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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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작품 중 첫 작품이었던 『티핑 더 벨벳』을 읽었었습니다.

한 소녀가 남장 여가수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겪게 되는 성장통을 세밀하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려냈기에 이런 장르를 처음 접해본 저로서는 낯설지만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번째 이야기 역시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어떤 여성이 그려지고 있을지...

 

『티핑 더 벨벳』과 『핑거스미스』를

이어 주는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정수

 

끌림

 

 

1873년 8월 3일.

 

「오, 너무 무서워요! 오, 도스 양, 제발 부탁이에요. 피터가 더 다가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 page 10

 

매들린은 비명을 질렀고, 사지가 뻣뻣해지면서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이 소리를 어렴풋이 듣게 된 브링크 부인.

 

「도스 양, 무슨 일이죠? 다쳤나요? 다친 거예요?」그 소리를 들은 매들린은 꿈틀거리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브링크 부인, 브링크 부인, 살려 주세요. 이자들이 절 죽이려 해요!」 - page 11

 

결국 이로 인해 죽은 건 매들린이 아닌 심장이 약했던 브링크 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

 

부인은 고함과 슬퍼하는 소리를 듣고 있을 터며,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있기를 여전히 바랄 것이다. 부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할지 나는 안다.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그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인의 조용한 목소리는,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는 그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목소리다. - page 14

 

그리고 시간은 1년 정도 흐르게 됩니다.

1874년 9월 24일.

아버지를 여의고 마음의 병으로 인해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류층의 여인 '마거릿 프라이어'.

일주일 전, 그녀에게 교도소 담당자인 실리토 씨로부터 밀뱅크 감옥에 초대를 받게 됩니다.

 

「잠시 저 불쌍한 여인들이 밀뱅크에 닿을 때까지 지나온 힘겹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프라이어 양? 도둑이었을 수도 있고, 창녀였을 수도 있고, 악당들에게 잔혹한 대우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저 여인들은 염치며, 의무, 기타 섬세한 감정들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릅니다. 네, 확신하셔도 됩니다. 사회는 저 여인들을 악한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저 여인들을 핵스비 양과 저에게 맡겨 세심히 돌보게 했습니다......」 - page 24

 

아무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방문객-숙녀-이 오는 것이 필요한 이유를 실리토 씨가 이야기합니다.

 

 

어찌 보면 꺼림칙할 수 있는 일인데 자선활동 겸 자신에게도 뭔가 삶의 변화를 주고자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과의 만나겠다고 결심한 마거릿을 보면 용감하고도 개성적인 인물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성 교도소가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면... 마거릿이 그렇게 죄수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사방은 어둡고 뭔지 알 수 없는 악취.

죄수들은 한 달에 두 번의 샤워만 허용이 되고 자신의 물건은 허용되는 않는 공간.

아무 특색 없는 감방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비참함을 느끼게 되고 야비해 보이는 얼굴에 구부정 자세로 걷는 이들은 마치 '유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여죄수들 중에서도 유독 그녀의 마음을 끄는 이가 있었으니...

 

그 여자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고개는 뒤로 젖혔고 두 눈을 감은 채였다. 뜨개질감은 무릎 위에 놓였지만, 두 손은 살짝 맞잡았다. 감방 창의 노란 유리는 태양으로 밝았으며, 여자는 햇빛의 온기를 받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진흙색 옷소매에는 죄수의 등급을 표시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별이었다. 별은 펠트 천을 대충 잘라서 만든 것이며 바느질도 엉망이었지만, 햇빛에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모자 가장자리로 보이는 머리털은 금발이었다. 뺨은 창백했고, 그에 대조되어 눈썹과 입술과 속눈썹이 또렷했다. 나는 크리벨리가 그린 성자나 천사의 그림에서 그 여자와 비슷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 - page 46 ~ 47

 

그 여자 이름은 무엇일까...?

 

바로 영혼과 교통하는 영매 '셀리나 도스'였습니다.

