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5월의 마지막 날에는 비가 내렸다.
비는 그렇게 공간에서 봄의 흔적을 지워냈고,
여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밀려 들어왔다.
 



 

 

 

<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아름다운 것이라곤 눈뜨고 찾아볼 수 없는 이미지들이지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로테스크가 낭만주의 시대에서 가장 활발히 발현되었다니 이 부조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이 책에서 다양한 예술 분야를 아우르며 총체적으로 그로테스크의 본질을 논하는 것은 어쩌면 숨겨진 우리의 본성과 맞닿게 되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가 볼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서나마 평양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된다. 도대체 평양의 도시개발에 대한 자료를 어떻게 이만큼 수집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목차만 봐도 놀랍다. 특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회주의 도시'라는 것에 대해, 이념이 도시의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제공해 줄 것이라 생각된다.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흔히 '예술+사랑'을 이야기를 할 때 예술의 연인, 혹은 (이별로 인한)마음의 치유와 연관짓는 책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이 책은 영화가 묘사한 사랑을 보다 평론가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사랑 자체에 중점을 둔 흔적이 보여 마음에 든다. 마치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키스신만 편집한 영상을 보는 것처럼 오랜만에 사랑의 장면속에 푹 빠져보고 싶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예전에 손철주의 대표저서를 읽어봤지만 사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재물을 모은 것이라 그런지 너무 짧고 많은 이야기들이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보면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이 모두 담겨있는데 그는 동양미술쪽에 치중한 듯했고, 그에 관한 설명이나 사유가 훨씬 풍부했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 그림에만 집중해서 책을 썼더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했더니 내 생각이 들켰나보다. 그러니...어찌 피해갈 수 있을까! 


 

 

 

 
<흥행영화 째려보기>
째려본다고 했으니 매우 통렬한 비판이나 색다른 이면이 돗보일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소개되는 영화들도 잘 알지 못하는 인디영화나 난해한 예술영화가 아닌 '흥행영화'라니, 장면을 떠올리며 공감하기가 매우 쉬울거라 생각된다. 흥행영화들은 재밌게 보지만 또 한편으론 가볍게 본다. 그리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에 따른 의견도 분분하다. 저자의 비평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그간의 흥행영화에 대해 보다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밖에도 <더 소울 오브 디자인>, <김종학 그림읽기>, <색채의 역사>, <브랜드 아이덴티티 불변의 법칙 100가지>가 눈에 띄였는데, <더 소울 오브 디자인>은 최근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모두 모여 있어 한번쯤 둘러보고 싶었고, <김종학 그림읽기>는 우리 화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의 작품이기에 좀 더 깊이 보고 싶었다. <색채의 역사>는 정말 흥미진진한 목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색채'하면 이론서 위주였던 반면 이 책은 개별적인 화가들의 색채까지 논하고 있어 더욱 내용이 풍부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평소 광고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눈길이 갔지만 '법칙'을 신뢰하지 않는 고로 흥미에서만 그친 책. <AA The Projects of Honours Nominees>는 이전에 출간된 <The Projects>와 같은 책이다. 똑같은 책에 종이 표지 한 장만 더 씌워 가격을 바꿔 출간했다. 그렇다면 2년전 가격은 사기인가? 정가 5만원에서 3만원으로 내리고 신간으로 출간하는 의도는 뭔지...거의 출판 사기다. 이번달에는 전반적으로 영화분야의 책들이 많았고, 평소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주제의 책들이 두드러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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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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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꽤 익숙한 말 중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는 모 기업의 슬로건이 있다. 이것의 본래 의도는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응원하고 도전과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러지의 이상을 전달하려는 것이겠지만 홍세화의 글을 읽고 나니 오히려 '세상대로 이끌려가는 생각'에 대한 반발, 사회의 기존 사고방식에 강요당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란 태어나면서부터 내 안에서 존재한다 느끼기에 자신의 소유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상 우리의 생각은 어릴적부터 가정과 학교를 통해 꾸준히 다듬어진 것이며 그것은 항상 시대와 문화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꿈을 가져라' '새로운 일에 도전해라'와 같은 푸른기 어린 덕담을 들으며 자라지만 극심한 경쟁사회 속에서 그 메시지는 사회가 최상으로 여기는 가치를 획득하라는 압박으로 밖에 여겨질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생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대로 이루는 것보다 절실한 과제로 여겨진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생각의 좌표>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언급했던 '지적 인종주의'에 물든 교육 현실과 피상적으로 자리잡은 노동자 의식을 속속들이 파헤치며 '사유하는 인간'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교육의 참모습인 학습(學習)이 배울 학(學) 따로, 익힐 습(習) 따로 분리되어 습(習)이 제구실을 못하는 이유를 물신주의 사회에서 찾는 홍세화는 학생들이 독서와 토론을 통해 주체적 사고를 확립하고 사회를 향한 비판적 사고를 갖출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좋은 것을 배워도 사회에서 그 반대의 것을 익힌다(習)(p.28)'는 사실과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일 뿐이라는 사실을 젊은이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또한 사회구성원들을 향해서는 계몽이나 의식화가 아닌 '탈의식'을 주문하는 것도 눈여겨 볼 점이다. 여기서 '지배세력에 의해 주입되고 세뇌된 의식을 벗고 발가벗은 존재가 되자(p.72)'라는 의미의 탈의식은 어떤 주체에 의해 끌려가게 마련인 계몽이나 의식화보다 사고 주체의 개인을 위해 타당한 제안으로 들린다.

