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식당으로 오세요 (2종 중 랜덤)
구상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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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솔깃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조만간 드라마로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원작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소원을 맛보시겠어요?"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여기 식당이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치기 일쑤인, 그 존재가 너무도 당연하여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존재인 이 식당.

이 식당의 이름은 바로 '마녀식당' 입니다.

 

어쨌든 식당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 이들은 스스로 의아해하며 식당 안을 기웃거립니다.

 

'어라, 여기 식당이 있었네? 왜 전에는 못 봤지?'

 

'대체 뭘 파는 거야? 식당이 맞긴 한 거야?'

 

호기심에 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고 드디어 식당에 불이 켜집니다.

탁탁탁, 지글지글, 보글보글.

분주한 음식 준비 소리와 함께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 냄새까지.

그리고 누군가 나타납니다.

간판을 확인한 후 심호흡 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선다. 왜 이런 곳에 왔을까 후회가 밀려든다. 그러나 후회의 반대편엔 희망이 존재한다. 이곳에서라면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가 입을 연다.

"저, 오늘 자정으로 예약했는데요......"

여자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살며시 미소 지으며 답한다.

"네, 어서 오세요. 마녀식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page 14

 

이 식당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마녀식당의 탄생부터 다시 이야기는 거슬러가게 됩니다.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지닌 진의 엄마.

엄마가 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걸 때는 뭔가가 있는 것인데...

 

"그래서 모처럼 만난 김에 언니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지. 처음엔 기대도 안 했어. 왜냐하면 그 언니 음식 솜씨는 옛날부터 맛대가리 없기로 소문이 나 있었으니까. 그런데 세상에, 숟가락을 내려놓기 싫을 정도로 너무 맛있는 거야. 얘, 난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청국장은 처음 먹어봤어."

...

"그게 부러워서 우리도 식당을 하자는 거야?"

"아니지, 아니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음식 만드는 재주는 없잖니. 그래서 탐은 났지만 식당 차릴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말이야, 경희 언니가 은근슬쩍 나를 불러서 말하는 거야, 내가 한다면 식당을 싸게 준다고."

"잘되는 식당을 왜 우리한테 넘겨?"

"왜겠어, 이미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까 넘기는 거지. 경희 언니가 그러더라고, 이제는 여행도 다니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게다가 요즘 몸도 안 좋아져서 좀 쉬어야겠다 싶었대. 나 돈 좀 벌라고 넘기고 싶다는 거야. 우리가 남도 아니고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않겠냐고 하면서 말이야." - page 26 ~ 27

 

절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반대하려고 했는데 운명은 진의 다짐대로 흘러가지 않게 됩니다.

5년간 사귄 남자친구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

거기다 지방 지사로의 인사 발령.

 

"이 식당이 우리한테는 로또야. 그깟 회사 때려치우고 엄마랑 식당이나 하자. 이 꼴 저 꼴 험한 꼴 보지 말고 편하게 살자고, 응?" - page 30

 

결국 이 말에 홀딱 넘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식당의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외진 데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곳에 있는 '진미식당'은 처음 기우와는 달리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부자 되는 건 시간문제야. 역시 인생은 한방이라니까!" - page 31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하면 이 이야기가 탄생하지도 않았겠지요!

식당을 인수하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부터 직원들은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하고 주방장마저 아무런 언급없이 출근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도 발걸음을 끊게 되고 한숨만 늘어가고 있었는데...

 

참맛식당

 

(구)진미식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변함없는 말, 변함없는 가격으로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오픈 기념! 음료수 무료 서비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풍경.

진미식당을 나갔던 직원들 모두, 주방장까지 버젓이 일을 하고 있고 더 어처구니없는 건 주인이 바로 경희 아줌마였습니다.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하다. 네가 힘들게 번 돈인데 그걸 다 말아먹게 생겼으니...... 내가 미친년이다, 미친년......"