그녀가 교도소에 온 이유는 어떤 숙녀가 해를 당했다는, 그 <해>라는 것이 살인이 아니라 상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건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모든 혐의는 날조된  것이며 아주 영리한 검사가 조작한 것이라는...

과연 이 여인에게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마거릿은 묘하게 끌리는 셀리나로 인해 점점 그녀와의 만남을 자주 갖게 되면서 자신의 마음마저 주게 되는데...

 

나는 내 삶을 옮겨 적는 책을, 삶이나 사랑이 전혀 배어 있지 않은, 그냥 카탈로그처럼, 일종의 목록처럼 만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결국 내 망음이 일기장의 굴곡진 길이 보였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것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리고 계속해 견고해지더니 마침내 하나의 이름이 되었다.

셀리나. - page 360

 

 

이번 소설은 저번 『티핑 더 벨벳』보다는 가독성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마거릿과 셀리나가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되었기에 보다 그 캐릭터에 몰입하면서 읽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셀리나에게 얽혀 있던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기에 그 스릴에 짜릿함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이 소설이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정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이 시대의 여성들의 삶은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사회적 제약도 있었기에 억눌린 삶을 살았기에 그 끝이 참으로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련히 이 여성들이 책을 덮어도 남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과연 이 여성들이 이 시대를 살아간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란 궁금증도 남곤 하였습니다.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을 처음 접하게 될 이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끌림』을 먼저 읽고 난 뒤 『티핑 더 벨벳』을 읽으면 보다 여성들의 감성을 점점 섬세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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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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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도 '시'란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다...

 

'나태주 시인'으로 다시금 '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말 그래도 시인이 시를 데리고 저에게로 찾아왔었습니다.

그때는 국내 명시 114편으로 눈부신 위로를 선사했던 그.

 

이번엔 해외 명시 120편으로 찬란한 축복을 선사한다고 하였습니다.

 

바람이 계절을 바꾸듯 곧 좋은 날이 온다

 

시인 나태주가 뽑은 해외 명시 120편의 찬란한 축복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냥 좋다!'

란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제가 표현력이 떨어져서,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잘 몰라 그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냥 좋다!'란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솔직히 해외 명시라 하면 우리와 감성이 다르지 않을까란 선입견이 조금은 있었습니다.

읽기 전에 '공감이 안 되면... 어쩌지...' 란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저 자신이 조금 창피하였습니다.

짧은 글귀에 담긴 진심 어린 이야기.

특히나 시의 매력은 읊으면 읊을수록 더 와닿는 매력에 시 하나 읽고 잠시 명상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낯설지 않았던 제목,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지나간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앞으로의 나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슬퍼하거나 화내지 말기를...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올지니...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김장훈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아하!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이 낯설지 않았던 것일까...?)

 

이젠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요
그 누구보다 그대 사랑했음을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 몰라도
내가 그대 곁에 있음을 기억해요
이젠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요
그 누구보다 그대 사랑했음을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 몰라도
내가 그대 곁에 있음을 기억해요

 - 김장훈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

 

세상이 속일지라도, 삶이 속일지라도 누군가는 그대 곁에 있음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합니다.

 

유독 이 시가 책을 덮어도 남았습니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이 시를 읽을 때 특히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곤 하였습니다.

한 송이 꽃과 같은, 아니 그보다도 예쁜 우리 아이들.

그래서 이 시는 따로 종이에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기도처럼, 그렇게 이 시를 읊어보려 합니다.

 

신이시여 지켜주소서

순수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시를 읽는 시간이 참 좋은 시간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인의 시선으로 그려진 시를 통해 내 안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고 더불어 나를 위로할 수 있음에...

그래서 나태주 시인은 앞서 이렇게 이야기했나 봅니다.