우리는 흔히 '홍세화'하면 '좌파' 혹은 '중도좌파'라는 말을 떠올리지만 그가 지적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들은 좌우에 속하지 않고 공통필수에 해당하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이다. 특히 '노동자 의식'은 투쟁이라 쓰여진 조끼를 입을 때만 나타나고 일상에서는 '자발적 복종'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점, 자본주의 물신 사회의 종말은 인간이 아닌 자연의 반란에 의해 도래할 것이라 우려하는 점(물론 이것은 4대강사업과 현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한 서두일수도 있지만), 회색주의자란 더 검은 것을 색출하여 비난의 대상으로 삼고 흰색을 말살시켜 스스로의 더러움을 감추는 자들이라 고발하는 점 등은 이 책을 통해 깊이 성찰해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 '회색의 물신사회', '긴장의 항체'라는 타이틀을 중심으로 철학적 사유를 펼쳐가는 이 책은 교육과 주체적 사고, 노동자와 자본주의, 정부 현안이라는 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논리에만 그치치 않고 서민들의 생각과 일상에 직접 부딪힌 현장감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그가 얼마나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고민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런걸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잘 알려진 홍세화 답다고 해야할까? 대한민국 구석구석 그 난감한 지리를 대로든 골목이든 마다치 않고 누비는 모습이 무척 인상깊고도 고달파 보인다. 한편, <생각의 좌표>는 미래, 현재, 과거를 향해 차례대로 써보낸 세 통의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의 주체와 우리의 사고를 논하고 있는 부분은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될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요, 회색인이나 탈색 가능한 흑색인이 판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부분은 현 정부에 보내는 날카로운 상소이며,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 고국에 올 수 없었던 상처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명제를 되새기는 것은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다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솔직한 감정의 토로와 더불어 그가 추구해왔던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세가 담겨있다.

따라서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존재의 이유와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고 훼손하는 것이다...그것을 위해 반인간적인 것, 비인간적이게 하는 것들과 싸우고 저항하는 실천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자에게 있어 휴머니즘은 필요조건이며 동시에 권리이다...이것이 내가 나 자신을 그 무엇보다 휴머니스트라고 부르는 이유이며, 내가 기계적 이데올로기 논쟁과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던 근본 이유다.(p.245)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이제 그가 택시운전사라는 방랑기 어린 이름 대신 실천적 휴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려졌음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에 의하면 본래 휴머니즘이란 "중세 종교라는 성채에 대항했던 강건하고 적극적인 힘"을 의미한다니, 그 강건한 힘이 더욱 자라 물신 자본주의의 성채도 동일하게 발휘되길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홍세화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들렸다. 아니, 사실 그가 "쓸쓸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땅의 주류인 지배계급 편에 서지 않고 소수자로 힘겨운 저항을 계속하자니 힘에 부칠 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소수에겐 그래도 탄식보다는 의지가 어울린다"고 밝혔던 것을 기억하며 다시 앞을 향해 묵묵히 걸어갈 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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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개념어총서 WHAT 6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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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낡은 민주주의를 재생시켜보기 위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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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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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고 서울 탐험에 나선적이 있었다. 한강 고수부지의 한 지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삼각지, 서울역, 시청을 거쳐 종각에 이르렀다 되돌아오는 이 도보 여행은 지하철로 약 17~8개의 정거장에 해당하는 머나먼 거리였는데, 장장 4시간이 넘는 행군(?)을 날마다 반복한 탓에 발목에 무리가 생겨 결국 물리치료와 함께 3일천하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대중교통이나 차로 익숙했던 그 길을 '실제로' 걸어본다는 것은 3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여행에서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분명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막상 걸어보니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도가 난 곳이 의외로 사람을 반기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자연조건이나 교통계획에 의해 도심 속에서도 섬처럼 단절된 곳이 있었으며, 거리의 화려함 속에 갑작스런 초라함이 끼어들어 함몰된 듯한 느낌을 주는 풍경도, 오랜 지병처럼 끙끙거리는 노후지역의 신음소리가 대로변까지 들려오는 상황도 감지되었다. 대도시, 그것도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이라는 곳의 중앙 대로는 이처럼 번화함이나 화려함이라는 피상적인 단어만으로는 간과할 수 없는 다양한 표정들을 품고 있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를 펼치게 된 것은 그때 그 탐험의 느낌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그러나 나처럼 무모하지 않은 치밀하고 우직한 발걸음으로 서울을 경험했다면 분명 그때보다 더 풍부한 서울의 표정들을 생생하게 보여줄거라 기대했다. 또한 책속에 담긴 장소의 대부분은 유년기로부터 이십대까지의 내 모든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기에 나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그곳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아마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궁금증을 안고 있으리라!