엄마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엄마 울지 마. 경희 아줌마랑 그 여자들 내가 가만 안 둘거야. 다 복수할 거야."

진은 이를 악물었다.

"네가 무슨 수로 복수를 해? 복수를 궁리할 시간에 네 행복을 궁리하는 게 더 똑똑한 거야." - page 41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십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아빠의 경구완을 위해 엄마가 시골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

홀로 남게 된 진은 식당을 팔려고 하는데 이런 외진 곳을 누가 인수하려 할까......

하던 찰나!

식당을 인수하겠다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당신의 어떤 소원이든

마녀.

 

자신이 마녀라는 이 여자.

 

"식당 임대료 내기도 벅차죠? 이 식당을 내게 주면 임대료는 낼 수 있을 거예요. 수익금도 절반씩 나누도록 하죠."

여자는 진의 사정을 빤히 꿰뚫고 있었다.

"식당 상호를 바꾸는 것 외에 다른 서류 작업은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이 식당은 앞으로도 계속 아가씨 것이에요. 쉽게 말해 이 식당을 나에게 빌려준다고 생각하면 돼요. 나를 주방장으로 고용하는 걸로 해도 되고요. 어때요, 아가씨는 손해 보는 것 없지 않겠어요?" - page 50 ~ 51

 

그렇게 마녀식당이 탄생하게 됩니다.

 

10년 동안 자신의 꿈마저 접으면서 남자친구 뒷바라지를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을 버린 남자친구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선미'.

주호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어느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는 학교폭력에 지쳐버린 '길용'.

가난한 가정 환경으로부터 당당히 세상을 나아가고자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를 외면해 결국 강도짓까지 벌이게 된 '윤기'.

도통 결혼을 안 하는 아들이 장가가는 게 마지막 소원이신 일명 '청소 반장님'인 빨간 두건 할머니.

 

이들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마녀식당으로 찾아가게 되고 마녀로부터 소원이 이루어질 음식을 대접받게 됩니다.

단!

이에 대한 대가는...

 

"라푼젤 이야기를 아나요? 라푼젤의 아버지는 양배추 한 통을 얻기 위해 마녀에게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딸을 바치죠. 양배추 한 통에 대한 대가로 아이 하나. 마법의 지불 체계를 정확히 보여주는 예랍니다. 참으로 공평하지 않나요?" - page 50

 

소원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돈이 아닌...

 

아마 이 소설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모든 일이 지나간 후, 윤기는 마녀식당을 떠올렸다. 어찌 됐든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의문은 남았다. 이 드라마틱한 전개는 삶의 우연이 빚어낸 결과였을까? 아니면 정말 마녀식당의 요리에 깃든 마법의 힘 덕분이었을까?

어쩌면 삶 자체가 마법인지도 몰랐다. - page 199 ~ 200

 

마녀식당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마녀가 이야기합니다.

 

"마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힘없는 이들을 위해 존재해왔어. 세상의 힘없는 이들이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아주기 위해 마녀식당은 존재하는 거야." - page 326

 

간절한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마법의 식당.

아마도 그 마법의 식당은 우리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나요?

그렇다면 한 번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떨지...

 

"어떤 소원을 주문하시겠어요?"

 

언제든 환영해 줄 마녀식당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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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 황홀경과 광기를 동반한 드라큘라의 키스
브램 스토커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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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명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한 번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이 작품.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도 만날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만나보지 못한 이 작품.

난 뭐지...?!

 

벌써부터 무더워진 여름.

이번 여름은 무척이나 덥다던데... 열대야로도 잠을 설치게 되고...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포소설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소설만큼은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매력이 있을지...

 

영화 연극 뮤지컬 등과 가장 매혹적인 입맞춤

공포와 성을 결합시킨 현대인을 위한 판타지!

 

드라큘라

 

5월 3일 비스트리차

<조나단 하커의 일기>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드라큘라 백작의 초대에 응하기 위해 가고 있는 조나단 하커.