 

울고 싶은 당신들에게 이 시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목마른 당신, 외로운 당신에게 이 시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시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들이 당신에게 잃어버린 사랑을 데려다줄 것입니다. 당신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더불어 약속해줄 것입니다. 당신을 대신하여 기도가 되어줄 것입니다. 시가 사람을 살리는 좋은 약이라는 믿음을 나는 한순간도 놓아본 적이 없답니다. - page 5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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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의 과학 - 더하고 빼고 뒤집으면 답이 보인다
김준래 지음 / 오엘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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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예!'라고 생각할 때 '아니오!'를 생각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은 누군가에겐 터무니없는 일이라 생각할지라도 언젠가 이것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한 걸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래서 '역발상'이라는 것이 재미나고도 흥미로운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 역시도 '역발상'으로 '유레카'가 등장한 것을 소개하고 있다고 해서 궁금하였습니다.

과연 어떤 역발상의 세상이 펼쳐질지...

 

때로는 역발상, 거꾸로 보기

상식을 뒤집어보는 역발상의 과학세계

 

역발상의 과학

 

 

TV를 보다 보면 흥겨운 CM송이 들려옵니다.

"따뜻한 우리 집은 ○○○○~"

그리고는 '거꾸로 타는 보일러'를 광고합니다.

그때는 무심코 흘려 들었던 이 이야기가 이 책에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상향식 구조의 가정용 보일러는 열에너지 효율이 평균 40 ~ 5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버려지는 다량의 열에너지 효율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는 생각에서 시도한 역발상의 결과가 바로 하향식 연소 구조를 가진 '거꾸로 타는 보일러'다. 이 보일러는 연소 버너를 보일러의 윗부분에 설치해 발생하는 열에너지가 최대한 보일러 안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설계했다. - page 219 ~ 220

 

'원래 그랬어'라거나 '관행이야'라는 말 그대로 지냈다면...

만나지도 못했을 것들.

하지만 상식을 뒤집어 보려는 노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없었다면 이뤄낼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이런 '역발상', 때로는 거꾸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특히나 우리 집에도 항시 구비되어 있는 '일회용 반창고'.

일회용 반창고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가 아내의 덜렁대는 버릇으로 매번 다치는 아내를 위해 발명(?) 했다는 남편.

와....

(부러우면 지는 거지만... 순간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필요에 의해 아주 단순하지만 꼭 필요한 제품이 탄생되기도 한다는 사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변을 조금만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누구나 발명가가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이제는 개똥이 더 귀하다는 사실을 일러준 '분뇨의 고형 연료화'와 '생활쓰레기의 고형 연료화'.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가축분뇨나 생활쓰레기.

이젠 이들이 고효율 에너지원으로 탈바꿈함으로써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보다 더 귀한 이야기를 저자는 해 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이 참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책 속엔 역발상의 사례를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게도 그려내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무심코 읽으면서 '아! 이런 사실도 있구나!'라고 감탄하게 되고 조금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더 찾아보게끔 유도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담 없이, 하지만 독자들에게도 역발상을 자극하는 자극제 역할을 똑똑히 해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시선을 뒤집어보면 보이는 역발상의 과학세상.

우리 주위에도 무궁무진함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 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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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의 과학 - 더하고 빼고 뒤집으면 답이 보인다
김준래 지음 / 오엘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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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뒤집으니 비로소 세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보다 편리한 세상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그래서 가끔은 역발상으로, 거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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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
김민현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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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찾기 전까지 절대 저승으로 갈 수 없다.

 

또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일일지...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겠다는 그.

과연 자신을 죽인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은 단 7일,

나를 토막 살인한 범인을

찾아야 떠날 수 있다!

 

경계인』 

 

 

과거 샤워장으로 사용된 듯 타이로가 수도시설이 갖추어진, 그러나 오래전에 버려졌는지 이끼와 곰팡이로 가득하고 전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전선만이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는 이곳.

퍼져나가는 연기 아래,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든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우진.

저승사자인 그는 오랜만에 이승의 망자를 '수거'하러 나왔습니다.