경복궁에서부터 시작하여 명동, 효자동, 광화문, 종로 그리고 인사동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을 그려나간 스케치들은 마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손으로 만져 감각으로라도 기억하려는 노력인듯 정성스럽고 섬세하기 그지 없다. 스케치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촘촘히 그어내려간 선들, 거기서 화살표가 뻣어져 나와 더 자세히 또 더 자세히...그리고 또박또박 눌러 쓴 글씨로 그곳에서의 시간들을 단정하게 각인해 놓는다. 저자는 이렇게 서울의 시간들을 회고하며 옛 문화재와 옛 이야기들로부터 현대식 고층빌딩로 빽빽한 도심, 뒷골목에 자욱한 일상의 흔적에 이르기까지 씨줄과 날줄처럼 공존하는 시간들을 짜내려가고 있다.

정성스런 그림으로 상기해본 서울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까닭은 있는 그대로의 서울이 세밀하게 재현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서울을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 감성어린 시선들이 그림으로 나타나 우리가 바라는 서울의 정취와 여유를 만나게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삶의 고단한 흔적들에서 소소한 감동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골목이든 흔히 볼 수 있는 오목거울이 흑백 스케치 속에서 주황빛 모자를 쓰고 드러나는 순간, 골목이 환해지고, 어쩐지 안도감이 들며, 누군가가 지켜준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마저 솟아난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서울의 주요 문화재와 기념비적 건물들, 그리고 뒷골목의 풍경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어 더욱 살갑다. 때론 역사적인 인물도 만나고, 때론 서울을 지켜온 소문난 어르신들도 만나지만 그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만 보아도 서울 거리의 온기가 느껴진다.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오래되고 희귀한 나무들뿐만 아니라 일률적으로 '가로수'라 불려졌던 나무들이 제 이름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인사한다. 더불어 도시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서울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문제점이나 도시설계상의 이슈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따지고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저 지나치기 쉬운 표지석의 방향이나 문화재 보존을 위한 미비한 대책, 책상위에만 머문 도시계획으로 나타나는 어이없는 공간들은 성급하게 자라 온 서울의 시간을 지층이라 바라볼 때 격동으로 드러난 단층과 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어긋난 단층들을 고르게 잘 가꿔가야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서울 토박이인 나에게는 매우 절실하게 다가온다.


책 속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내게 소중한 의미가 되는 장소들을 꼽아보는 것이었다. 말로는 분명히 들었지만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시인 이상의 집,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저자의 스케치로나마 만나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그리고 광화문의 뒷모습! 이것을 다시 보게된 것이 얼마만인지...마지막으로 가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도 등장하는 덕수궁 돌담길의 작은 예배당! 저 안에는 아기천사가 되어 날개를 달고 있던 순수함의 추억이 고이 잠들어 있다. 지금은 서울을 향한 발걸음이 그저 일상에 지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왕복에 불과하지 않지만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탐색의 문을 활짝 연다면 나도 이 책에서처럼 반짝이며 살아있는 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

참 아름다운 생각이다.



 

늘 곁에 두고도 잊고있던 하늘이
욕심 없는 기둥 하나로 우리의 지붕이된다.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붙들어
우리의 서울이라 알려주는
지은이의 마음도
저 기둥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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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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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를 몇 페이지 넘겨보다 문득 떠오른 소감이었다. 아주 오래전 두팔을 벌려야 다 펼쳐질 만큼 커다란 신문의 한켠에서 4컷짜리 세방살이하듯 숨죽여 말해왔던 옛날 시사/풍자 만화들을 추억해 본다면 올컬러에 널찍한 지면을 차지하며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빵빵 해대는 요즘의(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신세기'의) 만화에서는 속시원한 웃음이 터져나올법도 한데 어째 웃음보는 이리도 비싸게 구는 것인지...