가는 길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백작의 소개로 묵게 호텔 주인의 행동도 그렇고...

 

호텔 주인은 백작에게서 미리 편지를 받은 모양이었다. 나를 위해 마차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캐묻자, 그는 뭔가를 숨기는 듯 곧 입을 꾹 다물고는 내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척했다. 그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그 직전까지 서로 완벽하게 의사소통을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정확하게 대답했었다. 주인과 그의 아내는 무슨 영문인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는 돈이 동봉된 편지를 받았고 그것이 자신이 아는 전부라고 했다. 내가 드라큘라 백작을 아느냐고 묻고 그의 성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청했더니, 두 사람 모두 이마에서 가슴에 걸쳐 십자가를 긋고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말과 함께 그만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여유가 없었으므로 내 마음은 의혹으로 불안하게 술렁였다. - page 13 ~ 14

 

하필이면 날짜가 5월 4일 성 조지의 축일 전날-오늘 밤 시계가 자정을 울리자마자 세상의 온갖 사악한 것들이 풀려나와 날뛴다는-이라는 점이 여러모로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도착하게 됩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이 달을 가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 가운데 성의 길고 검은 창에서는 한 줄기의 빛도 비치지 않았고 부서진 벽은 달빛을 배경으로 들쭉날쭉한 선을 드러내 웅장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이곳.

애초에 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백작이 다가올 때마다 느꼈던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은 점점 강해지고 결국...

 

그런데 그 순간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핏방울이 턱 끝에서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면도기를 내려놓고 상처 누를 것을 찾아 몸을 반쯤 돌렸다. 백작이 내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분노한 악마처럼 두 눈을 번들거리며 내 목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내가 몸을 뒤로 빼는 바람에 그의 손이 십자가가 달린 묵주에 닿았다.

순식간에 백작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처럼 삽시간에 분노가 사라져버리다니. 나는 그가 정말 화가 났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베이지 않도록 주의해야지. 이 나라에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리고 휴대용 거울을 움켜쥐며 덧붙였다.

"이것이야말로 말썽을 일으키는 장본인입니다. 인간의 허영이 만들어낸 몹쓸 물건이죠. 치워버리십시오!" - page 43 ~ 44

 

이곳은 하나의 감옥이었고 그는 결국 그 안에 같힌 죄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대탈출을 꿈꾸게 됩니다.

 

한편 조나단의 약혼녀인 '미나 머레이'.

조나단을 기다리며 친구 '루시 웨스텐라'와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특히 자신이 하루에 청혼을 세 번이나 받았다는 말까지 건네며 매력 자랑을 하는 그녀.

이 매력이 결국 드라큘라의 희생양이 되고 맙니다.

 

루시를 살리고자 존 수어드 박사는 열심히 치료해보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자 스승인 반 헬싱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드라큘라를 죽이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고 결국엔...

 

마지막 분해의 순간에 그의 얼굴에 평화가 떠올랐다는 사실은 평생 기쁨으로 깅억될 것이다. 그것은 그 얼굴에 존재하리라고 상상도 해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드라큘라 성이 이제는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있었고, 부서진 벽에는 돌 하나하나가 지는 햇살을 받아 또렷하게 두드러져 보였다. - page 572

 

확실히 공포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피가 난무하고 괴물들이 등장하기보단 인간의 내면을 여실히 비추는,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포'를 보여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지 이번에 제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소설로서의 매력을 느껴보았기에 연극이나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였습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왜 나는 드라큘라가 애잔하게 남는 것일까......)

 

올여름 드라큘라와의 환상적이고도 흥미진진한 데이트를 해 보는 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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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 죽여야 사는 변호사
카르스텐 두세 지음, 박제헌 옮김 / 세계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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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아이러니함을 느꼈습니다.

이 두 단어...

과연 매치가 되는 것일까...?!

 

라고 생각했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이는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것을!

