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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그림책 (양장)
데보라 언더우드 지음, 홍연미 옮김, 레나타 리우스카 그림 / 미세기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정말 각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그냥 귀여운 것도, 그냥 사랑스러운 것도 아닌, 꼭 ’각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이어야만 이 책을 넘겨 본 나의 소감을 그나마 적절히 표현해 줄 것 같다. 살포시 잠든 아기 토끼의 표지는 홀딱 반할만큼 깜찍하지만 이것은 단지 전주곡에 불과할 뿐, 귀여운 모습들과 천진난만한 동심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조용함이 깊어가는 가운데 점점 더 사랑스럽게 여물어 간다(단, 이 책의 규칙에 따라 ’소근소근’ 읽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조용한 그림책>은 처음부터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책이 아니였다. 책을 읽을 조카가 사내아이인지라 이 ’각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을 과연 나만큼이나 좋아해 줄지, 조용한 순간들을 잘 음미하며 조용히 감상해 줄지 선뜻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시간만 보내며 책 설명 사이를 방황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우연히 ’정서 지능’이라는 용어가 눈에 띄였다. 순간(번쩍!), 일반적으로 남자아이들(사실 남성적 뇌를 가진 아이들)은 공감 능력과 정서 능력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을 더 챙겨줘야 한다는 교육방송이 떠오르면서 남자아이의 ’취향’에 대한 걱정은 그만 거둬들였다.

쉿! 이제부터 <조용한 그림책>에 대해 소근소근 말해야겠다. 이 책에는 아이들이 생각하는 조용한 순간들이 ’어머나, 이렇게 많아?’라고 할만큼 가득 담겨있다. 제법 어른스런 생각들도 있고, 쿡쿡 웃음이 날만큼 기발한 생각들도 있으며, 순진하고 어여쁜 생각, 배려와 사랑이 가득한 생각 등등 조용한 순간들의 색채는 다양하고 섬세했다. 이 많은 생각들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대략 몇 가지로 구분해 보면 먼저 일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평범하고 조용한 순간들이다. 맨날 시끌벅적 노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 조용한 순간들을 꼽아내는 것을 보면 정말 기특하고 신기하다.

아이들에게 있어 조용한 순간이란 일상의 평안한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무서움 속에서도, 난처함과 반성의 시간 속에서도, 놀래키기 놀이같은 긴장감 속에서도 용케 조용한 순간들을 발견해 내며 조용함이란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감정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아이들이 생각한 조용한 순간들 중 참 운치있고 기발한 것들이다. 소원을 비는 순간이 얼마나 간절하고 행복했기에 저리 달콤한 표정을 하고 빙긋이 웃고 있을까? 눈 내리는 밤의 고요를 느끼는 마음은 또 얼마나 감성적인가? 게다가 부풀어 오르는 비누거품에서 조용함을 발견하는 놀라운 관찰력이란...정말 예기치 못한 조용한 순간들에 감탄하며 깜짝 깜짝 놀라는 바람에 조용히 읽는다는 게 쉽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조용한 순간들은 바로 사랑의 시간들이다. 단짝 친구와 함께 있으면 아무 말도 필요없다는 제법 의젓한 생각도 돗보이고, 엄마의 뽀뽀를 조용한 순간 속에 챙겨넣는 마음씨도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시작해 하루 일과 속의 조용한 순간들을 차분히 엮어나간 <조용한 그림책>은 아늑한 침실에서 소근소근 읽어주는게 제격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잠들기 전 세상의 모든 조용한 순간들을 마음속에 챙겨보며 하루를 돌이켜보고, 조용함에서 번져오는 평화로움을 맛보는 가운데 아이는 행복하게 잠들 것이다. 조용히...조용히...