이것은 책의 내용탓이 아니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소리가 흔해진지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이렇게 씹을 것과 비틀 것이 많으니 정말 '제대로' 좋은 세상은 언제 오려나 하는 한탄(?)이 밀려오는 탓이다. 물론 우리보다 정치가 더 발달한 나라에서도 사회를 풍자하고 권력자와 관련인물들을 비판하는 만화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는 이런 만화들이 상당한 관심과 호응과 지지를 받는다는데 있다.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라일수록 정치적 후진국이라는 나의 얄팍한 상식에 비춰본다면 정치에 대한 신뢰가 견고해지기까지는 아직 먼 길로만 보여 톡쏘는 이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마음이 씁쓸하다.

저자의 필명인 '굽시니스트'만 봐도 그렇다. 할 말 다 하는 것 같아도 퇴짜맞은 원고였다는 사실을 '못다한 이야기'에 밝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언론은 제재받고, 따라서 삼켜야 할 말이 있으며, 스스로 (정권에 혹은 데스크에) 굽신거린다 자조하기 위해 지은 필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조할 수 밖에 없는 날들도 꽤나 있었을 것이다.

아직 현실은 언론에 대해 진정한 자유를 허락할 만큼 관용을 갖추진 못했지만 굽시니스트는 그 사이를 굽이굽이 통과하며 (그래서 굽시니스트일까?) 지난 2년 남짓 작업해 온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한권의 책으로, 못다한 이야기들까지 덧붙여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그 못다한 이야기들에 적힌 진지한 단상들 탓인지 단순한 시사 만화라기 보다는 한 편의 짧은 칼럼과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이 부분을 통해 그림에 사용된 이미지나 관련 정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고 있어 훨씬 더 작가의 교감이 수월해진다. 만일 MB를 스크루지로 묘사한 <크리스마스 캐롤>편에서 디킨스가 가졌던 산업혁명기의 빈곤문제와 21세기 한국의 상황을 비견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음을 은근히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저 잘 어울리는 이야기로 재미있게 표현했다는 느낌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표면적인 교훈을 너머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고 문득 더 넓은 사유의 장(場)으로 나아가게 된다.

굽시니스트의 만화가 즐겁고도 친근하게 읽히는 까닭은 단연 그의 탁월한 패러디 능력으로 꼽고싶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는 물론이고, 소설, 시, 가요, 연예인 등을 절묘하게 활용해 빵터지는 은유와 심지있는 대사들을 풀어놓은 장면들은 감탄과 더불어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절묘하다 생각되었던 것은 한때 인문학의 돌풍을 몰고왔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표지를 패러디해 과도한 인사정책을 비판한 <성의란 무엇인가>, 가요 <마법의 성>의 가사를 십분 활용해 박근혜와의 협상시도를 묘사한 세종시 문제, 레이디 가가의 분장을 통해 MB를 희화한 레이디 가카(여기서는 사디즘이 등장하는 수위 높은 그림이 슬쩍 비친다) 등인데, 이슈와 패러디가 유연하게 어우러지고 20~30대의 젊은 감각이 돗보여 과연 굽본좌라 부를만하다. 한편, 가장 찡한 감동을 자아냈던 장면은 김수영의 시 <풀>이 주는 감성으로 민심이 대세를 결정한다는 교훈을 남긴 '바람과 민초'편을 꼽겠다. 역시...가장 연약한 것 같지만 가장 힘이 있는 것은 민심, 그러나 민심을 공유하지 못하고 바람만 일으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본격 시사인 만화>에는 의외로 박통이나 5공시절과 같은 현대사 속의 이야기들이 간혹 등장한다. 그래서 정치와 시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단편적인 내용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의 유머나 깊은 부분까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굽시니스트의 만화에서 제맛을 느끼려면 아무래도 관련 상식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정치/시사만 잘 알아서도 안되고, 대중문화만 잘 알아서도 안된다. 비록 친절한 뒷설명이 종종 더해진다 해도 곳곳에 숨은 유머까지 읽어내려면 두 가지 지식이 겸비되어야 하니, 신세기의 만화를 위해서는 독자들도 부단히 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 굽시니스트가 시사만화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세대를 이끌어갈지 모르겠지만 한 회 한 회가 더 예리하고 소재 가득한 내용, 세련되고 여운을 남기는 풍자로 가득하길 바라며, 그의 활약을 통해 못다한 이야기들이 점점 줄어드는 사회, 비난받을 일 보다는 발전을 위한 쟁점들이 포착되는 사회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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