 

넥타이에 베스트까지 완전히 갖춘 깔끔한 진회색 정장을 입은 20대 후반의 남자 귀신.

귀신의 이름은 주현.

그의 발아래 자신의 시신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몸은 조각조각 토막난 채 비닐봉투에 담겨 있는, 하루아침에 토막살인을 당한 건강한 20대 청년.

 

"저는 평범하게 살아왔습니다.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대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부모님이 제 시신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저승에 가겠습니까."

"누가 자네를 죽였는지 알아야만 저승에 갈 수 있다는 건가?"

"네, 기왕이면 살인범이 처벌되는 모습도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 page 15

 

아직까진 토막살인을 당해 죽은 귀신치고는 보기 드물게 침착하고 이성적인 주현.

하지만 저승에 가는 시간이 지체될수록 인간의 자아를 잃고 분노로만 가득 찬 악귀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기에 어떻게든 주현이 저승에 가 주길 바라지만 설득도 잘 먹히지 않는 상황.

 

그런데 누군가 샤워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키는 160센티미터 후반에서 170센티미터 초반, 체격은 왜소한 편.

검은색 일회용 마스크로 얼굴 절반 이상을 가려 눈밖에 보이지 않지만 쌍꺼풀이 짙은, 양옆으로 길게 찢어져있는 눈.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목까지 올려 입은 남색 점퍼의 가슴 쪽에 새겨진 노란 자수.

홍인철강.

 

짚이는 건 딱히 없지만 간절히 부탁하는 주현에게 우진은 특별한 기회를 줍니다.

 

"그렇지. 가장 큰 이유는 자네가 이승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다녀도 악귀가 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봤기 때문이네. G4 비자를 받았는데 자네처럼 시종일관 침착하게 행동하는 귀신은 보기 드물어. 그래서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야. 이 말은 곧, 이승에 내려가 자네가 왜 죽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악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소릴세. 아구기가 되어서 강제로 끌려온다면 자네의 저승 생활도 녹록지 않을 테고, 나도 부하들을 볼 면목이 없어질 테니." - page 36

 

단 주현에게 감시자를 붙이게 됩니다.

이 감시자가 바로 '경계인'인 흡혈귀 성민이었습니다.

7일간 성민과 함께 자신의 죽음을 밝히는 주현.

사건을 파헤칠수록 주현의 죽음 이전에 그와 관계된 이들의 살인사건들이 있었고 그 범인으로 주현이 주목된 가운데...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정말 그는 피의자이자 원한으로 죽음을 당한 것일까...?

진실을 향해 갈수록 사건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데...

 

주현이 기자인 윤진과 이런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냥 없었던 일이라고 여겨요."

살면서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율로 따진다면 기억하는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기억에 없는 일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인생은 걱정밖에 남지 않는다.

죽은 뒤의 인생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저는 주현 씨를 믿어요. 적어도 주현 씨가 생전에 나쁜 일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를 믿어줄게요." - page 252 ~ 253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불안해하며 살 필요 없다고,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믿어준다는 이 한 마디가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위안이 된다는 것을 새삼 스스로에게 얘기해 봅니다.

 

그리고 윤진이도 그랬고 성민이도 '사람을 믿는다'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민은 주현에게 충고했다.

"주현 씨는 저를 믿으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저를 완전히 믿지는 마세요."

"네?"

"그렇다고 완전히 의심하지도 마시고요. 적당히 믿어주세요."

주현은 성민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적당히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지요?"

"일단 믿되 배신당했을 때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믿어주시면 좋겠다는 의미예요."

"배신하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 page 300

 

질투와 배신, 거짓과 탐욕이 난무한 이승에서 '믿음'에 대한 의미가 참으로 씁쓸히 다가오곤 하였습니다.

 

소설을 읽을수록 흥미진진하게 몰입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얽혀있던 사건들이 하나둘씩 풀려나가는 통쾌함.

그리고 마지막 반전.

저승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결합을 이 소설을 통해 그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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