무엇보다 이 조합이 너무나 신선해서 몰입할 수밖에 없었음을!

'카르스텐 두세' 작가에게 이런 색다른 매력을 선사해주셔서 감사함을 전하며...

 

본격적으로 소설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완전히 취향 저격을 당해서

이 작가의 책은 다 읽고 싶은 마음이에요." - 장강명 소설가 

 

"클리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발한 범죄 이야기에

머리를 꽝 맞은 것 같았습니다." - 표창원 프로파일러

 

명상 살인

 

 

과도한 업무에 늘 시달리고 결혼생활에는 위기를 맞은 변호사 '비요른'.

아내 카타리나가 그에게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더그 역시도 변화를 시도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명상'을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1월의 어느 목요일 저녁, 새로운 명상 코치와 상담을 예약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땐 약속 시간에 25분이나 늦었습니다.

지각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데 자신의 주요 고객인 드라간 세르고비츠의 동료가 약혼반지를 사기 위해 보석 가게에 가 사건을 일으켜 그를 변호하고 풀려나게 하는, 즉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느라 - 사실 그가 하는 일은 나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대가로 돈을 버는 매우 성공한 형법 전문 변호사이기에 - 늦어졌을 뿐이었습니다.

명상 코치 '요쉬카 브라이트너'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그에게 여기에 온 이유를 묻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증오합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당신에게 더 영향을 미칩니까?"

"사랑과 증오 중에서요?"

"여기에 온 이유가 뭐죠?"

"후자 때문입니다."

"그리고요? 그게 당신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목이 뻐근해지고 위통에 호흡 곤란..."

"그럼 오늘 상담은 가빠진 호흡을 가라앉히는 연습으로 마치는 게 좋겠군요." - page 33

 

훗날 이 명상 덕분(?)에 살인자가 될 줄이야...

 

명상을 하면서 조금씩 소중한 딸과의 시간을 가지게 되고 마침내 여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행 가기로 한 주말 아침.

전화벨이 울립니다.

자신의 주고객인 '드라간'의 호출.

(벌써부터 불길함이란...)

사건은 이러했습니다.

 

범죄 조직 우두머리 드라간과 그의 비서 사샤가 슬로바키아로 떠났다. 도중에 드라간의 무라트의 연락을 받았다. 무라트는 드라간의 라이벌 조직 두목 보리스가 이고르를 고속도로 주차장에 보냈다고 말했다. 드라간의 구역에서 마약을 거래하면 이고르는 형법은 물론 두 조직 간 합의 사항도 어기게 된다. 협약은 다른 조직 구역에서의 마약 거래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게 당신이 마약을 가진 자를 살해한 이유였나요?"

드라간이 다시 새 담배를 꺼냈다. 남자의 손은 사람 손이라기보다는 맹수의 앞발 같아서, 연극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러나 담배를 잡고 새끼손가락을 편 모습이 점잔을 빼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다음에 이어진 말로 깨졌다.

"음, 난 마약을 가진 자를 죽이지 않았어. 내가 죽인 건 이고르였지."

"이거 난감하군요."  - page 77

 

한 두목이 직접 라이벌 두목의 오른팔을 죽였다는, 아주 좋지 않은 이 상황.

하필이면 이 사건 현장을 쉰 명의 아이들이 목격을 하였고 영상을 찍었으며 이미 배포하여 뉴스 방송 영상으로도 나온 최악의 상황에 딸과의 약속도 중요한 이 순간을!

 

"드라간, 그럼 이제 이 건물에서 나가지도 못합니다. 지하 차고 입구에 이미 사복 경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트럭을 샅샅이 뒤지겠죠."

"그럼 네 차를 타고 가자."

"뭐라고요?"

"난 트렁크에 타고, 넌 날 도시에서 빼내. 그다음에 또 의논하지."

