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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평점 :
뉴스를 보면 참...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부정부패를 저질러서 카메라 앞에,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고위 간부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형량은 여느 소매치기범처럼 가볍거나 보석으로 풀리는 것이 대부분.
그것도 아니면 휠체어를 타고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하루 사이에 환자가 되어 법 사이를 빠져나가는 이들...
그래서 가끔 그들이 죄를 지어서 잡히게 되면 '어차피 풀어줄 걸 왜 잡는지...?'란 의문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구는 사이다 같은 발언이었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당연하지 않은 현실.
과연 소설 속에서는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였습니다.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자, 침묵하는 양심이 독이 되어 돌아온다.
『집행관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223/pimg_7523781182851823.jpg)
"나...... 동식이야...... 허, 동, 식." - page 9
낯설고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대동고등학교 3학년 3반!" - page 9
아마도 서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를 본 적이 없기에 까맣게 잊힌 이름.
그런 그가 뜬금없이 자신의 대학교 앞 카페에 있다는 한 마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분명 뭣 좀 팔아먹거나 돈 몇 푼 꿔달라거나 그것 말고는 딱히 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실은 부탁이 있어서 왔다."
허동식은 희멀건 낯짝을 탁자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러고는 카페 안을 휘휘 두리번거렸다. 그의 두 눈에 원인 모를 경계심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짧은 커트 머리 여자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노창룡 자료가 좀 필요한데......"
"누구?"
"해방 전에 고등계 형사를 지낸...... 네가 지난봄에 칼럼에도 썼잖아." - page 12
삼일절을 앞두고 한 신문사의 청탁을 받아 노창룡에 관한 칼럼을 썼던 그, 최주호.
25년 만에 불쑥 찾아온 고교 동창은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친일파 자료, 그리고 암호처럼 툭 내던진 알 수 없는 말들을 남기고 떠나버립니다.
과연 그는 친일파 자료를 부탁하여고 온 걸까...?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수위실에 웬 꼬마가 찾아왔다는데요." - page 19
김 조교의 말에 최주호는 아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갑니다.
그런데 아이는 누군가 봉투를 전해주라고 시켰다며 자신에게 봉투를 건네는데 그 속엔 낯익은 제목의 칼럼이 보였습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223/pimg_7523781182851822.jpg)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오고...
"어제 미처 말하지 못한 게 있어서......"
하마터면 그의 부탁을 그냥 지나칠 뻔했다. 칼럼 쓰는 데 집중하느라 노창룡을 까맣게 잊었다. 그의 수상한 방문도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노창룡이 사용하던 고문 자료도 부탁한다."
"고문 자료?"
"그래.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같은 거 있잖아." - page 22
정말 터무니없는 부탁을 하고 끊어버리는 허동식.
그래도 자료들을 찾아 넘겨준 최주호.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
노창룡의 사건이 인터넷에 떠들썩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노 씨가 살해되기 직전까지 장시간 고문을 받았고 그 고문은 노창룡이 친일 행각. 일제 고등계 형사들이 자행했던 고문 수법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뭔가 기이한 음모가, 자신만 모른 채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느낌인... 우연이 아닌 이 사건...
도대체 허동식은 그에게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친일파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검찰 쪽에서는 범죄자를 잡아야 하기에...
문 검사장은 우경준에게 조용히 불러내 이야기를 합니다.
"자넬 보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고......"
그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신문지를 꺼내 펼쳤다. 「경찰이 풀어야 할 다섯 가지 의혹」, 「CCTV를 무용지물로 만든 완벽한 범행」...... 커다란 고딕체 기사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다.
"노창룡의 조카가 고검장님인 건 알고 있나?"
"그렇습니다."
"그럼 됐네. 더 말해 뭣하겠나." - page 49
노창룡의 사건을 맡게 된 우경준.
사건을 들여다볼수록 이보다 더 전문가들이 따로 없습니다.
이 사건의 범죄자들은 누구일까...?
사건은 노창룡의 죽음을 시작으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은 이들이 하나 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들은 진정한 '집행관들'이라 할 수 있을지...
소설은 우리에게 일침의 목소리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 소설의 첫 사건이었던 '노창룡 사건'을 보며 이 이야기로 잠시 생각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223/pimg_7523781182851821.jpg)
애국지사와 민주인사를 탄압하고 유린했던 친일파들.
이들의 세력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우리는 죄를 묻기보다는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는 이 말이...
저에겐 울림으로 남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무슨 일을 꾸미는 건지 말해 봐.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잖아."
"명분은 없어. 우린 집행관으로서 역할을 할 뿐이야."
"집행관?"
"그래. 법을 집행하는 집행관."
"그게 사람을 고문하고 형벌로 다스리는 건가?"
"그것도 집행의 한 방법이지."
"그래서 얻고자 하는 게 뭔데?"
"......"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겠다는 건가?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겠다는 건가?"
"좋을 대로 생각해."
"이해가 안 가는군......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유람선은 물살을 가르며 선착장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난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야. 불타는 정의감 때문도 아니지. 그런 건 나와는 맞지 않아."
"그럼, 대체 이유가 뭐야?"
"굳이 말하자면...... 우리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 분노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 - page 159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게 심판받아야 함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뜨거운 심장을 갖고 분노를 표출했던 이들, 집행관들.
그들의 손에 묻은 피를 보며 그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에 대해 책장을 덮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