던 시절 그들은 도로를 튼튼하고 실용적으로 건설하기 위해 '돌길'을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랜 시간을 간직한 돌길을 바라보며 저자는 '신발'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과 자연을 정감적으로 연결하는 흙길. 이에 반해 로마 돌길은 물류 신경망이지요. 개인의 느낌보다 물량과 속도가 중요합니다. 이 비정한 인프라 위를 맨발로 걸을 순 없습니다. 발과 돌 사이에, 육체와 대지 사이에, 중간지대가 있어야 합니다. 신발은 그런 숙명의 주인공입니다.
돌길과 신발.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낮은 것을 통해 로마의 문명을 생각합니다. - page 16
그렇게 제국의 찬란한 아이콘이지만 정복과 약탈의 상징이기도 한 돌길.
그 돌길 위에서 그의 유럽으로의 인문학적 사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최고의 건축술과 예술 솜씨로 찬란했던 영광의 도시가 폐허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곳,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그 폐허 속에서도 하얀 민들레, 파란 제비꽃, 붉은 양귀비 등의 봄풀과 꽃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축복도 존재함을, 생명의 이치를 깨닫게 해 준 곳.
포르 로마노 팔라티노 폐허를 거닐다가 문득 발견한 풀꽃들. 변함없이 정확한 땅의 음악들. 색깔과 향기와 벌 나비 붕붕거리는 소리의 향연. 시인 정지용이 「향수」에서 노래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같은 수수한 자태 뒤엔 또 얼마나 많은 풀씨, 꽃씨의 음표들이 태어나겠는지요. 찬란한 로마의 영광보다 작고 하잘것없는 생명이지만 세세생생 거듭해 살아가는 '오묘한 힘'입니다. - page 29
그렇게 이탈리아 돌길을 씁쓸히 거닐어 보았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살아가기 '프랑스'.
미술과 패션의 도시.
음악가와 시인의 나라.
예술가들의 고향, 파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로댕의 작품들이 있는 로댕 박물관.
조각품을 보면서 느낀 그의 이야기가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로댕박물관 정원에서 두 갈래의 길을 봅니다. 우골리노의 길과 칼레 시민의 길. 자기 한 몸 살려고 자손을 먹어치우는 사람. 모두를 살리려고 스스로 사형대에 나서는 사람. 결국 사람 속에 지옥의 길도 있고 천국의 길도 있습니다. 참담하고 고결한 두 갈래길. 알고 보면 우리 마음의 길이기도 합니다. - page 120
그리고 프랑스의 중심이자 파리의 씨방 같은 시테섬에 있는 유배 순교자 기념물.
2차 세계대전 때 국외로 추방되어 나치 수용소에서 희생된 프랑스 시민들의 넋을 기리는 공동묘지로 높게 솟아있는 콘크리트 벽이 그들의 아우성을 담고 있는 듯 하여 가슴 시리게 차가웠습니다.
질식할 듯한 침묵 속에 존재하는 이 곳에서 전한 그의 이야기.
그것은 정말 감각일까요? 아니면 심층무의식일까요? 검고 긴 통로 속에 묻혀 있는 영혼의 별들은 어두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지금 내게 다가옵니다. 서럽고 안타까운 목숨의 파도들이 이방 나그네의 가슴에도 밀려오는 겁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햇빛 밝은 거리에 나가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빛을 나누는 일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과도 함께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도 그런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 내 삶인 겁니다. 나는 곧 당신입니다. - page 140
마지막으로 떠나게 된 세상의 모든 시가 태어나는 곳 '스페인'.
느리게 걷고 사유할 수 있는 그 길,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나를 만날 수 있는 그 길 위엔 '고독'이 있었습니다.
고독한 행인이, 가슴 절절하게 고독해본 티끌만이, 다른 티끌을 사랑하는 법입니다. - page 216
그렇게 자기의 고독 속 다른 티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이곳에서 저자가 전한 이야기가 요즘 사회적 거리로 서로 멀어져버린 우리에게 몸은 비록 멀어지더라도 마음만은 멀어지지 말라고 전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아무리 근사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작지만 쉬운 답을 찾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기. 가까운 이웃 손잡아주기. 무얼 먼저 하든 괜찮습니다. 따뜻하면 됩니다. 나부터 따뜻해도 좋지만 상대를 따뜻하게 대해주면 나도 따뜻해집니다. 그러면 창백한 푸른 점이 점점 어두워져 아주 꺼져버리는 일은 없을 테지요. 비록 '햇빛 속에 떠도는 작은 먼지 천체'이지만 여전히 빛나는 별일 테지요. 다정하세요. 다정합시다! - page 218
그가 남긴 발자국에 살며시 내 발자국을 남겨봅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이 교차하였습니다.
떠나온 과거가, 지금이, 그리고 다가올 미래까지도......
그 속엔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에 생각을 더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