내가 할 말을 잃고 그를 쳐다보았다. 심박수가 단기간에 폭주했다. 이자가 진심은 아니겠지. 그는 내 시간의 섬에 잠시 발을 들인 게 아니라 아예 섬 전부를 차지하려고 했다. 에밀리를 사무실에 두거나 이 범죄자와 함께 차에 태우고 가야만 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카타리나에게 한 맹세를 깨게 된다. 약속을 어긴 거다. 내가 에밀리를 돌볼 때는 그 어떤 것도 배제하고 오직 아이에게만 집중한다. 그게 우리 관계의 기반이었다. 이제 그 기반이 불량배 하나 때문에 무너져야 하는가? - page 89 ~ 90

 

그동안 배운 - 몇 가지 안 되는 명상 - 을 하며 이 상황을 수습해보고자 합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시간의 섬 속에서 순차적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었습니다.

'시간의 섬'과 일명 싱글태스킹 철학'의 조합으로...

 

 

내 욕구는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는 곳에서 딸과 함께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딱 서른여섯 시간 동안 말이다. 다리 위에 걸터앉아 있기. 견과류 먹기. 물고기 먹이 주기. 나의 과도하 책임감 때문에 그 모든 행복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 억지로라도 스스로에게 명상을 강요해야 했다.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지만.

반대로 인간 말종을 트렁크에서 꺼내준다면 그 즉시 모든 것이 끝나버릴 거다. 에밀리를 위한 주말, 낚시, 수영, 견과류 먹기 전부 다. 그리고 아빠는 거짓말쟁이가 되겠지. 그보다 곤란한 상황은 그 아빠가 중범죄자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일이다. 물론 에밀리는 이 일을 카타리나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명상으로 다시 쌓아온 우리의 관계도 끝장이다. 에밀리와도 마찬가지다.

트렁크를 여는 건 내게 유리한 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트렁크를 닫아둔다면 모든 것은 그대로일 것이다. - page 115

 

그렇게 명상으로 마음이 가는 대로 했을 뿐인데 '살인자'라는, 그것도 그동안 불행했던 변호사 때 보다 행복한 살인범이 되게 됩니다.

 

어느 한순간도 쉬이 넘어가지 않고 사건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의 연속이 일어나지만 의! 외! 로!! 명상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갈 길이 만들어지고...

읽으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 반과 명상으로 인해 평온해지는 마음 반이 서로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과연 그의 행적은 들통이 나게 될 것인지...

소설의 마지막에서 확인해 보시길 추천해 봅니다.

 

정말 간만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소설이었습니다.

'이게 가능하다고?'에서 시작해 '가능했네. 아니 오히려 조화롭네.'로 맺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명상법도 다른 한 권의 책으로 만나도 손색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명상법들이기에 더 주인공의 심리에 접근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말보다 이 소설은 그냥 읽어봐야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

또 날도 덥기에 이 같은 추리, 범죄 심리, 블랙코미디와 명상의 환상적인 조합 속에 빠져들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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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다시 보기를 권함
페터 볼레벤 지음, 박여명 옮김, 남효창 감수 / 더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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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은 너무 무분별하게 숲을 파괴하고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그랬더니 이제 그 환경이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니, 우리의 생사에 위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후회해도 늦어버린...

우리의 자업자득임을...

 

그래서 '환경'에 관련된 책이 나오면 찾아 읽는 편입니다.

이번에도 읽게 된 이 책 역시도

 

진정한 생태계 보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수작

 

이라는 문구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전할 이야기는 어떨지...

 

숲의 위기는 인간이 숲을 가꾸고

보호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숲, 다시 보기를 권함

 

 

숲.

숲에 대해 저자는 훼손되지 않은 원시 상태의 자연을 가장 많이 닮은 생태계라고 하였습니다.

바람이 우듬지 사이를 살랑거리면 새들이 노래하고, 초록의 나뭇잎들이 파란 하늘과 뒤섞인 곳.

