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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엘리 라킨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평점 :
한동안 절망과 우울 속에서 지냈습니다.
몸도 아팠고 기력도 없었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에게 손을 내밀어 준 이는 '아이'들이었고 '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에게 눈에 띄었던 이 책.
저도 구원과도 같은 '햇살'을 향해 헤엄치고자 읽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사려 깊고 따뜻한 이야기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우리가 이혼하던 날, 남편은 자기가 만나는 여자를 데려왔다.
공정하게 말하면, 그 여자가 실제로 회의실 안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그리고 에릭의 주장에 따르면 그 여자는 만나는 상태가 아니라 '친구'일 뿐이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 page 9
주인공 '케이틀린 엘리스'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뻔뻔스러운 남편, 아니 이젠 남이 되겠지만 그의 행동은 이혼 소송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개 '바크'의 양육권을 갖겠다는 그.
사실 그는 이 개에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런 그가 '바크'의 양육권을 주장하니 케이틀린은 모든 것을 잃어도 상관없으니 바크만은 자신이 키우고 싶다고 호소하게 됩니다.
결국 바크와 함께 할머니 나넷이 계신 플로리다로 향하게 됩니다.
바크가 안심할 수 있도록 배에 선더셔츠를 두르고 천천히, 앞좌석으로 손을 뻗어 개줄을 가져와서 바크가 냄새를 맡도록 한 뒤 목걸이에 걸었다. 내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니, 바크는 다리를 떨며 용기를 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가장자리로 다가왔다.
"가자, 바키." 나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넌 할 수 있어!" - page 29 ~ 30
그렇게 바크와 함께 케이틀린은 새 출발을 시작하게 됩니다.
케이틀린의 모습은 '바크'와도 닮아있었습니다.
상처를 간직하고 있어 쉽게 세상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는 모습.
그래서 케이틀린은 더 바크에게 애정을 쏟게 되고 쓰다듬으며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집에 놀러온 빗시는 할머니와 대화를 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빵 바자회를 생각 중인데 말이야."
할머니가 삼씨 우유 통을 들며 말했다.
"빵 바자회 생각 중이라는 건 나도 알지."
빗시가 내게 윙크했다.
"나는 달력을 생각했는데."
"달력?" - page 72
빗시와 나넷, 그리고 친구들은 젊은 시절 고속도로변에서 인어로 분장해 물속에서 춤을 추고 헤엄을 쳤었습니다.
내심 나넷도 그때 그 친구들이 그리웠기에 케이틀린은 할머니를 위해 옛 친구들을 찾아주며 다시금 인어 쇼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나넷의 친구들을 하나 둘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들의 지나온 삶을 들여다보면서 케이틀린은 세대를 가로지르는 이해와 공감을 하게 되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지게 되는데...
특히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생긴 물에 대한 트라우마로 수영장이라면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들의 인어 의상을 입고 들어가야 할 곳이 바로 수영장이었고!
과연 그녀는 무사히 인어 쇼를 완성할 수 있을까...?!
다 읽고 나서 참으로 매력적인 소설이라 느껴졌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누구나 각자 간직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냈다고 할까...
그래서 주옥같은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케이."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나를 감싸 안았다.
"네 아빠를 위해 그 누구도 그 이상은 하지 못했을 거야."
할머니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흐느끼고 있었다.
"어른이라고 해도. 의사라고 해도. 그 누구도 구하지 못했을 거야."
나는 눈물을 삼키느라 숨을 참아야 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이제 알겠구나. 네가 그러는 거,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거, 그건 네가 가진 용기의 대가야. 항상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경계하고 있는 거지?"
나는 할머니 손을 잡아 내 가슴에 댔다.
"우리도 모두 너를 구할 거란다." 할머니가 말했다.
"그걸 잊지 마라." - page 512 ~ 513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그래서 깊숙한 상처로 남았던 그녀에게 전한 할머니의 따뜻한 이 한 마디.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흐르곤 하였습니다.
빗시 역시도 그녀에게 전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이 무작위라고 해서 좋은 걸 즐기기를 포기할 순 없어."
빗시가 말했다.
"나는 일흔다섯이란다. 난 곧 죽을 거야. 바라건대, 너보다 한참 먼저 죽겠지. 너는 나를 잃게 될 거고, 나는 좋은 사람이니 그건 슬프겠지. 하지만 이 순간이 좋지 않니? 내가 어떻게 죽을 건지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순간을 얻지 못해. 이 순간을 좋게 만들려면, 이 순간을 살아야지."
"하지만 어떻게 그러죠?"
내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빗시의 최후에 대한 온갖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그 속에서 그녀를 구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쁜 일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고,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 일이 있었을 때 내가 거기 있었더라도 버니를 구할 수는 없었을 거야. 하지만 나는 버니를 열심히 사랑했어. 버니는 멋진 아침을 보냈고. 상실에서 우리가 구하는 위로는 그거란다. 우리가 계획할 수 있는 부분은 그거뿐이야." - page 565
'순간을 살아야 한다'라는 빗시의 말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전하는 메시지 같아서 진한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소설이라 더 진한 여운이 남는 것일까...
절망과 좌절 속에 빠진 이들에게 '용기'를, '위로'가 더 와닿았습니다.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많은 이들에게 따뜻하고도 눈부신 위로가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며 책 표지의 그들처럼 잠시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책장을 덮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