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계인
김민현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범인을 찾기 전까지 절대 저승으로 갈 수 없다.
또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일일지...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겠다는 그.
과연 자신을 죽인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은 단 7일,
나를 토막 살인한 범인을
찾아야 떠날 수 있다!
『경계인』

과거 샤워장으로 사용된 듯 타이로가 수도시설이 갖추어진, 그러나 오래전에 버려졌는지 이끼와 곰팡이로 가득하고 전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전선만이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는 이곳.
퍼져나가는 연기 아래,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든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우진.
저승사자인 그는 오랜만에 이승의 망자를 '수거'하러 나왔습니다.
넥타이에 베스트까지 완전히 갖춘 깔끔한 진회색 정장을 입은 20대 후반의 남자 귀신.
귀신의 이름은 주현.
그의 발아래 자신의 시신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몸은 조각조각 토막난 채 비닐봉투에 담겨 있는, 하루아침에 토막살인을 당한 건강한 20대 청년.
"저는 평범하게 살아왔습니다.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대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부모님이 제 시신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저승에 가겠습니까."
"누가 자네를 죽였는지 알아야만 저승에 갈 수 있다는 건가?"
"네, 기왕이면 살인범이 처벌되는 모습도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 page 15
아직까진 토막살인을 당해 죽은 귀신치고는 보기 드물게 침착하고 이성적인 주현.
하지만 저승에 가는 시간이 지체될수록 인간의 자아를 잃고 분노로만 가득 찬 악귀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기에 어떻게든 주현이 저승에 가 주길 바라지만 설득도 잘 먹히지 않는 상황.
그런데 누군가 샤워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키는 160센티미터 후반에서 170센티미터 초반, 체격은 왜소한 편.
검은색 일회용 마스크로 얼굴 절반 이상을 가려 눈밖에 보이지 않지만 쌍꺼풀이 짙은, 양옆으로 길게 찢어져있는 눈.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목까지 올려 입은 남색 점퍼의 가슴 쪽에 새겨진 노란 자수.
홍인철강.
짚이는 건 딱히 없지만 간절히 부탁하는 주현에게 우진은 특별한 기회를 줍니다.
"그렇지. 가장 큰 이유는 자네가 이승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다녀도 악귀가 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봤기 때문이네. G4 비자를 받았는데 자네처럼 시종일관 침착하게 행동하는 귀신은 보기 드물어. 그래서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야. 이 말은 곧, 이승에 내려가 자네가 왜 죽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악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소릴세. 아구기가 되어서 강제로 끌려온다면 자네의 저승 생활도 녹록지 않을 테고, 나도 부하들을 볼 면목이 없어질 테니." - page 36
단 주현에게 감시자를 붙이게 됩니다.
이 감시자가 바로 '경계인'인 흡혈귀 성민이었습니다.
7일간 성민과 함께 자신의 죽음을 밝히는 주현.
사건을 파헤칠수록 주현의 죽음 이전에 그와 관계된 이들의 살인사건들이 있었고 그 범인으로 주현이 주목된 가운데...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정말 그는 피의자이자 원한으로 죽음을 당한 것일까...?
진실을 향해 갈수록 사건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데...
주현이 기자인 윤진과 이런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냥 없었던 일이라고 여겨요."
살면서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율로 따진다면 기억하는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기억에 없는 일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인생은 걱정밖에 남지 않는다.
죽은 뒤의 인생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저는 주현 씨를 믿어요. 적어도 주현 씨가 생전에 나쁜 일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를 믿어줄게요." - page 252 ~ 253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불안해하며 살 필요 없다고,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믿어준다는 이 한 마디가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위안이 된다는 것을 새삼 스스로에게 얘기해 봅니다.
그리고 윤진이도 그랬고 성민이도 '사람을 믿는다'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민은 주현에게 충고했다.
"주현 씨는 저를 믿으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저를 완전히 믿지는 마세요."
"네?"
"그렇다고 완전히 의심하지도 마시고요. 적당히 믿어주세요."
주현은 성민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적당히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지요?"
"일단 믿되 배신당했을 때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믿어주시면 좋겠다는 의미예요."
"배신하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 page 300
질투와 배신, 거짓과 탐욕이 난무한 이승에서 '믿음'에 대한 의미가 참으로 씁쓸히 다가오곤 하였습니다.
소설을 읽을수록 흥미진진하게 몰입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얽혀있던 사건들이 하나둘씩 풀려나가는 통쾌함.
그리고 마지막 반전.
저승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결합을 이 소설을 통해 그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