마실 물과 깨끗한 공기, 생물종의 다양성을 허락하는 이곳이 바로 '숲'이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덧붙여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자연의 본모습인지...

 

그래서 저자는 조금은 비판적인 시선으로 나무와 자연의 세계를 바라보며 결국 전하고자 한 이야기는 이미 책 표지에서 밝히고 있었습니다.

 

내버려두라,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숲에게 맡겨라.

 

어릴 적부터 환경운동가가 되고 싶었다는 저자.

산림경영 전문가가 되어 나무 사이를 누비며 숲의 신선한 공기를 음미하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에서의 업무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아니기에 휨멜 지역 후임 자리에 지원을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그가 선택됩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산림경영 전문가로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처음엔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숲을 잘 관리하고 산림을 경영해서 돈을 버는 일을 최종 목표로 삼았던 그에게 큰 깨달음을 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너도밤나무'.

폭풍에 수관이 꺾여 버린 한 고령의 너도밤나무.

몇 톤이나 나가는 두꺼운 줄기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경영적인 측면에서 실수라고 판단한 그는 그 나무를 베어 내라는 표시를 남기고 얼마 후 산림 노동자들이 기계톱으로 나무를 베어 내는데...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너도밤나무도 기억난다. 목재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부적합해 보여서, 마침 어느 지역의 단체에서 장작을 구한다기에 주기로 한 나무였다. 때마침 숲길 근처에 있던 터라 실어 나르기 어렵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그 나무와 함께 그 안에 살던 수천 마리의 생명체들을 함께 내어 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무분별한 기계 사용에 대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딱 두 번 유압용 호스가 폭발하는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다. 몇 미터까지 날아가 튄 기름은 숲의 토양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숲에 쏟아지는 유해물질이 이것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산림노동자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대단히 해로운 폐유를 기게톱의 체인 윤활유로 사용했다. 폐유로 채워진 기게톱은 그렇게 나무를 베고 가지를 꺾었으며, 끈적끈적한 페유는 리터 단위로 숲 구석구석에 튀었다. - page 35

 

업무규정을 지키며 일하고 전임자의 지시를 따를 뿐이었지만...

 

고령의 활엽수림을 벌채하는 일이 정말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 좋은 형질의 나무들을 베어 내면서까지 숲의 나이를 젊게 유지해야 하는 것일까?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되는 것일까? 먼 훗날 후임에게 이 관리구역을 넘겨줄 때 내가 오염시킨 토양은 과연 얼마나 될까? - page 36

 

자신이 꿈꾸던 환경운동가로서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안정된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진정한 생태계 보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인간이 '자연'을 위해 한다는 행위들이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보호가 아닌 또 하나의 '훼손'과도 같았습니다.

 

모묙을 심어야 하는 숲의 땅은 대개 목재 수확 과정에서 한 번 그리고 수확 이후에 또 한 번 손상을 입는다.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식묘 준비 과정인 밭갈이 때문이다. 이미 대외적으로도 구식인 데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진 방법이다. 벌목이 이루어지면 각종 가지와 수관, 밑동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들을 피해 빈 공간에 묘목을 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때는 질서정연한 대오를 갖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불도저가 등장한다. 이 혼잡함을 단숨에 갈아엎어 한곳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 밭갈이 과정에서 부식토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쯤은 쉽게 무시해 버린다. 밭갈이를 마치고 나면 마치 모판처럼 평평하고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토양을 가질 수 있으니까.

불도저는 에민해진 땅을 이렇게 또 한 번 갈아엎는다. 여기가 끝이 아닌 숲도 있다. 비용을 절감한답시고 싹을 심는 작업마저 육중한 기계를 투입해 처리하는 경우다. 이렇게 총 세 번에 걸쳐 짓이겨진 토양은 영구히 손상되고 만다. 나무들은 자라긴 하지만 평생 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원시림의 토양에서 살던 다양한 생물은 영원히 자취를 감춘다. - page 111 ~ 112

 

무엇보다 왜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야 하는가!

