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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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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건축이라는 말 대신 참 좋은 단어를 사용했었다. 한자말이긴 하지만 '영조(營造)'가 그것이다. 우리말로는 '지어서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다, 집은 세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시를 짓듯이 집은 지어서 만드는 것이다. 짓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생각과 뜻과 마음을 통하여 전혀 다른 결과로 변화시켜 나타내는 것이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p.16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은 한마디로 건축가 승효상이 말하는 '영조(營造)'의 의미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건축은 미적 가치나 역사적 가치에 중점을 두어 한국 미술사의 일부로 소개되거나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운 한옥을 주제로 소개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여기에는 완성된 형태로서의 건축물을 보여주고 관련된 설명만 있을 뿐 어떻게 지어지는가를 상세히 보여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한국 건축의 구조나 의장을 다룬 책들을 보면 어떻게 지어졌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 건축을 사랑하는 일반인으로서 선택하기엔 이들은 너무도 전문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지혜'의 범주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건축 구조상의 지식으로부터 보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까지 고루 갖추고 있으며 공간구성에서부터 창호 상세에 이르는 영조(營造)의 과정을 총망라 하고 있어 진정으로 지어 만드는 묘미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그동안 바라보고 감탄만 했던 우리의 건축을 찬찬히 뜯어보면, 날아갈듯 아름다운 지붕의 곡선 아래에서는 수많은 서까래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되어 부채살을 펼치듯 떠받치고 있으며 조로와 후림이라는 교정효과를 거쳐 더욱 날렵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거듭난다. 또한 지붕의 육중한 무게를 하부 기둥으로 전달하는 공포들은 육안으로 보이는 형태와 채색의 정교함 이상으로 숨은 접합부들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뿐만아니라 돌 하나 하나의 고유 형태를 최대한 살려 사춤(모르타르와 같이 접착제 역할을 하는 재료)도 없이 건식으로 쌓은 허튼층 쌓기의 담장이나 성벽은 공학적 힘을 초월하는 장인정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렇듯 (승효상의 표현에 따르면) '변화되어 나타난' 건축물의 미적 체험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재료들의 부단한 변화 과정과 어우러짐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다.

적새, 주심포, 귀포, 중도리, 평방, 숫마루장, 뜬장혀, 안초공, 쇠사리...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건축의 세부 명칭들과 그들이 이뤄가는 한 채의 건물들을 구조원리와 도면을 통해 살펴보고 나니 다른 나라의 건축물에 비해 웅장하거나 규모가 거대하지 않아도 치밀함과 사려깊음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거라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어떻게 그 당시에 19각형을 작도하고, 시각적 입면을 위해 형태를 보정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을까? 그저 단순히 목재와 석재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이들을 통해 최상의 비례미를 빚어내는 솜씨에는 과학적인 총명함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깃들어 있다.

우리 건축에서 가장 놀라운 모습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 점이다. 천연의 재료를 구조적으로 계산하여 각각의 부재로 다듬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 않다. 지붕의 곡선이나 각 모서리에서 부재들이 만나는 부분에 변형이 생기고 복잡해지지만 이것 역시 이미 기하학적으로 계산된 형태이기에 부재들 사이에 균형이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이용하거나 휜 나무를 천정 보로 얹힌다는 것은 상당한 노고뿐만 아니라 자연과 공학에 대한 뛰어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기술이다. 근대건축의 거장 중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주변의 바위와 나무를 그대로 살린 낙수장(Falling Water)이라는 집으로 극찬을 받은 바 있는데, 우리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자연을 그대로 살린 집을 지었고, 이에 더해 어떤 집은 뒤틀린 나무기둥에 채색까지 입혀 마치 한 폭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감동을 자아낸다.

그러나 자연과 어우러져 지어진 우리의 건축을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역시 공간 구성이다. 우리나라 건축은 채의 특성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한 건물이 여러 실로 나뉘어있지 않고 실규모의 작은 건물들이 개별적으로 채를 이루어 구성되있음을 의미한다. 건물이 여러 실로 나뉜 한 덩어리의 인공물이 아니라 건물(채)과 담, 튓마루 등을 통해 외부와 내부가 유기적 관계로 구성되어 보다 주변의 자연을 다양하게 끌어안을 수 있으며 내외부 공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 어우러짐의 특색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최종적으로 영조(營造)의 의미가 지향하는 정점이다.

이처럼 우리 건축에는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과 치밀한 과학정신이 결합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모습으로 굳건히 서있다. 비록 지금은 문화유산이라는 명목상(?)의 이름을 가지고 관광지로서의 역할만 다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이렇게 한국 건축의 구조를 상세히 담은 책을 통해, 또 그 안에 깃들여진 정신과 이를 계승해가는 현장에서의 열정에 의해 또다시 '지어지는' 건축의 모습으로 우리곁에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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