 

숲과 관련해 이 직업군을 홍보할 때는 숲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환자와 같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산림경영 전문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숲이 질병과 훼손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나무가 어떤 장소에서 이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산림청이라고도 한다. 산림경영 전문가는 생태계가 온전히 가능할 수 있도록 고령의 나무들을 적기에 베어 내고, 혈기왕성한 어린나무들로 대체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들이 없으면 숲도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산림경영 전문가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다.

예상했겠지만 그야말로 난센스다. 그렇다면 브라질의 열대우림을 보살피는 것은 누구며, 끝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를 관리하는 것은 또 누구란 말인가? 자연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으로 늘 최적의 상태를 유지한다. 이는 이미 증명된 사실이 아니던가? 반면 우리 인간은 단순림이 어떻게 기능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 page 240

 

그렇기에 저자는 마지막에 우리에게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원시림을 회복시켜야 할 책임을, 그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참으로 모순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저자를 통해서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자연보호가 무엇일까...?

그전에 자연을 이루는 모든 것에 귀 기울이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이 숲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그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 가운데 비로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숲을 위해, 자연을 위해 진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란 생각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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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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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저의 무지함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이 분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면목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유학생이자 유관순 열사의 스승.

덕혜옹주의 오라버니인 의친왕 이강과 함께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독립운동가.

가슴에 새겨두겠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김 란 사

(하지만 소설에서는 '하란사'로 표기합니다.)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하란사』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늘 배를 곯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에게 아버지는 아버지뻘 되는 남자를 사윗감으로 점쳤습니다.

 

"가서 너만 잘하면 사랑받고 살 게야." - page 27

 

부모보다 가까이 지낸 할머니의 진심 담긴 이 덕담.

정말이지 그녀가 '하상기'를 만나지 않았다면...

막 개화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여성들이 선교사들에게 공부를 배우러 다니는 일을 하지 못했을 테고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만났기에 그녀는 몰랐던 세상에 당당히 발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혼인한 여성은 입학이 불가하도록 교칙이 바뀐 이화학당에 '괴짜'가 등장하게 됩니다.

 

"어느 날 그녀가 밤중에 프라이 선생님 앞에 나타났대. 가지고 온 등불을 선생님 앞에서 끄면서 말했다는 거야. 우리가 캄캄하기가 이 꺼진 등불 같으니 우리에게 학문의 밝은 빛을 줄 수 없겠느냐고. 그래서 그를 기특하게 여긴 선생님 덕에 입학 허가를 받았대." - page 38 ~ 39

 

그렇게 입학하게 된 그녀.

자기소개를 해 보라는 선교사의 말에 그녀는 머뭇거립니다.

 

"이름? 그런 거 없어요." - page 39

 

그래서 선교사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낸시?"

그녀는 입속으로 이름을 굴려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성은 뭐죠?"

"하 씨요."

이름이 없다고 말할 때와는 다르게 성씨는 빠르게 말했다.

"하낸시. 어때요? 잘 어울리지 않아요?" - page 40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녀는 결국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낸시가 마음에 안 들어?"

"응, 그래서 란사로 고쳤어."

"란사?"

"응, 낸시를 한문식으로 고쳤지. 화초 란에 역사 사. 그러니 란사가 되던걸. 하란사."

"하 씨는 남편 성씨?"

"응. 난 내 본성이 싫어."

"왜?"

"그냥. 김 씨보다는 하 씨가 예쁘잖아. 그리고 미국에서는 여자가 남편 성을 따른다잖아. 난 미국에 갈 거니까 그게 더 나을 것 같아." - page 41 ~ 42

 

그렇게 해서 그녀의 이름은 '하란사'가 됩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란사.

그러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지만 배움에 대한 욕구가 더 강했던 그녀는 자신의 딸 자옥이 유모의 손에 자라게 합니다.

하지만 자옥은 그런 엄마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묵묵히 응원을 하는데...

 

란사는 늘 바빴고 자옥은 보채지 않았다. 마치 엄마의 큰 뜻을 아는 듯이 음전하고 기특하게도 잘 자랐다. 그런 자옥이 이화학당에 들어와 공부를 할 때도 란사는 자옥의 어미가 아니라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도 란사는 자옥을 특별하게 챙기지 않았다. 똑같은 학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옥은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다. 더러 속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물어도 자옥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란사를 두둔했다.

"우리 엄마는 선생님이잖아. 나라를 위해서 할 일도 많으신 분이고." - page 52

 

그렇게 속 깊은 자옥이 꽃다운 열여덟 나이에 요절하게 됩니다.

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놓고 울지 못하는 란사의 모습.

그 처절한 몸부림이 훗날 그녀가 나라를 위한 마음의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안해. 자옥아, 미안해. 엄마가 덜 자란 나무처럼 너무 부족해서 그랬어. 생명을 온전히 사랑할 줄 몰라 그랬어." - page 59

 

남편의 지극한 배려와 보살핌으로 그녀는 미국 웨슬리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또 한 명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대한제국의 왕자인 의친왕, '이강'.

그를 만나 그의 옆에서 돕고 의지하면서 자신의 애국심과 독립 의지도 키워가기 시작합니다.

더불에 그에 대한 마음도 조금씩 깊어지기 시작하고...

 

지독한 여름이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바람이 불고 푸르던 나뭇잎이 새들새들 말라가다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쓸쓸했다. 저 낙엽이 나라와 비슷해 보일 때면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아, 언제나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꼬."

이강을 만난 이후로 자리 잡기 시작한 란사의 꿈은 점점 간절해져갔다. - page 186

 

유학을 다녀와 이화학당의 사감이 된 란사.

'욕쟁이 사감', '호랑이 사감'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그들을 감독하고 훈육하며 보살폈지만 그 이면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독려하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도 단단히 일러두는데 있었습니다.

특히 순이와의 대화.

 

"나라 꼴이 이럴수록 공부를 해서 후일을 도모해야지...... 신여성이 많아져야 나라를 위한 운동도 할 수 있지."

순이를 찬찬히 살펴보던 란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란사를 바라보는 순이의 눈빛에 적의가 가득했다.

"저는 신여성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신여성이 될 자격도 없구요."

눈을 내리깔고 또박또박 말하는 순이의 태도는 신여성에 대한 오해나 혐오가 담겨 있는 언사였다.

"공부는 신분을 초원해서 해야 하는 걸세. 애국 또한 그러하고." - page 256 ~ 257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허무했습니다.

자신의 열정을 다 불태우기 전에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이렇게 그녀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줄 몰랐던 저는 허무함만이 빈 가슴을 채우고 말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그녀.

못마땅한 이들을 볼 때면, 일본 놈들을 향해 그녀는 '구더기 같은 놈'이란 욕을 하곤 합니다

 

 

정말 토악질나는 이들.

 

"이 아가리를 찢어 죽일 놈들아, 이 구더기 같은 놈들아!" - page 95

 

정말 저도 읽으면서 친일파들, 특히 '배정자'는 소설 속에서 만날 때마다 '이 구더기 같은 놈들'이라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은 여성들의 삶의 모습은 닮은 듯하였습니다.

'최초'의 미국유학 김란사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 나혜석

이 둘은 여성으로써 한 사람으로써는 훌륭하였지만 '엄마'로써는 참으로 부족하였던 이들.

항상 가슴 한 켠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자식을 향한 마음.

참...

뭐라 말로 형언할 수 없음에...

 

이 책에 '김란사'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녀가 남기고 간 노트의 첫 장에 적힌 문구를 조심히 남겨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곳에 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것!

나는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될지니.

 

당신 덕분에 오늘날 저희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애국정신 가슴에 꼭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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